[일기] 8월 9일


해가 길다는 한여름 날의 아침이지만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 5시 20분 기상, 충주의 습습하고 미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출근을 한다. 6시, 출근 체크를 하고 업무를 시작…….



밤 9시 반,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퇴근을 한다. 약간은 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보내고 있는 내 인생의 시간들은, 기왕 낭비 될 것이라면 좀 더 나태하고 좀 더 달콤하게 낭비될 수도 있을 텐데.



운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음에도 지난 한 주간 체중이 오히려 1kg 줄었다. 엄격한 식사량 조절 탓도 있지만, 몸이 ‘곯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쉬며 영양 보충을 좀 했다. 그러나 충주에서 생활하는 평일 간에는 여전히 섭취에 주의하고 있다.



어제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해 겨우 네 시간 정도 자는 둥 마는 둥하다가 출근했는데, 덕분에 힘든 하루를 보냈다. 상황실에서 공부하다 조는 모습을 처장님께 들키기도 하고. 처장님께는 이래저래 좋은 인상은 못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뭐 워낙 뭐든지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능력과 능률이 남다르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만큼만 지속하면 금방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6시 출근이었던 만큼 저녁 8시 퇴근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비상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기대는 무산됐다. 9시까지는 어떻게든 견뎠는데, 9시를 넘기고 나니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감정 조절도 잘 안 돼서 짜증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고. 그래도 비상시 상황실 업무는 다이내믹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상세히 적을 수 없다는 거다. 오늘은 그냥 좀 힘들었던 하루로, 그 영문도 잊힌 채 단순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위안이 되는 게 있을까? 지치고 피로한 일상에,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곤 거의 주어지지 않는 생활 속에서? 아마 있다면, 그것은 그나마 짬을 내서 틈틈이 몇 줄 읽는 책과 음악이겠지. 더위에도 불구하고 AKG의 무거운 헤드폰을 꺼내 볼륨을 최대로 하고(그래도 소리가 크지 않다, 이 모니터용 헤드폰은 저항이 너무 높기 때문에)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듣는다. 이 시간만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다.



방에 에어컨을 설치 할 생각이다. 책꽂이도 들여놓고, 다용도실에는 세탁기를 놔야지. 거실에는 벌써 작은 원형 테이블을 가져다 놨다. 딱 두 끼 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작은 전기밥솥도 있다. 오디오트랙 Cube 사운드카드와 브리츠의 PC 스피커도 주문 해 두었다. 이 공간, 점점 나의 공간으로 바꾸어 갈 것이다. 혼자 사는 건 아니지만, 취향은 몰취향을 이긴다. 개성은 부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니까.



주중에는 시간이 없더라도 조금씩 글을 쓰곤 했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여력이 없다. 독일 레퀴엠만 마저 듣고 자야겠다. 내일도 해 뜨기 전에 출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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