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차 엔진 폭발, 음대에서의 레슨


추석 연휴는, 원인 미상의 알레르기 때문에 힘들게 보냈다. 25년 평생 알레르기 따위는 모르고 지냈는데, 요 근래 분당 집에만 가면 자꾸 목과 코가 가렵고 재채기가 나는 게, 처음에는 그냥 감기인가보다 하고 지나쳤지만 이제 분명해졌다. 이게 바로 사람들이 말하는 ‘알레르기’인 모양이다. 이번 추석 연휴 기간에는 증상이 피크에 달해, 정신이 멍해지고 두통까지 일 정도였다.



연휴 마지막 날, 시원하게 뚫린 하행 고속도로를 신나게 질주하고 있었다. 동공주 IC를 지나 당진상주고속도로로 진입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차가 갑자기 굉음을 내면서 퍼졌다. 설 명절 보너스를 받고 좋아하다가 중부고속도로에서 엔진 오일 부족으로 엔진이 터지면서 그야말로 목숨을 잃을 뻔 했던 올 초의 그 악몽 같은 날이 완벽하게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엔진을 교체했지만, 그 이후로도 엔진 오일 소모가 심해서 수시로 보충하고 다녔는데, 얼마 전 엔진 오일을 교체한 이후로 웬일로 오래 잘 달려준다 싶었으나, 램프에 경고등 띄우는 예고도 없이 엔진이 터져버리는 건 대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추석 보너스로 새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하려는 단꿈에 부풀어있던 나의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치는 한 방이었다. 밤 11시 반에 고속도로 갓길에서 견인차를 기다리는 그 심정이란. 지나가던 고속도로 순찰차가 나를 발견하고, 안전을 위해 20m 정도 뒤에서 경광등을 켜고 대기해줬다. 쪽팔리긴 했어도 진심으로 고마웠다.



스마트폰으로 네이버 지도를 켜고 찍어보니, 서대전까지 남은 거리는 약 30km 정도. 무상 견인 거리인 10km를 제하고, km당 2천원 추가 요금 물면, 방까지 5만원 안에 가겠다 싶어서, 관저동 원룸 가장 가까운 카센터로 가달라고 했다. 다행히 방으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애니카 카센터가 있어서, 그곳에 차를 내려놓고 나는 방으로 돌아갔다. 샤워를 하고 마음을 좀 진정시켜보려고 했지만, 잠은 이미 다 잔 셈. 거의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아침에 출근 버스를 타고 출근했다.



오전에 카센터와 연락이 닿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엔진은 완전히 망가진 것 같다고. 오후에는 등산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반가를 쓰고 나와 부랴부랴 카센터로 가서 대충 사정을 들었다. 확실히 문제는 오일이 어딘가에서 새면서 급격하게 빠져버리고, 엔진은 말라붙은 상태에서 무리한 운전으로 속이 완전히 망가져버렸다는 것이다. 오일이 새는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어차피 엔진을 다른 것으로 갈든가 완전히 새로 조립해야 하는 지금 상태에서 그걸 밝혀내는 건 무의미한 일. 중고 엔진을 사다 얹을까 했지만, 복불복이라는 말에 일단 보링을 하기로 했다. 이렇게 또 추석 보너스는 허공으로 사라졌다.



이 차에 이렇게 많은 수리비가 들어갈 줄 알았더라면 진작 중고차 한 대를 샀겠지만, 장차 내가 한국에서 지낼 날도 앞으로 길어야 3년. 차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도 제대할 때까지이니 2년만 버티면 된다. 이 마티즈는, 언젠가 반드시 내 손으로 폐차해버리겠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이제는 정말 ‘미운 정’이 들어버린 이 차를 타고 다녀야겠다.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방에 돌아와 잠을 좀 자고, 레슨을 받으러 출발했다. 차가 없으니 버스를 타야 했는데, 버스 카드로 쓸 수 있는 국방복지카드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신용카드로 만들길 정말 잘 했어.



평소 직접 운전 해 가면 20분이면 가는 거린데, 버스를 이용하니 걷는 시간, 기다리는 시간, 갈아타는 시간 등 포함해서 거의 1시간이 걸린다. 땀범벅이 되어서 겨우 연습실에 도착해서는 그 두터운 철문 앞에서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연습실 열쇠는 차 키홀더에 같이 끼워놨고, 그 키홀더는 지금 공업사로 간 내 차에 꽂혀있을 것이다. 레슨 시작까지 20분밖에 안 남았는데! 저녁도 못 먹고 허겁지겁 달려왔는데!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선생님 왈, 레슨 할 장소가 있을 것 같단다. 선생님을 기다리면서 일단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 저녁을 때웠다.



선생님이 나를 데리고 간 곳은 다름 아닌 선생님 모교인 충남대학교의 음대 연습실. 세상에 내게 음대 연습실을 써 볼 날이 오다니! 나는 대학 시절에도 종종 음악 감상을 하러 음대 도서관을 이용한 일이 있다. 그래서 음대 연습실이 얼마나 비좁고 갑갑한 공간인지는 오며 가며 곁눈질로 봐서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실제 연습실은, 정말이지 ‘음대의 로망’ 운운하기에는 너무 삭막하고 척박한 공간이었다. 중간 중간 모기도 잡으면서, 레슨을 받았다.



모차르트 4번 대신 선생님이 가져 온 곡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그 유명한 ‘스프링 소나타’다. 결국 이 곡을 피할 수가 없구나. 이 곡은,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들으면 알만큼 너무 유명한 곡이다. 게다가 분위기는 나와는 어울리지 않게 너무 밝고 경쾌하고 아름답다. 나에겐 뭔가 우울하고 음습한 곡이 어울리는 것 같은데 말이다. 아무튼 당분간은 이 곡을 연습하게 될 것 같다.



어제부터 계속 우울했는데, 레슨을 받고 오니 기분이 좀 상쾌해졌다. 연습실 키가 없어서 당분간 연습실을 이용할 수 없으니, 내일은 운동이나 가야겠다. 추석 기간에 몸 안 구석구석 쌓아놓은 칼로리를 좀 소모하면, 기분이 더 상쾌해질 것이다.

2 thoughts on “[일기] 차 엔진 폭발, 음대에서의 레슨

  1. 이 마티즈는, 언젠가 반드시 내 손으로 폐차해버리겠다.

    ㅋㅋㅋㅋㅋ 너 군생활 하더니 유머가 부쩍 늘었다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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