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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nor : Ian Bostridge

Piano : Julius Drake
 
Recording Date : March, 1996, at No.1 studio, in Abbey Road of London

가사

2012/05/29 00:42 2012/05/29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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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음악계에 ‘5인조’가 있다면, 프랑스 음악계에는 ‘6인조’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100년이나 혹은 200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에는 프랑스 6인조가 러시아 5인조만큼 유명해질 수 있을까? 갖은 우연과 거짓말, 어리석음이 판치는 게 인간의 역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한편으로 시간의 심판은 누구에게든 그 업적에 걸맞은 명예를 찾아주거나 반대로 부당하게 누리는 명성을 앗아가 버린다. 아득한 과거의 것임에도 미래를 기약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이른바 ‘클래식’이라 분류되는 음악의 멋진 점일 것이다.

Les Six

프랑스 6인조(Les Six)의 사진. 왼쪽부터 타이페르, 플랑크, 오네게르, 미요, 뒤레, 오리크.


오늘 소개할 음악가는 다리우스 미요. 앞서 언급한 프랑스 6인조의 일원이다. 미요는 이 프랑스 6인조의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6인조의 구성은 전적으로 우연에 의한 것이다. 오리크, 뒤레, 오네게르, 플랑크, 타이페르 그리고 나는 서로 잘 아는 친구 사이였고, 우연히 한 연주회에 함께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음악적 기질이나 성향은 전혀 달라서, 별로 공통점이 없었다.”

여기서 미요가 언급하는 한 연주회는, 역시 프랑스 출신의 작곡가인 에릭 사티가 주도적으로 기획한 ‘새로운 젊은이들(Nouveaux Jeunes)’이라는 공연이었다. 에릭 사티는 세계 1차 대전 이후 침체된 예술계에 신선한 바람을 몰고 올 요량으로 자기 주위의 젊은 작곡가들을 모아 연주회를 기획하게 되었는데, 이 연주회에 참여한 사람이 바로 미요가 말한, ‘서로 잘 알고 지냈지만 음악적 성향은 달랐던 여섯 명’이었다. 그런데 이 여섯 사람의 연주회가 한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문화 비평가였던 앙리 콜레다. 콜레는 프랑스 출신의 젊은 음악가 6인의 조합을 보고 즉각적으로 러시아 5인조를 떠올렸다. 그리고 그가 글을 기고하던 신문인 <코메디아>에 ‘6인조(Les Six)’라는 호칭과 함께 비평을 실었다. 이후로 이 젊은 작곡가들의 모임은 ‘6인조’로 이름 지어졌다.

그러나 미요 스스로가 밝히고 있는 것처럼, 프랑스의 6인조에게는 러시아의 5인조에게 있었던 ‘민족주의’와 같은 강력한 지향점이 없었다. 20세기는 역사상 그 어느 시기보다도 예술계에 다양한 ‘주의’가 쏟아져 나온 시대였지만, 그것은 역설적으로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한데 묶을 지배적인 정신이 상실된 것을 의미했다.

프랑스 6인조의 음악 사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사람은 장 콕토였다. 그러나 콕토부터가 모든 예술의 영역에 남김없이 도전한 왕성한 행동주의자요, 모든 새로운 시도를 지지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인 동시에, 은밀하게 과거의 질서와 운명론, 신비주의를 추종하는 낭만파이기도 했다. 이렇게 일관성이 결여된 인물을 6인조가 추종했던 것을 보면, 6인조는 함께 무언가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어 했지만, 정작 무엇을 하면 좋을지는 몰랐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 6인조는, 개성 넘치는 여섯 작곡가들의 사교모임 이상의 그 무엇이 되지는 못 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러시아 5인조 모두의 곡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곡을 쓴 미요 같은 인물이 포함되어 있음에도, 프랑스 6인조가 러시아 5인조의 명성을 뛰어넘지 못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D. Milhaud

Darius Milhaud(1892-1974)



다리우스 미요는 재능 있는 작곡가였다. 이 말은, 샘솟는 영감의 원천과 더불어 아이디어에 형태를 부여할 수 있는 구성의 능력과 자신의 음악적 사상을 구축할 수 있는 논리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뜻이다. 그야말로 미요는 ‘고개를 까딱하면 음악이 쏟아져 나오는’ 부류의 작곡가였다.

20세기의 작곡가답게 그는 새로운 것도 열심히 추구했다. 그중 하나는 다조(多調:polytonality)형식이다. 다조형식이란 여러 성부를 서로 다른 조성으로 작곡하는 방식을 말한다. 이런 기법은 사실 과거에도 종종 사용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가령 모차르트가 ‘음악의 유희(Musical Joke)’에서 사용한 것처럼 의도적으로 우스꽝스럽거나 기괴한 인상을 주기 위해 도입한 변칙적 시도가 대부분이었다. 미요는 다조성 음악을 진지하게 연구하고 양식화를 시도한 작곡가로, 그의 곡 ‘프로메테우스’에는 무려 12개의 조가 동시에 연주되는 부분이 등장하기도 한다.

미요가 관심을 가진 또 다른 분야는 바로 재즈였다. 이것이야 말로 오늘 소개할 곡과 관련이 깊다. 미요는 1920년, 런던에서 빌리 아놀드의 밴드가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이것이 재즈와의 첫 조우였다. 2년 후인 1922년에 미요는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재즈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는 저녁이면 할렘을 전전하며 여러 흑인 음악가들의 재즈 음악을 들었다. 미요는 재즈 음악에 과거 아프리카 대륙에서 강제로 끌려와 노예 생활을 강요당했던 흑인들의 민족음악이 녹아있으며, 또 삶의 애환과 슬픔이 담겨있다고 생각했다. 여행을 마치고 귀국할 때에도 그는 재즈 음반을 구입해 가져왔고, 재즈를 직접 연주하는 등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그에게 곡 의뢰가 들어왔다. 스웨덴의 발레단인 발레 쉬에두아(Ballet Suedois)의 단장, 롤프 드 마레(Rolf de Mare)가 미요에게 새로운 발레곡을 의뢰한 것이다. 그 주제는 ‘천지창조’였다.

‘천지창조’라고 하면 으레 이미 하이든이라고 하는 대작곡가에 의해 음악화 된 바 있으며, 성서의 ‘창세기’ 첫 부분을 장식하는 장대한 신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러나 미요가 받은 시나리오는, 기독교 문명에 뿌리를 둔 거의 모든 서양의 예술가들을 자극했던 성서의 ‘천지창조’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독교 문명과는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아프리카의 신화였던 것이다. 블레즈 상드라스가 집필한 시나리오에는 아프리카의 세 신(神)이 만물에 생명을 불어넣는 역동적인 장면과 남자와 여자가 탄생하여 사랑을 나누는 감미로운 장면들이 녹아들어 있었다. 이는 과거 스트라빈스키가 곡을 쓴 ‘봄의 제전’에서처럼 폭력과 야만으로 얼룩진 이민족/원시 신화와는 성격이 전혀 다른 것이었다.

미요는 무릎을 쳤다. 아프리카 민족의 신화를 묘사하는 데에는, 그 어떤 음악 형식보다도 재즈가 적합할 터였다. 미요는 그동안 재즈 연구에 몰두하며 얻은 성과를 작품화 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곧 작곡에 착수했다.

미요는 이 곡을 쓰면서, 재즈의 요소를 클래식 뼈대 안에다가 어설프게 우겨넣을 것이 아니라, 정말 재즈의 스타일을 충실히 살린 곡을 쓰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선율이나 리듬만을 채용하는 것을 넘어서 악기의 편성도 과감하게 구성했다. 현은 기본 콰르텟 구성에서 비올라를 색소폰으로 대체했고, 타악기는 탬버린, 탐탐, 사이드 드럼 등 무려 9개를 포함시켰다. 클래식과 재즈의 완벽한 융합을 이루어 낸 이 곡은 1923년 10월 25일에 초연되었는데, 이는 비슷한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남긴 조지 거슈인의 대표작 ‘랩소디 인 블루’보다 1년가량이나 앞선 것이다.

전체 연주 시간이 약 16분 남짓인 이 곡은 총 여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


La creation du monde, Op. 81a

1. Overture(00:00~)

시작은 색소폰이 긴 호흡으로 연주하는 레가토 선율이다. 어딘가 공허하고 텅 비어있는 느낌이다. 세 신(神)들이 등장하기 이전, 공백의 상태를 암시하는 것 같다.

2. The Chaos before Creation(03:56~)

기나긴 공허의 끝에, 피아노와 드럼이 등장하면서 마치 때리는 듯 강렬한 리듬을 연주한다. 그 위로 베이스와 금관(트럼펫, 색소폰, 트럼본)이 재즈 선율을 푸가로 연주하는데, 자유분방한 선율이 서로 다른 악기를 통해 대위법적으로 반복되는 이 독특한 느낌은 창조를 담당하는 아프리카의 세 신을 적절하게 묘사하고 있다. 마치 본격적인 창조의 행위에 돌입하기 전, 의식 행위로 자유로운 춤을 추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3. The slowly lifting darkness, the creation of trees, plants, insects, birds and beasts(05:26~)

요란스럽던 광분이 갑자기 잦아든다. 음악은 다시 서곡의 선율을 반복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공허와 어둠이 오래 지속되지 않고 서서히 걷힌다. 플루트에게서 선율을 건네받은 오보에가 느릿느릿 연주하며 서서히 생명이 깨어나는 것을 묘사한다(07:00~). 플루트의 지저귀는 듯한 소리가 약간의 긴장감을 고조시키는데, 곧 지극한 환희를 맞이하기 위한 암시이다.

4. Man and woman created(08:49~)

드디어 인간이 탄생했다. 남자와 여자는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살피고, 움직이며 호기심을 충족하고 기쁨을 만끽한다. 바순의 다소 익살스러운 리듬 위에 얹어지는 두 바이올린의 경쾌한 선율이 인상적이다. 분위기는 점차 역동적으로 고조된다.

5. The desire of man and woman(09:52~)

이윽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고, 사랑의 욕구를 느끼게 된다. 막 몸을 움직이게 되었을 때의 흥분을 묘사하던 떠들썩한 분위기는 가라앉고, 두 사람의 감정을 따라 현이 연주하는 감미로운 선율이 흐른다. 이어서 기교적인 클라리넷 연주가 이어진다.

6. The man and woman kiss(11:40~)

색소폰의 등장과 함께 음악은 다시 오프닝의 느린 선율로 돌아가지만, 이번에는 공허와 어둠 대신 빛과 희망으로 가득 차있다. 음악은 이제 각 파트의 주제들을 다시 한 번 재현하며 떠들썩한 분위기를 몰고 오고, 창조와 사랑의 완성 속에서 완만하게 사그라진다.

2011/07/27 03:08 2011/07/27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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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Joseph Noel Paton (1821?1901) The Reconciliation of Titania and Oberon. Oil on canvas, size 30 x 48.5 inches, National Gallery of Scotland, Edinburgh.

부수음악(附隨音樂)이라는 장르가 있다. 영어로는 Incidental Music이라고 한다. ‘부수’라는 단어는 흔히 우리가 ‘무엇에 따라오는’이라는 의미로 쓰는 ‘부수적인’이라는 표현의 그 부수가 맞다. 그러므로 ‘부수음악’의 의미를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무언가에 붙어서 따라오는 음악’이 된다. 그렇다면 부수음악은 본래 독립적인 연주를 목적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란 얘기가 된다. 부수음악의 본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흔히 연주회용 서곡으로 알고 있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은 원래 부수음악이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에그몬트 서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극음악(劇音樂) ‘Egmont Op. 84’의 첫 번째 곡인 ‘서곡Overture’에 해당한다. 본래 이 곡은 서곡 외에 9개의 곡 등 총 10개의 곡으로 이루어져 있다. 베토벤은 괴테의 동명 희곡(戱曲) ‘에그몬트’에 크게 감명 받았고, 이 희곡을 무대에 올릴 때 연극에 삽입시킬 목적으로 이 곡을 작곡했다.

이처럼 부수음악이란 보통 연극을 공연할 때에 서곡, 막간곡, 배경음악, 혹은 멜로드라마(마치 오페라나 뮤지컬처럼 연극 도중에 배우가 노래로 대사를 표현하는 부분)로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된 일련의 모음곡을 말한다. 부수음악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으로는 그리그 작곡의 ‘페르귄트 모음곡’이 있는데, 본래 이 페르귄트 모음곡은 ‘인형의 집’을 쓴 입센의 희곡 ‘페르귄트’를 위해 작곡된 극음악이었다. 그러나 연극 자체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 했고, 자신의 곡들을 아깝게 여긴 그리그가 추후에 전곡 중 일부를 추려 모음곡 1과 2로 출판한 것이 오늘날까지 연주회용 ‘페르귄트 모음곡’으로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다.

오늘 소개할 곡 역시 부수음악이다. 이 장르의 음악 중 페르귄트 모음곡과 더불어 가장 유명한 곡이며, 전 세계에서 매일 수 백 번씩은 연주되고 있는 곡이다.

그래 네 말이 맞다, 내가 바로 밤을 헤매는 유쾌한 방랑자다.

네 눈에 마술의 꽃물을 발라주마. 네가 깨어나면, 그 때부터는 다시는 잠들 수 없는 상사병에 걸릴 거야! 그때까지는 잠재워 두도록 하지.


-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中 요정 퍼크의 대사 -

한여름 밤의 꿈. 셰익스피어의 희극(喜劇)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을 하나 고르라면, 주저하지 않고 이 작품을 꼽겠다. 현대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이 희곡은 개연성이 엉망이고, 이야기의 구조는 단순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너무나 달콤하다. 수많은 명대사들로 가득하며, 제목처럼 몽환적이다. 일단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꿈을 꾸기 시작하여 요정 퍼크의 인사와 함께 다시 막이 내릴 때는 오직 달달한 여운만이 남은 채 기분 좋게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 꿈의 내용이 제아무리 뒤죽박죽이고 유치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비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한여름 밤의 꿈을 집필한 지 200여년이 흐른 뒤인 1826년 독일. 방금 독일어 번역판 ‘한여름 밤의 꿈’ 마지막 장을 읽고는 책을 덮은 17세의 청년은 두 눈을 반짝이며 이렇게 선언했다.

“나는 내일부터 ‘한여름 밤의 꿈’을 꿀 것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Felix Mendelssohn Bartholdy(1809-1847)

이는 15세 때 이미 첫 교향곡을 작곡하고, 16세 때에 현악 8중주를 작곡한 펠릭스 멘델스존 바르톨디(Felix Mendelssohn Bartholdy)의 야심찬 선언이었다. 곡을 빨리 써내는 것으로도 유명했던 멘델스존은, 해를 넘기지 않고 가장 뜨거운 계절인 8월에 곡을 완성했다. 그것은 연주 시간이 11분 남짓 되는 짤막한 하나의 곡이었으며, 악장 구분도 없고 소나타 형식을 갖추었으나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를 띠는 곡이었다. 이 곡은 이듬해인 1827년에 처음으로 공연되었으며, 멘델스존이 대중에게 처음으로 소개된 것도 이 연주회에서였다. 이 연주회에서 연주된 곡들은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 서곡’과 역시 멘델스존의 작곡한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협주곡’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었는데, 이런 구성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일반적인 연주회 구성과 완벽히 일치한다.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은, 본래 극음악(劇音樂)이 아닌, 연주회용 서곡(Concert Overture)로 작곡 된 것이다. 18세기 말엽부터 오페라의 유명한 서곡들이 기악 음악회에서 독립적으로 연주되는 경우가 많아졌지만, 19세기 초반까지도 연주회용 서곡이 독립적으로 작곡된 예는 흔하지 않았다. 멘델스존은 ‘핑갈의 동굴 서곡’이나 ‘고용한 바다와 즐거운 항해’ 서곡 등 훌륭한 연주회용 서곡을 많이 남겨서 이 장르의 선구자로 여겨지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한여름 밤의 꿈 서곡’은 연주회용 서곡이라는 장르의 시금석으로 평가 받는 곡이다.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을 통해 달궈진 천재 청년의 가슴은, 이 훌륭한 한 곡의 서곡을 작곡함으로써 진정이 되었던 듯하다. 그가 다시 이 작품을 되돌아보게 된 것은, 천재성에 원숙미가 더해진 33세 때의 일이었다.

1842년. 한여름 밤의 꿈을 작곡한 지 16년이 흐른 뒤, 그는 왕립음악원의 음악 감독이 되어있었다. 당시 프러시아의 왕이었던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는 멘델스존이 작곡한 음악과 함께 상연된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공연에 크게 만족하고 비슷한 작품들을 더 쓸 것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멘델스존은 이번에는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자신의 곡을 덧붙여 무대에 올리기로 결심하고 작업에 착수했다. 그리고 무려 16년 전, 셰익스피어의 달콤한 시어로 한껏 부풀어 오른 가슴을 달래고자 일필화의 기세로 써버린 ‘서곡’을 다시 꺼냈다. 그는 청년 시절의 앳되고 낭만적인 감성이 서린 그 서곡을 그대로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극음악 ‘한여름 밤의 꿈’에는 서곡 외에 14개의 곡들이 포함되어 있다. 오늘 날에는 이들 중 일부만 추려서 연주되고는 하는데, 본래 부수음악으로 작곡되었기 때문에 인물들이 무대에 등장할 때 연주되는 행진곡이나 팡파르, 그리고 대사를 음악적으로 처리한 성악곡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독립적인 연주회에서 원곡을 전부 연주해버리면 매우 산만해지기 때문이다.

음악과 극의 진행은 대강 다음과 같다.

먼저 서곡의 연주와 함께 극은 시작되는데, 마치 우리를 꿈속으로 인도하는 듯한 목관의 화음이 네 번 연주되고, 이어서 현들은 마법의 숲 속에서 조곤조곤 요정들이 움직임을 묘사한다. 이어서 금관이 당나귀의 큰 울음소리를 내면서 이제 우리는 현실에서 벗어나 완전히 환상의 세계로 접어들게 된다.

1장은 별다른 음악의 연주 없이 진행이 되고, 1장과 2장 사이에 간주곡으로 스케르초가 연주된다.


연이어서 2장은 음악을 반주로 까는 멜로드라마로 시작되고, 오베론은 ‘요정의 행진곡’과 함께 등장한다. 2장의 2막은 성악곡 ‘얼룩무늬 뱀’으로 시작하고, 2막과 3막 사이에 다시 간주곡이 들어간다.


솔로 호른과 이를 뒷받침하는 바순의 조화가 아름다운 녹턴은 3막과 4막에서 연인들이 숲 속을 헤매다가 단잠에 빠졌을 때 연주된다.

4막과 5막 사이의 간주곡은 바로 그 유명한 ‘결혼 행진곡’이다. 이 한곡으로 인해 멘델스존의 부수음악 ‘한여름 밤의 꿈’은 불명의 생명력을 누리고 있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상 어느 나라 어느 동네에서는 이 곡이 울려 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여름 밤의 꿈’의 무대는 다시 당나귀의 울음을 묘사한 서곡의 주제를 그대로 살린 베르가마스크 무곡으로 마무리 된다.



그리고 여기에 에필로그가 따라붙는데, 퍼크의 저 유명한 마무리 대사에 반주를 붙이고, 무대를 열었던 네 개의 코드가 다시 한 번 반복되면서 이번에는 밤의 그림자를 서서히 걷어내고 우리를 현실의 세계로 되돌려놓는다.

멘델스존은 서곡을 완성한 지 16년이나 지나서 나머지 곡들을 썼지만, 그 기나긴 시간의 간극에도 불구하고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완전한 통일성을 지닌 아름다운 극음악을 완성시켰다. 멘델스존은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천재성에 원숙미를 더하기는 했지만, 평생 청년의 쾌활함을 유지했다. ‘한여름 밤의 꿈’과 같은 밝은 작품이 멘델스존의 작풍과 아주 잘 어울렸기에, 16년의 시차를 두고 각각 짧은 시간 동안 작곡 되었음에도 이토록 놀라운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2010/11/03 23:01 2010/11/03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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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우리 집 앞마당에 내걸린 잭오랜턴


Happy Halloween!!!

‘할로윈’ 앞에 ‘해피’라는 수식어가 가당키나 한 건지 모르겠다.

모든 사령(邪靈)들의 날인 ‘할로윈’이 모든 성인들의 날인 ‘만성절(11월 1일)’ 전날인 것이 재밌다. 사실 ‘Halloween’이라는 단어 자체가 ‘모든 성인들의 날 전야’라는 뜻의 ‘All Hallows Eve’가 줄어서 만들어진 것이다. 한밤중에 온갖 잡귀들이 인간 세상으로 나와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면, 동이 틀 무렵부터는 다시 성인들이 세상에 고요와 안정을 찾아준다는 것일까.

이런 성(聖)과 사(邪)의 뚜렷한 대비 때문에 할로윈 시기가 되면 항상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바로 1940년, 디즈니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판타지아’다. 총 8곡의 클래식 음악에 그 음악의 성격을 잘 살린 애니메이션을 결합시켜 만들어낸 일종의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인데, 비록 공개 당시에는 크게 인기를 끌지 못 했지만, 이후 재평가가 이루어지면서 오늘날까지도 사랑받는 명작 애니메이션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 애니메이션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두 곡이 바로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과 ‘슈베르트’의 ‘아베 마리아’다. 해설자는 ‘profane’과 ‘sacred’의 대비라는 표현을 썼다. 말 그대로다. 보름달이 뜬 밤, 하늘은 온통 요기(妖氣)로 가득하다. 불협화음이 자아내는 음산한 분위기 속에 나무 한 그루 찾아볼 수 없는 민둥산의 모습이 보인다. 이윽고 산 정상에서 마왕(魔王)이 눈을 뜨고, 검은 그림자로 산하(山下)를 뒤덮어 잠들어있던 귀신들을 깨운다. 기괴한 형상을 한 귀신들이 모두 산으로 모여들고, 이윽고 산에 피어오른 지옥의 화염을 둘러싸고 광란의 축제가 시작된다. 마왕은 지옥의 불길을 마음대로 조종하며 귀신들을 희롱한다.

그러나 축제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멀리 마을에서 새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온다. 지옥의 불길은 순식간에 잦아들고, 귀신들은 움츠러든다. 밤의 축제가 끝났다. 귀신들은 흩어지고, 슈베르트의 ‘아베마리아’가 흐르는 가운데, 멀리서 손에 등불을 밝힌 순례자들의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만성절은 835년에 생긴 이래 오늘날까지 가톨릭교회의 중요한 축일로 남아있지만,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친숙한 것은 ‘할로윈’이 아닐까 싶다. 귀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평범한 위인도 아닌 ‘성인’이 비기독교 국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개념인데 비하여, 잡귀는 어느 나라에나 존재하고, 또 잡귀들에 대한 위령제의 성격을 띠는 제식이 세계 어느 문화권에서나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것이라, 할로윈의 개념 자체를 보다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Mussorgsky (1839 - 1881)

Night On Bald Mountain


무소르그스키의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장난스럽고 유쾌한 느낌이 드는 ‘할로윈’보다는, 차라리 ‘파우스트’에 묘사된 ‘발푸르기스의 밤(4월 마지막 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것은, 러시아의 전통적인 축일인 ‘성 요한 축일 전야제’인데, 이 날 역시 명칭과 날짜만 다를 뿐 ‘발푸르기스의 밤’이나 ‘할로윈’과 성격이 같다. ‘축일의 전야’라는 것은 할로윈과 판박이고, 마귀들이 ‘트라고라프’라는 바위산 정상에 모여 한바탕 소동을 벌인다는 것은 ‘발푸르기스의 밤’ 전설에서 산 이름만 바뀌었다는 느낌이다.

이 곡은 본래 무소르그스키의 미완성 오페라인 ‘소로친스크의 시장’에 삽입될 예정이었던 곡이라고 한다. 무소르그스키는 정식 음악 교육을 받은 사람이 아니었고, 작곡가로서 경력을 시작한 뒤로도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서 도중에 쓰다가만 곡들이 여럿이다. 역시 천재(天才)가 있었던지 착상이 뛰어났지만, 빈약한 이론 지식 때문인지 착상한 멜로디의 오케스트레이션 작업을 완벽히 완수하지 못 한 경우가 빈번하다. 한편 오케스트레이션의 귀재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나 라벨 같은 이들이 무소르그스키가 생전에 남겨놓은 음악의 파편들의 가치를 알아보고 관현악곡으로 다시 편곡을 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라벨이 관현악 판으로 편곡한 ‘전람회의 그림’ 등이다.

‘민둥산에서의 하룻밤’은 림스키코르사코프가 편곡을 했다.

2009/10/31 06:49 2009/10/31 0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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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명동에 갈 있었는데, 그때 대한음악사에 잠깐 들러서 모차르트의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론도’의 악보를 사왔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
Rondo for Violin and Orchestra in C-dur, K. 373

이 곡은 단악장으로 되어 있지만, 바이올린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엄밀히는 ‘협주곡’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보통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 하면, 각각 쾨헬 넘버 207, 211, 216, 218, 219가 붙여진 총 5개의 협주곡을 떠올리게 된다. 서로 가까운 숫자들의 나열이라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 5개의 협주곡이 비슷한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것을 알아챘을 것이다. 게다가 모차르트의 말년 작품 번호가 600대이니, 200대 초반의 번호가 붙은 곡들이라면 겨우 35년에 불과한 모차르트의 생애에서도 비교적 이른 시기에 작곡되었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사실 바이올린 협주곡 1번부터 5번까지는 모차르트가 겨우 19세였던 1775년 4월부터 한두 달 간격으로 완성되어, 같은 해 12월까지 약 9~10개월 만에 모두 작곡이 완료되었다. 협주곡 1번의 작곡 시기가 1775년 4월이 아니라 1773년 4월이라는 주장도 있으며, 상당히 신빙성이 있지만, 2번부터 5번이 1775년 6월부터 12월 사이에 모두 작곡된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토록 짧은 시간동안에 작곡되었음에도 협주곡 3, 4, 5번은 바이올린 협주곡 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며, 오늘날 수많은 전공생들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는 ‘교재’이자, 프로 연주자들이 사랑하는 단골 레퍼토리가 되어있다. 이를 보면 정말이지 모차르트에겐 작곡을 위한 최소한의 시간조차 필요치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이야 여기서 새삼스럽게 떠들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우리의 호기심을 끄는 한 가지는 어째서 5개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작곡한 것이 한 시기에 집중되어 있느냐 하는 것이다. 더불어 1775년 이전이나 이후에는 정말 모차르트가 쓴 바이올린 협주곡이 단 한 곡도 없는 것일까?

전자의 의문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내가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3번을 시작하게 되면 그때 가서 다시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이번에는 후자의 의문점을 해결 해 보도록 하자.

우선 1775년 이전에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은 없을까? 1933년이었던가, 프랑스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였던 마리우스 카사드쉬라는 사람이 ‘모차르트의 사라진 바이올린 협주곡을 발견했다’며 세상에 악보 하나를 공개했다. 그것이 ‘아델라이데 협주곡’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협주곡으로, 카사드쉬의 주장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10살 때쯤 작곡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곡은 세상에 발표된 직후부터 줄곧 위작 논란에 시달렸고, 결국 현재는 이 곡이 카사드쉬의 위작이라는 것으로 잠정 결정이 난 상태이다.

그렇다면 1775년 이후에 작곡한 협주곡은? 사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 6번과 7번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이 줄곧 1775년 이후에 작곡된 모차르트의 협주곡이라 여겨져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 두 작품도 모차르트의 작품이 아니라 위작이라는 설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위작으로 여겨지는 아델라이데 콘체르토와 6번, 7번 협주곡을 제외하면, 3악장 구성으로 완벽하게 쓰인 협주곡은 더 이상 없다. 아마도 모차르트는 1775년 불과 몇 달 사이에 정열을 쏟아 부어 5개의 협주곡을 작곡한 뒤로는, 더 이상 이 장르에 미련이 없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전 악장을 갖춘 완전한 협주곡이 아닌, 단악장으로 된 것들이라면 1775년 이후에 작곡된 것도 몇 개가 있다. K 261, 269, 373이다. 사실 이 곡들은 독립된 악곡으로 작곡된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가 자신이 이미 작곡 해 놓은 협주곡들의 일부 악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작곡한 것이다. K261번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다지오’란 이름이 붙어 있는데, 이것은 본래 바이올린 협주곡 5번의 2악장을 대체할 목적으로 작곡되었다. K269번은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론도’인데, 이것은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의 3악장을 대체하기 위해 작곡했다.

오늘 소개하는 K373번은 조금 특이하다. 이 곡은 단악장짜리 곡이지만 모차르트가 자신이 작곡한 협주곡의 한 악장을 대체하기 위해 쓴 것이 아니다. 작곡 시기는 1781년 4월로 되어 있다. 이 곡에 관해서는 한 가지 일화가 전해 온다. 모차르트가 빈에 머무르고 있을 때,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친분이 있는 귀족(혹은 대주교의 아버지?) 저택에서 음악회가 열리게 되었다. 그 연주회에서는 당대의 명 바이올리니스트인 안토니오 브루네티와 대주교 궁정 오케스트라가 협연을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그들이 연주할 협주곡의 3악장에 문제가 있었다.

일설에는 3악장이 통째로 없어졌다는 얘기도 있는데, 그게 사실이라면 애당초 그런 곡이 선곡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곡에 대해 까다로워 작곡가들에게 수정 권고도 서슴없이 했던 안토니오 브루네티가 3악장에 대해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사실 모차르트의 K261이나 K269도 브루네티의 권고에 따라 작곡하게 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아무튼 결국 3악장을 새로 작곡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역할을 맡은 사람이 바로 모차르트였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곡은 소위 말하는 ‘땜빵용’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렇게 작곡된 C-Major의 론도는, 경쾌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의 명곡이다. 비록 길이는 짧고 구성도 간결하지만, 오케스트라 반주 위로 떠오르는 솔로 바이올린의 유려한 주제 선율은 일품이다. 아무리 시간에 쫓겨도 모차르트는 역시 모차르트다.

악보는 피아노 반주보가 딸려서 가격이 약 2만 5천원정도 한다. 정작 내게 필요한 것은 겨우 4페이지(양면 인쇄로 1장!)의 솔로 악보인데, 억울하단 느낌도 든다. 악보에는 손가락 번호가 꼼꼼히 쓰여 있어 매우 친절 해 보이지만, 따라 짚어보면 결코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어렵게 만들어놨어.

아무튼 언젠가는 멋지게 연주 해 보고 싶은 곡. 누군가 피아노 반주를 해줘야 할 텐데…….

2009/09/03 04:41 2009/09/03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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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부는 것이, 벌써 여름은 저만치 물러가고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브람스에 빠져있다.

 “자유롭지만 고독하다”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

오늘 소개할 곡은 The Variations on a Theme by Haydn Op. 56a(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 작품 번호 56a)이다. 이 곡은 1873년 여름에 작곡되어 같은 해 11월에 브람스의 지휘로 초연되었다. 편성은 2관 편성.

이 곡은 이미 제목만으로도 우리에게 상당히 많은 정보를 제공 해 주고 있다. 우선 곡의 형식이 ‘변주곡’이라는 것. 이 ‘변주곡’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하다. 그런데 변주곡이 대체 무엇이란 말이지?

본래 변주(變奏)란, 어떤 선율을 여러 가지 작곡, 연주 상의 기법을 사용하여 변화시켜 나가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그리고 이런 ‘변주’의 방식으로 곡 전체를 구성한 것이 이른바 ‘변주곡’으로, 악곡의 주제 선율을 시종 다양한 기법으로 변주해 나가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변주곡은 상당히 자유로운 작곡 형식이다. 기본적으로 변형을 할 원형의 멜로디(주제)가 초두에 제시되는 것은 당연한 약속 같은 것이지만, 이후에 어떤 식으로 몇 번 변주가 이루어질 것인가는 전적으로 작곡가의 개성에 달려있다.

이런 변주곡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명곡들로는 하나의 선율을 무려 30번 변주하여 연주하는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기교를 이용한 변주의 진수를 보여주는 파가니니의 ‘카프리스 24번’, 그리고 바로 이 카프리스 24번의 주제 선율을 이용하여 전혀 새롭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관현악판 변주를 들려주는 라흐마니노프의 ‘파가니니의 주제에 의한 광시곡’,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의 호기심을 끄는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등이 있다.

브람스 역시 변주곡 형식의 곡들을 남기고 있는데, 오늘 소개할 ‘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변주곡 역사에서도 각별한 위치를 지닌 곡이다. 대체로 변주곡은 장대한 심포니나 모음곡 같은 비교적 규모가 큰 악곡의 한 악장으로 작곡되는 것이 통례다. 그런데 ‘하이든의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변주곡 형식이면서 하나의 독립된 작품으로 작곡된 최초의 관현악곡인 것이다.

사실 이 곡은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곡으로 먼저 작곡되고, 오케스트레이션은 나중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오케스트라 버전이 먼저 공개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먼저 작곡된 피아노 버전이 오케스트라 버전에 밀려 작품 번호 56b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제 다시 한 번 곡의 제목으로 돌아가 또 다른 정보를 탐색 해 보자. 곡 초반 2분가량 제시되는 이 근사한 주제 선율이 어디에서 얻어졌을까? 곡의 제목은, 이 주제 선율이 하이든의 작품에서 가져온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선율이 정말 하이든이 작곡한 것인가 하는 점이다.



Haydn, Divertimento in B-dur 2nd mov.

하이든의 디베르티멘토 1번으로도 알려진 곡의 2악장이다. ‘Chorale St. Antoni(성 안토니의 성가)’라는 부제가 달려있다. 여기의 멜로디는 분명 브람스가 변주에 사용한 멜로디가 맞다. 그러나 이 곡을 정말 하이든이 썼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며, 오늘날에는 오히려 다른 작곡가의 작품으로 보는 의견이 우세하다.

그러나 설령 이 희유곡을 하이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작곡했다 하더라도, 과연 그 제3의 작곡가가 주제 선율을 작곡했을까 하는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성 안토니의 성가’라는 제목이 그런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지만, 지금까지는 이 부제와 관련하여 주제 선율의 근원을 밝혀줄 어떤 추가적인 정보도 발견되지 않았다.

여전히 미스터리인 아름다운 주제 선율이 제시된 뒤, 이후 이 주제가 총 8번 변주된 다음, 피날레로 마감한다. 8번에 걸쳐 다양한 시대의 기법들로 폭넓은 변주를 들려주는데, 각각의 변주가 모두 개성 넘치고 아름답다. 개인적으로는 정열적이면서도 유려한 1번 변주가 마음에 들지만, 여러분들의 선택은 어떨지?

본래 하나의 곡으로 쉼 없이 연주되는 이 곡을 변주별로 쪼개서 올린 것은, 각 변주간 구분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통째로 된 파일의 용량이 커서 안 올라간다는 게 결정적인 이유. 대충 보니까 파일 크기가 10메가가 넘어가면 업로드가 안 되는 것 같다. 이건 텍스트큐브 자체에 걸려있는 제한인 걸까? 이래서는 용량 6기가의 서버를 사용하는 의미가 없다. 어떻게 수정이 안 되나.

지휘는 토스카니니.

2009/08/30 05:25 2009/08/30 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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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연도(年度)는 둘. 하나는 1797년. 남자라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따위의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으며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버리는 불굴의 무인에 대한 동경을 품는 바보 같은 시기를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인간이 되는 거고, 그렇지 못 하면 짐승이 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나폴레옹이 왜 알프스 산맥을 넘었는지, 사람들은 관심이나 있나?

나는 ‘나폴레옹 멋져’란 생각 때문에 이 연도를 외우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1797년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해도 아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은 그 전 일이니까 처음 알프스를 넘은 것은 1797년 이전일 것이고, 저 유명한 일화는 오스트리아와의 전투를 위해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 때의 일이라니까 좀 더 후의 일일 것이다.

1797년은, 바로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해이다. 이로써 1200년 존속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진부한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유럽 제일이었던 국가의 부와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파상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까지 생존했던 이 국가는, 결국 유럽 국가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평할 줄 알았던 나폴레옹이, ‘바다와의 결혼식’ 행사 때 베네치아 통령이 타던 선박인 ‘부르키엘로’는 호화롭다고 바다 위에서 불살라버렸다. 참고로 이 부르키엘로의 아주 작은 모형이, 이탈리아 해군 기지인 아르세날레 남쪽에 위치한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혹 베네치아에 관광 가는 사람이 있거든, 한 번 쯤 들러보라.

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연도는 1812년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해이다. 사실 이 사이에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있고 한데……. 이 1812년이라는 해를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다음에 소개할 곡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


차이코프스키 작곡 ‘1812년 서곡’ 작품 번호 49번.

‘1880년에 작곡된 이 장대한 오케스트라 곡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대한 러시아 군의 승리를 묘사한 것으로써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를 병치시켜 양국 군대의 치열한 전투와 러시아 군의 최종적 승리를 생생하게 그려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 그런데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도 구분 못 하는 애들한테 러시아적인 선율이 어쩌고 해도 사실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란 말이다. 결국 실제 대포를 가져와 펑펑 쏴대고, 교회 종을 울려가며 연주했다더라 하는 ‘일화’ 정도나 기억하면 아는 척 거들먹거릴 수 있단 얘기지.

사실 이 곡은 정말 단순하고 유치하다. 하지만 이 곡에는, 정치적 선전이라는 의도도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한 것만큼’ 이에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아 차이코프스키’란 느낌의 선율이 연주되다가, 잠시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하더니, 요란한 대포 소리와 함께 힘찬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이 연주된다. 그러다가 마치 러시아의 민족의 각성을 암시하는 듯한 서정적인 선율이 연주되더니, 이번에는 프랑스 군의 고전을 암시하는 듯 라 마르세예즈가 조각조각 해체되어 삽입된다.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국가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의 주제가 힘차게 연주되는 가운데, 승리의 팡파르로 장식된다.

혹시 여기 삽입된 멜로디가 러시아 국가가 맞는지 확인 해 보겠다고, 러시아 국가 찾아 듣는 짓은 하지 말기를. 차이코프스키 시대의 국가가 현대 러시아 국가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재밌는 것은, 정작 전투가 벌어졌던 1812년엔 러시아에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러시아 국가는 1815년에 처음 지정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시대에는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가 1833년부터 새로 국가로 지정되어 불리고 있었다. 이후 소련 시대에 국가가 무려 네 차례나 바뀌었고, 소련이 해체된 직후인 1991년에 국가를 새로 정했으나, 2000년 푸틴 대통령 때 다시 한 번 바뀌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도, 분명 혁명기 때부터 널리 불렸으나 국가로 지정된 것은, 1812년 서곡이 작곡되기 불과 1년 전인 1879년이었다. 그 힘차면서도 호탕한 선율 때문에 사랑받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놈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다가 뿌리자’라든가…….

곡만 들으면 러시아 군의 통쾌한 승리가 연상된다. 그러나 어디 러시아 군이 이렇게 칭송할만한 기념적인 승리를 거둔 적이 있었던가…….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보르디노 전투’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쿠투조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이 맞닥뜨려 서로 비슷비슷한 피해를 입고 결국 결판을 내지 못 한 싸움이었다. 게다가 쿠투조프가 퇴군을 하는 바람에 결국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게 됐으니, 이 싸움이 어디 이렇게 웅장한 음악으로 치장할 만하냔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事實)이 아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에게 거의 죽임을 당할 뻔 하고, 겨우 상대방의 실수로 목숨을 건져 ‘평화 조약’을 맺는 것으로 체면치레 했으나, 이집트 전역에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찬란하다 못 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의 기념 부조들로 자아도취의 향연을 펼쳐놨으니, 후대 사람들은 그를 정녕 위대한 승리자요, 이집트의 자주적 혼이라 여기지 않는가.

다섯 권짜리 ‘전쟁과 평화’로 읽는 것보다도 이렇게 15분 정도의 음악으로 듣는 이야기가 뇌리에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정치 선전이란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해야’하며, ‘반복적’일수록 효과가 좋다.

하지만 곡의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정작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쓴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현명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의 두뇌에 가장 직접적이고 위력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들을 혐오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들은, 그저 예술 작품의 하나로서 감상하면 될 것이다.

바로 이 곡이, 유포니아의 가을 정기 연주회 서곡이며, 나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서 연주하게 된다.

2009/07/21 04:15 2009/07/2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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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 (1862~1918)

Suite bergamasque No.3 'Claire de lune(달빛)'


언젠가 피아노를 배우게 된다면, 쳐보고 싶은 곡은 사실 베토벤이나 쇼팽보다는 드뷔시일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쉬울 것 같아서인 것도 있고.

너무나 유명한 이 곡은, 드뷔시가 1890년에 작곡한 '베르가마스크 모음곡'의 일부이다. 'Claire de lune'는 문자 그대로 '달빛'이란 뜻인데, 같은 의미의 한자어인 '월광'이라고도 부르나, 베토벤의 저 유명한 '월광 소나타'와 구분 짓기 위해서 사람들이 일부러 '달빛'이라 부르는 것 같다. 곡의 부드럽고 소박한 정서를 볼 때, '달빛'이라는 수수한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도 들고.

흔히 '드뷔시'를 인상주의 작곡가라고 부른다. 미술사의 용어들을 그대로 가져다가 음악사에 적용시키는 것은 많은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도무지 미술사상의 '인상주의'와 음악사상의 '인상주의'의 공통점을 찾을 수가 없다(전통의 거부, 새로운 기법의 창안이라고 하는 과정상의 공통점을 논외로 치면). 공교롭게도 모네와 드뷔시는 성이 '클로드'로 같은데, 모네에 대해서는 '모네의 눈'을 칭송했지만, 드뷔시에 대해서는 대체 무얼 칭송할 수 있단 말인가? '드뷔시의 귀?'

사람들은 종종 '감각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을 착각하는 듯하다. 모네의 그림은 분명 모네의 마음에 비친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모네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드뷔시의 음악은? 애초에 음악을 통해 시각을 자극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얘기다. 무언가 눈에 보일듯 말듯 아른아른하게 작곡을 해 놓았다고 해서 '인상주의'라는 이름을 가져다 붙인다면, 그건 좀 우스꽝스럽지 않은가.

2009/06/10 03:48 2009/06/10 0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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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딘의 현악사중주 2번 1악장. 지난 향상 연주회 때 어떤 팀이 연주해서 알게 된 곡이다.

만일 곡의 아름다움을, '선율에 어린 정서의 아름다움'이란 잣대로 평가한다면, 러시아 작곡가들의 곡들이 단연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미려(美麗)하다.' 연주는 보로딘 현악사중주단.
2009/06/07 05:25 2009/06/07 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