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6월 9일


보르헤스는 산책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단편소설 한 편을 써낼 수 있었다. 산책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남은 일은, 구상이 끝난 소설을 문자로 옮기는 것뿐이었다.



내가 감히 보르헤스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서 구상했다가 한 번에 써내려가는 스타일이다. 앉은 자리에서 끝내지 못 하면, 좀처럼 다음 날 이어가지 못 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래서 많은 글들을 구상 단계에서 포기해버렸거나 혹은 쓰다가 중도에 멈추고 말았다.



유년 시절 이미 도서관을 통째로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곧 시력을 잃어서 평생 자기 내부의 재료들을 찬찬히 살필 여유가 있었던 보르헤스와 달리, 독서로 쌓은 밑천도 일천하고 시각적 유혹에도 약해서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이 팔리기 일쑤인 나는, 보다 집중력과 인내심을 기르지 않으면 평생 글다운 글은 한 편도 쓰지 못 한 채 죽어버릴 것만 같다.



집중력과 인내심, 체력은 글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인 것 같다. 훈련이 필요하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