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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음악/공연



내가 이런 공연의 리뷰도 써야하나…….

아니, 난 관대하니까.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어머니의 대학원시절 지도교수였던 분이 성남아트센터의 무슨 회원 자격으로 이따금 공연 티켓을 제공 받는다고 한다. 그러면 마침 성남에 살고 있는 엄마를 연주회에 초대한다. 이날도 그랬다.

보통 이런 자리에는 엄마와 아빠가 함께 나간다. 그러나 이 날은 아빠가 강연을 나갔기 때문에, 엄마는 대신 나를 대동하고 나가기로 했다. 무슨 연주회인지 아무런 정보를 듣지 못 했지만, 나는 약간의 기대감을 안고 흔쾌히 동행하기로 했다.

일찌감치 성남아트센터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콘서트 홀 앞에서 교수님 부부를 만나 티켓을 전달 받았다. 무슨 자선 콘서트를 표방하기에, 공짜표를 얻어 온 나는 일부러 내용은 아무 것도 없지만 가격은 3천원이나 하는 프로그램 북을 구입해 입장했다. 그리고 연주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그 빈약한 프로그램 북을 펼쳐 연주곡들과 연주단체를 살펴보았는데…….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연주 단체는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 그러니까 아마추어 공연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대부분 초중고교에 다니는 어린애들로 이루어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말이다!

이 시점에서 이미 두 가지 의문을 품게 되었다.

첫 번째. 대체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 같은 어린애들의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어떻게 성남아트센터 콘서트 홀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걸까?

두 번째. 학생들의 부모와 친척들이라면 모를까, 그 외에는 불러봤자 욕만 먹을 연주회에, 왜 초대장까지 뿌려가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을까?

그런데 이 의문들은 공연을 관람하는 중에 자연스럽게 해소되었다.



프로그램은 위와 같았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만큼 연주의 질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겠다. 그냥 연주 외적인 면에서 몇 가지 감상을 적자면, 어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든 악장 자리에는 바이올린 제대로 배운 티가 나는 녀석이 앉아있다는 것. 그리고 어느 어마추어 오케스트라든 비올라 파트는 대부분 움직거리는 마네킹 수준이지만 그럼에도 항상 수석 자리에 만큼은 바이올린을 했으면 나보다 잘했을 것 같은 실력자가 앉아있다는 것.

연주 자체는……. 아, 여기에 대해서는 함구하기로 했지.

하바네라 연주할 때에는 프로그램에 이름조차 적히지 않은 성악가가 나와서 오케스트라를 묻어버리는 노래를 부르고, 막판에 들고 있던 꽃을 객석에 던지고 나갔다.

그리고 인터미션도 없이 이어진 연주회의 9번째 프로그램. 갑자기 한 무리 백발의 노인들이 우수수 쏟아져 나오는 게 아닌가. 분명 아까 저녁 식사 때 식당에서 본 사람들이었다. 사람들과 인사하고 담소 나누느라 바빴던 사람들인데.

이들의 정체는 바로 CEO 중창단. 분당에 소재하는 각종 기업의 CEO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말하자면 ‘중창 동호회’인 것이다. 여기서 연주 시작 시부터 품게 되었던 의문을 풀어 줄 실마리를 찾았다. 바로 CEO 중창단 멤버 중에 ‘성남아트센터’의 사장도 속해 있었던 것.

그러니까 성남아트센터의 사장은, 지역 사회 공헌이라는 공익적 기치를 전면에 내걸고 자신이 속한 동호회의 연주를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올린 것. 그리고 분당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이 중창단의 반주를 위해(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MR를 깔고 노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하다) 불려온 것이겠지. 엄마의 지도교수가 이 사장님과 무슨 친분이 있다고 하니까, 초대권을 받게 된 것도 납득이 간다.

그래서 노래 자체는 어땠냐면……. 아, 언급 안 하기로 했지.

애당초 아마추어 무대인 줄 알고 갔더라면, 나 역시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매우 개방적인 자세로, 따뜻한 시선으로, 즐기려는 마음으로 이들의 연주를 감상했을 것이다. 사실 나는 아마추어 연주를 꽤 자주 보러 다니는 편이고, 그들에게 가장 열렬한 박수를 보내는 사람이다. 그러나 교수님의 초대를 받고 간 연주회가 이런 것이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사실 좀 툴툴거리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나마 이 연주회를 살려준 것은 유엔젤보이스라고 하는 남성 6인조 중창단. 이들은 프로였다. 노래를 잘하는데다가 잘생기기까지 해서, 관객 호응도가 대단했다. 옆에서 이들의 공연을 내내 흐뭇하게 지켜보던 엄마 왈 “오늘 공연의 메인은 얘들이구나.”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어.

유도된 앙코르 요청에 두 곡을 더 부르고, 꼬마 관객들에게는 색색의 공까지 던져주며 공연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연이 끝나고는, 따로 마려된 별실에서 공연 주최자와 지인들이 모여 조촐한 연회를 열었다. 교수님 부부를 따라서 나도 들어가게 되었는데, 동네 아저씨인 선우재덕씨가 사람들에게 어묵을 나눠주고 있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요즘 어묵 장사를 시작했다나. 막걸리야 그렇다 치고, 와인은 대체 어묵과 어떤 조화를 이루는 거지.

단장, 후원회장, 총무, 지휘자, 저명인사 등등의 인사가 이런 자리에서 빠질 수 없지. 나랑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이야기들이지만, 하도 사람들이 먹는 데에만 정신이 팔려있기에 내가 미안한 생각이 들어서 이야기를 경청 해 주었다.

이번 연주회가 제1회였다고 한다. 지역 사회 공헌이라는 공익적 기치를 내걸고 있는데, 어떤 식으로 지역 사회에 공헌을 하겠다는 것인지 나로선 잘 알 수 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공연은 여는 자체로 막대한 지출이 될 뿐이다. 아무리 공익적 목적이라지만, 아마추어 공연으로 돈을 벌수야 없는 것 아닌가? 하지만 CEO들의 세계이니, 오히려 돈 빠지는 수챗구멍을 열어두는 것이 자금 마련을 위한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으려나. 어떤 아줌마는 이 모임 구성을 위해 1억 원을 선뜻 내놓았다는 얘기도 있다. 뭐 CEO들의 호사스러운 취미 활동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렇게 건전하게 논다는데, 차라리 칭찬을 해줘야지.

아무튼 좀 웃긴 하루였다.


2009/11/07 03:03 2009/11/07 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