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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편 '국법의 귀함(貴き)을 논함'과 제7편 '국민의 직분을 논함'은 이어지는 하나의 논설로써, 주로 국민과 정부의 관계, 국민과 정부 각자의 역할에 대해서 논의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민'이 어째서 '국법'을 존중하고 따라야하는지를 역설하고 있다.    

우선 제6편에서는 "죄인을 벌하는 것"(P.56), 즉 '사법(司法)‘의 권한은 오직 “정부에 한정된 권”(p.56)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정부가 이처럼 사법권을 독점하는 까닭은, “한 사람의 힘으로 다세(多勢)의 나쁜 사람들을 상대로 삼아서, 그를 막으려 하더라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p.54)라는 사정에 말미암아 국민들이 자신들의 명대(名代, 대리인)로서 정부(政府)를 세워 “착한 사람을 보호하는 직분”(p.54)을 위임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부는 “국민의 총명대”로서 일을 하는 것이므로, “정부가 하는 일은 곧 국민이 하는 일”(p.54)이기 때문에, 국법을 따라는 것은 곧 “스스로 만든 법에 따르는 것”(p.55)이다.    

후쿠자와가 가장 통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것은, 이러한 정부와 국민의 약속을 무시하고 개인이 사사로이 죄인을 벌하는 사재(私裁) 행위다. 현대 사회에서도 공권력에 의한 정당한 법의 집행이 아닌, 이른바 타인에 대한 사적제재(私的制裁)는 엄중한 심판의 대상이다. 제7편에서 후쿠자와는 “정부의 정사에 관계없는 자는 결코 그 일을 평의해서는 안 된다.”(p.65)라고 말하고 있는데, 얼핏 모든 법리적인 판단의 권한은 정부에게 있으므로, 국민들은 그저 그 결정에 묵묵히 따라야한다는 권위적인 해석으로도 비칠 수 있으나, 후쿠자와가 진정으로 비판하고자 하는 대상은 사사로이 시비를 판결하고, 그에 대한 무분별한 처벌을 자행하더라도 이것을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는커녕, 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칭송해 마지않는 일본 사회의 전통이 아닌가 싶다.    

후쿠자와는 적토(敵討)나 천주(天誅)를 비판한다. 적을 토벌하는 것이나, 하늘이 벌을 주는 것은 말만 들어서는 어느 것이나 정당한 것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국민의 총대리인인 정부가 ‘공무(公務)’로서 집행하는 형벌이 아니라면, 그것은 사회에 극심한 해악을 기치는 ‘암살(暗殺)’ 행위에 불과하다. 저마다의 사적인 이유로 사람을 죽여 놓고서, 그 명분을 공의(公義)에 가탁하는 것이 용인된다면, 사회의 질서는 확보될 길이 없다.    

그러므로 후쿠자와에게 사법행형의 분한은 정부에게 위임하고, 국민들은 “운죠오(세금)를 지불하고 정부의 보호를 사는 것”(p.68)이, 안정된 사회를 구축하는 현실적이고도 올바른 방법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정부도 자기 분한을 지키지 못 하고 폭정(暴政)을 행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p.68) 그와 같은 경우에 국민들은 이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사법의 정의를 오직 정부에게 일임한 이상에는, 정부가 공권력을 정당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이것을 견제하는 역할이 반드시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서는 ‘민주주의’라는 체제 하에서 ‘선거’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국민들이 정부에 대한 견제를 할 수 있으나, 후쿠자와는 분명 여기에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 하고 있는 듯하다. 리(理)를 져버린 정부의 명령에 그대로 따르는 것도 신념에 어긋나고, 그렇다고 정부에 무력으로 들이받는 것도 지금까지 주장해 온 바와 배치된다. 결국 후쿠자와가 제시한 마지막 길은 숭고한 죽음, 즉 순사(殉死)다. 사적인 제재는 그르고 공적인 사법행형은 정당한 것처럼, 자기 주인을 위한 사사로운 죽음은 어리석고 무가치하며, 국민이 곧 객(客)인 동시에 주인(主人)인 정부에 다가가 “인민의 권의를 주장하고 정리를 주창”(p.74)하며 목숨을 버리는  ‘마루티르돔(순교, 순사)’은 “천만 명을 죽이고 천만 량을 허비하는 내란의 군사보다도 훨씬 더 낫다.”(p.72)라는 것이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노동법이, 1970년 자기 한 몸을 불사른 전태일이라는 개인에 빚지고 있는 부분이 적지 않은 것을 상기하면 후쿠자와의 논설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되지만, ‘마르티르돔’ 운운한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자면 사회의 불의를 일일이 광정(匡正)하기 위해서는 대체 얼마나 많은 순교자들의 목숨이 필요할 것인가.

2016/10/08 12:38 2016/10/0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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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권유(學問のすゝめ). 짐짓 점잔을 뺀 듯 근엄함마저 느껴지는 제목이지만, 그 의미는 결국 공부 좀 하라라는 것이 아닌가. 지난 2015년에 개봉한 영화 사도에서 극중 인물 영조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읊은 이 나라는 공부가 국시(國是)”라는 대사 한 마디가 여전히 관객들의 가슴에 묵직한 공명을 일으켰던 우리나라의 현실을 상기해보면, “공부 좀 하라라는 타이름은 어쩌면 한국의 청년들에겐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자주 들어온 잔소리이지 않을까.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 누군가에게 공부 좀 하라라고 당당히 외칠 수 있을 만큼 자신만만했던 한 일본인 학자에 따르면, 당시 일본 전체의 인구 중 160명에 한 명 꼴로 자신의 이 근엄한 잔소리를 자청해서 들었다고 한다.공부를 해야 한다.”라는 충고가 마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라는 말처럼 너무나도 당연하고 또 진부해서 별다른 신선함을 느끼게 하지 못 하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제법 충격적인 이야기다. 필시 당시의 일본 국민들과 후쿠자와 유키치(福沢諭吉)의 사이에는, ‘학문권장하는 일갈이 마치 새 시대의 도래를 상징하는 세찬 조류(潮流)처럼 가슴 속으로 밀려들어가게 만든 시대적인 맥락이 존재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 맥락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학문의 권유라는 책의 안과 밖, 모두에서 찾아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선 학문의 권유의라는 제목은, 그 자체로 여러 가지 질문 거리를 떠올리게 한다. 첫 번째로, 후쿠자와 유키치가 권장하는 학문(學問)’이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는 것이다. 단순히 널리 배우고(博學) 깊이 질문하는(審問) 삶의 자세를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특정한 분야의 지식을 축적하는 것을 말하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그것은 중국에서 전래된 유학(儒學)인가, 혹은 일본 고유의 국학(國學)인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어떤 학문인가? 후쿠자와 유키치는 학문의 대상을 인간 보통 일용에 가까운 실학(實學)’이라고 못 박았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읽고 쓰고 셈하는 것과, 지리학구리학(究理學)역사학경제학수신학이다. 그런데 이들 학문을 하는데, 어느 것이나 서양(西洋)의 번역서를 조사해야 한다고 하였으니, 각 분야의 제목은 한자로 적혀있으나 그 내용은 서양의 학문을 의미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후쿠자와 유키치가 말하는 진정한 학문이요, 한학(漢學)과 같은 전통의 학문은 일용에서 멀어진 우활(迂闊)한 것들이니, “우선은 다음으로 미루어두어야 할 것들이다.

두 번째는 과연 학문을 누구에게 권유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후쿠자와 유키치는 하늘은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고, 사람 밑에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라는 감동적인 문구로써 학문의 권유의 초편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실학(實學)사람 된 자는 귀천과 상하의 구별 없이 모두 다 지녀야 할 마음가짐이라고 하며, 신분에 관계없이 모두가 배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 글의 내용에 따르면 학문 권장의 대상(바꿔 할하면 학문을 수행해야 할 주체)은 모든 인민(人民)이다. 그런데 이 글이 본래는 후쿠자와 유키치가 자신의 고향인 나카츠(현재 오이타현[大分県] 나카츠시[中津市])에 개교한 학교의 학생들과 교원들에게 읽히기 위해서 메이지 412(18721~2)에 쓴 글이라는 점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학문의 주체를 단지 일부의 지배계층으로 한정하지 않고 국민 전체로 외연을 넓힌 것은, 불과 50년 전인 분세이(文政) 8(1825) 아이자와 세이시사이(会沢正志斎)가 자신의 대표작인 신론(新論)에서 백성들로 하여금 따르게 해야지, 알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교하면 혁명에 가까운 생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결국 사농공상 각자가 그 직분을 다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여전히 사람에게는 저마다에게 주어진 역할이 따로 있고, 그 역할에 따라 분수에 맞게끔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하늘이 사람 위에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지만, 메이지 시대의 일본은 배워서 그 직을 능히 수행할 수 있는 자가 아니라,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하는 나라가 아니었던가. 과연 후쿠자와 유키치는, 누구나 실용의 학문만 익히면 신분의 고하(高下) 없이 평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호소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세상에 무지문맹한 백성만큼 가련하고 또 미워할 만한 사람”(p.12)이 없으니, “정부는 그 정사를 베풀기를 쉽게하는 통치의 편의와 국가의 부강을 위해서는 백성들을 적당히깨우칠 필요가 있다는 것인가?

마지막 질문은, 저자가 생각하는 학문, 저자가 상정한 대상에게 권유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하면, 후쿠자와 유키치는 왜 이 책을 썼는가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가 권하는 학문도, 호로지 그 한 가지 일로써 취지로 삼고”(p.14)있는 그 한 가지는 바로 전국의 대평(大平)을 지키려고 하는 것”(p.14)이라고 명백하게 밝히고 있지만, 그렇다면 당시 일본은, 국민이 무지한 까닭으로 대평을 상실하였단 말인가? 후쿠자와 유키치가 주장하는 실용의 학문을 국민들이 익히기만 하면, 국가의 부강과 어진 정치가 실현되고, 대평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일까? 그의 웅변은 자못 심금을 울리지만, 그의 주장과 그것을 뒷받침하는 논리는 앞으로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2016/10/04 08:10 2016/10/04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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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카이사르 : 제국을 만든 남자



대상이 살아있는 사람이든 이미 죽은 사람이든, 작가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에 대해 글을 쓴다면 그 이유는 대개 다음의 두 가지 중 하나이다. 그 사람을 사랑하든가 혹은 증오하든가. 물론 사회가 어린이들에게 습득시키고자 하는 구태의연한 도덕률이 위인들의 업적에 뻔뻔스럽게 덧칠되어있는 고리타분한 위인전 시리즈는 예외이겠지만.

다소 지루하게 쓰인 학술적 역사서라 하더라도 그 안에는 그 시대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담겨있기 마련이다(혹은 억눌러져있으나 서슬 퍼런 울분이 담겨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만일 글의 행간에서 단지 활자화된 것 이상의 것을 아무 것도 읽어낼 수가 없다면, 다시 말해 감정에 호소 해 오는 목소리가 없다면 그 글은 숱한 학생들이 억지로 써 내야만 했던 대학 과제물과 다를 바 없는 ‘죽은 글’이다.

저자가 까닭도 없이 고른 시대와 인물에 대해 그저 사실만 나열해 놓은 그런 무미건조한 책을 읽는 것은 시간의 낭비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책의 서두에 너무나도 당당하게 “어느 한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한 시각에서 서술하기 위해 노력했다”라는 식의 글을 써놓은 것을 보면 더 이상 책장을 넘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우리가 어느 한 시대나 한 인물에 대해 평생 한 권의 책만 읽을 수 있다면 모든 가치 판단은 독자에게 맡겨버린 채 저울처럼 공평하게 서술 된 책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격렬한 애정이야말로 모든 위대한 문학의 어머니요, 끓어오르는 울분이야말로 모든 위대한 역사서의 토대다. 우리는 작가와 서술의 대상 사이의 애증의 관계 속으로 헤집고 들어가 우리의 위치를 정할 필요가 있다. 단지 지식을 얻는 것만이 아니라 역시 사랑하고 분노하는 것, 그것이 곧 독서의 가치이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그는 살아있었을 적에나 죽은 지 2000년도 더 지난 지금에나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증오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다만 민주주의 이념이 보편화되어버린 지금에는 카이사르의 결점을 지탄할 만한 뚜렷한 동기가 없어졌기 때문인지(오히려 독재자를 그리워하는 경향마저 눈에 띈다), 현대의 카이사르는 리더십을 칭송 받는 역사적 영웅으로서, 매끄럽지만 다소 밋밋한 캐릭터가 되어버린 감이 있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현대적 재해석에는 언제나 논란의 여지가 있다. 우리가 카이사르로부터 무얼 배워야하는지, 그의 일대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행위는,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이야기를 마치 성경속의 우화처럼 느껴지게끔 한다. 그러나 카이사르는 우화 속의 인물이 아니라 실존한 인물이다. 그가 제국을 이룬 업적은 일개 기업의 성공 스토리와 비교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의 관용과 응징은 부하 직원의 실수를 용서하느냐 마느냐하는 가벼운 문제와는 차원이 다르다. 카이사르는 자신의 관용에 배신으로 응수한 부족에 대하여, 전 부족민의 팔을 잘라버리는 것으로 응징했다. 카이사르의 도박은 전 재산을 거는 것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그는 개인의 멸망과 조국의 파멸을 저울질 했다. 그리고는 자신 한 사람의 파멸 대신 로마 전역을 로마 시민과 원로원의 피로 물들이는 쪽을 선택했다.

카이사르의 이런 생생한 이야기 속으로 우리를 안내해 줄 안내자들은 사실 너무 많다. 우선 카이사르 자신이 『갈리아 전기』와 『내전기』라는 너무나도 훌륭한 안내서를 남겼다. 그러나 이 두 권의 책은 카이사르가 당대의 로마인들에게 읽힐 목적으로 쓴 것이기 때문에, 로마의 역사와 전쟁 이전, 이후에 얽힌 카이사르의 행적을 제대로 알지 못 하는 오늘날의 상당수 독자들에게는 입문서로 적절치 않다.

필립 프리먼의 『카이사르 : 제국을 만든 남자』는 카이사르가 태어난 시점부터 그가 죽을 때까지 약 56년간의 이야기를 속도감 있게 펼쳐 보이는데, 카이사르 개인의 행적뿐만 아니라 말기에 접어든 공화국 로마의 전반적인 역사도 함께 개괄 해 나간다. 서술은 다소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카이사르라는 인물의 생애가 워낙 흥미진진하기 때문에 그 점은 보상 받고 있다.

저자는 자신의 라틴어 수업 시간에 지루해하는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기 위해 종종 카이사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은 “이 뛰어난 인물과 그가 살았던 세계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하는 이들에게 카이사르의 삶과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열망에서 이 책을 집필하였노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한 구석에는 “카이사르를 지나치게 칭송하고 싶지도 않거니와 역사상 수많은 독재자들 사이에 묻어버리고 싶지도 않다”고 못 밖아 놓기도 했다. 이런 작가의 정신상태 때문인지, 그의 저작 속 카이사르는 다소 변덕쟁이로 비춰지기도 한다. 그의 목에 칼을 들이 댄 정적들까지 용서하고 요직에 앉힌 ‘관대한 카이사르’와 죽은 사람을 깎아내리기 위해 3류 타블로이드 지처럼 온갖 유언비어와 원색적 비난으로 가득 찬 책을 출판한 ‘비겁한 카이사르’는 어쩐지 동일 인물처럼 여겨지지 않기까지 한다. 저자는 카이사르의 이런 행위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그리 심각하지 않은 태도로 ‘이것은 관용, 저것은 실수’라는 식으로 해석하고 넘어간다.

이 책은 명료하며 이해하기 쉽다. 혼란스러웠던 당시 로마의 역사에 대한 개괄적인 지식을 얻기에 적절하다. 더불어 서술의 저변에는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호의가 깔려있다. 비록 저자 자신은 최대한 객관적인 입장을 견지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전문적인 역사 연구가도 아닌 고전 언어학자가 자기의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게 때때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도 모자라 책까지 펼쳐냈을 정도라면, 카이사르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의심할 수는 없으리라. 다만 이 러브 스토리는 다소 미적지근하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암살당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도 가슴 속에 열광적인 무언가가 끓어오르지는 않는다. 카이사르와 함께 그토록 바쁜 여정을 달려왔는데, 그 여정이 끝났을 때에 조금도 숨이 가쁘지 않다면, 역사의 오락적 측면을 달성하는 데에는 성공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나 혹은 전쟁보다도 더 치열했던 정치전에 대한 묘사도 다소 긴장감이 떨어진다. 그것은 구태여 과장은 하지 않겠다는 저자의 자제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디테일을 많이 생략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 얇지는 않더라도 한 권의 책에 한 인물의 생애를 통째로 담으려다보니 아무래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겠지만, 역사상 이렇게 사료가 풍부한 시대도 달리 없는 만큼 그 색채감을 선명하게 살리지 못한 것은 아쉽다.

추가적인 탐구의 욕구를 일으키지 않는 어설픈 만족감은, 약간 균형을 잃은 격렬한 열망보다 위험하다. 저자는 카이사르에 대해 알려주고 싶었다고 하지만,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또 그것을 해결하는 것도 이 한 권의 책이 모두 짊어진 채로, ‘카이사르는 대충 이런 사람이었습니다’라는 이미지만 독자의 머릿속에 심어주고 끝나버린다면, 그건 애초의 의도와는 상반된 결과일 것이다.

총평의 의미로, 이 책의 의도와 가치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독자들이 자발적인 의지로 카이사르의 육성이 담긴 『갈리아 전기』나 『내전기』, 그밖에 키케로의 『서간집』을 비롯한 당대의 기록들, 그리고 수많은 다른 역사서에 대한 탐구를 위해 한 걸음 내딛어야 할 것이라는 개인적인 소감을 적으며 마무리한다.

2011/12/06 00:20 2011/12/0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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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셀을 밟자 엔진이 요란한 소리를 낸다. 계기판의 바늘이 올라간다. 밤이슬에 덮여 뿌옇던 차창이 히터의 더운 바람을 맞아 차차 선명해진다. 스피커에서는 라벨의 ‘거울 모음곡’의 제1 곡이 흘러나온다. 도로는 거의 텅 비어있다시피 하다. 그러나 속도를 내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아주 천천히, 가능하다면 이 음악과 함께 언제까지나 달려가고 싶다.

새벽 1시 반을 넘겨, 충주의 숙소에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잘 준비를 했지만, 들뜬 마음은 쉬 가라앉지 않는다.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한 곡만 더’, ‘한 번만 더’를 번갈아 외치는 사이, 어느 덧 시계는 새벽 3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간밤에는 채 3시간도 자지 못 했다. 그리고 오늘은 밤 10시를 넘겨서야 간신히 퇴근했다. 그야말로 ‘베개에 머리만 갖다 대면 그대로 잠들어버릴’ 만큼 피곤하지만, 무언가에 들뜬 이 마음은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다. 이 뜨거운 덩어리를 어떤 식으로든 토해내지 않는다면, 나는 침대 위에 누워서도 현실과 꿈 사이의 경계를 헤매며 또 하루 나를 더 지치게 만드는 밤을 보내리라. 하지만 내게는 체력이 남아있지 않다. 예리해진 정신을, 정확히 과녁의 중심으로 인도할 만큼의 집중력이 없다. 이런 때에 중요한 것에 대해 쓰는 것은, 또 다른 꿈을 꾸는 것과 같으리라. 나는 달려가려고 하지만 힘차게 발을 구를수록 더욱 뒤로 밀려날 뿐이다.

우회적인 방법을 쓸 수밖에 없다. 상대적으로 덜 중요한 것에 대해 쓰는 것으로 잠시 이 불안한 분출의 기미를 보이는 욕구를 달래놓는 것이다.

얼마 전에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사요나라, 사요나라』에 대해 리뷰를 쓴 적이 있다. 어째서 이런 작가에게 아쿠타가와 상을 수여했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혹평을 했는데, 아무래도 한 명의 작가를 단 하나의 작품으로만 평가하는 것은 온당치 못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 기회’를 준다는 심정으로 골라본 것이 바로 단편집 『도시여행자』이다. 사실 책날개나 띠지에 적힌 화려한 선전문, 책 뒤편에 실린 호들갑스런 서평 따위는 이 책을 고르는 데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았다. 단지 『도시여행자』라는 제목이 지닌 매력에 이끌렸을 뿐이다. 더불어 도시의 지도를 책표지로 넣고, 그 위에 편지 봉투 모양의 커버를 씌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거리,’ 도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야근을 하기 위해 사무실로 돌아온 샐러리맨이 밝힌 전등, 퇴근길 운전자가 밝히는 자동차 미등, 이제 막 장사를 시작하는 음식점, 술집들의 화려한 간판 조명 따위가 뒤섞여 빚어내는 도시의 야경. 아름다운 모자이크의 한 조각이 자신의 위치와 의미를 모르는 것처럼, 자신의 발밑을 밝혔을 뿐인 불빛이 모여 의도하지 않은 풍경을 만든다. 걸쭉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뒤엉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그러나 제법 먼 거리의 공간이 가로놓여있다. 멀리서는 찰싹 붙어서 마치 하나처럼 보이던 건물들 사이에 반드시 공간이 존재하는 것처럼. 도시여행자는 건물과 건물 사이를, 그리고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의 거리를 여행하는 사람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소설은, 제목이 나에게 품게 한 높은 기대에는 부응하지 못 했다. 만약 이 단편집의 제목이 원작자의 의도와 상관없이(원제는 이 단편집에 수록된 마지막 작품의 제목과 같은 『캔슬된 거리의 안내』이다.) 출판사나 역자에 의해 정해진 것이라면, 작가에게는 조금 억울한 일이다. 대체 이 소설 어디에서 “작가가 늘 관심을 가지는 ‘공간’, 즉 사람들이 뒤엉켜 살아가는 ‘거리’에서 벌어지는 삶의 양상을 표현한다는 기본적인 모티브”가 존재하는 것인가? 모든 일들이 실은 어떤 ‘거리’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야기가 배경과 좀 더 밀접한 관련성을 갖지 못 한다면, 위의 주장은 그저 삶의 양상을 표현한다는 소설의 ‘기본’을 두고 ‘모티브’라고 표현하는 어불성설일 뿐이다.

10년간의 성장을 보여주는 10편의 소설이라고 하지만, 성장의 결과가 『사요나라, 사요나라』 정도였다면 그 과정이라는 것도 어쩌면 뻔한 것이겠지. 장기간에 걸쳐 서로 큰 연관성 없이 쓰인 소설인 만큼 각 작품마다의 퀄리티도 제각각이다.

『나날의 봄』은 매우 통속적인 작품이다. 연애소설의 가장 단순한 패턴을 토대로 심리 묘사의 연습이라도 하고 있는 느낌을 준다. 딱히 인상적인 느낌을 받을 수 없다. 『영하 5도』는 즉흥적인 착상이 충분한 고려나 고심 없이 성급하게 작품화되어버린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배경을 ‘서울’이 아니라 ‘상하이’로 바꾼다 한들 뭐가 문제될 것인가. 그만큼 배경이라는 요소를 작품 속에서 적절히 활용하고 있지 못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독자로서는 이해할 길 없이 허공에 떠버린 주제다. 작가의 머릿속에 어떤 이야기의 핵심이 태동했을 때에는, 그 핵심적인 생각이 독자에게 잘 이해될 수 있도록 전후의 맥락을 빈틈없이 구성해야 한다. 모든 소설이 반드시 독자에게 친절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성을 갖춘다’고 하는 작업은 뜬금없는 생각을 성급하게 작품화시켜버리는 실수를 피하기 위해서도 필요한 과정이다.

『24 Pieces』는 실험정신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무엇을 쓸 것인가’만큼 ‘어떻게 쓸 것인가’ 역시 소설을 쓸 때에 끊임없이 고민되고 연구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쓰기의 방법을 새로 개척하는 만큼 소설의 영역은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24 Pieces』는 이미 동시대의 젊은 작가 히라노 게이치로가 그의 단편집들에서 시도한 것들이 비하면 얼마나 유치한 수준에 머물고 있는가. 물론 작가가, 이 작품을 두고 쓰는 방식의 영역을 개척하려는 의도 없이, 단순히 단절적인 문단의 나열을 통해 복잡한 심리를 생생하게, 또한 상징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는 것이었다면 그렇게 납득할 수도 있겠지만.

반면 비교적 마음에 드는 작품들도 있었다. 가령 『젖니』와 『캔슬된 거리의 안내』가 그렇다. 이 두 작품은 적절한 배경의 설정과 이야기와의 융화가 소설의 완성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젖니』는 어떤 거창한 현실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의 부재, 스스로 서서히 침몰하고 마는 인간의 기울어진 인생, 탈출구 없는 부조리의 느낌을 상당히 잘 전달하고 있다. 여기서 마치 『사요나라, 사요나라』의 가난한 단지를 연상시키는 동네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존재와 더불어 이 소설의 분위기를 완성하고 있다.

『캔슬된 거리의 안내』는 이 단편집 안에서 단연 가장 읽을 만한 작품이다. 현재의 나, 과거에 대한 회상 속의 나, 그리고 내가 쓰고 있는 소설 속의 나라는 세 자아가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구성도 상당히 탄탄하다. 독립적으로 진행되는 세 이야기의 분위는 모두 암울한 분위기를 띠는데, 단지 우울한 회상으로 닫힌 채 끝날 것 같은 이야기들은 각각의 시점을 기준으로 미래에 대해서(또는 현재의 시점에서 같은 사건을 재해석함에 있어서) 모종의 가능성의 존재를 열어둔 채 종결되면서 이 세 이야기들이 하나로 이어질 수 있는 순환의 고리를 형성한다.

다른 것은 제쳐두고라도 ‘캔슬된 거리’가 의미하는 ‘군함도’란 배경의 압도적인 분위기를 느껴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다.

2011/03/09 00:39 2011/03/09 0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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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Perez Rulfo(1917~1986)


인간이 간직한 영원의 신비, 꿈. 제아무리 현실과 닮은 꿈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어딘가 뒤틀려있다. 사실 꿈에는 ‘목적’이 결여되어 있다. 그것은 정밀한 현실의 모사를 추구하지도, 현실 너머의 어떤 이상을 모색하지도 않는다. 꿈은 무한한 상징과 은유, 알레고리의 결합일 수도 있고 그저 무의미한 환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맥락 없이 피어오르는 이런 신기루는 사람을 홀리는 신비한 힘이 있어서, 꿈에 빠져들면 눈을 찌르는 아침의 햇살에도 아랑곳 않고 침대 위에서 몸을 움츠린 채 그 맥락도 없는 이야기, 결말이 없이 무한히 표류하는 꿈의 자락을 붙잡고서 헤어 나오지 못 하는 것이다.

라틴 문학은 어쩐지 ‘꿈’과 비슷하다. 꿈이 아니라면, 확정된 시간과 공간을 점하는 ‘위계’가 뒤섞일 수 없다. 소설은 현실을 반영한 허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미 가상의 한 층위를 형성하지만, 아무리 환상적인 이야기라 하더라도 현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이 충실히 반영되어 있는 한 시간은 인과적 순서에 따라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고(원인 이전에 결과가 먼저 일어나지 않는다), 자아는 하나의 차원(次元)에 속해있다. 주인공은 깨어있거나, 꿈을 꾸고 있거나, 천국에 있거나 혹은 분열된 자아끼리의 다툼 중에 있다. 꿈에서는 이런 원칙이 무시된다. 다른 시간 속의 여러 공간이 중첩되며, 하나의 자아는 여러 세계에 동시에 존재하기도 하고 혹은 완전히 부재하기도 한다. 라틴 문학은 마치 논리적 인식 구조에 심각한 오류를 초래하는 이러한 꿈의 세계를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꿈을 꿀 때와 마찬가지로 그 소설 안에서 모든 기호들을 해석할 수도 있고, 완전히 의미 없는 것으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성공적으로 쓰인 소설들은 꿈이 갖는 것과 같은 신비로운 매력, 즉 아침을 거부하고 꿈속으로 더 깊이 빠져들게끔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줄거리



나는 이 소설의 꿈을 모사한 듯한 속성, 다층적으로 이해될 수 있는(혹은 그렇게 이해할 것을 요구하는) 구조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여지도 충분하다는 것을 언급 해 둔다. 이를테면 이 소설은 하나의 혁명 소설로 분류될 수 있으며, 유일한 생산 수단인 토지를 독점하는 토호(土豪)와 민중들의 갈등, 저항, 그리고 혁명에 대한 이야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연 이 소설의 내용이 혁명을 지지하고 있는 것인지, 혹은 혁명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는 역시 ‘모호’하다. 이것에 대한 판단은 독자 개개인의 몫으로 남겨둘 수밖에 없다.

2010/11/29 23:15 2010/11/2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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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요시다 슈이치. 일본 소설 코너에서 자주 발견하는 이름이다. 권위와 대중성을 모두 갖춘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작가로 널리 홍보되는데, 몇 권의 책 서평을 읽어본 결과 상당히 기발하면서 반전이 있는 소설을 잘 쓰는 모양이다. 이번에 그의 소설을 처음 접해 보았는데, 이 한 권으로 미루어 그에 대해 평가를 내리는 것은 정당하지 않지만, 솔직히 이런 작가에게까지 아쿠타가와 상을 시상해야 할 바에야 매년 수상자를 내지 않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든다.

요시다 슈이치 본인인이 ‘두 번 다시 이런 연애소설은 쓰지 못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는데, 확실히 연애소설은 두 번 다시 쓰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소설 대강의 플롯은 전체의 3분의 1도 읽기 전에 그려졌고, 전개는 예상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이 소설이, 어떤 반전을 준비하고 있는 소설은 아니다. 소재는 확실히 충격적이라면 충격적일 수도 있겠지만, 소재의 독특함이 결코 소설 자체의 독창성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 대한 시시콜콜한 묘사가 상당히 디테일 한 것에 비해, 인간의 심리에 대한 고찰은 어딘가 작가 자신의 시각에 매몰되어 있는 경향이 있다. 대체 어디가 ‘작가 자신과 작품 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단 말인가?

소설의 전개도 뭔가 중간중간 잘라먹은 느낌이 있다. 전체적으로 긴장감을 유지시키는 힘이 부족하다. 캐릭터들도 생동감이 떨어진다. 그 중에서도 와타나베란 캐릭터는 최악이다. 기자답게 집요함으로 꽉 찬 캐릭터로 그릴 것이 아니었다면, 아예 텅 비어서 완벽한 관찰자로 만들었다면 좋았겠지만, 소설 전반에 와타나베의 의식이 상당히 많이 흐르고 있는 것에 비해 알맹이가 없다. 이건 뭔가 독자가 소설 속 사건과 배경을 자신의 의식 속으로 온전히 흡수하는 것을 방해하면서도, 역으로 독자가 충실하게 따라갈 길은 깔아주지 않는 불친절함이다.

덧붙이자면 요시다 슈이치라는 작가가 과연 여성, 여성의 심리에 대해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물론 이건 나로서도 뭐라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기는 하지만. 이건 여성 독자들의 판단에 맡겨야겠다.

기억에 남는 구절

상상 속에서 그녀는 사내 남자직원에게 교제하자는 요청을 받고 거절했다. 자기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이 머릿속에서 고스란히 그녀의 이야기로 변해갔다. 자기가 누군가와 사귀면, 상상 속의 그녀도 누군가와 사귀기 시작했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어딘가에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십 수 년이라는 시간은 결코 터무니없이 긴 세월이 아니다. 무언가를 십 수 년간 계속 생각하는 것쯤은 인간에게는 간단한 일인 것이다.

2010/09/23 01:49 2010/09/23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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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군 입대를 앞두고 어떻게 하면 자기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을까 운운하며 고민하고 있을 때 들려주었던 이야기. 이제는 나를 위해 되새겨야 할 때인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 <침묵하는 소수 中 "어느 모범수의 탈옥기" 전문>

17세기가 얼마 남지 않은 로마에 주세페 피냐타라는 한 남자가 살고 있었다. 직업은 추기경 비서였다. 교황청이 있는 로마에는 거주하고 있는 추기경 수도 많으니, 이런 사람들을 보좌해주는 비서직은 당시 가진 재산이 별로 없는 지식인으로서는 귀족 집안의 가정교사와 더불어 일반적인 직업이기도 했다. 그러나 피냐타는 이제 비서가 아니다. 20대부터 모시던 추기경이 죽은 것이다. 게다가 죽을 때 그가 남겨준 연금은 검소하게 생활하면 일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만한 정도였으니, 새 주인을 찾아나설 필요도 없었다. 지적인 분위기를 좋아하는 것으로도 유명한, 유복한 가브리엘레 백작이 청하는 대로 그 집에서 저녁 식사를 같이하는 것이 지금 그에게는 유일한 소일거리였다. 결혼은 하지 않았다. 혈육이라고는 이전의 그와 같은 직업을 택한 아우 한 사람이 독일에 있을 뿐이다.

백작의 만찬 모임에서는 철학이나 역사, 과학이 주된 화제였다. 종교에 관해서는 이 집안의 전속 참회 청문수도사인 올리버가 말을 꺼내지 않는 한, 누구도 입을 떼려 하지 않았다. 반동종교개혁의 폭풍은 한 세기 전만 해도 자유로운 르네상스를 누리고 있던 이곳 로마조차도 숨막힐 듯한 세계로 변화시키고 있었다.

피냐타가 체포당한 것은 평온하지만 지적인 자극으로 충만한 생활이 2년 정도 지났을 무렵이다. 백작의 집을 나와 어두운 샛길을 가야 하는 두려움도 잊은 채, 착 가라앉은 여름 밤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며 느긋한 걸음으로 귀가하고 있을 때였다. 남자들 몇이 그를 뒤에서 덮치더니 머리 위로 망토를 뒤집어 씌워 꼼짝 못하게 하고는 마차에 던져 태웠다. 망토가 벗겨진 것은 마차가 어느 건물 안으로 들어선 후였다. 달빛에 비친 정원을 본 피냐타의 가슴은 얼어붙는 듯했다. 그곳은 추기경 비서를 지낼 무렵 일 때문에 오곤 했지만, 그때마다 기분이 언짢아지던 다름 아닌 이단재판소였던 것이다. 그들은 지하 감옥 속으로 그를 발로 차 던져버렸다. 취조하지도 않은 채……. 얼굴을 내보이는 인간이라고는 죄수를 마치 짐승 대하듯 난폭하게 다루는 간수밖에 없었으나, 그는 간수의 태도에 신경 쓰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피냐타는 창틈으로 새어드는 실낱같은 빛을 바라보며 하루가 저물 때마다 감옥 벽에 석회 조각으로 표시를 해나갔다.

그가 불려나간 것은 꼭 한 달이 지나서였다. 덩그러니 넓은 방에는 검은 옷을 입은 예수회 수도사들이 벽을 뒤로하고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이제 취조가 시작되었다. 심문은 참으로 교묘했다. 그래도 그는 책잡히지 않도록 바짝 긴장하여 끝까지 발뺌하는 데 성공했다.

다음날부터는 고문이 시작되었다. 최조 때는 혼자였으나, 고문을 당할 때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였다. 헌 서럼아 한 사람이 고문당하는 것을 다른 사람은 지켜보아야 했다. 그제야 가브리엘레 백작의 만찬 모임 구성원 가운데 올리버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 전부가 붙잡혀 온 것을 알게 되었다. 피냐타는 겨우 한 달 전만 해도 생기에 찬 지적 대화를 즐기던 사람들이 지금 와서는 육체보다도 정신적인 타격이 더욱 커, 고문이 필요 없다고 여겨질 정도로 초췌해진 것을 암담한 기분으로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단재판소에서 살아 나간 사람은 없다는 소문을 떠올리고는 공포감에 빠져들었다. 이단재판소는 죄가 재판되는 곳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곳이었다.

심문과 고문이 되풀이되는 것도 겨우 끝나고 이제 판결만 남았으나 그날은 좀처럼 오지 않았다. 그 동안 그는 감방이 바뀌어 지하에서 같은 건물의 3층으로 이감되었다. 그곳은 내부 정원을 향해 철책이 쳐 있으나, 작으나마 창이 나 있어 바깥 공기를 충분히 들이마실 수 있었다. 하루에 한 번 저녁 미사에 나가는 것도 허락되어 미사 때면 다른 죄수들도 만날 수 있었다. 그것은 독방 신세로서는 가뭄 끝의 단비와도 같았다. 이단재판소의 수도사들은 친절한 면도 있었다. 한 주에 한 번 죄수들과 대화할 때, 그들은 언제나 희망을 갖도록 다독거려주었다. 그러나 어떤 때는 절망스러운 말을 하기도 했다. 감방에 갇힌 사람들은 이런 말에 울고 웃으며 하루하루를 안절부절못하며 보내야 했다.

피냐타가 초연했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러나 그는 희망은 희망대로 남겨두면서 혹시 그것이 실현되지 못했을 때를 대비하여 탈옥할 의지를 굳히고 있었다. 고문의 상처가 조금이나마 회복되자 좁은 감방 속에서도 근육 단련을 잊지 않았고, 미사에 나갈 때도 종종걸음으로 걸었다. 하는 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탓에 머리가 둔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식사용 조그만 탁자 위에 석회 조각으로 쳄발로 건반을 그린 다음, 알고 있는 곡이란 곡은 몽땅 쳐보곤 했다. 글을 읽거나 쓰는 것도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사가 있던 어느 날, 수리하던 목수가 흘리고 간 듯한 못 하나가 우연히 눈에 띄어 그는 그것을 몰래 주워 숨겨놓았다. 또한 판결이 내려진 죄인들은 소일거리로 짚 세공품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곧 순회수도사에게 자기도 하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미결수에게는 허락되지 않는다며 그 자리에서 거절당했다. 그럼 하다못해 목탄과 종이라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순회수도사는 울고불고하거나 아니면 협박하는 다른 죄수들에 비해 언제나 평정을 잃지 않는 피냐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지, 그건 규칙 위반이라고 말했지만 그 다음 주에는 물품들을 마련해주었다. 피냐타는 그것을 가지고 미사 때마다 보아온 바사리의 <성모자상>을 생각해내어 본떠 그렸다. 선과 농담만을 구사한 데생이었는데도 순회수도사를 감탄시키기에 충분했나 보다. 수도사는 이 데생을 짚 세공으로 재현하여 수녀원에 기증하겠다는 피냐타의 의향을 받아들였고, 본인도 힘써보겠다고 약속했다.

그가 원하는 양만큼의 짚과 실, 바늘 그리고 가위와 풀을 받게 된 것은 그로부터 2개월이 흘러서였다. 짚 세공에 자신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 유모가 하던 것을 보아온 덕분에 만드는 방법을 생각해내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이제 그 데생을 보아가면서 작업을 시작하면 되었다.

형태가 대충 잡혀갈 무렵, 피냐타는 흰색을 포함해 여러 색 물감을 청했다. 순회할 때마다 형태가 점점 정교해져가는 것을 보고 감탄하던 수도사는 싫은 내색도 없이 그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그가 원하는 물건 가운데 흰색 물감과 실이 필요 이상으로 많았지만, 수도사는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데생용 목탄을 깎을 손칼이 필요하다는 피냐타의 요구를 들어주기까지 했다. 손칼도 가위도 무슨 일을 저지르기에는 너무 작은 것이었으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제 색깔을 입히는 작업도 끝나고 원화보다는 작았지만 수녀들이 매우 기뻐할 만큼 잘된 짚 세공품이 완성되었다. 18개월이 흘러서였다.

또 식사 때마다 나오는 작은 사기 병에 든 샐러드용 식초를 의심 받지 않을 만큼 모으기 시작한 것이 어느새 커다란 물항아리를 채울 정도가 되었다. 다행히 감방 청소는 죄수 스스로 직접 해야 한다는 게 규칙이었다. 작품이 완성된 뒤에도 그는 담뱃값이나 자잘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쉬지 않았다. 손칼과 가위를 압수당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기다리던 판결이 내려진 것은 체포당한 날로부터 3년이 지나서였다. 더욱이 전 교황이 죽고 새 교황 인노켄티우스 2세가 즉위했으므로 사람들은 대부분 은사(恩赦)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헛일이었다. 가브리엘레 일당이라고 분류된 사람들 모두에게 종신형이 내려진 것이다. 단지 백작만은 출감되어 어느 귀족 집에 보호인지 감시인지로 맡겨졌으나 그는 그 상태로는 안심할 수 없었던지 그곳을 탈출하여 베네치아로 망명했다. 피냐타는 그 소문을 한참이 지나서야 들었다.

피냐타가 판결에 좌절하여 다른 동료들과 함께 절망에 빠졌던 것도 이틀뿐이었다. 사흘째 되는 날 그는 순회하러 온 수도사에게 오랫동안 앓고 있던 척추병이 고문과 감옥 생활 탓으로 도진 것 같다며 의사를 불러달라고 했다. 의사 앞에서 아픈 척하기는 간단했다. 의사는 마을 어디서나 흔히 구할 수 있는 철심이 든 코르셋을 구해주었다.

미사에 가던 피냐타는 또 우연히 건물 수리 공사장 하나를 목격했다. 이 건물의 바깥벽 두께는 2미터도 훨씬 넘었다. 그러나 방 천장이 활 모양이어서, 그 가운데 가장 움푹한 부분을 파내면 80센티미터도 못 미쳐 그 윗방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기가 갇혀 있는 층은 모두 안쪽으로 창이 나 있지만, 그 위층에 있는 수도사들의 방은 철책 없는 창이 바깥쪽으로 나 있다는 것을 짚 세공일 덕택에 친해진 수도사로부터 들어두었다.

그렇지만 곧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는 없었다. 피냐타의 방은 모퉁이에 있었기에 양 옆에 있는 독방까지는 비교적 거리가 있었고, 두꺼운 벽이니 소리가 샐 염려 또한 적었다. 그러나 그 위층은 달랐다. 피냐타는 윗방에 사는 수도사가 예수회 고위층이라 간부회의에 참석해야 하는 월요일과 수요일, 목요일 밤에 방을 비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 했다.

피냐타는 2개월에 걸쳐 통계를 작성했다. 그리하여 이 건물 안에서 열리는 월요일 회의와 교황 앞에서 열리는 목요일 회의 때는 수도사가 한밤이 되기 전에 돌아오지만, 로마 시내의 예수회 본부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석하는 수요일은 언제나 자정이 지나서야 돌아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낮에 작업한다는 것은 그가 언제 감옥에 돌아올지 모르니 위험한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침대와 책상과 의자를 겹쳐 세우고 그 위로 올라서면 보아둔 천장의 그 지점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다. 가위와 손칼, 그리고 못은 회찰한 벽을 긁어 깎는 도구로 바뀐다. 첫 벽돌을 빼기는 힘들었으나 그 다음부터는 생각보다 쉬웠다. 특히 벽돌과 벽돌 사이를 굳히는 역할을 하는 석회층에 식초를 발라두면 다음 작업 때에는 그것을 깎아 빼기도 쉬울 뿐 아니라, 긁어낼 때 나는 소리도 작아진다. 벽돌을 뺄 때는 코르셋에서 빼낸 철삿줄을 썼다. 예정된 작업이 끝나면 틈이 난 구멍에 데생용 종이를 발라 그 끝을 흰색 물감으로 칠해두면 표가 나지 않았다. 빼낸 벽돌은 화장실에 갈 때 몰래 숨겨가서 그 속에 버렸다. 작업을 시작한 지 1년 후, 그는 바짝 야위었지만 잔뜩 움츠리면 간신히 빠져나갈 수 있을 만한 구멍을 윗방으로 트기까지 이제 벽돌 한 장만을 남기게 되었다.

피냐타는 수요일 저녁을 기다렸다. 그날은 낮부터 남요를 찢어 밧줄을 만들었다. 적어도 25미터는 필요했다. 이제 마지막 순회가 끝나자마자 그는 담요를 두루마기처럼 마름질했다. 탈옥 후 양치기로 변장하기 위해서다. 또 수건 두 장을 겹쳐 꿰매어 주머니도 만들었다. 그 속에는 손칼, 가위, 철심을 넣었다. 남은 일은 이제 마지막 벽돌 한 장을 빼내는 것뿐이다.

구멍이 뚫리자 피냐타는 우선 필요한 물건을 위로 올려둔 다음, 벽돌 모서리를 잡고 위로 기어올라갔다. 거친 벽돌 표면에 몸이 스쳐 쓰라렸지만 아픈 줄도 모르고 곧장 창문으로 달려가 창틀에 밧줄을 맨 다음, 그것을 타고 드디어 땅 위에 내려섰다.

주위에 인기척이라고는 없었다. 이미 예상한 바였다. 밖에서 지내기 좋아하는 로마 토박이들도 허구한 날 신음밖에 들리지 않는 이단재판소 근처를 지나가는 게 퍽이나 싫었을 것이다. 피냐타는 계획대로 그곳에서 가장 가까운 성문을 향해 달려갔다. 날이 샐 때까지는 성벽 가까운 야채밭에 숨어 있고, 성문이 열리면 근교의 농민들 무리 틈에 숨어 도망할 작정이었다. 로마 성문은 어느 곳이나 페스트라도 유행하면 모를까 감시가 결코 허술하지 않다는 것은 로마 토박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피냐타가 비로서 베개를 높이하여 잠을 청할 수 있었던 것은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나 가까스로 베네치아 땅을 밟은 날 밤이었다.

지금도 베네치아 고문서관에 남아 있는 보고서 가운데는 베네치아 공화국이 로마에 풀어둔 첩자가 보내온 이런 글이 남아 있다. 1693년 11월 11일자다.

“어제 예의 가브리엘레 일당으로 옥중에 있던 주세페 피냐타가 이단재판소 탈출에 성공, 오늘 아침 로마는 온통 이 소문으로 떠들썩하다. 일당 중 두 사람은 이미 옥에서 광사(狂死). 탈출에 성공한 마흔네 살의 이 사나이는 더할 나위 없는 모범수였다고…….”

2009/09/13 19:41 2009/09/13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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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베켓(1906~1989)


부조리(不條理)란 무슨 뜻인가? 우리는 이 단어를 자주 사회의 어떤 구조적 모순, 특히 사회의 불평등성이나 비도덕성을 가리키는 뜻으로 사용한다. 다시 말해, 인간 사회는 마땅히 어떠해야 하다는 우리의 통념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현실의 증거들이 바로 우리가 ‘부조리의 파편’이라 여기는 것들이다.

흔히 사람은 법과 질서를 준수하고 자기 양심에 비추어 어긋남이 없도록 도덕적으로 올바르게 살아야 하며, 게으름보다는 부지런함이 바람직하고, 막대한 부(富)보다는 훌륭한 인품을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이래 줄곧 제기되었으나, 여기에는 영원히 해결되지 않을 의문 한 가지가 늘 따라붙었다. “대체 왜 그래야 하느냐?”이다.

여기에도 물론 많은 답변들이 나왔다. 어떤 사람은 결국 사회가 사람들의 선의와 선행을 인정하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 줄 것이라는 낙관주의를 피력했고, 어떤 사람은 개인의 행위가 신이나 역사에 의해 심판 될 것이라는 숭고한 종교적 관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인생의 가치 판단이 결국 ‘자기만족’에 달렸음을 넌지시 내비치기도 했다.

묻건대, 사회의 부조리를 외치는 사람들은 어떤 관점을 취하고 있는 것인가?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한가?

‘어떻게 살아야한다’는 것은 하나의 신념이다. 현실 사회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모범적인 삶의 방식, 인생의 목적 같은 것을 제시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도덕책을 통해 습득하게 된 ‘상식’이 현실 사회와 전혀 들어맞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회가 ‘부조리’한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가 도덕책이 그리고 있는 것보다 훨씬 ‘부정의’하기 때문일 뿐이다.

‘부조리’란 본래 배리(背理)의 동의어로, 논리적으로 이치(理致)에 맞지 않음을 뜻하는 단어이다. 사실 부조리란 단어는 우리의 신념에 비추어 어그러진 사회의 모습에 던지는 푸념의 용어로 사용될 것이 아니라, 보다 근원적인 물음, 즉 ‘세상의 이치’라는 것이 과연 존재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위해 사용되어야 할 단어인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 알베르 카뮈, 새뮤얼 베켓은 부조리 문학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작가들이다. 이들이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삶의 부조리한 속성은 보통 인간 존재의 무의미함이나 무력함,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의 불가능성 등으로 이해된다. 소설 속의 상황들은 근본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한 난제이다. 왜냐하면 그들의 질문은 어떤 논리적인 해법을 완벽하게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령 카프카의 ‘변신’ 속 문제점은 무엇인가? 그레고르가 ‘벌레’에서 다시 ‘사람’으로 변하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일까? 혹은 측량사 자격으로 마을을 찾아온 K가 성에 들어가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일까? 살인죄를 저지르고 법정에 선 뫼르소에게는 대체 무엇이 문제이고 무엇이 해법인 것일까?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에게 ‘고도’는 ‘해답’인가?

얼마 전 우연히 ‘세비지스 The Savages’라는 영화를 보았다. 영화 속 주인공 웬디는 39살 극작가다. 남편은 없고, 애인은 늙은 유부남. 변변한 성공작이 없어 아르바이트를 하며 근근이 작품 활동을 이어간다. 어느 날 갑자기 20년 전 사랑하는 여자를 좇아 자식들과 인연을 끊고 사라졌던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입원중이라는 연락을 받고 아버지 병간을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 8번째 응모한 구겐하임 장학 재단으로부터는 또다시 탈락 소식이 날아든다.

보통 헐리우드 영화에는 명확한 문제제기와 그에 따른 해법이 존재한다. 주인공이 누명을 쓰고 도망치는 처지라면 그 누명을 벗고 명예를 회복하는 것이 해법이다. 세상이 위기에 빠졌다면 그 위기로부터 세상을 구하면 되고, 짝사랑으로 가슴앓이를 한다면 사랑을 이루는 것이 분명한 문제의 해법이다.

영화 ‘세비지스’에는 누구나 해법을 제시할 수 있을 그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 사랑을 좇아 자식들까지 내버리고 떠나간 아버지이건만, 결국 치매 노인이 되어 자신이 버린 자식들의 간병을 받는 처지에 놓였다.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며 웬디는 인생의 의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대체 삶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아버지의 회복 혹은 임종, 불륜 관계의 청산, 극작가로서의 출세, 안정적 가정의 구축 같은 것들이 ‘인생’의 해법들일까?

문제의 핵심은 ‘life goes on’, 즉 삶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동화 속 주인공의 삶은 왕자와의 행복한 결혼식 장면에서 끝나지만, 인간의 인생은 책이 덮인 다음에도 이어진다. 인간은 ‘실존’한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위해?

시시포스는 영원토록 비탈길에서 바위를 굴려야 하는 형벌을 받았다. 그가 굴리는 바위는 영원히 정상에 안착할 수 없다. 그렇다면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리는 행위에는 어떤 목적이 있는가? 그것은 바위를 비탈의 정상에 올려놓는 불가능한 임무의 완수인가? 혹은 바위를 굴리는 그 자체인가?

새뮤얼 베켓의 ‘고도를 기다리며’의 두 주인공,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마치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리는 것처럼 고도를 기다리고 있다. 무대는 장소를 특정할 수 없는 어느 시골길을 배경으로 한다. 이 두 부랑자는 ‘고도’를 기다리며 부질없는 대화를 나누고, 의미 없는 행위를 반복한다. ‘고도’는 이 둘에게 어쩌면 절대적 구원이요, 희망일지도 모르지만 정작 두 사람은 고도가 누구인지도 잘 모르고 그를 만나면 무엇이 어떻게 되는지도 구체적으로 알지 못 한다.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고도’를 막연히 기다리는 것, 그것이 두 사람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이 의미 없어 보이는 삶에서 탈출할 유일한 방도는 삶 자체를 포기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나무를 보며 목을 메달 생각을 한다. 만일 이들이 죽음을 선택한다면, 그것은 극한의 좌절 혹은 분노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삶의 무의미함에 대한 수긍이며, ‘바위를 미는 행위의 중지’인 것이다. 그것은 또한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감정이 부추긴 죽음’이 아니라, ‘정신이 선택한 죽음’인 것이다.

부조리 문학은 확실히 읽는 우리를 불편하게 하며, 우리의 실존의 근거를 뒤흔듦으로 하여 존재의 불안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런 부조리 문학의 배경에도 ‘논리’가 존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실 부조리 문학의 토대는 ‘본질이 실존에 선행한다.’ 혹은 ‘실존이 곧 본질이다.’를 뒤집은 ‘실존이 본질에 선행한다.’는 주장, 그 뿐이다.

‘실존이 본질에 앞선다.’란 주장은, 인간의 존재가 엄연한 사실인데 비하여 그 존재의 목적은 특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즉 우린 이 세상에 목적 없이 태어났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주장은 전혀 우리들, 그러니까 동양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을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이 서양인들에게는 커다란 공포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이것이 서구인들이 목적론적으로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서양 철학자들이 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인과론적인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목적론적인 것이다. 인과론적인 견해는 오늘날 자연과학자들의 견해와 비슷하다. 즉 우주의 모든 현상들은 인과 관계에 의해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사고의 보편화로, 이런 사고방식은 우리에게도 매우 익숙하다.

반면 목적론적인 견해는 우주의 모든 현상이 어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현상의 ‘목적’이 바로 실존과 본질 중 ‘본질’에 해당한다. 눈(目)의 본질은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눈은 ‘보기 위해’ 만들어졌다. 날개의 본질은 비행(飛行)이다. 그러므로 날개는 ‘날기 위해’ 만들어졌다. 어쩌면 너무 당연한 얘기고 어쩌면 매우 비과학적인 얘기다. 그러나 그리스 시대 최고의 철학자로 여겨지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목적론적인 사고가 서구 문명을 지배했다. 중세 1천 년간, 유럽 사람들은 삶의 목적을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삶의 본질은 전능한 신에 의해서 디자인 되어, 그 완벽한 계획 위에 인간의 실존이 주어졌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근대 유럽인들이 느낀 존재의 불안은, 중세 1천 년간 이어졌던 강한 종교적 확신의 증발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부조리의 문제 제기는, ‘실존’과 ‘본질’ 혹은 ‘존재’와 ‘목적’이 엄연히 분리되어 존재한다는 전제 하에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동양의 고전 철학에서는 애당초 ‘목적인’이 되는 초월자의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다. 목적이 존재를 유발한다는 개념이 없었기 때문에, ‘실존’과 ‘본질’을 분리하여 생각하는 일도 없다. 어쩌면 부조리 문학이 많은 아시아권 독자들에게 ‘갑갑한 현실’ 이상의 의미로 다가오지 못 하는 까닭은 여기에 있을 것이다.

2009/09/11 05:39 2009/09/11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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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께서 내게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하니, 내가 아뢰기를 여름 과일 한 광주리가 보입니다, 하고 답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른 즉, 내가 다시는 저들을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통곡으로 변할 것이며, 죽은 자가 넘쳐나 사람의 시체가 곳곳에 내버려지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말하기를 “언제 월삭이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하며 “언제 안식일이 지나서 우리가 밀을 시장에 낼 수 있을까.” 한다. 에바(되)는 작게 하고 세겔(추)은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고 신 한 켤레 값으로 궁핍한 자를 종 삼으며 쌀겨까지 팔고자 하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기를,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인하여 어찌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이로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범람같이 솟아오르며 나일의 강과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케 하며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두 머리를 밀고서 외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게 하여 그 마지막이 이처럼 비참한 날로 끝맺게 하리라.

아모스서 8:1~8:10

과학 지식의 발달과 대중화는, 사람들을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식을 보고도 그것을 더 이상 재앙에 대한 징조나 신의 징벌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달그림자에 태양이 삼켜져 공기가 싸늘해지고 백주의 대낮이 어두워질 때, 하늘의 눈이 가려진 틈을 타 버젓이 죄를 일삼고 전혀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정녕 그들은 하늘에 죄를 얻지만, 용서를 구할 마음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나 궁핍한 자를 삼키고 가난한 자를 멸케 하려는 자, 저울을 속이고 푼돈으로 사람들을 종 삼으려는 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하늘의 눈인지를. 태양이 언제고 여호와와 제우스의 뜻으로 가려진 적이 있었던가? 일식을, 크세르크세스의 정신 나간 원정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만든 것은 정녕 누구였던가?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있는 푼돈을 응시할 때에, 마치 먼 듯 감긴 듯한 민중의 눈은 가만히 그들의 죄를 응시하고 있다. 예언은 사람들의 절망 속에서 태어나, 전염병처럼 번지는 분노를 타고 퍼진다.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힘은, 언제나 그 예언을 성취시켜왔다. 그 때에 이르러 하늘에 죄를 지은 자, 정녕 용서를 구할 데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09/07/23 03:18 2009/07/2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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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대답은 “예스!”

사강을 좋아하세요?

대답은 “글쎄?”

시몽은 매우 잘생겼지만, 자신의 잘생긴 외모를 거의 의식하지 않는다. 나는 잘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외모가 출중하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전혀 짐작조차 할 수 없다. 다만 이것 하나는 상상이 간다. 그런 캐릭터가 범인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으로 다가올 것인가 하는 점 말이다.

시몽은 14살 연상의 여인 폴에게 반한다. 소설의 제목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인 것, 그리고 시몽과 폴의 나이 차이가 14살인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브람스가 평생 마음속에 품고 살았던 클라라 슈만은, 브람스보다 꼭 14살 나이가 많았다.

스스로 인생에서 해 놓은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고백하는 이 무기력하고 허무적인 청년이, 폴과 만난 이후로는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이 인생의 유일한 의미이며 인생의 목적인 것처럼 그녀와의 사랑에 매달린다. 이 맹목적인 청년이 운운하는 ‘행복’이란 것에, 나는 반하지 않았다.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이지만, 시몽이라는 캐릭터에 공감하기는 어려웠다.

폴에 대해서는 거의 절망적인 답답함을 느꼈다. 그녀는 자신이 브람스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알지 못 하며, 앞으로도 영영 브람스를 사랑할 기회를 상실 해 버렸다. 그건 그녀가 39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늙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되고 싶지 않은, 그렇기 때문에 가장 두려운 ‘늙은’ 모습이다.

“그리고 당신, 저는 당신을 인간으로서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고발합니다. 이 죽음의 이름으로, 사랑을 스쳐지나가게 한 죄, 행복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한 죄, 핑계와 편법과 체념으로 살아온 죄로 당신을 고발합니다. 당신에게는 사형을 선고해야 마땅하지만, 고독 형을 선고합니다.”

메마른 건초 밭으로 달려드는 불 수레바퀴의 경고장. 오감으로 전해지는 감각은 짜릿짜릿하고 감정은 폭발한다. 모든 것이 불타버리고 난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그건 ‘사형’도 아니고 ‘고독 형’도 아니다. 다만 재가 남을 뿐…….

소설 속에서 시몽과 폴이 함께 들으러 간 ‘브람스’는, 바이올린 협주곡이었다. 이 곡은 브람스가 생애동안 단 한 곡 작곡한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그러나 너무나도 힘차고 아름다워 수많은 거장들의 단골 레퍼토리가 되었고, 오늘날에는 떠들기 좋아하는 대중들의 ‘4대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는 호들갑스러운 리스트에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 곡의 가장 유명한 3악장을 올려본다. 언젠가 There will be blood란 영화를 본 적이 있는데, 유전에서 기름이 터져 나오는 순간 이 3악장이 배경 음악으로 쓰였다. 영화의 시종 암울했던 분위기 속에서 이 음악이 마치 태양의 반짝이는 빛처럼 느껴졌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연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셰링.

2009/06/21 20:35 2009/06/21 2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