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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들의 영산(靈山)인 후지산.

 

이 사진을 찍은 것이 벌써 1년 전이다. 작년 이맘때쯤 개최된 2022년 한일시민100인 미래대화에 참가하기 위해서 일본 시즈오카현을 방문했을 때 찍은 사진이다. 한일시민100인 미래대화는 강연과 토론이 주가 되는 꽤 진지한 행사이지만 그래도 매회 '문화행사'라는 것이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

2022년도의 문화행사는 '후지산세계문화유산센터'를 방문하는 것. 원래 계획상으로는 일찍 센터에 도착해서 전문 가이드의 안내를 받으며 관내 전시와 웅장한 후지산의 자태를 여유롭게 감상하는 것이었지만, 금요일 오후의 끔찍한 교통 사정 덕에 참가자들을 실은 단체 버스는 폐관 35분 전, 그러니까 입장 마감 5분 전에야 비로소 센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니 가이드 투어고 뭐고 일단 냅다 뛰어서 입장부터 한 다음 30분 벼락치기로 관람을 마치고 나왔다. 센터 내부는 마치 등산하는 기분을 조금이라도 느껴보라는 듯이 입구에서부터 꼭대기 층의 전망대를 향해 나선형으로 올라가는 구조였는데 시간이 촉박해서 뛰어 올라가다시피 했더니 고작 그 정도에도 숨이 차서 힘들었다.

그렇게 호들갑을 떤 덕분에 건진 것이 이 사진 한 장. 그래도 날씨가 맑았기에 후지산이 잘 보였고, 꽤 괜찮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이 글을 쓰다가 문득 깨달은 것인데, 후지산은 '세계자연유산'이 아닌,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왜 산()이 자연유산이 아니라 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것일까? 새삼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후지산이 일본에서는 신앙의 대상이자 수많은 예술작품의 모티프가 되기도 했으므로 자연유산보다는 문화유산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만.

2023/11/15 16:32 2023/11/1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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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봤다. 한국 개봉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보러 가고 싶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여러모로 운이 좋았다. 마침 근무 때문에 서울에 올라간 수요일이 개봉일이었고, 게다가 ‘문화의 날’이라고 해서 영화 티켓을 반값을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브리의 작품이라면 제값을 주고 봐도 아깝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할인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

혼자서 영화관에 가는 것은 꽤 오랜만이었다. 한때, 통신사 VIP 특전으로 다달이 영화 티켓 2장을 제공해 주던 ‘좋았던 시절’에는, 이렇게 근무차 서울에 갔을 때나, 혹은 와이프가 특별히(?) 허락해 주었을 때 혼자 영화관에서 가서 영화를 보는 게 취미이자 낙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통신사에서 제공해 주던 영화표가 한 달에 1장으로 줄어들더니, 코로나 기간을 지나면서는 그나마도 사라져 버렸다. 그 사이 영화 티켓 값도 2배 가까이 올라버렸다. 2시간 남짓 즐기는 취미생활 비용으로 1만 5천원이라는 가격이 ‘객관적’으로도 비싼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내 심리적 한계선은 확실히 넘어버린 것 같다. 이제 나는 어지간해서는 혼자 영화관 나들이를 하지 않는다.

그래도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영화관에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숱하게 은퇴 번복을 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지만, 이제는 그의 변덕과는 무관하게 그의 육체적 나이 때문에 이 작품이 정말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개봉 첫날이고, 게다가 영화 티켓도 할인했기 때문인지 영화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보통 영화관에 가면 맨 뒷줄에 앉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날은 자리를 고를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결국 극장 왼쪽에 치우친 자리에, 앞 뒷줄로 나눠 앉은 가족들 사이에 뻘쭘하게 끼어 앉게 되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작화가 특히 아름다웠고, 음악이 좋았다. 이야기 자체는 썩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처음부터 큰 기대는 하지 않았기에 큰 실망도 없었다. ‘오랜만의 영화관 나들이’이라고 거창하게 말해놓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라고 하는 것도 좀 우습긴 하지만, 사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대한 만족도, 특히 이야기 측면에서의 만족도는 <모노노케 히메>를 정점으로 그 이후부터 작품이 거듭될수록 꾸준히 낮아져 왔기에, 이번에도 스토리 면에서는 이빨이 몇 개가 빠지고 얼개가 성긴 혼잣말 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딱 그대로였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모호하고,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은 불친절하다 못해 무성의하기까지 하다.

개인적으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최고의 작품은 <모노노케 히메>라고 생각한다. <모노노케 히메>는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걸작이다. 물론 나는 모든 영화에 어떤 메시지가 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그 메시지를 반드시 친절하게 전달하는 것이 영화의 미덕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때때로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없는 것이 감독의 의도일 수도 있다. 또 어떤 메시지는 굳이 어렵고 복잡한 방식을 통해서만 그 전달력이 배가 되기도 한다.

내가 <모노노케 히메>라는 작품을 보았을 때는 초등학생이었는데, 자연의 세계와 문명의 세계의 대립,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갈 길을 고민하는 인간이라는 주제가 그야말로 ‘초딩이 보아도’ 알 수 있을 정도로(물론 이렇게 주제를 한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는 머리는 없었지만) 선명하게 제시되었다. 캐릭터들도 주인공급뿐만 아니라 조연급들까지 탄탄하게 디자인되어서 굳이 너저분한 서사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더라도 겉모습이라든가 목소리, 짧게 내뱉는 대사만으로 그 캐릭터가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지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설득력이 넘쳤다.

한편, <모노노케 히메> 다음 작품인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메시지가 아주 중요한 작품은 아니었다. 약간의 교훈을 담은 단순한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지만, 이 영화가 집중하는 것은 흥미로운 소재들과 그 소재들을 엮어내는 뛰어난 연출이다. 터무니없는 오해일 수도 있으나 나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이전 작품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던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아보겠다.”라는 강한 의지를 읽었는데,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된 역량은 그 의도를 달성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개인적으로는 썩 만족스러운 작품은 아니었으나, 명작 반열에 오르기에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제 80세를 넘긴 고령의 거장은 더 이상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에도, 또 그 마음을 사로잡는 데에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만년에 인생을 반추하는 현자에게는 무심한 듯 내뱉는 한 줄의 대사에서도 수많은 이야기들이 자동적으로 환기되며, 텅 빈 서사의 틈새가 온갖 경험과 추억들로 자동적으로 메워지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관객은, 관객의 눈에 긴 대롱을 갖다 대놓고 그 좁은 틈으로 앵무새 부리만 보여주면, 잘해야 앵무새 정도를 떠올릴 수 있을 뿐이다.

메시지의 측면에서도 그러하거니와, 엔터테인먼트의 측면에서도 좋게 평가하기는 어렵다. 일본에서는 일절 홍보하지 않았다지만, 한국에서는 그래도 최소한의 홍보는 했다. 그런데 메인 예고편을 보면, 누가 보더라도 작품은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다크 버전쯤 되는 <판타지 모험 활극>이라고 예상하게 될 것이다. 작품을 배급하는 배급사로서는 이렇게 홍보해야 팔릴 수 있으니 부득이하게 그렇게 포장한 것이겠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이 작품의 셀링 포인트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아니, 아예 대중들에게 소구할 셀링 포인트가 없다고나 할까.

이야기의 구조만 놓고 보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비슷하다. 주인공이 어떤 계기로 이세계에 들어가게 되고, 거기에서 가족을 찾기 위해서 고군분투한다. 그런데 이러한 이야기의 구조를 가지고 소위 ‘팔아먹기 위한’ 작품을 만든다면, 판타지 세계로 진입하는 시점을 최대한 작품의 앞쪽에 배치할 것이다. 거기에 관객들이 보고싶어하는 모든 볼거리가 모여있으니까 말이다. 실제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런닝타임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사용했는지 떠올려 보자. 주인공 치히로가 판타지 세계로 진입하기 이전의 이야기는 매우 짧다. 치히로는 이사 갈 새집을 향해 가는 차의 뒷좌석에 누운 채로 등장하는데, 그 드러누운 자세와 심드렁한 표정만으로도 이 캐릭터의 성격이 어떠한지를 매우 압축적으로, 그러면서도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그렇게 캐릭터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한 채, 주인공을 태운 차량은 이세계로 거의 직행(물론 차에서 내려서 터널을 통과한다는 단계가 있지만) 해버린다. 그 뒤에 펼쳐지는 세상은 그야말로 신비의 집합체. 관객들이 기대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노련한 배치라고 생각한다.

그에 비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판타지 세계로 진입하는 시점을 최대한 뒤로 미룬다. 그리고 그 앞에 주인공 ‘마히토’의 온갖 서사들을 구질구질하다 싶을 정도로 너절하게 늘어놓는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그것이 해결되는 것도 판타지 세계 안에서 이루어진다. 주인공 치히로는 분명 판타지 세계에서 큰 교훈을 얻고 성장을 하지만, 그 성장의 경험이 현실에서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에 대해서 관객들은 알 수도 없고, 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다. 이미 판타지 세계에서의 모험 자체가 기승전결이 완벽해서, 관객들이 다른 곳에서 ‘해결’을 갈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의 주인공 마히토는 이미 현실 세계에서 온갖 문제들과 마주하고 있다.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마히토보다 먼저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새엄마 나쓰코도, 자세하게는 나오지 않지만, 무언가 가혹한 삶이 무게와 고통을 짊어지고 있는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 이처럼 작중 현실 세계에서의 서사를 길게 늘여놓았으니, 판타지 세계가 현실 세계와 단절된 어떤 독립된 세계로 존재할 수가 없다. 필연적으로 현실 세계와 강하게 조응하는, 사실상 현실 세계의 그림자 같은 세계로 그려진다.

이처럼 현실 세계에서 번민과 고뇌를 짊어진 캐릭터들이 들어가는 ‘판타지 세계’는 그 자체로 독립된 모험과 활극의 무대가 아니라, 어쩌면 현실로부터의 도피처이거나(나쓰코의 경우) 혹은 현실 세계의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을 장소(마히토의 경우)가 된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 있으니, 판타지 세계의 이야기에는 시작도 없고 끝도 없다. 그러니 이것은 명백히 ‘판타지 모험 활극’이 아니다. 그렇다면 관객들이 그토록 기대하는 판타지 세계로의 진입 시점까지 가능한 뒤로 미루고 현실 세계의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으면서까지 관객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을 포함하여 지브리의 대부분의 작품을 감상한 나이기에, <그대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담긴 작품들의 인용, 미야자키 감독 본인의 가치관 및 인생 경험에 대한 은유를, 어느 정도는 눈치챌 수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눈치 못 채도 어쩔 수 없지 뭐”라는 듯한 감독의 태만도 느껴졌다. 감독의 태도가 그러할진대, 일개 관객인 내가 이 작품에 숨겨진 은유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관객들을 향해 감독을 대신하여 그 비유를 열심히 풀이하며 작품의 메시지를 해석해 주어야 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다. 게다가 나 자신도 소위 지브리 마니아나 미야자키 하야오의 광팬에 비하면, 한 알의 겨자씨에 새겨진 그 태산준령을 절반도 헤아리지 못할 것 같다.

너무 작품에 대해서 혹평만 한 것 같은데, 마무리는 칭찬으로 해야겠다. 우선 작화는 정말 아름다웠다. 미려한 그림체, 아름다운 색감, 그리고 몇몇 장면에서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치고는(?) 놀라울 정도로 역동적이면서도 부드러운 움직임을 보여줬다. 꼭 초당 프레임이 높은 부드러운 화면이 그렇지 못한 것에 비해 훌륭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역동적인 움직임이 연출과 잘 어우러져서 감탄스럽기도 했다. 단, 캐릭터 디자인은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었다. 인물 캐릭터들은 모두 몰개성. 최악은 ‘와라와라’인데, 디자인에 아무런 성의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나마 우스꽝스러운 앵무새 캐릭터는 고전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면모라도 있었지만 말이다.

음악도 훌륭했다. 특히 <하울의 움직이는 성>처럼 음악이 너무 튀어서 작품의 내용을 가려버리지 않고, 작품의 분위기를 적절하게 조성하는 데 기능한 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미야자키 하야오는 역시 미야자키 하야오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데에는 역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감독이다. 그가 창조 해내는 세계는 그 자체로 완결성이 있든 없든, 설득력이 있든 없든, 사람들로 하여금 그 세계의 공기로 숨을 쉬어보고 싶게 만드는 신비한 매력이 있다.

이 작품이 정말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된다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그러나 혹여 앞으로 한 두 작품을 더 만든다고 하더라도 창작자로서 절정의 시기에 만들어 낸 그런 빼어난 작품은 다시 나오지 않을 것 같으니, 그 아쉬움이 아주 크지는 않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마치 할아버지가 손녀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쉽고 재밌으면서, 오직 전 생애를 창작자로 산 예술가만이 깨달을 수 있는 진리의 편린을, 많이도 말고 딱 한 조각 정도 담은 그런 동화같은 작품을 하나만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아마도 과한 바람이려나.

2023/11/02 02:00 2023/11/02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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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웨이(MIDWAY)』 (2019년 작품)
감독: 롤랜드 에머리히(Roland Emmerich)

모든 역사를 통틀어 인류가 경험한 최대, 최악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 일본은 이 전쟁에서 패함으로써 ‘영원한 패전국’으로 역사에 기록되게 되었다.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얼마나 통탄스러운 일이겠는가? 미국, 영국과 한편에서 싸웠더라면 지금까지도 일본은 ‘승전국’으로서 자국의 역사를 ‘무결점’의 역사로 포장하고 떵떵거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 미국만큼은 아니더라도 국제 사회에서 대접받으며, 어쩌면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 자리 하나를 꿰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 일본은 자기 주제도 모른 채 ‘거인’ 미국에 덤빈 하룻강아지요, 전쟁의 광기에 휩싸여 수많은 인명을 헛되이 희생시킨 전범국가로 영원토록 기억되게 되었다.

대체 왜? 전쟁이 끝난 지가 70년도 넘었지만, 일본은 여전히 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일본인들이 당시 일본이 ‘미국’과 ‘영국’을 등지고 독자 노선을 걸어간 것이 그 원인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 뼈아픈 판단 착오를 곱씹고 또 곱씹으며, 일본의 지도자들이 선택한 길은 미국이 하지 말라는 것은 결코 하지 않고, 하라는 것은 될수 있는 한 하는 것. 즉, 철저한 ‘종미(從米)’였다.

요즘 아베 내각의 행보를 보면서 일본이 다시 태평양전쟁 때처럼 무모한 군국주의로 회귀하려는 것이 아닐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일본이 철저한 ‘종미’ 노선을 버리지 않는 한, 그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하고 있다.

영화 『미드웨이』는 시종 ‘미국’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영화이지만, 여기에는 흥미롭게도 전후 70년간 철저하게 미국을 추종해온 일본을 어여쁘게 바라보는 미국의 시각이 잘 드러나 있다. 일본 내에서, 적어도 아베 수상을 위시한 정치계에서 만큼은 태평양전쟁이 일부 이성을 상실한 군국주의자들의 파멸적 선택이었다는 것으로 정리가 되어있다. 그 이전 한반도나 대만에 대한 식민지배는, 당시 열강이라면 어느 나라든 자행하던 행위로 ‘국제적 기조’에 부합하는 것이기 때문에 결코 죄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일본의 입장이다. 물론 이것은 한국인으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역사 인식이다. 중국은 여기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보이고있다. 난징 대학살과 같은 개별적 사례들은 논외로 치더라도 일단 태평양전쟁 자체는 일본도 전쟁 범죄라고 시인하고 있고, 이에 대한 사죄와 반성도 표면하고 있는 만큼 중국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일본에 대하여 한국만큼 격렬하게 역사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지만 국내적으로는 국민통합을 위한 전략적 차원에서인지 모르겠으나, 반일감정을 교묘하게 조장, 활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영화가 시작할 때 중국 회사 로고가 보이기에 『미드웨이』 제작에 중국 자본이 투자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는데, 요즘 중국은 이런 투자를 할 때는 반드시 ‘가시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있어서, 과연 중국 자본의 영향이 이 영화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를 관심 깊게 살펴봤다. 아마 그 보상은 영화 전체의 전개에서 보자면 사실상 불필요한 시퀀스였던 ‘둘리틀 특공대’ 이야기였을 것이다. 도쿄 폭격을 성공시킨 둘리틀 특공대가 중국 땅으로 숨어들자, 이것을 이유로 중국의 민간인들까지 무차별하게 학살하는 일본군의 모습이 아주 잠깐 묘사되었고, 거기에다가 마지막 엔딩에서는 일본인이 학살한 민간인이 ’25만 명’에 달했다는 구체적인 숫자까지 자막으로 삽입시키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중국 자본의 영향임에 분명한 이런 묘사를 제외하면, 이 영화 속에서 그려지는 미국의 전쟁 상대인 일본군의 모습은 ‘무사도’를 체현한 사무라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에 가깝다. 미국과의 전쟁을 시작한 광기의 집단과 그저 자기의 역할을 묵묵하게 수행한 장병들을 분리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관, 전쟁관을 미국이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사실 미국 입장에서는 일본이 미국과 다른 길을 걸어가기로 결정하지 않는 이상, 여기에서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 역사적 진상을 추구해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상업영화에서든, 국제정치에서든.

영화 자체에 대해 이야기를 좀 하자면, 진주만 공습부터 미드웨이 해전까지 이어지는 실제 역사적 과정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꽤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역사를 잘 모른다면, 스펙타클한 전쟁 장면을 즐기기에는 다소 밋밋하고 지루한 영화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미드웨이 해전이 발발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 진주만 공습을 다루는 것은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그 분량이 너무 길었다. 거기에다가 진주만 공습과 미드웨이 해전 사이에, 앞서 언급한 이유로 ‘둘리틀 특공대’ 에피소드까지 삽입되어서 영화의 전개가 너무 루즈해진 감이 없지 않다. 전투기들의 공중전이나 폭격씬은 나름 볼만하지만, 너무 비슷한 장면들이 반복되다보니 후반에 가서는 몰입도가 떨어졌다. 일본의 항공모함 3척을 격침시키고 일단 미국 항모 엔터프라이즈호로 귀환했던 딕 베스트가 다시 비행대대를 이끌고 일본의 마지막 항모인 히류를 공격하러 갈 때에는 그만 ‘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아무리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묘사라지만, 똑같은 수직강하 폭격 장면을 대체 몇 번이나 보여주어야 직성이 풀리는 것인지.

그래도 십수 년전에 봤던 영화 『진주만』에 비하면 감정 과잉은 적은 편이고, 역사 고증도 그럭저럭 잘 된 편이라 제법 볼만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2020/01/09 15:25 2020/01/0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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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계절이다.

2019/11/09 00:48 2019/11/09 0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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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감기에 걸려서 다 같이 병원에 갔다가 애견카페에 들렀다.


2019/11/04 00:00 2019/11/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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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카메라라는 것을 처음으로 본 것은 2000, 미국에서였다. 벌써 20년 전 일이니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어렴풋하게나마 기억나는 장면들이 있다. 1999년 겨울, 우리 가족은 미국에서 1년 살이를 시작했다. 어머니가 하버드 옌칭 라이브러리에서 방문 연구원으로 1년 간 일을 하게 된 것을 기회로, 그 참에 나와 동생도 1년 동안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기로 했던 것이다. 몇 해 전 이미 미국에서 1년간 생활했던 아버지는 일단은 함께 미국으로 갔지만, 한국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초기에 집 구하는 것 등 굵직한 일들을 처리하는 것을 도와주고는 귀국해야만 했다.

미국에서 장만해야 했던 것 중에서도 중요한 것 중의 하나, 특히 나에게 가장 중요했던 것이 바로 컴퓨터였다. 컴퓨터를 사기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전자제품 매장에 갔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Best Buy가 아니었을까.

나의 관심사는 오직 새 컴퓨터에 있었지만, 아버지는 그때 카메라 매장 앞에서 한참 시간을 보냈다. 그곳에 진열되어있던 제품들이 바로 디지털카메라였다. 요즘에야 '카메라'라고 하면 별다른 수식어를 붙이지 않아도 곧바로 '디지털카메라'를 떠올리고, 필름을 사용하는 카메라를 오히려 '필름카메라' 내지는 줄여서 '필카'라고 부르고 있지만, 2000년 당시만 하더라도 필름 없이 메모리에 전자 파일 형태로 이미지를 저장하는 디지털카메라라고 하는 것을 그리 흔히 볼 수 없는 시대였다. 늘 시대를 앞서가는 얼리어답터였던 아버지는 이때 충동적이었는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디지털카메라 한 대를 구입하기로 결정해버렸다.

진열대에는 100달러 정도 하는 상당히 값싼 카메라부터 그 열 배 가격의 카메라까지 다양한 카메라들이 있었다. 20년 전과 지금이 물가가 다르다고는 하나, 그 당시 100달러짜리 디지털카메라라는 것은 대체 어떤 카메라였을지 궁금하다. 모르긴 몰라도 사용에 엄청난 제약이 따르는, 당시에도 이미 구형인 모델이 아니었을까 짐작된다.

신중한 고민 끝에 아버지는 1,000달러가 넘는 가격표가 붙어있는 카메라를 골랐다. 그것이 바로 도시바의 PDR-M70 모델. 무려 330만 화소를 가진, 당시로써는 꽤 높은 사양의 카메라였다.

 



 이 카메라는 그 후로 꽤 오랫동안 집안에서 굴러다녔다
2000년대 전반기는 그야말로 '똑딱이'라 불린 콤팩트 디카의 전성시대였는데, 그런 콤팩트 디카(이를테면 우리 집안에서 그야말로 막 굴러다니던 카시오의 EX-S100 같은 카메라)에 비하면 PDR-M70은 센서 크기도 큰 편이고, 렌즈 구경도 큰 편이어서 그랬는지 어지간한 똑딱이 카메라들보다는 괜찮은 화질을 보여줬고, 결정적으로 모양도 '카메라다움'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꽤 오랫동안 사용했었다.

 

2019/10/28 01:29 2019/10/28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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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바꿨다. 만 9년을 사용해 온 니콘 D3100에서 소니 A7R3로. 

9년 전 니콘 D3100을 산지 얼마 안 되었을 때, 날씨 좋은 날 밖에 나가 찍은 사진. 지금은 둘 다 볼 수 없는 고미와 아미. 9년 동안 적지 않은 사진을 찍었지만, 초기에 찍은 이 사진이 베스트인 것 같다. 내일은 새로 산 카메라를 들고 야외로 나가봐야겠다.

2019/10/27 01:40 2019/10/27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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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떤 물건이든 굉장히 오래 쓰는 편이다.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중간고사 때 처음 사용한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수능 시험 답안지에 마킹을 했을 정도. 그렇다고 쓸 수도 없게 되어버린 고물을 끼고 사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물건을 잘 망가뜨리지도 않고 잘 잃어버리지도 않으니 쓸 수 있는 한은 나름 애착을 가지고 오래 쓰는 편.

그런 나조차도 깜짝 놀랄 만큼 오랜 기간 사용한 아이템이 있으니, 바로 이 노스페이스 백팩이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어머니 지인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던 것 같다. 내가 고1때라면 2002년이니, 무려 15년 전. 아무튼 고등학생 시절 내내 잘 사용했다. 2004년도 8월쯤 찍은 사진에도 이 가방을 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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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는 시퍼런 색깔의 키플링 백팩을 주로 사용했지만, 그래도 간간이 이 노스페이스 백팩을 꺼내 썼던 기억이 있다. 튼튼하고 공간도 넉넉한데다가 비를 좀 맞아도 끄떡없는, 그야말로 막 쓰기 좋은 백팩이었기 때문. 그래서 정말 막 썼던 것 같다.


2013년에 삼성에 입사하게 되었을 때, 당시 여자 친구였던 지금의 와이프가 샘소나이트 백팩을 선물해주었고, 대학원생이 된 지금까지 그 백팩을 잘 사용하고 있다. 노스페이스 백팩은 정말로 다시 쓸 일이 없을 것 같았지만, 구석에 처박아 두었다가도 이삿짐 꾸리는 용도로 다시 꺼내 쓴다든가 하면서 강제 수명 연장을 시켰고, 급기야 해외 자료조사를 나갈 때에는 여차하면 버려도 좋다라는 마음으로 들고나가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버클은 깨지고 바닥에는 구멍이 나고 그물망은 헤지는 등, 결국 가방은 물리적으로도 수명을 다하고 말았다. 이제는 정말 버려야 되나 싶은 차에, 와이프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올해 결혼기념일 선물로 필드 워크용 백팩을 하나 사주었다. 이제 정말 미련 없이 이 녀석을 보내줘야 할 때.

 

헌 옷 수거함으로 보내버리기 전, 장장 15년을 함께 한 이 녀석의 사진을 한 장 남겨둔다.

2017/12/31 00:46 2017/12/3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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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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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사료 조사차 나가사키를 방문하였을 때 묵었던 호텔 근처에는 마침 나가사키 3대 카스테라 가게 중 하나로 명성이 높은 분메이도(文明堂)의 총본점이 있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충분히 호화스러운 건물일 수도 있지만, ‘3총본점이니 하는 호사스런 이름에 비하면 막상 건물 내부는 그다지 넓지 않았다. 유니폼을 갖춰 입은 직원들이 일본 특유의 그 부담스러울 정도의 친절함으로 응대하는데, 가난한 대학원생이 얇은 지갑을 만지작거리며 카스테라 한 상자를 살지 두 상자를 살지 망설이는 그 짧은 순간에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저들의 시선에 이마가 간지러웠다.

장인장모님을 생각하며 한 상자, 그리고 부모님을 위해서도 한 상자. 계산하려다보니 한 조각씩 개별 포장해서도 팔기에 나도 맛이나 보자는 생각에 슬쩍 끼워 넣었다. 후쿠오카행 고속버스를 타려면 아직 시간이 좀 남았기에 상점가로 가서 천천히 둘러보다가 프랜차이즈 카페인 도토루에 들어갔다. 이미 9월이었지만, 나가사키의 날씨는 여전히 무더워서 한국의 한여름을 방불케 할 정도였는데, 평소 같으면 당연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셨겠으나 카스테라와는 왠지 따뜻한 커피가 잘 어울릴 것 같아서 그렇게 주문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돌아다닌 탓인가,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다. 우선 따뜻한 커피 한 모금을 마셨다. 쌉싸름하다. 이 쌉싸름한 맛이 정신을 차리게 도와준다. 입안에 커피 향이 퍼지고, 뜨거운 액체는 목을 타고 넘는다. 언제부터였을까, 커피를 하루에 두, 세잔씩은 꼭 마시게 된 것은.

카스테라 봉지를 뜯고 적당히 안 입 베어 물었다. 달콤했다. 커피가 적셔놓은 입안에서 카스테라는 부드럽게 녹아들었다. 역시 달콤했다. 본고장 나가사키의 카스테라는 밀도가 높아서 무겁고 단단하다고 들었는데, 확실히 씹을 때 어느 정도의 탄력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래서인가, 약간 퍽퍽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역시 카스테라는 커피든, 우유든 음료와 함께 먹어야 하는가보다.

맛을 음미하는 것은 한 입 까지다. 상당히 허기도 져있는 상태였던 터라 손에 들려있던 조각 카스테라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나가사키 카스테라의 특징이랄 수 있는, 카스테라 밑바닥에 다닥다닥 붙어있던 굵은 설탕 알갱이들이 오도독 씹혔다. 마지막으로 천천히 커피를 마시며, 입안에 남은 설탕의 맛을 지웠다. 참 깔끔한 간식.


2017/11/02 23:10 2017/11/02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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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일을 20여 일 남겨두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받았는데, 초음파 영상을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 표정이 굳어졌다. 아기가 자궁 안에서 성장을 멈췄단다. 말문이 턱 막힌 채 연신 눈물만 쏟는 아내를 데리고 대학병원을 찾아가니, 당장 내일이라도 배를 가르고 애기를 꺼내야만 할 것 같다고 했다.

 

별안간 입원하게 된 아내는, 전신 마취 후 제왕절개로 아기를 꺼내면 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지켜봐줄 수가 없지 않느냐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하반신 마취만 하고 수술을 받으면 바깥세상의 공기로 첫 숨을 쉬는 아기를 안아줄 수 있으니,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간호사가 반신마취 적합도를 보겠다며 피를 뽑아갔는데, 곧 돌아와서는 수치가 기준치에 겨우 걸친다며, 아무래도 전신마취를 해야겠단다. 수술실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아내는, 마침내 수술실 안에서 마취과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며 하소연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 직전, 마취 방법을 다시 바꾸었다.

 

자신의 배를 열어 지난 37주간 소중히 품고 있던 아기를 내보낸 어미와, 몸무게 2.03kg으로 세상에 나와 첫 울음을 터뜨린 아기는 서로 뺨을 맞대었다. 내 아내는 연신 고마워, 고마워를 읊조리며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미숙아에 가까운 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를 급히 인큐베이터로 옮기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이제 편히 쉬도록 수면제를 주겠다고 했는데, 아내는 괜찮다며 깨어있는 채로 봉합 수술까지 다 받았단다. 나중에 회복실에서 나온 아내에게 왜 수면제를 맞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예전에 하반신 마취로 제왕절개 수술 받은 언니로부터 수면마취에서 깨어나고 나니 수술 중에 아기를 안았던 일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내는, 자신과 뺨을 맞대고 울던 아기의 그 일성(一聲), 결코 몽롱한 꿈결 너머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기는 꼬박 1주일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고, 다시 2주를 중환아실에서 보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렇게 작게 태어난 아기가 기특하게도 호흡기 없이 숨을 잘 쉬고, 젖병을 물리면 마다하거나 남기는 법이 없을 만큼 식욕이 왕성했다고 한다. 아기는 3주 만에 몸무게를 500g이나 늘려서, 411일 무사히 퇴원했다. 마침 그날은, 원래 아기가 태어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날이었다.

 

꼼지락거리는 그 작은 손에, 가만히 내 손가락을 갖다 대니 움켜쥔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너희에게 줄 기쁨을 마음껏 누려라. 그리고 그 애가 컸을 때 갚아 주어라."

 

30여 년 전,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께서 아버지에게 해주신 말씀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은 다시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전해졌다. 이 뜨거운 생명이 내 손끝을 잡았을 때, 할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로, 다시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전달된, 이 지혜로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가족의 전통을 따라 한 글자로 지었다. (). 한자는 나의 아버지가 직접 골라주었다. ()과 무()와 돈()이 합쳐진 무적의 글자다. 김윤. 박유희와 김민의 딸이다.

2017/04/15 23:51 2017/04/15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