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후


캠프에 대해서도 몇 자 적어두는 것이 좋겠지. 사실 캠프 다녀 온 뒤로 컨디션이 영 엉망이다. 날씨도 한 몫 하는 것 같지만.



운전은 문제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려운 거야 시내 운전이지, 내쳐 달리기만 하면 되는 고속도로 운전은 어려울 게 없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내려서 좀 긴장하긴 했지만.



캠프는 시종 가식적인 상황에서 서로 서툰 연기를 하다가 막판에 기만적인 감동을 부르짖으며 끝났다. 인간적인 약점들에는 관용적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남들을 붙잡고 내 관심사를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짓은 하지 않는다. 가령 ‘그러고 보니 요즘 든 생각인데, 우리가 보통 서양 중세 시대 때 봉건 영주들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영토를 일컫는 단어인 장원(莊園)은, 사실 8세기 초 일본에서 생겨난 지방 호족이나 낙향 귀족들의 광대한 사유지를 지칭하는 단어였잖습니까? 여기서 오는 개념상의 혼동…….’이라는 식의 대화를 시작한다면, 이건 상대방을 질식시키겠다는 도발이나 다름없다. 결국 그것은 폭력 아닌가?



반대로 나는 동아리 내의 누가 누구와 사귀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고, 여성 품평이나 타인의 뒤 담화 같은 것에도 흥미가 없다. 개인의 연애사 같은 것을 구구절절 듣고 있느니 차라리 마다가스카르 풍조(風鳥)의 짝짓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낫다.



내가 남들과 어떤 공통의 화젯거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게으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이집트가 동유럽 국가인 줄 알거나 고흐를 ‘절규’의 화가로 아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서 나는 정말 무슨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TV 예능 프로에서 한 패널이 자작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 옆에서 한 명이 참 잘 썼다고 감탄한다. 그 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그대로 가져와 단어만 몇 개 바꾼 이른바 ‘패러디 시’였다. 이런 인간도 지난 학기 경제학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다며, 자신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간혹 내가 의미 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책이라도 한 줄 읽으려 하면 별종이라는 듯이 바라본다. 내 쪽에서 보자면, 냄비에다가 아무 거리낌 없이 맥주와 소주와 탄산음료를 뒤섞어서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이 훨씬 기이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종국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뻔히 보인다. 비좁은 자리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도 이따금 맞닿은 살결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더 넓은 면적을 통해 더 높은 체온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어떤 친밀감을 구축해야 할까? 그러나 서로의 얼굴을 벌겋게 달구어놓는 술자리는 하룻밤의 판타지이다. 다음 날 아침이면 김빠진 맥주처럼 밍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고작 서로의 컵에 땅콩을 집어 던지며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사교(社交)의 기술이라니!



이런 상황에 대해 새삼스럽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다소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도 용인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생애 대부분을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내가 사람들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내게 무슨 비판의 자격이 있겠는가? 단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지치고 짜증이 났던 것이다.



사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다 바쳐도 전혀 응답을 해 주지 않는 저 악기(樂器)의 무서운 침묵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의 헛소리보다도 내 악기의 거친 소리가 훨씬 더 가슴을 깊이 후벼 판다. 멍청한 것으로 치자면 몇 년째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내 둔한 손가락만한 것이 또 있을까. 평범한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언제까지 한결 같은 정열을 쏟아 부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회의와 의혹이 정신을 좀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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