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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 포에버(Callas Forever) (2002년 작품, 2007년 한국 개봉)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
출연: 화니 아르당(Fanny Ardant), 제레미 아이언스(Jeremy Irons)

며칠 전 우연히 TV에서 방영하기에 보게 된 영화. 솔직히 말해서 그다지 세련되지 못 한 영상과 어딘가 허술해 보이는 이야기 진행에 채널을 돌려버릴 뻔도 했지만, ‘마리아 칼라스’라는 그 이름 하나 때문에 끝까지 보았다.

음반(recode)의 역사는 100년 남짓이다. 1902년에 녹음된 카루소의 음반이 최초의 밀리언셀러가 된 이후로부터 정확히 한 세기 동안이 클래식 음반의 흥망성쇠가 망라된 시대였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는 클래식 음반 산업의 분명한 쇠퇴를 목격하고 있다.

음악은 불멸할 것이다. 클래식 애호가들은 끊임없이 태어날 것이고,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때 그 누구도 도달할 수 없을 것이라 여겼던 경지에서 출발하는 출중한 연주자들도 계속 배출될 것이다. 그러나 클래식 음반 산업이 사장(死藏)되는 것을 막을 길은 없어 보인다. 이제는 노쇠한 거장들이 젊은 연주자들에게 거침없이 쏟아내는 찬사는 차라리 애처롭게 느껴진다. 앨범의 속지는 점차 화보(畵報)처럼 변해간다. 베토벤 교향곡 녹음은 시중에 수백 종이 나와 있다. 클래식 애호가의 자식은 부모로부터 베토벤 5번 녹음을 열 장쯤 물려받을 지도 모른다. 그가 자신의 앨범 컬렉션에 11번째 녹음을 추가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한 시대의 쇠퇴기에 이르러 비로소 역사는 정리될 수 있다. 우리는 과거를 돌아보고 그것을 평가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무언가 쇠락해가는 쓸쓸한 시기에 우리에게 주어진 유일한 위안거리일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우리에겐 역사가 있다. 돌이켜 보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사실 죽은 자에 대한 숭앙, 영웅화와 신격화, 이런 것도 하나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때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긴 하지만.

아무튼 클래식 음반의 역사는 완결되었다. 이제 이 역사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존재들의 이야기가 진정한 신화(神話)로 등극하게 되는 것이다. 카라얀이 그렇고,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그러하며, 바이올리니스트 하이페츠가 그렇다. 이들이 과연 가장 뛰어난 지휘자, 성악가, 연주자들일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역사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그래도 그들이 세상의 주인이었다.”고.

마리아 칼라스 역시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나는 ‘승자’의 한 사람이다. 그녀는 1922년에 태어났고 1942년에 데뷔했다. 1949년에 첫 앨범을 냈고, 1965년에 은퇴해 그 후로 일체의 음악 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음반을 내며 활동한 시기는 채 20년이 되지 않지만, 리코딩의 역사에 금자탑을 쌓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녀의 앨범은 현재까지 약 3000만장 정도가 팔렸는데, 성악가 중에서 마리아 칼라스보다 더 많은 음반을 팔아치운 사람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유일하며, 여자 성악가 중에서는 마리아 칼라스에 견줄만한 이가 한 사람도 없다.

‘칼라스 포에버’의 배경은 1977년. 마리아 칼라스가 은퇴한 때로부터 12년이 흐른 시점. 이야기는 음반 제작자인 래리가 은퇴한 칼라스에게 새로운 음반 제작을 제안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음색도 쇠락하고 만 칼라스는 극구 거절하지만, 래리는 새 시대에 걸맞은 ‘오페라 비디오’ 제작을 제안하며, 노래 문제는 과거에 그녀가 녹음한 앨범에서 음원을 가져와 ‘립싱크’로 찍어 해결할 수 있다고 설득한다. 그러면서 래리는 그녀의 예술적 열망을 은근히 부추기는 노련한 설득의 기술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완전히 픽션이다. 역사적으로 1977년은 칼라스가 화려하게 복귀에 성공한 해가 아니라, 그녀가 철저한 고독 속에서 쓸쓸한 죽음을 맞이한 해로 기록되어 있다. 이 영화의 감독 프랑코 제피렐리는 한 때 칼라스와 함께 오페라 연출 작업 한 적이 있는 만큼 그녀와는 친분이 깊고, 사실 누구보다도 칼라스의 재능을 아꼈던 사람이다. 이 영화는 철저히 프랑코 제피렐리의 시각에서 마리아 칼라스를 재해석하고 추모하는 하나의 추증작이다.

영화 속에서 칼라스는 래리의 설득으로 결국 복귀를 결심한다. 복귀작은 그 어떤 오페라보다도 여주인공의 정열이 돋보이는 비제의 ‘카르멘.’ 너무 오래 무대와 떨어져 있었던 칼라스에게는 립싱크조차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정열적인 삶을 산 여인 카르멘을 연기하는 과정에서 칼라스는 점차 과거의 열정을 되찾는다. 그녀는 점점 연출에 관여하고 싶어 하고, 안무에 관심을 쏟고, 출연진과 연출자들을 다그치며 과거의 영화를 재현하고자 한다. 그리고 작품 속 남자 주인공 역할을 맡은 잘생긴 청년에게 이성으로서의 호감까지 느끼며, 칼라스는 50이 넘은 자신의 나이를 잠시 잊는다.

카르멘의 촬영은 대성공으로 끝난다. 카르멘의 공개를 앞두고 래리는 발 빠르게 칼라스와의 다음 작품 구상에 나서지만, 칼라스는 래리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는다. 라 트라비아타를 찍자는 래리에게 칼라스는 말한다. “하지 않겠어. 하지만 어쩌면……. 어쩌면 토스카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푸치니의 토스카. 마리아 칼라스가 1953년 이 오페라를 처음 녹음한 음반을 내놓은 후, 그 음반은 불멸의 명반이 되었으며, 오페라 토스카의 영원한 결정반으로 자리매김 하였다. 그리고 1965년, 은퇴 직전 마지막으로 무대에 선 마리아 칼라스가 맡은 배역이 또한 토스카였다. 마리아 칼라스와 토스카는 따로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

다시 영화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칼라스는 이번에는 립싱크가 아니라 직접 자신이 노래도 다시 부르겠다고 선언했다. 가짜가 아닌 진짜로, 엔터테이너가 아닌 예술가로서 대중 앞에 당당히 서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이미 노쇠해버린 그녀의 목소리는 칼라스에게 그런 새로운 기회를 안겨줄 수 없었다. 칼라스는 결심을 한다.

“부탁 한 가지가 있어. 당신이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야. 카르멘 영상을 폐기 해 줘.” 이번 작품 제작에 50%의 지분을 투자한 래리로서는 정말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었다. 그러나 결국 래리는 ‘진실한 예술가’로 남고자 한 칼라스의 소망을 들어주기로 한다.

자, 마리아 칼라스가 연기한 ‘카르멘’이 어떠했는지, 거짓 아닌 그녀의 생생한 육성을 들어보자.



사실 칼라스의 음성은 사람들이 흔히 ‘미성(美聲)’이라 부르는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는 목소리에 단순한 음악적 기교 이상의 어떤 인생의 깊이를 담아내는 진정한 ‘연극적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오페라의 여주인공들은 대부분 순탄한 인생과는 거리가 멀다. 카르멘도 그러하거니와 토스카도 그렇다. 그리고 마리아 칼라스. 선박왕 오나시스와의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 가족도 음악도 버리다시피 했지만, 결국 그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인생은 어차피 불완전하다. 오페라는 이 불완전한 삶에 대한 모사다. 마리아 칼라스의 약간의 불완전성은, 역설적이게도 바로 이런 인생의 불완전성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밑거름이 되었다.

영화 마지막, 칼라스는 평범하게 한 사람의 여자로서 살았다면 훨씬 행복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이것은 그저 ‘가지 않은 길’을 동경하는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커리어의 정점에서 은퇴하고 진정 한 사람의 여자로서 한 남자의 사랑을 바랐던 칼라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이 대사는, 아무리 픽션이라 하더라도 흘려들을 수 없는 무게감을 지니고 우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또 한 사람, 래리 켈리. 그는 탁월한 선구안과 날카로운 감각을 지닌 프로듀서이며, 예술가들의 까다로움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히 맞설 수 있는 두둑한 배짱의 소유자이다. 거기에 교묘한 설득의 기술까지 갖추고 있다.

사실 이 래리 켈리란 인물은 마리아 칼라스와는 달리 영화 속에만 존재하는 가공의 인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인물을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 자신을 투영하여 만들어낸 인물이라고 믿는 듯하다. 아마 사실일 것이다. 칼라스의 예술적 재능을 아꼈고, 그녀의 은퇴를 누구보다도 아쉬워했으며, 비교적 이른 칼라스의 죽음에 누구보다도 애통함을 느꼈던 사람이 바로 프랑코 제피렐리 감독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영화 속 래리는 칼라스에게 복귀의 기회를 제공하고, 그녀가 다시 한 번 예술혼을 불태울 수 있도록 돕는다. 결정적으로는 진실한 예술가로 남기로 한 칼라스의 바람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서 ‘칼라스 포에버’의 최고의 조력자로 그려진다.

사실 나는 래리를 보면서 다른 사람을 떠올렸다. 여러모로 래리라는 캐릭터와는 상반되는, 실존한 음반 제작자 월터 레그다. 월터 레그는 EMI의 음반 프로듀서였다. 그는 예술가들의 재능, 구체적으로는 그들의 상업적 성공 가능성을 판단하는 데에는 놀라우리만치 뛰어난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누군가의 부하 직원이 아니라 스스로를 아티스트들과 대등한 입장에서 엘범의 ‘창조자’라고 여겼던 그는, 어떤 점에서는 영화 속의 래리처럼 배짱이 있고 오만했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매우 호감형 외모에 때때로 근사하고 달콤한 말도 늘어놓을 줄 아는데다가 결정적으로 ‘게이’였던 래리와는 달리 월터 레그는 비교적 통통한 외모의 소유자였고, 성격은 훨씬 더 보수적인데다가 한층 더 오만했다. 그는 동료가 친근감의 표시로 자신의 어깨를 툭 치는 가벼운 접촉조차 참아내지 못 했다. 월터 레그는 보수적이고 엄격한 사내 분위기로 유명했던 EMI에서도 그 정점에 선 인물의 하나였다. 여러모로 래리 켈리의 캐릭터는 EMI보다는 차라리 데카에 가깝다.

레그는 일찌감치 마리아 칼라스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1953년 그녀와 함께 토스카를 녹음했으며, 이 앨범은 오늘날까지도 가장 많이 팔리는 토스카 앨범이 되었다. 이후 마리아 칼라스는 자신의 커리어 동안 오직 레그와만 함께 작업 했다.

레그의 오만함과 그의 독자적 행보를 견디다 못 한 EMI는 그를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마리아 칼라스의 마지막 앨범이 제작된 1964년이었다.

우리는 종종 앨범의 역사를 생각 할 때에 예술가들에게만 너무 초점을 맞춘 나머지 음반 제작사나 프로듀서들의 역할을 간과하고 만다. 사실 위대한 음반들은 프로듀서들의 예민한 촉각과 불굴의 의지로 제작되었다. 또 그 이면에는, 아티스트들을 하나의 신화로 포장하는 제작사의 교묘한 홍보 전략도 숨어있고 말이다.

레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단언하건데 예술의 영역에서 위원회라는 것은 전혀 쓸모가 없다. 필요한 것은 카라얀, 커쇼, 그리고 나 같은 사람들이다.”라고. 레그의 자신감이 느껴지는 말이다.


<레그와 카라얀. 이 두 사람은 같은 장소에 있지만, 카메라의 초점은 카라얀에게 맞춰져 있다. 세상이 이들을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비슷하다.>

영화 자체의 구성만 놓고 보면 그리 높이 평가하기 어렵지만, 마리아 칼라스의 굴곡진 인생과 음반사에 남겨놓은 그녀의 업적을 추모하고, 또 아티스트 뒤에서 자신의 모습을 숨긴 채 한 세기 동안 리코딩의 역사를 이끌었던 프로듀서들의 존재를 환기시킨다는 점에서, 한 번쯤 볼만한 영화라고 하겠다.

2009/08/30 06:04 2009/08/3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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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카랄도 (1982년 작품)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출연: 클라우스 킨스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조스 루고이, 미구엘 앤젤

“‘카야하리 야쿠’, 정글 인디언들이 이 땅을 가리켜 ‘신이 아직 창조를 마치지 않은 땅’이라 불렀다. 그들은, 인간이 사라진 후에야 신이 다시 돌아와 창조를 마칠 것이라 믿었다.”

이 영화는 위의 자막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고 곧이어 모터가 고장난 보트를 손수 노 젓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그는 1200마일이나 떨어진 곳에서 이틀 밤을 새며 강을 따라 이곳에 왔다. 노를 젓느라 살갗이 벗겨진 그의 손에는 붕대 대신 헝겊이 감겨 있었다. 그는 이미 공연이 시작된 가극장으로 달려간다. 표가 없다며 그를 들여보내지 않으려는 안내인을 향해 그는 말한다.

“이퀴토스에 가극장을 세울 거요. 그리고 카루소를 주연으로, 그곳에서 개관 공연을 할 거요. 어느 극장보다도 근사할 거요. 그리고 당신도 그곳에서 함께 일하게 될 거요.”

“현실이 오페라의 썩어빠진 모방보다 조금도 나을 게 없어!” 그는 외친다. 그리고 이렇게도 말한다. “신이 온다면, 카루소의 목소리를 하고 올 것이다.”

피츠카랄도. 그는 오페라 광이다. 현실을 오페라 속의 구태의연한 이야기보다도 가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반면, 신이 오페라 가수의 음성을 하고 올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낙관주의자이자 이상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마존 밀림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려는 무모한 꿈을 가진 사람이다.

전축에 카루소의 레코드를 걸 때면 으레 다가오는 돼지에게 피츠카랄도는 약속했다. 언젠가 아마존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지으면, 너에게 객석 정 중앙에 붉은 벨벳으로 장식한 의자를 마련 해 주겠다고.

피츠카랄도는 가극장을 세울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 없는 일대 모험을 감행한다. 그는 낡은 증기선 한 척을 구입하여 수리하고, 감히 어떤 배로도 거슬러 오를 수 없는 급류 너머의 고무 농장에 인력과 물자를 수송하기 위해, 또 다른 지류를 타고 먼 상류로 거슬러 올라갔다. 이윽고 두 지류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는 지역에 이르렀을 때, 그는 반대편 지류로 가기 위해 300톤의 증기선을 타고서 산을 넘는다.

아무런 그래픽 효과나 미니어처의 사용 없이, 순수하고 또 고지식하게 인력만으로 배를 끌어 올려 밀림을 통과시키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스펙터클하며, 관객을 압도하는 장면일 것이다.

배는 결국 산을 넘지만, 그의 모험은 끝내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아마존 밀림 한 가운데에 오페라 하우스를 세우려 했던 피츠카랄도의 의지는, 어쩌면 다 끝마쳐지지 않은 카야하리 야쿠의 창조 작업을 마무리 지으려는 한 서구인의 광기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디언들은, 신의 진노를 다스리는 제사의 의미로, 이 거대한 배를 급류에 떠내려보내버린다.

초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 하고 사업 실패를 눈앞에 둔 피츠카랄도는, 강 하류로 내려와 배를 팔아 돈을 마련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극단의 단 1회 오페라 상연권을 산다. 마지막 남은 얼마 안 되는 돈을 선장에게 쥐어주며, 제일 좋은 시가와 붉은 벨벳 의자를 사오라고 부탁한다.

실패한 사업자로서 이퀴토스의 항구로 돌아가는 피츠카랄도는, 배 위에서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를 상연한다. 관객은 오직 자기 한 사람. 그는 붉은 벨벳 의자의 등받이를 짚고 선 채, 시가를 태우며, 자신만을 위한 오페라 공연을 감상한다. 그러나 그는 절대로 벨벳 의자에 앉지는 않는다. 이 의자는 그가 카루소를 좋아하는 돼지에게 약속한 그 의자이므로…….

피츠카랄도는 실제 인물이라고 한다. 물론 영화화 과정에서 다소의 각색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설령 영화 속 인물이 실제와 동떨어진 공상적인 인물이라 할지언정 무슨 상관이 있으랴. 그의 인생, 삶의 방식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하고 싶지 않다. 그가 사업에 실패했다고는 할 수 있으리라. 그러나 누가 그가 인생에서도 실패했다고 할 수 있을까? 모험의 증거는 “내가 그것을 했고, 내가 그것을 보았다는 것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거장 헤어조크는 배가 산을 타고 넘는 장면을 아무런 그래픽 효과나 특수 장치 없이 인력만을 이용해 ‘실제로 배를 산 위로 넘기며’ 찍었다. 그리고 배가 급류에 휩쓸리는 장면도 정말 배를 급류에 내맡긴 채 그 안에서 찍었다. 이 과정에서 스태프들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 영화를 보는 것은 힘들었다. 무척 긴 영화이며, 유럽 영화인만큼, 이야기가 할리우드 영화처럼 술술 풀리지 않는다. 아마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배의 느릿느릿한 항해 과정을, 우리는 역시 느긋한 호흡으로 함께 해야 한다. 그 대자연에 대한 응시, 자연의 소리에 대한 귀 기울임은, 피츠카랄도 개인의 거친 광기와 대비를 이루며 이 영화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개인적으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소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 읽었던 아마존 강 항해 과정이 떠올라, 그 자연의 생생함이 더욱 절실하게 다가왔다. ‘깊은 숲’이란 정말 얼마나 신비스러운 존재인가.

피츠카랄도가 단 1회 상연권을 사서 연주토록 한 오페라는, 빈첸초 벨리니(1801~1835)의 ‘청교도’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이여, 그대에게 사랑을’이라는 아리아로, “내 사랑하는 이여, 한 때 나는 그대를 향해 남몰래 눈물지었지만, 이제 사랑의 신은 승리와 기쁨 속에서 나를 그대에게 인도하고 있소. 이제 그대는 나의 것이오.”라는 내용의 가사를 담고 있다.

나는 이 영화가 무척 마음에 들지만, 오늘날 가쁜 호흡의 영화에 길들여진 사람들에게 섣불리 추천하고 싶지는 않다.

2009/06/17 19:46 2009/06/17 19: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