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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전

휴일도 아니고 근무 오프도 아닌 평일. 여느 때라면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장 2일차. 오늘은 서울에서 일이 있다. 26일부터 시작되는 공군전우회 주관 한일교류 행사 통역 업무에 대비해서 사전 업무 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도록, 말러 2번 3악장을 크게 틀어놓았다.

1층으로 내려가 냉장고 문을 여니, 지난 일요일에 사온 맥도날드 머핀이 그대로 남아있다. 차가운 머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작년 여름 맥도날드에서 받아 온 커다란 콜라 컵에 어름을 가득 채우고 콜라를 따랐다. 가사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아주 오랜만에 봤다.

12시 반, 최대한 말쑥한 느낌으로 차려입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한낮의 도로는 대체로 한산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으로 갈수록 교통 사정은 좀 복잡해졌다. 대방동 공군회관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정문에서 헌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4층 공군전우회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 충주의 선임에게 전화 한 통을 넣었다. 선임은, 일이 일찍 끝나거든 충주로 내려와서 사무실에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라고 했지만, 저녁 7시 반 연주회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해 두었다.

사전 협의는 20분 만에 어이없으리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너무 빨리 끝나서 어쩌면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쪽에서는 상관 안 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눈치였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최근에 국내 개봉했다는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이라도 볼까 싶어 가까운 영등포 롯데시네마를 찾았지만, 낮 시간에는 상영 스케줄이 없었다. 결국 다시 차를 몰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으니 오후 4시였다. 그제야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업무가 끝났다는 보고를 올렸다. 기왕이니 서점도 들르고 저녁도 해결하고 천천히 출발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일단 이것으로 행동에 제약은 없어졌다.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연주회 시작 전까지 무료함을 달래 줄 소설책도 한 권 사고, 좀 이른 저녁도 먹었다. 그 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소설책을 읽었다. 연주회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15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스테판 피 재키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회. 원래 이 연주회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임지 배속을 받은 후, 평일에는 꼼짝없이 충주에 갇혀 지내야 했다. 8월 한 달 동안이야 매일 같이 야근을 했으니 더욱 그랬지만, 비교적 정시 퇴근을 보장 받은 9월에도 평일 저녁 서울로 올라가 공연을 보는 건 근무 오프라도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한 얘기였다. 나는 주말 저녁 열리는 저렴한 연주회들을 찾아다니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런던필의 공연일인 9월 16일, 출장 의뢰가 들어왔다. 아니, 실은 그 언저리 평일 아무 때나 골라 가면 되는 것이었지만, 내가 16일로 확정지었다. 15일 수원 출장과 함께 처리하면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출장지는 서울, 업무가 일찍 끝나면 그대도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 런던필과 스테판 재키브의 협연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S석 자리를 예매 해 두었다(R석은 매진이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었다. 16일 출장 허락을 받았고, 업무는 일찍 끝났다. 일이 일찍 끝나거든 사무실로 돌아와 얼굴이라도 비추라는 지시는 적당한 얼버무림으로 넘겼다.

연주회

연주회 시작 30분 전에 세종홀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주차권부터 샀다. 공연관람객에게 한해서 7시간 주차권을 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주차권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10분에 500원씩의 주차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프로그램북을 구입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진열 해 놓고 팔고 있는 리코딩을 봤는데, 용재 오닐은 <노래>라는 타이틀로 또 다른 소품집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스테판 재키브의 앨범은 이미 구입한 브람스 소나타 앨범이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2층 D블럭 143번 석. 솔리스트들의 생생한 표정이나 연주를 감상하거나 그들의 소리를 듣기에는 그리 좋은 자린 아니었지만, 오케스트라를 한 눈에 담을 수 있고, 또 홀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를 듣기에는 괜찮은 자리였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그들은 참 즐겁게 연주를 했다. 스테판 피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은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먼발치에서도 그들의 표정이 생생히 읽히는 듯 했다. 스테판의 2악장 연주는 기대했던 것만큼 멋졌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소리를 넉넉하게 받쳐준 비올라의 연주도 훌륭했다. 아직 젊은 만큼, 주위의 다른 것들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을 음악을 위해 온전히 할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배타성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을 순수하게 연주하게 하며, 오직 음악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터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인 모양이다.

고전파 협주곡답게 곡은 오케스트라의 긴 제시부 연주로 시작된다. 여느 협주곡이라면 이 때 솔리스트들이 손 놓고 쉬고 있겠지만, 이 협주곡은 다르다. 두 사람은 각각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의 선율을 함께 연주했다. 3악장에서도 보통의 경우 솔리스트의 부분이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종결구를 연주하며 곡을 끝맺지만, 이때도 두 솔리스트는 마무리까지 함께 연주했다. 생각해보면 솔리스트가 주인공인 협주곡인데, 오케스트라만 덩그러니 종결구를 연주하고 곡을 끝맺는 것은 어딘가 민망하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매우 좋아하지만, 3악장은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모차르트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묻어나는 1악장에 이어, 너무나 강렬한 인상의 2악장이 연주된 뒤에 이어지는 3악장은, 어딘가 1악장의 재탕 같고 개성이 없이 밋밋한 느낌이다. 2악장에서 한껏 고조된 감정이, 3악장에서 전환되고 발산되었다면 좋을 텐데, 뭔가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선택을 앞두고는 그냥 옆길로 새버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두 솔리스트의 훌륭한 앙상블을 끝까지 관람하는 것만으로 흡족한 연주였다.

차이코프스키 5번

좋은 연주라는 것은 어떤 연주일까.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즐거운 연주’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떤 연주가 즐거운 연주인가 하면, 일단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해야 한다. 나는 이따금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에서, 마치 내가 사무 보듯 그저 직업적, 기계적으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놀랍지만 솔리스트 중에도 그런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 연주자에게 항상 감상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열정과 지적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주회장을 찾는 관객은, 분명 연주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음악과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주자의 맥없고 사무적인 태도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관객이 그토록 동경하는 세계에 앉아있으면, 프로는 설령 그것이 자신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더라도 관객이 기대하는 바에 맞춰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구석구석을 눈여겨 보다보면, 연주회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사람들의 연주가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할 수 없다.

악장부터 맨 뒷자리의 연주자까지, 적어도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만큼은 음악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다는 듯한 적극적인 태도. 그것은 연주회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연주회에 빠져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먼저 연주자들이 그런 기회를 제공할 마음자세가 갖추어져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런던필의 클라리넷 연주자. 마치 메트로놈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온 몸으로 연주를 했다. 머리가 희어진, 나이 지극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풍채는 거의 지휘자급이었는데, 그저 음악이 너무 좋다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태도로 연주를 했다. 플루트의 음색은 반짝였다. 금관 쪽에서는 큰 실수가 한 번 있었다(트럼펫인지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의욕이 앞선 결과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연주를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고 또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굉장히 피곤한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에게서 순간을 즐기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자연히 관객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1악장의 연주는 상당히 템포가 빨랐다. 클라리넷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악장인데, 연주자의 액션이 정말 컸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 해 주는 게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2층의 먼 객석에서도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2악장의 호른 솔로는 너무 아름다웠고, 한 바탕 운명의 동기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 이어진 바이올린의 노래는 황홀했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에서는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한 차례 큰 실수가 있었는데, 금관 쪽에서 들리지 말아야 할 ‘빰’이 들렸던 것이다. 실수는, 곡에 대한 집중도를 한 순간 완전히 깨뜨려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이 잘 갖추어진 탄탄한 연주에서라면 한 번의 실수 정도는 연주회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크게 저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찌릿하는 전율을 느끼며, 무언가 격렬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연주회였다.

앙코르 곡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2악장 왈츠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3악장을 연주했다. 메인이 교향곡 5번이었는데, 4번의 한 악장을 통째로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것은 의외였지만, 4번의 3악장은 길이도 5분 남짓으로 짧을 뿐만 아니라 현악기군 전체가 활을 내려놓고 피치카토로만 연주하는 대단히 재미있는 악장이라 앙코르 연주로서 효과는 만점이었다.

연주회 후

응어리져 있던 것을 후련하게 발산하고, 개운한 상태에서 연주회장을 빠져나왔다. 멋진 저녁.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빼려는데, 출구 쪽으로 길게 늘어선 차들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었다. 15분가량을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차를 다시 주차시켜놓고 연주회 전에 사둔 소설책을 들고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세종문화회관 로비는 아직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슬쩍 보니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사인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두 연주자의 사인은 일전에 받아 두었으므로, 대기열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심야까지 영업을 하는 커피 빈에 들어가 티라미스 케이크 한 조각과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주문해서 소설책을 읽으며 먹었다.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서울 시내에는 많은 차들이 돌아다녀서 예상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지만, 이 날 만큼은 짜증이 나지 않았다. 플레이 리스트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 5, 6번을 올려놓고 재생시켰다. 느긋하게 주유를 하고, 혼잡한 서울 시내를 인내심을 가지고 빠져나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내일은 다시 출근. 이전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오늘 이 꿈같은 하루는, 그 반복적인 하루하루와의 부대낌을 몇 달은 더 지속할 수 있는 활기를 부여해 주었다.

2010/09/19 22:54 2010/09/1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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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피 재키브

내가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유독 한국에서 그의 미들 네임을 꼭 표기하는 것은,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에게 ‘피’라는 이름을 물려준 사람이 한국 수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피천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천득의 수필에는 그의 딸 서영이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스테판 재키브는 바로 그 ‘서영이’의 아들이다. 사람들은 피천득의 수필에서 느껴지는 그 따스함을 스테판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 속에서 찾으려 하는 듯하다. 문학과 음악은 언연히 다르지만, 한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문인의 감성이 그 외손자에게로 이어져서 이제 그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켜쥐는 음악을 들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피천득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호와 이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관심은 별 관계가 없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고, 그에게 청중을 집중시키는 재능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의 리사이틀 소식이 들렸을 때, 주저 않고 표를 샀다. 그 리사이틀에서 그는 브람스의 FAE 소나타와 3번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 5번과 생상스의 카프리스를 연주했다. 브람스 소나타 전곡 녹음을 마친 후인만큼, 그의 연주는 여유로우며 확신에 차 있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들뜨거나 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중후하다고 느껴질 만큼 침착하게 연주했다. 내공이 있다고나 할까. 생상스의 카프리스는, 아마도 테크닉적으로도 전혀 밀릴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이었던 것 같다. 브람스도 생상스도 좋았지만, 청중을 가장 매료시킨 것은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쇼팽의 녹턴 20번이었다. 이 연주자가, 청중의 심장을 서서히,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움켜쥐었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다시 피가 돌도록 놓아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연주였다.

피천득과 닮은 점? 글쎄. 돌이켜보면 피천득의 수필이 마냥 따스한 정감이 넘쳐흐르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필은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정한 것이 사람의 눈 아니던가. 그 담담한 필체로 본 것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할 때,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테판 재키브가 때론 감성이 넘쳐흐르는 연주를 하지만, 그는 그토록 젊은 나이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브람스를 잘 연주하는 젊은이라니,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이미 비올라계의 슈퍼스타이며,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인 중의 한 명이다. 나는 그의 연주회를 직접 보러 간 일이 없다. 다만 딱 한 번, 무라지 카오리의 기타 연주회를 보러 갔을 때, 게스트로 등장하여 무라지 카오리와 그 날의 메인곡이었던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한 것을 들은 적은 있다. 솔직히 그와 무라지 카오리의 연주가 잘 어우러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연주회의 주인공은 무라지 카오리였지만, 이 곡을 연주할 때 만큼은 리처드 용재 오닐 쪽이 훨씬 여유롭고 확신에 차 보였으며, 리드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순박해 보이는 인상, 다소 어눌한 말투(아마 이건 한국어가 서툰 데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협주곡이나 소나타 같은 대곡의 녹음 보다는 소품집으로 인기 몰이를 한 탓도 있어서 그가 광고하는 커피 향만큼이나 부드럽고 유들유들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이지만, 나는 그의 연주가 마냥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정열적이며 가차 없는 연주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고전파 시대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서 초인적인 기교를 자랑하는 솔리스트들과 비현실적 열정을 불사르고 싶어 했던 작곡가들이 만난 낭만파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고전파 시대부터 낭만파, 이후 국민악파 시대까지 많은 협주곡들이 작곡되었지만, ‘이중 협주곡’이라는 형식의 곡은 그리 자주 작곡되지 않았다. 이런 형식은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에서 발견되는데, 여러 악기군에 돌아가며 솔로 부분을 연주하도록 하는 콘체르토 그로소가 그런 양식이다. 콘체르토 그로소 형식 안에서 솔로 부분을 연주하는 그룹을 솔로 그룹 혹은 콘체르티노라고 부른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할 동안 손을 놓고 쉬는 게 아니라, 함께 합주를 하다가 자기의 솔로 부분이 있을 때에만 솔리스트로 변신을 한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서도 이런 콘체르토 그로소 양식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원래 악보상에는 협주자도 솔로 파트 외의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주하도록 되어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합은, 이중 협주곡 중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힘든 희귀한 조합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바이올린족의 악기 중에서 서로 가장 가까운 친족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올린과 첼로의 대비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왜 하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합을 택했을까.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해는 1779년. 이 시기는 모차르트가 1777년부터 시작한 유럽 여행의 끝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도 방문했는데, 당시 만하임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연주 테크닉을 선도하는,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오케스트라였다. 즉각적인 영감을 워낙 순식간에 곡으로 구체화시켜버리는 모차르트이니만큼, 이 기간의 여행을 통해 새삼 비올라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일 수도 있다.

3악장 구성이며 연주 시간이 30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1악장과 3악장은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함이 묻어나지만, 2악장은 처절하리만큼 애처롭고 쓸쓸하다. 1악장에서는 두 솔로 악기에 완전히 균등하게 비중이 분배되었다. 하나가 달려가면 다른 하나가 쫓는 숨바꼭질 같은 느낌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따라 잡으면, 이번에는 좀 전과는 또 다른 호흡, 다른 보폭으로 새롭게 뜀박질을 시작한다. 시종 즐거운 분위기에서 놀이하듯 곡은 흘러간다.

2악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1악장이 마냥 즐거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면, 2악장은 잔혹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이올린은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것 같고, 비올라는 슬픔을 간신히 억누른 채 떨리는 목소리로 타이르는 것 같다. 이 2악장의 슬픈 대화를,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과연 어떻게 표현 해 줄지, 기대된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하면 베를린 필을, ‘오스트리아’하면 빈 필을 떠올린다. 음악의 본고장 유럽이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각 나라의 왕이며 제후들은 각자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거느렸고, 수많은 작곡가와 전문 연주자들을 배출했다. 독일의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어디 베를린 필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고, ‘지존의 존재’를 바라는 법이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최고 오케스트라는? LSO인가? LPO인가? RPO인가? 아니면 BBC? 당최 구분도 가지 않는 이름들이다. LSO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PO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덤으로 RPO는 요즘 위상이 많이 추락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말하고, BBC는 물론 방송국 BBC의 교향악단이다(KBS나 NHK 교향악단을 생각하면 된다).

20세기에 비틀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음악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는 자괴감에 젖어있던 영국은, 역설적으로 유럽 대륙 음악의 가장 열성적인 수요자였다. 그런 만큼 영국 내에는 굴지의 오케스트라들이 많지만, 그 어느 하나도 베를린 필이나 빈 필처럼 세계인을 압도할 명성을 지니고 있지 못 하다는 것은(한 마디로 ‘고만고만’하다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오케스트라의 대중적 인지도나 잡지에 오르내리는 순위표는 호사가들이나 집착하고 좋아하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오케스트라들은 깊은 역사를 지녔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잘 계승해 오고 있다(LPO는 다소 파격의 길을 걷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들의 유명세가 아니다. 지휘자의 이름도 아니다. 그들 공연의 티켓 값도 아니다. 오직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오케스트라를 평가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하룻밤에 20만원 돈을 지불해가며 듣기에는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비싼 티켓 값이 황홀한 감동을 선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기만적인 감동을 부르짖으며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리 돈의 위력이 막강하더라도 감동을 억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티켓 값이 비싸든 싸든, 그건 하나의 가능성을 구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LPO가 좋은 오케스트라인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다. 설령 그 명성을 믿는다 하더라도, 연주회 날 정작 감동적인 연주를 선사할지 어떨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몇 번의 무대에 섰고, 꽤 여러 곡과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라면 역시 첫 연주회를 꼽을 수밖에 없겠지만, 가장 즐거웠던 연주회를 꼽자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 마지막 연주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한심할 정도로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악기 연주 실력이 늘지 않는데, 그래도 마지막 연주회 때는 첫 연주회 때보다야 실력이 향상 된 상태였다. 부분부분 스스로도 연주하는 기쁨을 조금씩 느끼며 참여했다.

한 번이라도 연주를 해 본 곡은, 언제 들어도 남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그게 음악의 재미겠지만, 알 면 알수록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멋진 연주를 기대해 본다.

2010/09/14 01:07 2010/09/14 0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