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8월 18일, 글쓰기


훈련 삼일 차. 업무에 익숙해져서 더 이상 치이는 일은 없다. 긴장 상태가 지나가자 한없는 무료함이 엄습한다. 그저 지루할 뿐.



공군에 몇 없는 일본어 어학 장교이다 보니 간혹 일본어 번역 의뢰가 들어온다. 외국 장성에게 보내는 축하, 위로 서신이나 단순히 안부를 전하는 사적인 서신, 각종 발표 자료나 스크립트의 번역 따위가 주를 이룬다. 내가 일어 통역이니 번역 의뢰야 얼마든지 받아 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원문은 제대로 써서 줘야 되지 않나? 한국인이 한국어로 쓴 것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엉망진창인 글들이 대부분이다. 수많은 비문들, 맞춤법 오류들, 그리고 문맥상 도저히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없는 문장들, 되는대로 갖다 붙인 미사여구들…….



그런데 이게 비단 ‘못 배운’ 군인들만의 문제일까.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할 줄 안다는 것이다. 반대로 글을 두서없고 난삽하게 쓰는 것은, 그만큼 생각도 깊이가 없고 논리가 결여되어 주장이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니, 이런 사람들이 바로 ‘멍청이’다. 소위 명문 대학의 간판을 달고, 좋은 학점에 높은 영어 시험 성적을 쌓고, 각종 자격증을 취득한 사람들 중에도 이런 ‘멍청이’는 너무나도 많다. 나는 기업인이 아니니까, 이런 멍청이도 회사 운영에는 도움이 되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다만 내 기준에서는, 글 쓰는 능력은 곧 인간의 품격과 관련되어 있다.



부나 지위, 명예 같은 것들도 물론 만족스러운 삶을 살기 위해서는 필요한 것들이다. 하지만 세상을 이해하는 식견, 예술을 즐길 줄 아는 안목, 여론에 매몰되지 않는 합리적인 이성 역시 훌륭한 인생을 위해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것들이다. 돈이 많으면 세상 어디라도 갈 수 있겠지만, 식견이 없으면 어느 곳을 가더라도 여행의 진정한 의미를 발견할 수 없다. 인간의 격을 한 차원 높여주는 고매한 정신은, 독서와 글쓰기의 반복을 통해 길러진다. 글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은 마치 향기 없는 꽃처럼 매력이 없다. 그의 정신이 너무나도 빈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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