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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 '국법의 귀함(貴き)을 논함'과 제7편 '국민의 직분을 논함'은 이어지는 하나의 논설로써, 주로 국민과 정부의 관계, 국민과 정부 각자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민'이 어째서 '국법'을 존중하고 따라야하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우선 제6편에서는 "죄인을 벌하는 것"(P.56), 즉 '사법(司法)‘의 권한은 오직 “정부에 한정된 권”(p.56)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사법권을 독점하는 까닭은, “한 사람의 힘으로 다세(多勢)의 나쁜 사람들을 상대로 삼아서, 그를 막으려 하더라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p.54)라는 사정에 말미암아 국민들이 자신들의 명대(名代, 대리인)로서 정부(政府)를 세워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직분”(p.54)을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총명대”로서 일을 하는 것이므로, “정부가 하는 일은 곧 국민이 하는 일”(p.54)이기 때문에, 국법을 따라는 것은 곧 “스스로 만든 법에 따르는 것”(p.55)이다.    

후쿠자와가 가장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정부와 국민의 약속을 무시하고 개인이 사사로이 죄인을 벌하는 사재(私裁) 행위다. 현대 사회에서도 공권력에 의한 정당한 법의 집행이 아닌, 이른바 타인에 대한 사적제재(私的制裁)는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다. 제7편에서 후쿠자와는 “정부의 정사에 관계없는 자는 결코 그 일을 평의해서는 안 된다.”(p.65)라고 말하고 있는데, 얼핏 모든 법리적인 판단의 권한은 정부에게 있으므로, 국민들은 그저 그 결정에 묵묵히 따라야한다는 권위적인 해석으로도 비칠 수 있으나, 후쿠자와가 진정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사로이 시비를 판결하고, 그에 대한 무분별한 처벌을 자행하더라도 이것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는커녕,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칭송해 마지않는 일본 사회의 전통이 아닌가 싶다.    

후쿠자와는 적토(敵討)나 천주(天誅)를 비판한다. 적을 토벌하는 것이나, 하늘이 벌을 주는 것은 말만 들어서는 어느 것이나 정당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국민의 총대리인인 정부가 ‘공무(公務)’로서 집행하는 형벌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회에 극심한 해악을 기치는 ‘암살(暗殺)’ 행위에 불과하다. 저마다의 사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여 놓고서, 그 명분을 공의(公義)에 가탁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사회의 질서는 확보될 길이 없다.    

그러므로 후쿠자와에게 사법행형의 분한은 정부에게 위임하고, 국민들은 “운죠오(세금)를 지불하고 정부의 보호를 사는 것”(p.68)이, 안정된 사회를 구축하는 현실적이고도 올바른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도 자기 분한을 지키지 못 하고 폭정(暴政)을 행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p.68) 그와 같은 경우에 국민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법의 정의를 오직 정부에게 일임한 이상에는, 정부가 공권력을 정당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이것을 견제하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체제 하에서 ‘선거’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있으나, 후쿠자와는 분명 여기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하고 있는 듯하다. 리(理)를 져버린 정부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는 것도 신념에 어긋나고, 그렇다고 정부에 무력으로 들이받는 것도 지금까지 주장해 온 바와 배치된다. 결국 후쿠자와가 제시한 마지막 길은 숭고한 죽음, 즉 순사(殉死)다. 사적인 제재는 그르고 공적인 사법행형은 정당한 것처럼, 자기 주인을 위한 사사로운 죽음은 어리석고 무가치하며, 국민이 곧 객(客)인 동시에 주인(主人)인 정부에 다가가 “인민의 권의를 주장하고 정리를 주창”(p.74)하며 목숨을 버리는  ‘마루티르돔(순교, 순사)’은 “천만 명을 죽이고 천만 량을 허비하는 내란의 군사보다도 훨씬 더 낫다.”(p.72)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법이, 1970년 자기 한 몸을 불사른 전태일이라는 개인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을 상기하면 후쿠자와의 논설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마르티르돔’ 운운한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자면 사회의 불의를 일일이 광정(匡正)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의 목숨이 필요할 것인가.

2016/10/08 12:38 2016/10/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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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권유(學問のすゝめ). 짐짓 점잔을 뺀 듯 근엄함마저 느껴지는 제목이지만, 그 의미는 결국 공부 좀 하라라는 것이 아닌가. 지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극중 인물 영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은 이 나라는 공부가 국시(國是)”라는 대사 한 마디가 여전히 관객들의 가슴에 묵직한 공명을 일으켰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상기해보면, “공부 좀 하라라는 타이름은 어쩌면 한국의 청년들에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들어온 잔소리이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누군가에게 공부 좀 하라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을 만큼 자신만만했던 한 일본인 학자에 따르면, 당시 일본 전체의 인구 중 160명에 한 명 꼴로 자신의 이 근엄한 잔소리를 자청해서 들었다고 한다.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충고가 마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라는 말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진부해서 별다른 신선함을 느끼게 하지 못 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이야기다. 필시 당시의 일본 국민들과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사이에는, ‘학문권장하는 일갈이 마치 새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세찬 조류(潮流)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가게 만든 시대적인 맥락이 존재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맥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학문의 권유라는 책의 안과 밖, 모두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학문의 권유의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질문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로, 후쿠자와 유키치가 권장하는 학문(學問)’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널리 배우고(博學) 깊이 질문하는(審問)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분야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유학(儒學)인가, 혹은 일본 고유의 국학(國學)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어떤 학문인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학문의 대상을 인간 보통 일용에 가까운 실학(實學)’이라고 못 박았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읽고 쓰고 셈하는 것과, 지리학구리학(究理學)역사학경제학수신학이다. 그런데 이들 학문을 하는데, 어느 것이나 서양(西洋)의 번역서를 조사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각 분야의 제목은 한자로 적혀있으나 그 내용은 서양의 학문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후쿠자와 유키치가 말하는 진정한 학문이요, 한학(漢學)과 같은 전통의 학문은 일용에서 멀어진 우활(迂闊)한 것들이니, “우선은 다음으로 미루어두어야 할 것들이다.

두 번째는 과연 학문을 누구에게 권유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감동적인 문구로써 학문의 권유의 초편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실학(實學)사람 된 자는 귀천과 상하의 구별 없이 모두 다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하며,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글의 내용에 따르면 학문 권장의 대상(바꿔 할하면 학문을 수행해야 할 주체)은 모든 인민(人民)이다. 그런데 이 글이 본래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자신의 고향인 나카츠(현재 오이타현[大分県] 나카츠시[中津市])에 개교한 학교의 학생들과 교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메이지 412(18721~2)에 쓴 글이라는 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주체를 단지 일부의 지배계층으로 한정하지 않고 국민 전체로 외연을 넓힌 것은, 불과 50년 전인 분세이(文政) 8(1825)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斎)가 자신의 대표작인 신론(新論)에서 백성들로 하여금 따르게 해야지, 알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혁명에 가까운 생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사농공상 각자가 그 직분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에게는 저마다에게 주어진 역할이 따로 있고, 그 역할에 따라 분수에 맞게끔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지만,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배워서 그 직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과연 후쿠자와 유키치는, 누구나 실용의 학문만 익히면 신분의 고하(高下) 없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무지문맹한 백성만큼 가련하고 또 미워할 만한 사람”(p.12)이 없으니, “정부는 그 정사를 베풀기를 쉽게하는 통치의 편의와 국가의 부강을 위해서는 백성들을 적당히깨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인가?

마지막 질문은, 저자가 생각하는 학문, 저자가 상정한 대상에게 권유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하면, 후쿠자와 유키치는 왜 이 책을 썼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권하는 학문도, 호로지 그 한 가지 일로써 취지로 삼고”(p.14)있는 그 한 가지는 바로 전국의 대평(大平)을 지키려고 하는 것”(p.14)이라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지만, 그렇다면 당시 일본은, 국민이 무지한 까닭으로 대평을 상실하였단 말인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장하는 실용의 학문을 국민들이 익히기만 하면, 국가의 부강과 어진 정치가 실현되고, 대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의 웅변은 자못 심금을 울리지만, 그의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앞으로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6/10/04 08:10 2016/10/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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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5717일 조금 전,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내년에 있을)나의 선거1)에 대해서는 자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탕으로 예측해보자면 전망은 대충 이러하네. 벌써부터 선거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푸블리우스 갈바2)뿐이지만, 시민들은 우리에게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 지극히 솔직한 태도로 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네. 푸블리우스의 이런 성급한 선거 활동은 우리 쪽에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지. 그도 그럴 것이, 푸블리우스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나에 대한 의리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거든. 이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면, 점차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언제쯤 선거 운동을 언제 개시하면 좋을까가 문제이네만, 킨키우스가 자네쪽 소년이 이 편지를 가지고서 다시 자네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할 거라고 알려준 날, 그러니까 곧 마루스 평원에서 호민관 선거가 치러지는 717일부터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네. 함께 입후보하는 이들은, 현재까지 확실한 건 갈바와 안토니우스3), 그리고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야. 마지막 이름을 보고는 웃거나 혹은 탄식을 내뱉었겠지. 거기에 자네가 벽에다가 이마라도 박고 싶어지도록 한 사람 더 추가하자면, 카에소니우스5)마저 입후보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아퀼리우스는 출마하지 않을 것 같네6). 그가 출마를 부정했고, 신병이 있다고 선언한데다가, 법정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왕국을 출마를 사양하는 이유로 들고 있네. 카테리나7)에 대해서는 심판인들이 대낮에 해가 진다는 따위의 판결을 하지 않는 한, 출마는 무리겠지8). 아우피디우스와 팔리카누스에 대해서는 일부러 쓸 필요도 없어. 현재 (올해 치러질 선거에)입후보 한 사람들10) , 카이사르11)의 당선은 확실하다고 생각되네. 또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텔무스와 실라누스12)일 거라고 보여지네. 하지만, 그들은 인맥이 빈곤하고 세간의 평가도 너무 낮아서, 툴리우스13)가 급부상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네만, 이건 나만의 생각일세. 내 계산으로는, 텔무스가 카이사르와 함께 당선되는 것이 가장 상황이 좋다고 생각되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입후보하게 될 해에 함께 겨루게 된다면, 지금 입후보 해 있는 사람들 중에는 텔무스가 가장 강력한 입후보자가 될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지. 그는 플라미니우스 가도14) 정비의 감독관을 맡고 있지만, 이 사업은 내가 선거에 출마할 즈음이면 여유롭게 마무리 지어지겠지15). 그러니까 나로서는 그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네. 이정도가 입후보자들에 대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네. 그리고 아마도 선거에서는 갈리아16)가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쪽의 법정(法庭) 일이 좀 잠잠해지면 9월에 피소의 부관으로서 그가 있는 갈리아로 재빨리 넘어갔다가17) 1월쯤에 돌아올까 생각중이네. 명사들18)의 의향이 어떤지 대충 파악이 되면 알려줌세. 적어도 시() 안의 경쟁 상대들만 놓고 본다면, 뒷일은 순조롭게 풀릴 거라고 보고 있네. 그렇지만 그 군단(軍團)만큼은 자네가 훨씬 더 가까이에 있으니까, 자네가 좀 맡아줬으면 좋겠네. 즉 우리들의 친구 폼페이우스19)가 이끄는 그 일개 군단 말일세20). 설령 선거에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너무 섭섭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해주게.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실은 자네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네. 자네의 백부인 카에킬리우스21), 푸블리우스 바리우스22)에게 큰돈을 사기 당했네. 그래서 백부께서는 바리우스에게 속아서 떠안은 물건을 두고 바리우스의 형제인 카니니우스 사툴루스와 다툼을 시작했지. 다른 채권자들까지 여기에 가세했는데, 그 중에는 루쿨루스23)와 푸불리우스 스키피오24), 루키우스 폰티우스25)도 있네. 특히 루키우스 폰티우스는 만약 재산 압류가 발생할 경우 그 재산에 대한 법정 관리인으로 세우려는 것 같네만,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좀 도가 지나친 것 같네. 어쨌든 여기서 좀 문제가 생겼다네. 자네 백부님께서는 나에게 사툴루스26)를 고소하는 편에 서 달라고 부탁을 하셨네. 그렇지만 사툴루스는 단 하루도 내 집을 방문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네. 사툴루스는 항상 루키우스 도미티우스27) 다음으로 나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지. 나 자신이나 동생 퀸투스가 입후보했을 때에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네.

사툴루스 본인과의 이런 친밀한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도미티우스와의 관계도 있어서 나로서는 정말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일세. 나의 당선의 열쇠는 도미티우스가 쥐고 있네. 나는 이런 상황을 자네 백부님께 잘 설명 드렸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하였다네. “만약 백부님과 사툴루스, 두 사람만의 문제였다면 저는 지체 없이 백부님의 요청에 응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채권자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게다가 그 채권자들은 하나같이 매우 부유하여서 굳이 백부님께서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세워주지 않아도 모두들 소송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니, 당신께서도 저의 체면과 현재 제가 처해있는 상황을 좀 배려 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지만 백부님께서는 내 말을 기대했던 것처럼은-그리고 신사에 어울리는 태토로는- 받아들여주시지는 않는 모양이야. 최근 며칠 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네만, 내가 그러한 대답을 드린 후로는 딱 연락이 끊기고 말았네.

이러한 상황을 부디 잘 헤아려주게. 그리고 친구가 이처럼 심각한 괴로움에 처해있을 때, 나로서는 그 친구를 고소하는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사툴루스는 나를 위해 크게 힘을 써줬고, 봉사 해 준 사람이니까. 좀 냉정한 시선으로 보자면, 내가 앞으로 있을 선거 활동을 위해 백부님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령 그 말 대로라 하더라도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왜냐하면 소의 가죽이나 산짐승을 얻고자 한 일은 아니니까28). 내가 어떤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내가 얻은 지지를 조금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자네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이 정도면 자네도 내 생각을 충분히 납득 해 줬으리라 믿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네. 자네가 보내준 헤르마테나29), 정말로 기쁘다네. 배치가 너무 훌륭해서 김나시움 전체가 마치 그녀에게 바쳐진 공물같이 느껴질 정도야. 정말로 고맙네.

 

1) 63년도의 집정관 선거
2)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65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다.
3)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휴블리다. 키케로와 함께 63년도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후에 속주 마케도니아의 총독으로 재직하던 중 부정축재로 고발되어 키케로의 변호를 받았지만 유죄가 선고되었다.
4) 퀸투스 코르피키우스. 67년 혹은 66년의 법무관.
5) 마루쿠스 카에소니우스. 69년에 키케로와 함께 조영관으로 근무했다. 65년 이전(키케로와 같은 해인 66?)에 법무관을 지냈다.
6) 코르피키우스 이하의 3인은 신분이나 경력으로 봐서는 특별히 열위에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키케로는 집정관으로서는 역부족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이우스 마퀼리우스 갈루스는 키케로의 친구로, 66년에 키케로와 함께 범무관을 지냈다.
7)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테리나. 63년에 국가전복의 음모를 획책하였지만 키케로에게 발각되어 사형.
8) 그는 속주 아프리카에서 부정축재의 죄로 고발당했다.
9) 역시 집정관이 되기에는 격이 떨어진다는 의미. 티투스 아우피디우스는 출신이 미천했지만 법무관(67?)으로까지 출세하였고, 아시아 속주의 총독으로서도 훌륭한 실적을 쌓았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팔리카누스도, 피케눔의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역시 법무관(68년 이전)까지 역임했다.
10) 다음 해(64)의 집정관. 실제 당선된 것은 A2의 시작 부분에 나와있듯 카이사르와 피글루스.
11) 유명한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먼 친척인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12) 미누키우스 텔무스는 66년 이전에 법무관을 지낸 인물로, 집정관에 당선된 피글루스의 별명일 가능성도 있다.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는 62년의 집정관 선거에서 당선.
13) 루키우스 툴리우스. 75년의 범무관?
14) 로마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가도.
15) 가도정비의 공적이 선거전에서 강력한 순풍이 될 거라는 의미.
16) 여기서 말하는 갈리아는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로마쪽)(갈리아 키살피나) 중에서도 파두스 강(포 강)보다 안쪽에 위치한 갈리아(갈리아 키스파나)를 말함. 이 지역은 89년에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17)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67년의 집정관)은 당시 갈리아의 총독. 키케로는 63년에 부정축재 혐의로 고발된 그의 변호를 맡아서 성공을 거두었다.
18) nobiles의 번역.
19) 그나에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B.C. 106 ~ B.C. 48). 키케로와 동년배. 수많은 군공을 세워 하위 관직을 역임하지도 않고 단번에 집정관이 되어(70), 훗날 제일 삼두정치의 한 축을 맡았다.
20) 폼페이우스는 당시 동방원정중으로 1개 군단이라는 것은 그가 이끄는 병사들을 말함. 물론 이것은 농담조의 얘기로, 폼페이우스와 그가 이끄는 군대에 대해 선거 활동을 해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 퀸투스 카에킬리우스. 부유한 기사로, 대단히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라 전해진다.
22) 상세불명
23)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74년의 집정관으로, 72~71년에 폰토스의 왕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에서 전과를 올렸다(당시는 그에 대한 개선식을 요청하고 대기중이었다). 대부호로 호화로운 생활로도 유명하다.
24) 퀸투스 가에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52년의 집정관. 60년에 선거운동 중 매수죄로 고발당해, 키케로의 변호을 받았다.
25) 상세불명
26) 상세불명
27)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발부스. 54년의 집정관.

28) 호메로스의 일리아스22-159에서 인용. 흔하디흔한 것을 위해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는 뜻.
29)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아티쿠스가 보낸 아테나 여신의 흉상.

2014/09/03 01:25 2014/09/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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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7년 8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이전부터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 해 왔지만, 자네가 아주 정성들여 쓴 두 통의 편지에 나와 같은 생각이 담겨있는 것을 보고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네. 게다가 살루스티우스1)도 자네와 루케이우스 사이에 예전의 그 좋았던 우호 관계를 돠찾아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거듭 나를 채근한다네. 하지만 온갖 수를 써보았음에도 자네에 대한 그의 예전과 같은 호의를 되살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왜 자네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틀어져버렸는지 그 이유마저도 알아낼 수가 없었네. 분명 그는 자네가 행한 중재 건을 거듭 이유로 내세우고 있네. 또 자네가 여기 있었을 적에 그가 자네에게 분노했던 사정도 나는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의 감정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것이 있는 것 같네. 그게 무엇인지 자네가 편지를 보내거나 내가 캐묻는 것보다도 차라리 자네가 직접 이쪽으로 와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걸로 푸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물론 자네가 그렇게 하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말이지만. 그러나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네가 자네의 평소 보여 온 인격에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고 싶다면, 꼭 그리 해야한다고 생각하네. 일전에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그도 들어줄 거라고 해놓고 왜 이제 와서 자신 없는 소리를 늘어놓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그의 마음이 얼마나 더 완고해지고, 그 분노가 얼마나 더 굳어져가고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네. 하지만 자네가 와 준다면 분명 잦아들 걸세. 그렇지 않으면 (이 불화를 일으킨)책임이 있는 쪽에겐 매우 성가신 일이 되겠지.2) 내가 이미 당선되었을 것3)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네만, 지금 로마에서는 입후보자처럼 온갖 부정에 시달리는 자들도 없으며, 선거가 대체 언제쯤이나 치러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네. 이에 대해서는 필라델프스4)가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 내 아카데미아5)를 위해 입수한 것들, 가능한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네. 아카데미아를 실제로 쓸 때는 물론이거니와 다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기쁘다네. 또 자네가 모은 서적들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말게나. 약속했듯이 나를 위해 남겨두게. 나는 온통 그 서적들 생각뿐이라네. 반면 그밖에 일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네. 모든 일들이, 자네가 떠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얼마나 나빠졌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라네. 1) 그나에우스 살루스티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한 지인. 공직에 몸담았던 흔적은 없음. 2) 완곡하게 아티쿠스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 3) 이듬해인 B.C. 66년에 행해진 법무관 선거. 각 정무관직의 선거가 행해지는 날짜는 꽤 유동적이었다. 4) 아티쿠스의 노예 또는 해방노예로 추정. 5)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에 속한 김나지움의 하나.
2014/09/02 00:29 2014/09/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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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time Suhwan gives me corrections or comments for my writing, I do not copy and paste, but re-write them in my own words to demonstrate how carefully I review them. This time, however, I post his comment as it was given to me since it seems to be a special lecture into which he put a lot of effort.

<특별 부록: 정관사 용법 해설>

1. 하나밖에 없는 것에 붙인다.
    the sun, the human race

2.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말들에 붙인다.
    the seaside, the seashore, the beach (유독 바다와 관련된 말이 많아 보이지만 기분 탓이다.)

3. 특별한 경우를 집어서 말할 땐 부정관사를 대신 쓸 수 있다.
    Two aircraft are flying in the sky.
    When I woke up there was a bright blue sky. (그냥 평범한 하늘이 아니야! 그날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 창밖에는 밝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4. 단수 가산명사와 함께 써서 일반적인 대상 전체를 지칭할 수 있다.
    The computer has revolutionized publishing. (컴퓨터의 출현으로 ~)
    이러한 용법은 관사 없이 복수명사만 쓴 것과 동일하다.
    Computers have revolutionized publishing.
    복수 가산명사와 함께 써버리면 앞에 나왔던 특정한 것들을 말하는 게 된다.
    The computers have revolutionized publishing. (우리가 구매한 컴퓨터들 덕택에 ~)

5. 직함이나 유일한 직위에 대해서는 정관사를 쓰거나 관사를 생략한다.
    She's been appointed (the) head of the company.
    그러나 같은 직위가 여러 개 있으면 부정관사를 쓴다.
    She's been appointed a sales manger. (이 회사에는 판매 관리자가 여러 명 있다.)
    'the position/post/role of' 등 다음에 직함이 오면 정관사를 안 쓴다.
    Dr. Simons has taken on the position of Head of Deparment.

6. 사람을 수식하는 형용사나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 앞에 쓴다.
    the late Buddy Holly, the ambitious Caesar, the artist William Turner
    단, old, good 등 평범한(?) 형용사는 예외다.
    honest Dick

7. 형용사에 정관사를 붙이면 복수 보통명사가 된다.
    the rich = rich people
    때로는 추상명사를 만들기도 한다.
    the true = truth, the good = goodness, the beautiful = beauty

8. 휴일이나 그밖에 때를 나타내는 말에는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We met on Saturday.
    하지만 어느 한 때를 지칭하고 싶으면 붙인다.
    They arrived on the Saturday after my birthday.

9. 고유명사에는 안 붙인다.
    Seoul Station, Heathrow Airport, Hyde Park, Fifth Avenue, Barack Obama
    강, 해협, 운하, 바다, 군도, 사막, 배, 열차, 신문, 잡지, 공공건물이나 기관 이름에는 붙인다.
    the Nile, the Strait of Magellan, the Suez Canal, the Pacific, the Bahamas, the Sahara, the Mayflower, the New York Times, the Economist, the White House, the British Museum
    산맥이나 국가 이름 중 복수형인 것에는 붙인다.
    the Alps, the United States
    성씨를 복수형으로 만들고 붙이면, 어느 일가를 말하는 게 된다.
    the Smiths (스미스 씨네 일가/스미스 씨 내외)
    동명이인이 있거나해서 한 사람을  특별히 구분해서 말할 때 이름에도 정관사를 붙인다. 이 때는 자음 앞에 오더라도 '디'로 발음한다.
    -I met George Bush yesterday. -You mean the George Bush?

10. 똑같은 단어라도 관용구를 만들든지 해서 다른 의미로 쓸 때는 정관사가 빠지는 일이 흔하다.
     Who on earth would venture out in weather like this?
     go to school = 학교라는 장소에 가는 게 아니라, 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하다
     go to jail = 감옥에 물리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죄가 확정되어 수감된 죄수 신분이 되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가다'는 go to the theater

2013/04/30 03:21 2013/04/30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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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에 대하여

                                  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more..



2013/04/09 01:43 2013/04/09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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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서에서는 ‘부흥’이나 ‘쇠퇴’라는 한 단어로 정리되어버리는 시대가 실제로는 50년이나 100년에 걸쳐있기도 하다. 그렇다면 그 시간은, 그 시대를 살았던 한 인간의 생애 대부분 혹은 전부에 해당한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최고 전성기를 살았던 레오나르도 브루니는 조국에 대한 깊은 애정과 넘치는 자긍심으로 ‘피렌체 찬가’를 썼다. 그러나 그보다 딱 100년 뒤에 태어난 마키아벨리는 주변 강대국들에게 처절하게 유린당하는 이탈리아를 보면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군주론’과 ‘로마사 논고’를 지었다. 이렇게 보면 과거 수천 년 역사의 흐름을 꿰뚫는 지성인도,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라는 감옥에 갇힌 나약한 수인(囚人)에 지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역사의 흐름은 때로는 너무나도 완만하기 때문에,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의 의미와 마주하는 것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고통을 참아내면서 이 순간도 역사의 한 과정임을 이해할 때에, 비로소 이 역사적 시간에 내던져진, ‘나’라고 하는 한 개인의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해서도 깨닫게 된다. 바로 이 시대, 바로 오늘, 바로 지금, 바로 이 공간과 나의 만남이 갖는 의미를. 우리는 시대에 갇히고 지배당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대를 열 가능성으로서 잉태되어 있는 것이다. 시대는 역사적 개인이 걸어가야 할 저 떳떳한 대로(大路)를 향해서 거대한 문을 활짝 열어놓고 있다. 그 길로 들어서는 인간은 모두 죽을 것이나, 역사는 이어질 것이다.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었다. 나는 당신을 존중한다. 당신은 당신 나름의 방식으로 당신이 짊어진 사명을 수행하겠지. 60세의 당신은 이제 남은 인생을 국민을 위해 바치겠다고 말했다. 아마도 지금 27살인 나는 당신보다는 더 오래 살 것 같다. 나 역시 나의 시간, 나의 능력, 나의 육체를 이 나라와 이 민족을 위해 바치겠다. 나는 당신보다도 더, 어쩌면 다른 그 누구보다도 더 이 나라를 사랑한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것은 이 나라의 이름이 아니라, 바로 이 나라의 사람들이다. 나와 나의 세대는 당신과 당신의 세대가 만든 세상을 산다. 그러나 나의 손자손녀 세대의 사람들은 나와 내 세대가 만든 세상에서 살아갈 것이다. 그리고 불과 한 두 세기 안에 우리 모두는 다시 책에 기록된 단 한 줄의 역사 뒤로 숨게 되겠지만, 우리가 이 시대를 밝히는 데 썼던 정의로운 정신의 횃불은 다시 후배들의 손으로 건네져 언제까지나 이 땅위의 사람들 앞에 바른 길을 밝혀 줄 것이다. 잊지 말기를! 시대는 누군가로 하여금 행동하게 만들면, 누군가로 하여금 그것을 지켜보게 만들고, 당신을 대통령으로 만들었지만 동시에 나를 역사가로 만들었다는 것을!

2012/12/20 01:41 2012/12/20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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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서 쓰러지셨다. 뇌출혈이다. 건강이 급격히 쇠약해지신 이후론 간병인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요양원에서 생활 해 오고 계셨지만, 밤중에 일어난 일이어서 그 누구도 손을 쓸 도리가 없었다. 아침에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되었고 곧 병원으로 후송되었지만, 이미 머릿속에 피가 고여 있는 상태라고 한다. 연세가 많아 수술은 어렵고 약물 치료를 할 수밖에 없는데, 의식을 회복할 수 있을 거라고 얘기 해 주는 의사는 없었던 모양이다.

몇 해 전 할아버지께서 크게 앓으신 이후로는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며 점차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었기에, 이번 일은 내게 충격이라기보다는 올 것이 왔구나 하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아직은 현실감이 없기에 이렇게 담담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막상 중환자실에 의식을 잃고 누워계신 할아버지의 모습을 본다면 눈물이 날지도 모른다.

2009년 초에, 중병을 겨우 이겨내고 건강을 어느 정도 회복하신 할아버지는 손자와 함께 일본으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다고 하셨다. 그래서 나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던 그해 2월, 할아버지와 함께 일주일 동안 홋카이도에서부터 큐슈까지, 일본 열도를 종단하는 기차여행을 다녀왔다. 할아버지는 홋카이도 상공에서 눈 덮인 산하를 보는 순간부터 눈이 많이 내렸던 북녘의 자기 고향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호텔에 들어가 함께 목욕을 하고 자리에 누우면 잠들기 전까지 자신이 살아온 인생 얘기를 들려주셨다. 자신의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의 이야기를 그렇게 자세하게 들려주신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아마도 할아버지는 그때 이미 자신의 생을 정리하기 시작하며, 자기 삶의 기억 중 일부라도 손자에게 전달 해 주고 싶으셨던 게 아닌가 싶다.

나는 나대로, 그것을 할아버지와의 이별 여행으로 받아들였다. 홋카이도의 최북단 항구 마을에서 얼어붙은 오호츠크 해를 신기하게 바라보시던 할아버지. 그 쓸쓸한 바다와 할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딘가 묘하게 어울리는 것 같았고, 그래서 서글펐다. 그때 나는 어쩌면 눈물을 흘렸던 것 같기도 하다.

여행은 기어코 술을 계속 마셔야겠다는 할아버지와 맥주 한 캔 이상은 안 된다는 손자 사이의 잦은 다툼의 연속이었지만, 할아버지의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자극한 홋카이도에서부터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눈 터널을 뚫고 달리는 기차를 탔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한 니이가타 현을 지나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영향으로 일본어를 배운 손자가 대학 시절 1년을 보낸 오사카를 거쳐 무탈하게 이어졌고, 큐슈의 후쿠오카에 이르러 끝이 났다.

나는 어디에서나 밝고 자신감 있게 행동하며, 스스로에 대한 긍지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내가 화목한 가정에서 사랑을 받고 자랐고, 또 집안에 내가 존경하고 본받을 만한 어른들이 계셨던 덕분이다. 나는 할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직접 말씀 드린 적은 없지만, 아마 할아버지는 잘 알고 계실 것이다. 그래도 할아버지께서 기적적으로 의식을 회복하신다면, 그때는 할아버지의 손을 꼭 잡고 직접 말씀 드리고 싶다.

“당신께서는 제게 행복한 삶을 선물 해 주셨습니다. 제가 할아버지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결실이 될 수 있도록, 제 인생을 귀하게 여기며 살아가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안심하고 따라 걸을 수 있는 발자국

2012/06/29 02:03 2012/06/2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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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을 찬양할 줄 아는 사람은 사실 전혀 게으르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게으름’이란 뭇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가치나 기준에 초연하여서 자기중심을 확고하게 잡고 있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여유’를 일컫는다. 이런 여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지극히 성실하지만 결코 바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마라톤은 종종 공통의 목적지를 향해 모두가 우르르 달려가는 ‘경기’이다. 모든 사람이 동일한 목적지를 두고서 달리기를 하면 당연히 순위가 매겨질 수밖에 없다. 패자에게도 박수를 쳐주는 것이 올림픽 정신이기는 하지만, 금, 은, 동메달 수상자만이 시상대에 오르고, 그 중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건 선수에게만 월계관이 씌워지는 것이 또한 올림픽의 실체다. 이런 경쟁 속에 자신을 내맡겨버린 사람은 이번 마라톤에서 헉헉대며 뛰고 나서 아무런 소득이 없으면 또 다른 마라톤에 참여한다. 또 늘 숨 가쁘게 뛰어다니는 자신을 무척 성실한 사람으로 여기며, 게으름을, 정확히는 ‘게으름을 찬양하는 사람’을 몹시도 증오한다. 그리고 72등을 한 사람은 98등인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느끼면서 56등인 사람 앞에서는 열등감에 사로잡힌다.

메이저급 마라톤 대회는 매년 세계 도처에서 열리고, 올림픽도 4년에 한 번씩은 한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여기에서 순위 경쟁, 저기에서 순위 경쟁 하며 그저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골인 지점을 향해 쉼 없이 뛰는 몇 번의 마라톤을 반복하다 결국 진짜 자기 인생의 종착점에 다다랐을 때, 실제로는 단 한 번뿐이었던 그 마라톤의 성적은 누가, 어떻게 매겨준단 말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관계’에 집착하다 그것에 매몰되어 신세를 망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식에게 훌륭한 부모이고, 자기 배우자에게 훌륭한 남편이자 부인이며, 자기 부모에게 훌륭한 자식이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관계가 부모와 나, 나와 배우자, 나와 자식 간의 직접적인 소통으로서만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상 집단 속에서 자신의 등수를 확인해야만 자존감을 느끼는 불행한 마라톤 선수들은, 반드시 소박하고 직접적이어야만 하는 이런 관계들마저도 한없이 집단적인 관계로 가져가버린다. ‘훌륭한 엄마’는 ‘학교운영위원장 김 여사보다 훌륭한 엄마’가 되고, ‘훌륭한 남편’은 ‘고등학교 동창 의사 남편보다 훌륭한 남편’이 되고, ‘훌륭한 아들’은 ‘같은 반 똘똘이보다 훌륭한 아들’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비교 평가에 눈이 멀어버리면 정작 관계의 본질을 못 보게 된다.

물론 언제나 경쟁에서 앞서는 빛나는 존재는 그의 가까운 사람들의 어깨까지 으쓱거리게 만든다. 반에서 성적 1등을 하는 자식을 둔 부모는, 학부모 모임에 나갈 때 얼마나 뿌듯하겠는가? 하지만 세월이 흘러 부모가 80대가 되고 자식의 또나이가 50줄을 넘었을 때에도 그 옛날 중, 고등학생 시절 반 등수가 자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남아있을까? 물론 그 자식이 여전히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앞서나가고 있고,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부모는 그 사실을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번 설에도 아들로부터 바빠서 못 올 것 같다는 전화를 받거나, 할아버지 할머니의 이름을 한자로 적을 줄도 모르는 손자, 손녀들의 모습을 본다면, 가슴에 스미는 그 고통이 자식의 화려한 성공으로 보상될 수 있을까. 아마도 그때쯤에는 자녀가 여전히 건강하고, 인격적으로 흠결 없이 곧고, 그리고 부모를 생각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지 않을까.

다른 관계도 마찬가지다. 한 평생을 함께 산 부부에게 결국 남는 것이 무엇일까. 서로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그 사실 한 가지 아닐까. 또 자식에게 부모는, 나를 낳아주었고 길러주었고 내가 따라 걸을 수 있을만한 모범적인 족적을 남겨주었다면, 그것으로 사랑과 존경의 대상이 되기에 족한 것이다.

어려서는 몇 등짜리 자식이 되기 위해, 사랑하면서는 몇 등짜리 배우자가 되기 위해, 부모가 되어서는 몇 등짜리 부모가 되기 위해 달리기 경쟁하는 짓은 그만두자. 이런 짓을 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나뿐만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등수를 매긴다는 것이다. 서로 등수가 맞지 않는 사람들끼리 묶였다는 생각은 고통의 근원이다. 또 나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들과 나 자신, 그리고 나에게 소중한 사람들에게 등수를 매겨 비교하는 것은 열등감과 질시, 허세와 분쟁의 씨앗이다.

보라.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오직 양자일 뿐이다. 오직 둘 뿐인 관계에서 등수를 매길 수 있는가? 지금 눈앞에 있는 단 하나뿐인 소중한 사람을 졸지에 56등짜리로 만들어버리지 말자. 소중한 존재 앞에서 나는 1등이 아니라, 유일무이(唯一無二)다. 나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리는 그런 존재들은 지워버리자. 진짜 인생의 마라톤에서는, 나와 똑같은 목표를 향해 나보다 앞서서 달리고 있는 사람들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반전

2012/06/15 01:50 2012/06/1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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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明天我搬家。
ming t?an w? b?n j?a?
내일 나는 이사한다.

12. 我明天去???。
ming t?an w? qu ban q?angzheng?
나는 내일 비자 신청을 하러 간다.

13. ?我一半,行??
g?i w? yi ban, xing ma?
나에게 반을 줄 수 있나요?

14. ?的?法不?。
n? de ban f? bu cuo?
너의 방법이 좋다.

15. 我???互相?助。
w?men y?ngag?i hu x?ang b?ng zhu?
우리는 반드시 서로 도와야 한다.

16. ????我。
qing n? b?ng b?ng w??
나를 도와주세요.

17. ?求是??人最喜?的??之一。
bang qiu shi han guo ren zui x?huan de yun dong?
야구는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운동의 하나이다.

18. 我吃的包。
w? ch? de b?o?
배 부르게 먹었다.

19. ??少女孩?在抱着一??娃娃。
zheu ge sh?o nuhaier baozhe y? ge yang wa wa?
이 어린 소녀는 인형을 안고 있다.

20. ??在看??。
baba zai kan bao zh??
아버지는 지금 신문을 보고 계신다.

2012/02/23 00:43 2012/02/23 00: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