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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8. a night view of Auckland / Devonport의 Mt. Victoria에서

2012.04.08. a night view of Auckland / Devonport의 Mt. Victoria에서

마침 내가 도착한 날은 부활주일이었다. 상식이지만 부활주일은 춘분 이후 첫 만월(보름) 다음에 오는 일요일. 이번 부활주일은 보름과 가까웠던 모양인지 매우 휘황한 달이 떠올라 밤에도 도시를 환하게 비추었다.

2012/04/18 00:07 2012/04/18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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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8. a night view of Auckland / Devonport의 Mt. Victoria에서

2012.04.08. a night view of Auckland / Devonport의 Mt. Victoria에서


국토의 면적이 남한의 약 2.5배, 한반도의 1.2배에 달하는 뉴질랜드이지만 인구수는 약 440만 명에 불과하다. 그 중 약 340만의 인구가 뉴질랜드 북섬에 살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약 140만의 인구가 뉴질랜드 최대의 도시 오클랜드에 밀집하여 생활하고 있다. 뉴질랜드 전체 인구의 약 1/3이 오클랜드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오클랜드 시 전경을 조망할 수 있는 Devonport의 Mt. Victoria에서 촬영. 바람이 많이 불어서 삼각대를 썼음에도 촬영에 애를 먹었다.


2012/04/18 00:05 2012/04/18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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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 도착한 이튿날, 날이 밝자마자 택시를 전세 내어 달려간 곳은,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져있으며, 고대 하(下) 이집트의 수도였던 멤피스의 북서쪽에 조성된 네크로폴리스, 곧 ‘죽은 자들의 도시’인 사카라였다. 이곳에는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에, 가히 최초의 기념비적 석조 건축물이라 할 만한 위대한 건축물이 있다.

사카라의 피라미드로 가는 길에 있는 어느 매점 앞에서 발견한 '계단식 피라미드.' 시멘트 표면을 깎아서 지역 명물을 묘사해놨다.


바로 조세르 왕(재위 BC 2667 ~ 2648 추정)의 계단식 피라미드이다. 조세르 왕은 이집트 고왕국 시대(BC 2686 ~ 2181)를 연 제3 왕조의 첫 번째(혹은 두 번째?) 왕이었다. 그는 치세동안 시나이 반도로 원정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광산을 건설하여 터키석이나 구리 등을 채굴해 국부(國富)를 쌓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실 조세르 왕의 생존 당시 업적을 우리는 구체적으로 추적할 수 없다. 게다가 그건 우리의 관심 밖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가 살아서 무엇을 했든, 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미라를 보관할 장소로 전대미문의 엄청난 무덤을 건축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확실히 인류 전체를 위한 역사 연표에 당당히 조세르의 이름을 올려놓을 만한 위대한 업적이었다.

무엇이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를 그토록 특별한 건축물로 인정받게 만들었는가? 그것은 이 피라미드가 ‘최초의 피라미드’이기 때문이다. 피라미드란 먼저 사각형의 토대를 잡고, 네 개의 측면을 삼각형으로 쌓아 올려 하나의 정점에서 만나도록 지은 방추형의 건물이다. 복잡한 변형이나 장식 없이, 기하학적으로 단순한 형태를 가진 이 방추형 건물은, 그러나 이집트의 메마르고 텅텅 비어있는 사막의 평원 위에 우뚝 서 있을 때에 배경과 더없이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 영화에서 또 만화에서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아름다움, 낭만, 모험, 위엄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등장했다. 가장 단순한 형태로 가장 완벽한 미를 완성한 피라미드의 시원(始原)을, 우리는 사카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런데 그 최초의 피라미드는 참으로 독특하게 생겼다. 물론 이것은 매끈한 사면(斜面)을 갖는 기자의 대 피라미드에 익숙한 오늘날 사람들의 관점에서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면적이 확연이 다른 몇 개의 단층을 쌓아올려 만든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단지 외따로 세워진 건축물이 아니다. 이 피라미드는 면적이 45만 평방미터나 되는 넓은 부지에 대규모로 건축된 복합 묘역(Complex)의 핵심 건물이다. 이 묘역을 둘러싸고 있는 해자의 폭만 40미터에 달하고, 남북축을 따라 장방형으로 조성된 묘역의 남쪽은 낭떠러지에 면하고 있다. 묘역을 보호하는 주벽은 벽돌로 쌓아올렸는데, 무려 15개의 문이 있으나 그 중 단 하나의 문만이 묘역 내부로 통하는 진짜 문이다. 이 문은 남동쪽, 낭떠러지에 면한 모서리에 있다. 이 모든 복잡한 구조가, 묘역으로의 접근을 가능한 차단시키기 위한 조치였을 것이다. 비록 이런 모든 시도가 무색하리만치 무덤은 철저하게 도굴 당했지만 말이다.

남쪽의 진짜 입구를 통해 들어가면 주랑(柱廊)이 나온다. 이 긴 홀에는 높이가 6미터 정도 되는 20쌍의 석회암 기둥들이 늘어서 있는데, 특이한 것은 기둥들이 회랑의 외벽에서 분리되어 서 있는 것이 아니라, 벽으로부터 길게 연장되어 서 있다는 점이다. 그건 아마도 원형의 기중 면적만으로는 지붕의 무게를 견디기에 충분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이다.

주랑

묘역으로 통하는 주랑

지금은 거의 허물어져버린(그러나 그 잔해들을 모아 절반의 높이쯤 복원해 놓은) 기둥들을 헤치고 주랑을 빠져나가면, 비로소 피라미드의 모습을 정면에서 확인할 수 있는 묘역 내부로 들어가게 된다. 그곳은 마치 거대한 운동장 같이 생겼다. 그리고 이 공간의 북쪽 부분에, 최초의 피라미드는 자리하고 있다.

피라미드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최초의 피라미드로 불리지만, 물론 최초로 만들어진 왕의 무덤은 아니었고, 더욱이 최초의 대규모 석조 건물도 아니었다. 상 ? 하 이집트가 통합되고 파라오에 의한 중앙집권화가 진행되었던 이집트의 제1, 2왕조 시절 동안, 파라오의 미라를 매장할 거대한 무덤은 대를 거듭할수록 거대하게 완성되었다. 그 기본적인 형태는 대부분의 초기 문명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거석 숭배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는 네모난 형태의 돌무덤이었다. 석관을 매장할 수 있는 매실을 지하에 마련하고, 그 위에는 권위를 나타내는 거대 규모의 돌무덤을 쌓는다. 재료는 보통 나일강변에서 채취한 진흙을 이집트의 강렬한 태양 아래 말려서 만든 벽돌이었다. 형태는 남북축을 중심으로 한 장방형으로, 천장을 향해 안쪽으로 비스듬히 경사가 졌으며, 윗면은 평평했다. 이러한 형태의 무덤을 ‘마스타바’라고 부르는데, 이 마스타바는 파라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고대 이집트의 도시 아비도스에서는 많은 수의 마스타바가 발견되는데, 그 주인들은 파라오만이 아니라 이집트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었던 귀족들을 다수 포함하고 있다. 이 마스타바 형태의 무덤은 왕국 이전 시기부터 제1, 2왕조시기에 걸쳐 규모가 확대되었을지언정 형태는 큰 변화 없이 유지되었다. 그런데 어째서 조세르 왕의시기에 이르러 갑작스럽게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을까?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모두 6층의 단층이 쌓아올려진 형태를 취하고 있다. 토대가 되는 1층은, 동서축으로 길이가 약 125m, 남북축으로 길이가 약 109m다. 특이한 점은 토대가 통상적으로 남북축을 갖는 이집트의 기존 건축물들과 달리 동서쪽으로 긴 동서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6층까지의 높이는 60m에 이른다.

내부 구조를 살펴본 결과, 이 계단식 피라미드는 단번에 완성된 것이 아니라 여러 번의 증축을 통해 완성되었음이 밝혀졌다. 최초의 건축물은 정방형의 마스타바였다. 그러나 이전까지 마스타바가 장방형이 아닌 정방형으로 건축된 사례가 없다는 점을 상기할 때에, 이것이 정말 마스타바였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이 정방형의 건축물은 이후에 동서쪽으로 확대되었고, 그런 다음 갑작스럽게(?) 4층 구조를 갖는 계단식 피라미드로 설계 변경되었다. 네 층 구조의 피라미드는 다시 여섯 층 구조의 피라미드로 개축되어, 최종 형태가 완성되었다.

마스타바에서 피라미드로 형태가 변하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까지도 정설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이 형태를 두고 ‘영원에 이르는 계단’이라고 부르지만, 그것이 태양을 향한 숭배라는 낭만적인 짐작 외에 뚜렷한 증거는 없다. 혹자는 이 형태가 특수한 조건 하에서 태양이 지평선 너머로 질 때에 일그러져 보이는 모양과 닮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처럼 계단식 피라미드의 기원에 대한 해답은 여전히 상상의 영역 속에 놓여있다.

건축상의 특이점을 몇 가지 더 살펴보면, 우선 이 피라미드는 건축의 주재료로 주로 진흙을 건조시켜 만든 벽돌을 사용했던 이전의 마스타바와 달리, 석회암 덩어리를 사용했다. 석회암을 절단한 모양이 마치 커다란 벽돌 같다는 점에서, 건축자들이 과거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려고 한 것은 분명하지만 재료가 진흙 벽돌에서 석회암으로 바뀐 것은 획기적인 진보라 할만 했다. 조세르는 역사 문헌에서 종종 ‘돌을 연자’로 표현되는데, 이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6개의 층은 각기 피라미드의 중심을 향해 비스듬히 설계되었는데, 이는 건축물의 안정감을 크게 향상시켰다.

이 신비한 피라미드로 들어가는 입구는 피라미드의 북쪽에 면해있는 신전 안에 있다. 이 통로는 피라미드의 최초 토대가 된 마스타바의 지하로 이어진다. 이 입구를 통해 내려가면 기나긴 굴을 지나 지하 28미터 깊이의 바닥까지 도달하게 된다. 여기에 관을 두는 화강암 석실이 있다. 파라오의 관은 무게가 엄청난데, 이 관을 지하 통로로 나르지는 않았다. 천장의 구멍을 통해 관을 내리고, 그 위를 무게 3톤의 화강암으로 덮었다.

묘실을 둘러싼 회랑은, 모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자극할 만큼 충분히 복잡한 미로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미로는 그러나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지상의 피라미드가 아니라, 지하에 존재하고 있다. 아무리 고대의 건축 기술이 뛰어나다고 한들, 석회암을 쌓아올려 만드는 건축물 안에 그런 복잡한 미로와 함정들을 설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직선적인 형태의 비좁은 회랑이나 아주 단순한 형태의 함정들은 때때로 지상의 건축물 안에 존재한다).

이 미로로 구성된 지하 세계 안에는 여러 개의 비밀의 방들이 있었는데, 이 중 몇 개의 방에서 역대 파라오들의 이름이 새겨진 돌 항아리가 수천 점 발견되기도 했다. 이 돌로 된 통들의 용도가 무엇이었는지, 왜 역대 파라오들의 이름이 새겨진(따라서 역대 왕들의 시대에 제작되었을 수도 있는) 수많은 통들이 이 계단식 피라미드의 지하에 묻혔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조세르 왕의 피라미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수많은 학자들이 매달려 연구하였다. 그러나 연구를 통해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만큼 새로운 수수께끼도 생겨났다. 아마도 그 많은 수수께끼들에 대한 해답은 영원히 얻지 못 할 것이다. 조세르 왕의 계단식 피라미드는 인간의 석조 건축 역사에서 영원한 이정표를 세운 것처럼, 고고학 분야에서 연구의 대상으로 그리고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신화적 존재로서 영원한 생명력을 누릴 것이다.

2011/08/02 00:35 2011/08/02 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