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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5717일 조금 전,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내년에 있을)나의 선거1)에 대해서는 자네도 큰 관심을 가지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만, 지금까지의 상황을 바탕으로 예측해보자면 전망은 대충 이러하네. 벌써부터 선거 활동에 매진하고 있는 것은 푸블리우스 갈바2)뿐이지만, 시민들은 우리에게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그 지극히 솔직한 태도로 그에 대한 거부감을 드러내고 있다네. 푸블리우스의 이런 성급한 선거 활동은 우리 쪽에도 나쁠 것이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지. 그도 그럴 것이, 푸블리우스를 지지하지 않는 이유도 나에 대한 의리 때문이라고 사람들은 말하고 있거든. 이처럼 나를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많다는 소문이 널리 퍼져나가면, 점차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일이 전개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다네.

그렇다면 나는 대체 언제쯤 선거 운동을 언제 개시하면 좋을까가 문제이네만, 킨키우스가 자네쪽 소년이 이 편지를 가지고서 다시 자네에게로 돌아가기 위해 출발할 거라고 알려준 날, 그러니까 곧 마루스 평원에서 호민관 선거가 치러지는 717일부터 시작할까 생각하고 있네. 함께 입후보하는 이들은, 현재까지 확실한 건 갈바와 안토니우스3), 그리고 퀸투스 코르니피키우스야. 마지막 이름을 보고는 웃거나 혹은 탄식을 내뱉었겠지. 거기에 자네가 벽에다가 이마라도 박고 싶어지도록 한 사람 더 추가하자면, 카에소니우스5)마저 입후보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어. 아퀼리우스는 출마하지 않을 것 같네6). 그가 출마를 부정했고, 신병이 있다고 선언한데다가, 법정에서 자신이 쌓아올린 왕국을 출마를 사양하는 이유로 들고 있네. 카테리나7)에 대해서는 심판인들이 대낮에 해가 진다는 따위의 판결을 하지 않는 한, 출마는 무리겠지8). 아우피디우스와 팔리카누스에 대해서는 일부러 쓸 필요도 없어. 현재 (올해 치러질 선거에)입후보 한 사람들10) , 카이사르11)의 당선은 확실하다고 생각되네. 또 한 자리를 놓고 다투는 것은 텔무스와 실라누스12)일 거라고 보여지네. 하지만, 그들은 인맥이 빈곤하고 세간의 평가도 너무 낮아서, 툴리우스13)가 급부상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고 생각하네만, 이건 나만의 생각일세. 내 계산으로는, 텔무스가 카이사르와 함께 당선되는 것이 가장 상황이 좋다고 생각되네. 왜냐하면, 만약 내가 입후보하게 될 해에 함께 겨루게 된다면, 지금 입후보 해 있는 사람들 중에는 텔무스가 가장 강력한 입후보자가 될 거라 여겨지기 때문이지. 그는 플라미니우스 가도14) 정비의 감독관을 맡고 있지만, 이 사업은 내가 선거에 출마할 즈음이면 여유롭게 마무리 지어지겠지15). 그러니까 나로서는 그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카이사르와 함께 집정관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있네. 이정도가 입후보자들에 대해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들이네. 그리고 아마도 선거에서는 갈리아16)가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쪽의 법정(法庭) 일이 좀 잠잠해지면 9월에 피소의 부관으로서 그가 있는 갈리아로 재빨리 넘어갔다가17) 1월쯤에 돌아올까 생각중이네. 명사들18)의 의향이 어떤지 대충 파악이 되면 알려줌세. 적어도 시() 안의 경쟁 상대들만 놓고 본다면, 뒷일은 순조롭게 풀릴 거라고 보고 있네. 그렇지만 그 군단(軍團)만큼은 자네가 훨씬 더 가까이에 있으니까, 자네가 좀 맡아줬으면 좋겠네. 즉 우리들의 친구 폼페이우스19)가 이끄는 그 일개 군단 말일세20). 설령 선거에서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고 해도 내가 너무 섭섭해 하지는 않을 거라고 전해주게.

선거에 대한 이야기는 이정도로 하고, 실은 자네에게 한 가지 양해를 구하고 싶은 일이 있네. 자네의 백부인 카에킬리우스21), 푸블리우스 바리우스22)에게 큰돈을 사기 당했네. 그래서 백부께서는 바리우스에게 속아서 떠안은 물건을 두고 바리우스의 형제인 카니니우스 사툴루스와 다툼을 시작했지. 다른 채권자들까지 여기에 가세했는데, 그 중에는 루쿨루스23)와 푸불리우스 스키피오24), 루키우스 폰티우스25)도 있네. 특히 루키우스 폰티우스는 만약 재산 압류가 발생할 경우 그 재산에 대한 법정 관리인으로 세우려는 것 같네만,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 좀 도가 지나친 것 같네. 어쨌든 여기서 좀 문제가 생겼다네. 자네 백부님께서는 나에게 사툴루스26)를 고소하는 편에 서 달라고 부탁을 하셨네. 그렇지만 사툴루스는 단 하루도 내 집을 방문하지 않는 날이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나와 가까운 사람이라네. 사툴루스는 항상 루키우스 도미티우스27) 다음으로 나를 가장 존경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지. 나 자신이나 동생 퀸투스가 입후보했을 때에는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기도 했네.

사툴루스 본인과의 이런 친밀한 관계 때문만이 아니라, 도미티우스와의 관계도 있어서 나로서는 정말 곤혹스럽기 짝이 없는 상황일세. 나의 당선의 열쇠는 도미티우스가 쥐고 있네. 나는 이런 상황을 자네 백부님께 잘 설명 드렸지. 그리고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하였다네. “만약 백부님과 사툴루스, 두 사람만의 문제였다면 저는 지체 없이 백부님의 요청에 응하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채권자들이 공동으로 소송을 제기하고 있고, 게다가 그 채권자들은 하나같이 매우 부유하여서 굳이 백부님께서 전면에 나서서 사람을 세워주지 않아도 모두들 소송을 이끌어 나가기에는 어려움이 없는 상황이니, 당신께서도 저의 체면과 현재 제가 처해있는 상황을 좀 배려 해 주실 수 있지 않겠습니까.”라고. 하지만 백부님께서는 내 말을 기대했던 것처럼은-그리고 신사에 어울리는 태토로는- 받아들여주시지는 않는 모양이야. 최근 며칠 꽤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네만, 내가 그러한 대답을 드린 후로는 딱 연락이 끊기고 말았네.

이러한 상황을 부디 잘 헤아려주게. 그리고 친구가 이처럼 심각한 괴로움에 처해있을 때, 나로서는 그 친구를 고소하는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 따름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 사툴루스는 나를 위해 크게 힘을 써줬고, 봉사 해 준 사람이니까. 좀 냉정한 시선으로 보자면, 내가 앞으로 있을 선거 활동을 위해 백부님의 요청을 거절했다고 생각될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설령 그 말 대로라 하더라도 내 입장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왜냐하면 소의 가죽이나 산짐승을 얻고자 한 일은 아니니까28). 내가 어떤 경기에 출장하고 있는지, 지금까지 내가 얻은 지지를 조금도 잃지 않으면서 새로운 지지층을 확보하기 위해서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지, 자네는 잘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네. 이 정도면 자네도 내 생각을 충분히 납득 해 줬으리라 믿어. 정말로 그랬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바라고 있네. 자네가 보내준 헤르마테나29), 정말로 기쁘다네. 배치가 너무 훌륭해서 김나시움 전체가 마치 그녀에게 바쳐진 공물같이 느껴질 정도야. 정말로 고맙네.

 

1) 63년도의 집정관 선거
2) 푸블리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65년 이전에 법무관을 역임했다.
3) 가이우스 안토니우스 휴블리다. 키케로와 함께 63년도 집정관에 당선되었다. 후에 속주 마케도니아의 총독으로 재직하던 중 부정축재로 고발되어 키케로의 변호를 받았지만 유죄가 선고되었다.
4) 퀸투스 코르피키우스. 67년 혹은 66년의 법무관.
5) 마루쿠스 카에소니우스. 69년에 키케로와 함께 조영관으로 근무했다. 65년 이전(키케로와 같은 해인 66?)에 법무관을 지냈다.
6) 코르피키우스 이하의 3인은 신분이나 경력으로 봐서는 특별히 열위에 있는 인물들은 아니지만, 키케로는 집정관으로서는 역부족으로 판단하고 있다. 가이우스 마퀼리우스 갈루스는 키케로의 친구로, 66년에 키케로와 함께 범무관을 지냈다.
7) 루키우스 세르기우스 카테리나. 63년에 국가전복의 음모를 획책하였지만 키케로에게 발각되어 사형.
8) 그는 속주 아프리카에서 부정축재의 죄로 고발당했다.
9) 역시 집정관이 되기에는 격이 떨어진다는 의미. 티투스 아우피디우스는 출신이 미천했지만 법무관(67?)으로까지 출세하였고, 아시아 속주의 총독으로서도 훌륭한 실적을 쌓았다. 마르쿠스 롤리우스 팔리카누스도, 피케눔의 미천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역시 법무관(68년 이전)까지 역임했다.
10) 다음 해(64)의 집정관. 실제 당선된 것은 A2의 시작 부분에 나와있듯 카이사르와 피글루스.
11) 유명한 카이사르가 아니라, 그의 먼 친척인 루키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12) 미누키우스 텔무스는 66년 이전에 법무관을 지낸 인물로, 집정관에 당선된 피글루스의 별명일 가능성도 있다. 데키무스 유니우스 실라누스는 62년의 집정관 선거에서 당선.
13) 루키우스 툴리우스. 75년의 범무관?
14) 로마에서 북쪽으로 뻗어있는 가도.
15) 가도정비의 공적이 선거전에서 강력한 순풍이 될 거라는 의미.
16) 여기서 말하는 갈리아는 알프스 이남의 갈리아(로마쪽)(갈리아 키살피나) 중에서도 파두스 강(포 강)보다 안쪽에 위치한 갈리아(갈리아 키스파나)를 말함. 이 지역은 89년에 로마 시민권을 획득하였기 때문에 선거권을 가지고 있었다.
17) 가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67년의 집정관)은 당시 갈리아의 총독. 키케로는 63년에 부정축재 혐의로 고발된 그의 변호를 맡아서 성공을 거두었다.
18) nobiles의 번역.
19) 그나에우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B.C. 106 ~ B.C. 48). 키케로와 동년배. 수많은 군공을 세워 하위 관직을 역임하지도 않고 단번에 집정관이 되어(70), 훗날 제일 삼두정치의 한 축을 맡았다.
20) 폼페이우스는 당시 동방원정중으로 1개 군단이라는 것은 그가 이끄는 병사들을 말함. 물론 이것은 농담조의 얘기로, 폼페이우스와 그가 이끄는 군대에 대해 선거 활동을 해 달라고 진지하게 부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21) 퀸투스 카에킬리우스. 부유한 기사로, 대단히 까다로운 성격의 소유자라 전해진다.
22) 상세불명
23) 루키우스 리키니우스 루쿨루스. 74년의 집정관으로, 72~71년에 폰토스의 왕 미트라다테스 6세와의 전쟁에서 전과를 올렸다(당시는 그에 대한 개선식을 요청하고 대기중이었다). 대부호로 호화로운 생활로도 유명하다.
24) 퀸투스 가에킬리우스 메텔루스 피우스 스키피오 나시카. 52년의 집정관. 60년에 선거운동 중 매수죄로 고발당해, 키케로의 변호을 받았다.
25) 상세불명
26) 상세불명
27) 루키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발부스. 54년의 집정관.

28) 호메로스의 일리아스22-159에서 인용. 흔하디흔한 것을 위해서 다투는 것이 아니라는 뜻.
29)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아티쿠스가 보낸 아테나 여신의 흉상.

2014/09/03 01:25 2014/09/03 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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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7년 8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이전부터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 해 왔지만, 자네가 아주 정성들여 쓴 두 통의 편지에 나와 같은 생각이 담겨있는 것을 보고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네. 게다가 살루스티우스1)도 자네와 루케이우스 사이에 예전의 그 좋았던 우호 관계를 돠찾아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거듭 나를 채근한다네. 하지만 온갖 수를 써보았음에도 자네에 대한 그의 예전과 같은 호의를 되살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왜 자네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틀어져버렸는지 그 이유마저도 알아낼 수가 없었네. 분명 그는 자네가 행한 중재 건을 거듭 이유로 내세우고 있네. 또 자네가 여기 있었을 적에 그가 자네에게 분노했던 사정도 나는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의 감정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것이 있는 것 같네. 그게 무엇인지 자네가 편지를 보내거나 내가 캐묻는 것보다도 차라리 자네가 직접 이쪽으로 와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걸로 푸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물론 자네가 그렇게 하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말이지만. 그러나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네가 자네의 평소 보여 온 인격에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고 싶다면, 꼭 그리 해야한다고 생각하네. 일전에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그도 들어줄 거라고 해놓고 왜 이제 와서 자신 없는 소리를 늘어놓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그의 마음이 얼마나 더 완고해지고, 그 분노가 얼마나 더 굳어져가고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네. 하지만 자네가 와 준다면 분명 잦아들 걸세. 그렇지 않으면 (이 불화를 일으킨)책임이 있는 쪽에겐 매우 성가신 일이 되겠지.2) 내가 이미 당선되었을 것3)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네만, 지금 로마에서는 입후보자처럼 온갖 부정에 시달리는 자들도 없으며, 선거가 대체 언제쯤이나 치러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네. 이에 대해서는 필라델프스4)가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 내 아카데미아5)를 위해 입수한 것들, 가능한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네. 아카데미아를 실제로 쓸 때는 물론이거니와 다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기쁘다네. 또 자네가 모은 서적들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말게나. 약속했듯이 나를 위해 남겨두게. 나는 온통 그 서적들 생각뿐이라네. 반면 그밖에 일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네. 모든 일들이, 자네가 떠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얼마나 나빠졌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라네. 1) 그나에우스 살루스티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한 지인. 공직에 몸담았던 흔적은 없음. 2) 완곡하게 아티쿠스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 3) 이듬해인 B.C. 66년에 행해진 법무관 선거. 각 정무관직의 선거가 행해지는 날짜는 꽤 유동적이었다. 4) 아티쿠스의 노예 또는 해방노예로 추정. 5)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에 속한 김나지움의 하나.
2014/09/02 00:29 2014/09/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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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8년 11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사촌 동생 루키우스1)의 죽음으로 나는 비통에 빠져있네. 그 아이의 죽음은 개인에게 뿐만 아니라 공적으로도 얼마나 큰 손실이란 말인가! 나를 잘 아는 자네라면 지금 내 기분을 헤아려줄 수 있겠지. 타인의 훌륭한 성격이나 삶의 방식을 바라볼 때에 느끼는 흐뭇함을 나는 오롯이 그 아이를 보면서 누릴 수 있었다네. 자네도 가슴 아파 할 것이라 생각하네. 내가 슬픔에 젖어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네 역시 모든 미덕을 두루 갖추고 진정으로 헌신적이었으며, 또 내 말에 따라 자네를 마음속으로부터 경애하던 친척2)이자 친구를 잃은 상실감을 느낄 테니.

자네의 여동생3) 얘기를 써줬으니 말이지만, 동생 퀸투스4)의 마음을 고쳐먹게 하려고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아마 누구보다도 자네 여동생이 잘 증언 해 줄 거라 생각하네. 동생이 약간 자네 여동생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내가 동생에게 편지를 보내 형으로서 달래기도 하고, 연장자로서 충고도 해보고, 잘못된 태도에 대해서는 질책도 했지. 그 이후 동생도 나에게 자주 편지를 써 보내는데, 편지의 내용으로 판단하건데 모든 게 올바른 방향으로, 우리들이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네.5)

편지가 뜸하다고 나를 책망하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네. 폼포니아는 편지를 부탁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을 알려주지도 않고, 나도 에페이로스로 가는 사람을 찾을 수가 없네. 게다가 자네가 아테네에 도착했다는 소식도 아직 들리지 않고 말이야.

하지만 아쿠틸리우스 건6)에 대해서는 자네가 출발하고, 내가 로마로 돌아온 직후에 자네 지시대로 일을 처리 해 두었네. 다만 일이 긴급을 다투는 사안도 아니었고, 자네도 충분히 결단력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보다도 페두카에우스7)가 자네에게 편지로 조언을 주는 쪽이 좋다고 생각했을 뿐이네. 대체 며칠씩이나 아쿠틸리우스의 불평불만에 귀를 기울여준 나인데-그가 말을 늘어놓을 때 어떠한가는 자네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네만-자네에게 그 불평들을 전달하는 게 세삼 귀찮을 리가 있겠나. 그의 불만을 들어주는 게 조금 짜증나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괴롭거나 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편지가 적다고 나를 책망하는 자네야 말로 겨우 편지 한 통 보낸 게 다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자네가 나보다 편지를 쓸 여유도 있고, 편지를 맡길 인편도 쉽게 찾을 수 있을 텐데.

그건 그렇고, 아무개씨8)가 자네에게 좀 섭섭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건 내가 풀어줘야 한다고 쓴 거 말이네. 자네가 말하는 아무개씨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는 잘 알고 있고, 그 일을 그냥 모르는 척 하고 있는 것도 아니네. 하지만 그자는 뭔가 아주 이상한 생각에 사로잡혀있어. 나로서는 자네와 관련해서 그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해줬네. 하지만 앞으로 얼마나 더 세게 나가야 할지는, 자네 결심에 달린 일이지. 그러니 자네가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걸 자세히 얘기 해 주게. 그러면 지금까지 내가 이 일을 그냥 방치할 마음도 없었거니와 앞으로도 자네의 기대를 저버릴 생각도 없다는 걸 내 몸소 증명 해 보일 테니.

타디우스 건9)에 대해서 말인데, 내가 그와 얘기 나눠본 바로는 자네가 그에게 그 땅은 사용취득에 의해 취득한 것이니까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써 보냈다던데. 하지만 그의 딸은 법적 후견을 받고 있네. 그런 사람의 재산에 대해서는 사용취득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자네가 몰랐다니 놀랍군.

에페이로스에서 땅을 산 것에 만족하고 있다니 기쁘군. 또 자네도 써 보내줬듯이 내가 일전에 부탁한 투스쿨룸의 별장에 어룰릴만한 것을, 자네가 너무 번거롭지 않은 범위 안에서 구해줬으면 좋겠네.10) 내가 온갖 번잡스러움과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여유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은 그곳뿐이니까.

요즘은 매일 같이 동생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네. 테렌티아11)는 관절통이 심해. 테렌티아가 자네와 여동생, 그리고 어머님을 얼마나 마음속 깊이 아끼는지는 잘 알걸세. 자네에게 안부를 전해달라는군. 귀여운 툴리오라12)도. 모쪼록 건강하게. 나에 대한 애정을 잃지 말기를 그리고 나 역시 자네를 형제처럼 아끼고 있다는 것을 항상 기억 해 주게.


1) 루키우스 툴리우스 키케로. 키케로 작은 아버지의 아들. 젊은 시절 키케로 형재와 함께 아테네에 유학하였음.
2)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가 아티쿠스의 여동생 폼포니아와 결혼하여 성립한 인척 관계를 말함.
3) 뒤에 언급되는 폼포니아. 키케로의 동생 퀸투스의 처.
4) 퀸투스 툴리우스 키케로(B.C. 103-43). B.C. 65년에 평민조영관, 62년에 법무관, 61년부터 59년까지 아시아 속주의 총독을 역임.
5) 두 사람의 혼인은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사이를 긴밀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으나, 정작 두 사람의 부부사이는 나빠서 결국 B.C. 44년 무렵에 이혼하였다.
6) 상세 불명
7) 섹투스 페두카에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구.
8) 67년도 법무관이었던 키케로의 친구 루키우스 루케이우스. 아티쿠스와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불명.
9) 난해한 부분으로 어떤 내용인지 파악하기 곤란함.
10) 투스쿨룸의 별장을 장식할 미술품을 아티쿠스에게 알아봐 달라고 의뢰한 일.
11) 키케로의 처. 부유한 명문가 출신. 강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음.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으나 46년 경 키케로와 이혼한 후에도 두 명의 남자와 결혼하였고, 103세까지 살았다고 전해짐.
12) 키케로의 딸 툴리아(B.C.77-45)의 애칭.

2012/02/08 01:45 2012/02/08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