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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전

휴일도 아니고 근무 오프도 아닌 평일. 여느 때라면 아침 7시 반까지 출근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10시가 다 되어서야 침대에서 일어났다. 출장 2일차. 오늘은 서울에서 일이 있다. 26일부터 시작되는 공군전우회 주관 한일교류 행사 통역 업무에 대비해서 사전 업무 협의를 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도록, 말러 2번 3악장을 크게 틀어놓았다.

1층으로 내려가 냉장고 문을 여니, 지난 일요일에 사온 맥도날드 머핀이 그대로 남아있다. 차가운 머핀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데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작년 여름 맥도날드에서 받아 온 커다란 콜라 컵에 어름을 가득 채우고 콜라를 따랐다. 가사 도와주는 아주머니를 아주 오랜만에 봤다.

12시 반, 최대한 말쑥한 느낌으로 차려입고 짐을 챙겨 집을 나섰다. 한낮의 도로는 대체로 한산했다. 그러나 서울 도심으로 갈수록 교통 사정은 좀 복잡해졌다. 대방동 공군회관에 도착하니, 이곳 역시 정문에서 헌병들이 지키고 서 있었다. 신분증을 맡기고 방문증을 받았다.

4층 공군전우회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 전 충주의 선임에게 전화 한 통을 넣었다. 선임은, 일이 일찍 끝나거든 충주로 내려와서 사무실에 잠깐 얼굴이라도 비추라고 했지만, 저녁 7시 반 연주회를 예약해 놓은 상태라 그건 불가능했다. 그러나 일단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은 해 두었다.

사전 협의는 20분 만에 어이없으리만큼 빨리 끝나버렸다. 너무 빨리 끝나서 어쩌면 사무실로 돌아가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그쪽에서는 상관 안 할 테니 알아서 하라는 눈치였다. 시간이 너무 남아서, 최근에 국내 개봉했다는 노다메 칸타빌레 극장판이라도 볼까 싶어 가까운 영등포 롯데시네마를 찾았지만, 낮 시간에는 상영 스케줄이 없었다. 결국 다시 차를 몰고 세종문화회관으로 향했다.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으니 오후 4시였다. 그제야 나는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서 업무가 끝났다는 보고를 올렸다. 기왕이니 서점도 들르고 저녁도 해결하고 천천히 출발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일단 이것으로 행동에 제약은 없어졌다. 광화문 교보문고로 갔다. 연주회 시작 전까지 무료함을 달래 줄 소설책도 한 권 사고, 좀 이른 저녁도 먹었다. 그 뒤 세종문화회관 체임버 홀 옆에 있는 카페에 들어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면서 소설책을 읽었다. 연주회에 집중력을 높이기 위해 15분 정도 눈을 붙이기도 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스테판 피 재키브,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회. 원래 이 연주회를 볼 수 있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웠다. 임지 배속을 받은 후, 평일에는 꼼짝없이 충주에 갇혀 지내야 했다. 8월 한 달 동안이야 매일 같이 야근을 했으니 더욱 그랬지만, 비교적 정시 퇴근을 보장 받은 9월에도 평일 저녁 서울로 올라가 공연을 보는 건 근무 오프라도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한 얘기였다. 나는 주말 저녁 열리는 저렴한 연주회들을 찾아다니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그런데 런던필의 공연일인 9월 16일, 출장 의뢰가 들어왔다. 아니, 실은 그 언저리 평일 아무 때나 골라 가면 되는 것이었지만, 내가 16일로 확정지었다. 15일 수원 출장과 함께 처리하면 편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출장지는 서울, 업무가 일찍 끝나면 그대도 세종문화회관으로 달려가 런던필과 스테판 재키브의 협연을 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약간의 위험 부담은 있었지만, S석 자리를 예매 해 두었다(R석은 매진이었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 되었다. 16일 출장 허락을 받았고, 업무는 일찍 끝났다. 일이 일찍 끝나거든 사무실로 돌아와 얼굴이라도 비추라는 지시는 적당한 얼버무림으로 넘겼다.

연주회

연주회 시작 30분 전에 세종홀로 들어갔다. 로비에서 주차권부터 샀다. 공연관람객에게 한해서 7시간 주차권을 5천원에 판매하고 있다. 이 주차권을 구입하지 않는다면 10분에 500원씩의 주차요금을 지불해야 한다. 프로그램북을 구입하면서 같은 테이블에 진열 해 놓고 팔고 있는 리코딩을 봤는데, 용재 오닐은 <노래>라는 타이틀로 또 다른 소품집을 내놓은 모양이었다. 스테판 재키브의 앨범은 이미 구입한 브람스 소나타 앨범이었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2층 D블럭 143번 석. 솔리스트들의 생생한 표정이나 연주를 감상하거나 그들의 소리를 듣기에는 그리 좋은 자린 아니었지만, 오케스트라를 한 눈에 담을 수 있고, 또 홀을 가득 채우는 사운드를 듣기에는 괜찮은 자리였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그들은 참 즐겁게 연주를 했다. 스테판 피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은 마치 실내악을 연주하는 것 같았다. 먼발치에서도 그들의 표정이 생생히 읽히는 듯 했다. 스테판의 2악장 연주는 기대했던 것만큼 멋졌다. 찢어질 듯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소리를 넉넉하게 받쳐준 비올라의 연주도 훌륭했다. 아직 젊은 만큼, 주위의 다른 것들에 주의를 빼앗기지 않고 자신들의 시간을 음악을 위해 온전히 할애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 배타성이 그들로 하여금 음악을 순수하게 연주하게 하며, 오직 음악으로 소통하는 방식을 터득하도록 하고 있는 것인 모양이다.

고전파 협주곡답게 곡은 오케스트라의 긴 제시부 연주로 시작된다. 여느 협주곡이라면 이 때 솔리스트들이 손 놓고 쉬고 있겠지만, 이 협주곡은 다르다. 두 사람은 각각 바이올린과 비올라 파트의 선율을 함께 연주했다. 3악장에서도 보통의 경우 솔리스트의 부분이 끝나면 오케스트라가 종결구를 연주하며 곡을 끝맺지만, 이때도 두 솔리스트는 마무리까지 함께 연주했다. 생각해보면 솔리스트가 주인공인 협주곡인데, 오케스트라만 덩그러니 종결구를 연주하고 곡을 끝맺는 것은 어딘가 민망하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매우 좋아하지만, 3악장은 좀 아쉽다는 느낌이 든다. 모차르트 특유의 유쾌하고 발랄한 느낌이 묻어나는 1악장에 이어, 너무나 강렬한 인상의 2악장이 연주된 뒤에 이어지는 3악장은, 어딘가 1악장의 재탕 같고 개성이 없이 밋밋한 느낌이다. 2악장에서 한껏 고조된 감정이, 3악장에서 전환되고 발산되었다면 좋을 텐데, 뭔가 운명을 좌우하는 거대한 선택을 앞두고는 그냥 옆길로 새버린 느낌이랄까. 그래도 두 솔리스트의 훌륭한 앙상블을 끝까지 관람하는 것만으로 흡족한 연주였다.

차이코프스키 5번

좋은 연주라는 것은 어떤 연주일까. 여러 가지 조건이 있겠지만, ‘즐거운 연주’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어떤 연주가 즐거운 연주인가 하면, 일단 연주자들이 즐겁게 연주해야 한다. 나는 이따금 국내 오케스트라들의 연주에서, 마치 내가 사무 보듯 그저 직업적, 기계적으로 연주를 하는 사람들을 본다(놀랍지만 솔리스트 중에도 그런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문 연주자에게 항상 감상자의 수준을 뛰어넘는 열정과 지적 수준을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연주회장을 찾는 관객은, 분명 연주에 대한 기대를 품고 있다. 우리는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음악과 만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이 연주자의 맥없고 사무적인 태도로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관객이 그토록 동경하는 세계에 앉아있으면, 프로는 설령 그것이 자신의 밥벌이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더라도 관객이 기대하는 바에 맞춰 열정을 보여주어야 한다. 오케스트라 구석구석을 눈여겨 보다보면, 연주회의 기분을 완전히 망치는 일도 다반사다. 그런 사람들의 연주가 아름다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애초에 할 수 없다.

악장부터 맨 뒷자리의 연주자까지, 적어도 연주가 이루어지고 있는 순간만큼은 음악에 모든 것을 헌신하고 있다는 듯한 적극적인 태도. 그것은 연주회를 관람하는 관객에게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친다. 연주회에 빠져들 수 있느냐 없느냐는, 먼저 연주자들이 그런 기회를 제공할 마음자세가 갖추어져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런던필의 클라리넷 연주자. 마치 메트로놈처럼 몸을 좌우로 움직이며, 온 몸으로 연주를 했다. 머리가 희어진, 나이 지극한 바이올리니스트는 풍채는 거의 지휘자급이었는데, 그저 음악이 너무 좋다는 어린애 같은 천진한 태도로 연주를 했다. 플루트의 음색은 반짝였다. 금관 쪽에서는 큰 실수가 한 번 있었다(트럼펫인지 뭐였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건 의욕이 앞선 결과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연주를 세계인들에게 들려주고 또 보여주기 위해 여행을 다니는 것이다. 그건 어쩌면 굉장히 피곤한 일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즐거운 일이기도 하다. 연주자들에게서 순간을 즐기려는 태도가 느껴졌다. 자연히 관객은 즐거울 수밖에 없다.

1악장의 연주는 상당히 템포가 빨랐다. 클라리넷이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악장인데, 연주자의 액션이 정말 컸다. 조금은 우스꽝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하지만 그렇게 온몸으로 표현 해 주는 게 결코 나쁘지 않다고 본다. 2층의 먼 객석에서도 연주자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2악장의 호른 솔로는 너무 아름다웠고, 한 바탕 운명의 동기가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간 뒤에 이어진 바이올린의 노래는 황홀했다.

4악장 알레그로 비바체에서는 내 귀가 틀리지 않았다면 한 차례 큰 실수가 있었는데, 금관 쪽에서 들리지 말아야 할 ‘빰’이 들렸던 것이다. 실수는, 곡에 대한 집중도를 한 순간 완전히 깨뜨려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가벼이 보아 넘길 수 없는 것이긴 하지만, 기본이 잘 갖추어진 탄탄한 연주에서라면 한 번의 실수 정도는 연주회의 전체적인 만족도를 크게 저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가슴속에서 찌릿하는 전율을 느끼며, 무언가 격렬한 감정이 솟구쳐 오르는 것 같은 감동을 느낀 연주회였다.

앙코르 곡으로는 차이코프스키의 현악 세레나데 2악장 왈츠와,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 3악장을 연주했다. 메인이 교향곡 5번이었는데, 4번의 한 악장을 통째로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것은 의외였지만, 4번의 3악장은 길이도 5분 남짓으로 짧을 뿐만 아니라 현악기군 전체가 활을 내려놓고 피치카토로만 연주하는 대단히 재미있는 악장이라 앙코르 연주로서 효과는 만점이었다.

연주회 후

응어리져 있던 것을 후련하게 발산하고, 개운한 상태에서 연주회장을 빠져나왔다. 멋진 저녁. 주차장으로 가서 차를 빼려는데, 출구 쪽으로 길게 늘어선 차들은 조금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 하고 있었다. 15분가량을 차 안에서 기다리다가, 그냥 차를 다시 주차시켜놓고 연주회 전에 사둔 소설책을 들고서 다시 밖으로 나왔다. 세종문화회관 로비는 아직도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는데, 안으로 들어가 슬쩍 보니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사인회를 열고 있었다. 나는 두 연주자의 사인은 일전에 받아 두었으므로, 대기열에 합류하지는 않았다.

심야까지 영업을 하는 커피 빈에 들어가 티라미스 케이크 한 조각과 바닐라 라테 한 잔을 주문해서 소설책을 읽으며 먹었다. 11시 반이 다 되어서야 주차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고, 자정 가까운 시간에도 서울 시내에는 많은 차들이 돌아다녀서 예상 귀가 시간은 점점 늦어지고 있었지만, 이 날 만큼은 짜증이 나지 않았다. 플레이 리스트에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 5, 6번을 올려놓고 재생시켰다. 느긋하게 주유를 하고, 혼잡한 서울 시내를 인내심을 가지고 빠져나와,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내일은 다시 출근. 이전과 다를 것 없는 똑같은 일상으로 돌아간다. 그러나 오늘 이 꿈같은 하루는, 그 반복적인 하루하루와의 부대낌을 몇 달은 더 지속할 수 있는 활기를 부여해 주었다.

2010/09/19 22:54 2010/09/19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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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한화와 함께하는 가족음악축제

오래되어서 이미 리뷰를 쓰는 의미는 퇴색되어버렸지만, 일단 기록으로 남겨둔다는 의미에서 쓴다.

8월. 덥거나 비 내리거나. 아니 숨 막힐 듯 더우면서 항상 비는 내리고 있었다. 새해 벽두를 강타한 전국 대폭설부터 시작해서 유난히 기상 변덕이 심한 올해. 지긋지긋한 장맛비와 뜨거운 공기에 만물이 힘겨운 여름나기를 하고 있을 무렵, 나는 아침 6시에 출근해서 밤 10시 가까워서야 퇴근을 하는 버거운 교육 스케줄을 감당하고 있었다.

이 지칠 뿐인 8월, 위안거리가 되어준 것이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한 가족음악축제. 8월 한 달 동안 매주 주말마다 오케스트라 공연 하나씩을 무대에 올렸는데, 전석 1만 5천원으로 가격이 매우 저렴했다. 주중에는 수면도 제대로 못 취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렸지만, 주말이면 모든 것을 잊고 연주회장을 찾아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을 가졌다.

물론 연주회의 모든 것이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아니다. 방송인 유정아라는 사람이 서곡 연주가 끝나면 등장해서 당일 프로그램에 대해 약간의 해설을 했는데,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는 내용 이상의 것을 언급한 게 거의 없다. 그럴 거라면 굳이 이 사람을 등장시켜야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그리고 해설 중에는 무대 뒤편에 빔 프로젝터로 화면을 띄워놓았는데, 작곡가 생몰 연대 등이 엉망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가령 베토벤의 사망 시기를 1820년으로 적어 놓는다든가, 베버의 경우에는 전혀 엉뚱한 연대를 적어 놓기도 했다(아마 막스 브루흐와 혼동을 한 것 같았는데). 연주와는 무관하지만 이런 실수 하나하나가 전반적인 연주회의 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된다. 연주 시작 전, 해당 곡의 작곡가 생몰 연대부터 틀려버리는데, 대체 관객에게 어떤 진지한 감상의 자세를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1. 8월 8일 충남교향악단

지휘/구모영 바이올린/유시연

모차르트-오페라 <코지 판 투테> 서곡

브루흐-바이올린 협주곡 1번

베토벤-교향곡 8번

지휘자 구모영. 내가 유포니아에서 첫 연주회를 섰을 때 지휘를 맡아주었던 분이다. 시종 진지하고, 연습 중에는 웃음기가 거의 없었다. 일본 오케스트라에 있을 때 그 숨 막힐 정도로 긴장감 넘치는 연습 분위기에 익숙해져 있던 터라 당시 나는 이상하게 여기지도 않았지만,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로서는 훨씬 부드럽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연습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닫고 보니, 이 지휘자 선생님이 그리 재밌는 사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진지한 만큼 꼼꼼했다. 전체 연습이 없는 날에도 일부러 학교로 찾아와 파트 연습을 지도해 주는 등, 그 성실함이 돋보였다.

연주회는 모차르트의 <코지 판 투테> 서곡으로 발랄하게 문을 열었다. 지난 5월 훈련 중 특별외박 나와 본 연주회 이후 약 석 달 만의 연주회라, 단지 오케스트라의 연주 모습을 보고 있는 자체만으로 황홀했다.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중에 ‘딱 한 곡만 유명한 작곡가’란 주제로 글이라도 써 보면 어떨까 싶은데, 실현된다면 브루흐를 그 안에 넣어야 할지 말지 고민된다. 사실 브루흐라면 스코틀랜드 환상곡이나 콜 니드라이 같은 유명한 곡들이 있지만, 널리 알려지고 연주되는 그의 대표작이라면 이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꼽을 수밖에 없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은 3악장만의 선율만이 너무 유명하고, 콜 니드라이는 아무래도 대중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고 하기에는 지명도가 약하다. 그러나 브루흐 바이올린 협주곡 1번만큼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의 단골 레퍼토리로 상당히 자주 연주되는 만큼, 바이올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곧 접하게 되는 음악이다.

1악장은 상당히 장중하면서도 바이올린의 매우 서정적인 선율이 돋보이는 구성이다. 스코틀랜드 환상곡을 예견케 하는 다소 민요적인 느낌의 선율이 간간히 들려오는 아름다운 2악장. 그리고 절로 어깨들 들썩이게 만드는 신나는 3악장. 이제 와서 연주가 어땠는지 논하는 게 의미가 없겠지만, 약간 거친 면은 있어도 흡족한 연주로 기억한다.

이 날의 메인 곡은 베토벤 8번이었다. 6번과 같은 F major로 작곡된 곡. 6번에 비해 길이가 짧다는 의미인지, 베토벤은 친히 “My little Symphony in F”라고 언급한 바 있다. 모차르트 풍의 익살스럽고 장난스러운, 한 마디로 유쾌한 음악의 베토벤 판이라고나 할까, 심각하지 않고 흥겨우면서 베토벤다운 강렬한 리듬과 힘이 깃들어있는 음악이다. 비록 나의 플레이리스트는 5번, 6번, 7번 다음 9번으로 이어지고 말지만…….

앙코르 곡은 따로 준비되지 않았다. 대신 8번의 4악장 일부를 다시 연주했는데, 다시 들려줘도 좋을 만큼 준비가 잘 됐다는 뜻일까. 구모영의 지휘는 상당히 깔끔했고, 오케스트라를 지배하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2. 8월 14일 수원시립교향악단

지휘/최수열 피아노/박수진

베버-오베론 서곡

베토벤-피아노 협주곡 4번

시벨리우스-교향곡 2번

가족음악축제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음악 연주로 클래식에 대한 흥미 유발”을 기치로 내걸고 있었는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이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이 명곡임에는 틀림없지만 과연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음악일까?

연주회에 집중하기에는 나는 격무로 너무 지쳐있었고, 수면 부족으로 인해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결국 연주회에서 졸아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는데, 오베론 서곡부터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4번까지는 거의 제대로 듣지를 못 했다. 시벨리우스 교향곡도 집중해서 듣다가 간간히 정신이 다른 차원의 세계를 탐험하고 돌아오는 것을 느껴야 했다. 연주회장의 분위기도 안 좋았다. 본격적인 여름방학 시즌이라 예술의 전당에는 주차할 공간조차 부족했고, 연주회장 안에는 초등학생들이 넘쳐났다. 세상을 온통 자기중심적으로 밖에는 바라볼 줄 모르는 어린 녀석들. 연주회장에서 버젓이 휴대전화를 꺼내놓고 만지작거린다. 그 불빛은 정말 거슬린다. 휴대전화를 가지고 놓는 것이 싫증이 나면 연주를 조금 듣는 척하다 이내 잠들어버린다. 자는 것에 관한 한, 이날만큼은 나도 별로 할 말이 없었지만…….

그래도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4악장이 연주될 때만큼은, 이 하나로 초점이 모아지지 않던 부사한 객석에도 순간 통일된 평화의 순간이 찾아오고, 모든 사람들은 하나의 위대한 예술 작품이 지적 감수성의 수준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평등하게 뿌리는 그 감동을 받아들였다. 물론 그 놀라운 집중의 시간은 아주 잠시 뿐이었지만.

3. 8월 22일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지휘/이종진 첼로/홍성은

코다이-갈란타 무곡

드보르작-첼로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심포닉 댄스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은 나도 처음 들어보는 곡이었다. 코다이라는 작곡가 자체가 일반에는 생소한데, 좀 규모가 있는 음반 가게를 가더라도 코다의 녹음으로는 무반주 첼로 소나타를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바르톡과 함께 헝가리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지만, 사실 작곡가로서보다는 음악 교육자로서 더 유명했고, 많은 역할을 수행했다.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따로 설명이 필요 없는, 역사상 모든 첼로 협주곡들 중 단연 으뜸으로 손꼽히는 곡. 그러나 연주는 딱히 인상적이지 않았다.

라흐마니노프. 생각해보면 그는 상당한 대작곡가였다. 장기인 피아노 협주곡 분야에서 걸작 2번과 3번을 비롯하여 네 개의 작품을 남기고 있고, 교향곡도 세 곡이나 썼다. 심포닉 댄스는 교향곡 3번 이후에 작곡된, 그의 마지막 교향악이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에서 영향 받아 독특한 리듬을 사용했다고 하는데, 그래도 결국 라흐마니노프는 낭만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지는 못 한 것 같다. 뭔가 쿵쾅거리다가도 항상 음악 같은 음악으로 돌아오고 만다. 그게 라흐마니노프다운 것이지만.

편성에 알토 색소폰이 있어서, 오케스트라 무대에서 색소폰이 연주되는 색다른 모습도 구경할 수 있다.

이상 음악축제 기간에 열린 여섯 번의 공연 중 세 번의 공연을 관람했다. 저렴한 가격에, 기분 전환하기에는 적절한 기회였다.

2010/09/19 00:06 2010/09/1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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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판 피 재키브

내가 요즘 가장 주목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유독 한국에서 그의 미들 네임을 꼭 표기하는 것은, 그에게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음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그에게 ‘피’라는 이름을 물려준 사람이 한국 수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피천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천득의 수필에는 그의 딸 서영이의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스테판 재키브는 바로 그 ‘서영이’의 아들이다. 사람들은 피천득의 수필에서 느껴지는 그 따스함을 스테판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선율 속에서 찾으려 하는 듯하다. 문학과 음악은 언연히 다르지만, 한국이 자랑스러워하는 문인의 감성이 그 외손자에게로 이어져서 이제 그가 세계인의 마음을 움켜쥐는 음악을 들려주기를 기대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피천득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호와 이 바이올리니스트에 대한 관심은 별 관계가 없다. 나는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이 바이올리니스트가 연주하는 장면을 보았고, 그에게 청중을 집중시키는 재능이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의 리사이틀 소식이 들렸을 때, 주저 않고 표를 샀다. 그 리사이틀에서 그는 브람스의 FAE 소나타와 3번 소나타, 그리고 베토벤 5번과 생상스의 카프리스를 연주했다. 브람스 소나타 전곡 녹음을 마친 후인만큼, 그의 연주는 여유로우며 확신에 차 있었다. 젊은 나이임에도 들뜨거나 하는 기색이 없이, 오히려 중후하다고 느껴질 만큼 침착하게 연주했다. 내공이 있다고나 할까. 생상스의 카프리스는, 아마도 테크닉적으로도 전혀 밀릴 게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선곡이었던 것 같다. 브람스도 생상스도 좋았지만, 청중을 가장 매료시킨 것은 앙코르 곡으로 연주한 쇼팽의 녹턴 20번이었다. 이 연주자가, 청중의 심장을 서서히, 아슬아슬한 순간까지 움켜쥐었다가 숨이 끊어지기 직전에 다시 피가 돌도록 놓아주는 능력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완벽한 연주였다.

피천득과 닮은 점? 글쎄. 돌이켜보면 피천득의 수필이 마냥 따스한 정감이 넘쳐흐르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수필은 가장 솔직한 자기 고백이다. 어찌 보면 세상에서 가장 무정한 것이 사람의 눈 아니던가. 그 담담한 필체로 본 것 느낀 것을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할 때, 높은 곳에서 뚝 떨어지는 것 같은 서늘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스테판 재키브가 때론 감성이 넘쳐흐르는 연주를 하지만, 그는 그토록 젊은 나이에 그것을 의식적으로 해내고 있는 것이다. 브람스를 잘 연주하는 젊은이라니, 생각해보면 소름끼치는 구석이 있다.

리처드 용재 오닐

리처드 용재 오닐. 그는 이미 비올라계의 슈퍼스타이며,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음악인 중의 한 명이다. 나는 그의 연주회를 직접 보러 간 일이 없다. 다만 딱 한 번, 무라지 카오리의 기타 연주회를 보러 갔을 때, 게스트로 등장하여 무라지 카오리와 그 날의 메인곡이었던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연주한 것을 들은 적은 있다. 솔직히 그와 무라지 카오리의 연주가 잘 어우러졌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연주회의 주인공은 무라지 카오리였지만, 이 곡을 연주할 때 만큼은 리처드 용재 오닐 쪽이 훨씬 여유롭고 확신에 차 보였으며, 리드해 나가는 느낌이었다.

순박해 보이는 인상, 다소 어눌한 말투(아마 이건 한국어가 서툰 데에서 기인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협주곡이나 소나타 같은 대곡의 녹음 보다는 소품집으로 인기 몰이를 한 탓도 있어서 그가 광고하는 커피 향만큼이나 부드럽고 유들유들한 이미지를 풍기는 그이지만, 나는 그의 연주가 마냥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것이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누구보다도 단호하고 정열적이며 가차 없는 연주력의 소유자일지도 모른다.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협주곡이라는 장르는 고전파 시대부터 비약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서 초인적인 기교를 자랑하는 솔리스트들과 비현실적 열정을 불사르고 싶어 했던 작곡가들이 만난 낭만파 시대에 절정을 이루었다. 고전파 시대부터 낭만파, 이후 국민악파 시대까지 많은 협주곡들이 작곡되었지만, ‘이중 협주곡’이라는 형식의 곡은 그리 자주 작곡되지 않았다. 이런 형식은 오히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바로크 시대의 협주곡에서 발견되는데, 여러 악기군에 돌아가며 솔로 부분을 연주하도록 하는 콘체르토 그로소가 그런 양식이다. 콘체르토 그로소 형식 안에서 솔로 부분을 연주하는 그룹을 솔로 그룹 혹은 콘체르티노라고 부른다. 이들은 오케스트라 반주를 할 동안 손을 놓고 쉬는 게 아니라, 함께 합주를 하다가 자기의 솔로 부분이 있을 때에만 솔리스트로 변신을 한다. 모차르트의 신포니아 콘체르탄테에서도 이런 콘체르토 그로소 양식의 잔재를 확인할 수 있는데, 원래 악보상에는 협주자도 솔로 파트 외의 부분에서는 오케스트라와 함께 합주하도록 되어있다.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합은, 이중 협주곡 중에서도 그 예를 찾기가 힘든 희귀한 조합이다.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바이올린족의 악기 중에서 서로 가장 가까운 친족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바이올린과 첼로의 대비만큼 드라마틱한 효과를 거두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차르트는 왜 하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조합을 택했을까. 모차르트가 이 곡을 작곡한 해는 1779년. 이 시기는 모차르트가 1777년부터 시작한 유럽 여행의 끝무렵이었다. 이 시기에 모차르트는 만하임 궁정 오케스트라도 방문했는데, 당시 만하임 오케스트라는 새로운 연주 테크닉을 선도하는, 당대 최고의 실력을 갖춘 오케스트라였다. 즉각적인 영감을 워낙 순식간에 곡으로 구체화시켜버리는 모차르트이니만큼, 이 기간의 여행을 통해 새삼 비올라의 매력에 눈을 뜬 것일 수도 있다.

3악장 구성이며 연주 시간이 30분에 이르는 대곡이다. 1악장과 3악장은 모차르트 특유의 경쾌함이 묻어나지만, 2악장은 처절하리만큼 애처롭고 쓸쓸하다. 1악장에서는 두 솔로 악기에 완전히 균등하게 비중이 분배되었다. 하나가 달려가면 다른 하나가 쫓는 숨바꼭질 같은 느낌이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따라 잡으면, 이번에는 좀 전과는 또 다른 호흡, 다른 보폭으로 새롭게 뜀박질을 시작한다. 시종 즐거운 분위기에서 놀이하듯 곡은 흘러간다.

2악장은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1악장이 마냥 즐거운 유년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면, 2악장은 잔혹한 운명 앞에 놓인 두 남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바이올린은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것 같고, 비올라는 슬픔을 간신히 억누른 채 떨리는 목소리로 타이르는 것 같다. 이 2악장의 슬픈 대화를, 스테판 재키브와 리처드 용재 오닐이 과연 어떻게 표현 해 줄지, 기대된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독일’하면 베를린 필을, ‘오스트리아’하면 빈 필을 떠올린다. 음악의 본고장 유럽이다. 19세기까지만 하더라도 각 나라의 왕이며 제후들은 각자의 궁정 오케스트라를 거느렸고, 수많은 작곡가와 전문 연주자들을 배출했다. 독일의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어디 베를린 필뿐이겠는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순위 매기기를 좋아하고, ‘지존의 존재’를 바라는 법이다. 각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오케스트라가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영국의 최고 오케스트라는? LSO인가? LPO인가? RPO인가? 아니면 BBC? 당최 구분도 가지 않는 이름들이다. LSO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LPO는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이다. 덤으로 RPO는 요즘 위상이 많이 추락한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말하고, BBC는 물론 방송국 BBC의 교향악단이다(KBS나 NHK 교향악단을 생각하면 된다).

20세기에 비틀즈가 등장하기 전까지 세계 음악에 거의 기여한 바가 없다는 자괴감에 젖어있던 영국은, 역설적으로 유럽 대륙 음악의 가장 열성적인 수요자였다. 그런 만큼 영국 내에는 굴지의 오케스트라들이 많지만, 그 어느 하나도 베를린 필이나 빈 필처럼 세계인을 압도할 명성을 지니고 있지 못 하다는 것은(한 마디로 ‘고만고만’하다는 것은) 조금 서글픈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어차피 오케스트라의 대중적 인지도나 잡지에 오르내리는 순위표는 호사가들이나 집착하고 좋아하는 장난에 지나지 않는다. 영국의 오케스트라들은 깊은 역사를 지녔고, 오늘날까지 그 전통을 잘 계승해 오고 있다(LPO는 다소 파격의 길을 걷고 있긴 하다). 문제는 그들의 유명세가 아니다. 지휘자의 이름도 아니다. 그들 공연의 티켓 값도 아니다. 오직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만이,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며 또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오케스트라를 평가하는 유일무이한 기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그 어떤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하룻밤에 20만원 돈을 지불해가며 듣기에는 아깝게 느껴질 것이다. 나 역시 비싼 티켓 값이 황홀한 감동을 선사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가끔 기만적인 감동을 부르짖으며 연주회장을 빠져나오는 경우가 있지만, 아무리 돈의 위력이 막강하더라도 감동을 억지로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티켓 값이 비싸든 싸든, 그건 하나의 가능성을 구입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LPO가 좋은 오케스트라인지 어떤지, 나는 알 수 없다. 설령 그 명성을 믿는다 하더라도, 연주회 날 정작 감동적인 연주를 선사할지 어떨지는 또 알 수 없는 일이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으로서, 몇 번의 무대에 섰고, 꽤 여러 곡과 만났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연주회라면 역시 첫 연주회를 꼽을 수밖에 없겠지만, 가장 즐거웠던 연주회를 꼽자면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한 마지막 연주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참 한심할 정도로 들이는 노력과 시간에 비해 악기 연주 실력이 늘지 않는데, 그래도 마지막 연주회 때는 첫 연주회 때보다야 실력이 향상 된 상태였다. 부분부분 스스로도 연주하는 기쁨을 조금씩 느끼며 참여했다.

한 번이라도 연주를 해 본 곡은, 언제 들어도 남다르게 들리는 법이다. 그게 음악의 재미겠지만, 알 면 알수록 더 많은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멋진 연주를 기대해 본다.

2010/09/14 01:07 2010/09/14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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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그렇게 되도록, 운명을 관장하는 누군가의 종이 위에 쓰여 있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한 개인의 처신으로 극복할 수 없는 불가측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들은, 항상 이중적인 면을 지니고 있어 어떤 식으로 해석해야 할지 알 수가 없다. 전날, 선임이 몰고 가던 내 차가 도로 위에 서버렸다. 만일 차가 말썽을 일이키지 않아서, 차를 찾으러 가기 위해 40~50분의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더라면 2부 공연 시작 시간에 맞춰 도착할 수 있었을까? 혹은 목요일 저녁의 우연한 회식이 아니었더라면 내 고물 차는 주말 저녁 정체를 빚는 고속도로 위에 떡하니 멈춰 서서 정체를 더욱 극심하게 만들며 57분 교통정보에 ‘고장 차량’ 소식을 띄우게 되었을까?

해는 저무는데, 갈 길은 멀다. 주행 중에 목숨을 걸고 카드를 물린 하이패스 단말기. 한 번 충전하면 두세 달은 끄떡없다던 녀석이, 잭을 제거한 지 1주일도 안 되어 방전되어버렸는지 침묵이다. 수리를 받았지만 여전히 상태 불량인 차. 오르막길에서는 아무리 액셀을 힘껏 밟아도 속도가 80km를 넘지 못 한다. 정체 구간에 들어서니 그나마도 속도를 낼 수 없다. 해가 기운다. 하늘은 눈부신 주홍빛에서 점차 깊은 바다의 어두운 푸른색으로 변해간다. 이윽고 잿빛이다. 내 마음도 그렇게 어두워져간다.

서울은 변함이 없다. 주말 저녁의 극심한 시내 교통 체증까지도. 1부 공연이 이미 끝났을 시간이다. 기름 게이지가 바닥을 친다. 오늘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바라본다.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졌다. 인공의 불빛들만 환하다.

생상스 3번 2악장이 들려왔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다. 공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는 단단히 닫혀있다. 나는 우측 복도를 통해 무대 뒤편 연주자 대기장소로 갔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악기 케이스. 조금 전까지 이곳을 가득 메웠을 긴장의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음악이 잠시 멎었다. 그리고 3악장, 시작이다.

무대 옆벽의 뒤편에 서서, 작은 틈새로 무대를 엿보았다. 힘차게 타점을 내리찍는 지휘자의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그 지휘자의 모션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지휘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악장의 모습도. 바이올린과 비올라의 활이 상하로 춤춘다. 뒤에서 바라보니 그 높이가 제각각인 것이 좀 많이 티가 난다. 피아노 소리도 들려온다. 잘 보이지는 않는다. 전자 오르간은 바로 눈앞에 있다. 연주자는 자신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풍부한 C 코드의 울림! 4악장 Maestoso(사실은 2악장의 두 번째 파트) 시작이다.

도취를 걷어내고 바라보면, 현실의 모든 것들이 하찮아 보이기 마련이다. 내가 저 안에 있을 때, 함께 땀을 흘리고 연주하며 동경에 가득 차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들리지 않는 것’을 듣던 때와 교하면, 이 날 이 자리에서 내가 보고 들은 것은, 예전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그렇게 솔직하게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여전히 그 ‘실체’를 논할 수 없는 무언가가 보이고, 추억과 상상력이 부여하는 환상은 연주장에 울려 퍼지는 소리에 어떤 감동의 파장을 더한다. 그래, 당신들에게 열정이 있다고, 나는 그렇게 믿을 수밖에. 가득 찬 무대, 숨죽인 객석, 그리고 텅 빈 연주자 대기실에서 무대 벽에 기댄 채 좁은 틈으로 다른 세상을 엿보는 관객 한 사람. 이것은 썩 괜찮은 그림이다. 나는 취하기 위해 왔으니, 잔을 들어 올리겠어. 이것은 편파적이지만, 술 취한 사람은 오직 감정에만 솔직하니까.

브라보!

2010/09/05 01:44 2010/09/05 0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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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10년 9월 3일(금) 저녁 7시 30분

장소 : 연세대학교 대강당

연주 : 연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유포니아'

지휘 : 이병욱

협연 : 이주현

프로그램 :

E. Elga - Pomp and Circumstance Op. 39 No.1

F. Mendelssohn - Violin Concerto in E Minor Op. 64

C. Saint-Saens - Symphony No.3 in C Minor Op. 78 'Organ'

뭐 이렇다더군. 포스터의 오르간은 멋지지만…….

2010/08/31 23:12 2010/08/31 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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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찍이 위대한 작곡가의 시대가 있었다. 흡사 신들로부터 창조의 임무를 일부 나누어 받은 것처럼, 그들은 이 세상에 전에 없던 새로운 것들을 탄생시켰다. 위대한 작곡가들의 시대가 지나가고 위대한 지휘자들의 시대가 왔다. 그들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지는 못 했지만, 해석의 지평을 무한히 확대해 나가는 과업을 수행하며 대중을 신들의 세계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았다. 위대한 지휘자들의 시대가 저물고 위대한 연주자들의 시대가 되었다. 그들은 성화(聖畵)의 알록달록한 색채처럼 저마다의 개성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고 매료시켰다. 그리고 이윽고 위대한 연주자들의 시대도 지나갔다.

그러자 최후에 미녀 연주자들의 시대가 왔다. 그들은, 아무튼 예쁘다.



무라지 카오리(村治佳織) Plays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 of 류이치 사카모토


무라지 카오리의 콘서트에 다녀왔다. 그녀의 위명(?)은 익히 들어왔다. 신주쿠 타워 레코드의 클래식 앨범 매장 눈에 잘 띄는 곳에 무라지 카오리의 리코딩만을 따로 모아두고 있는 것을 본 일도 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동양의 어떤 나라보다도 서양의 클래식 음악과 접해온 역사가 긴 만큼, 지금까지 훌륭한 음악가들도 많이 배출했는데, 클래식 기타의 영역에서도 그러했다. 무라지 카오리는 그 계보를 잇는 훌륭한 연주자일 뿐만 아니라, 전에 없던 사랑과 숭앙을 받는 스타다. 사람들은 훌륭한 기타리스트를 좋아하지만, 예쁜 기타리스트는 사랑한다.

이 날은 내가 집에서부터 직접 운전을 해서 예술의 전당까지 갔다. 내비게이션의 스피커가 고장 나는 바람에 차선 변경해서 진입하거나 진출해야 할 것을 몇 개 놓쳐서 터무니없이 돌아가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대중교통을 이용 할 때보다는 이동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다.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콘서트홀로 갔다.

연주 시작 30분 전, 로비는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관객들에게서 느껴지는 열의가 어제 저녁 장한나 첼로 리사이틀 때 못지않았다. 인터넷으로 예매해 둔 티켓을 먼저 찾고, 프로그램 북 판매대 앞으로 갔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무라지 카오리의 리코딩 두 종을 진열해놓고 함께 팔고 있었다. 또 오늘 특별 게스트로 함께 무대에 오르는 용재 오닐의 리코딩도 있었다. 그러나 프로그램 북과 CD를 함께 사면 포스터를 증정하는, 어제와 같은 이벤트는 없었다.

3,000원짜리 프로그램 북은 화보 같았다. 페이지를 넘기는 족족 무라지 카오리의 사진이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무라지 카오리에 대한 갖은 찬사를 읽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이 사진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녀가 뛰어난 기타리스트라 믿고 의심치 않으리라.

홀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예매한 자리는 1층 C블록 9열 4번. 무대에서 그리 멀지 않고, 연주자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리이다. 정각 8시를 조금 넘겨 연주 시작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오고 객석 쪽은 암전이 되었다. 이윽고 무라지 카오리가 여신의 풍모를 뽐내며 입장하였다. 채도가 낮은 살구빛의 집시 풍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팔꿈치부터 팔목까지는 연주 시에 거치적거리지 않도록 통이 없게 조였고, 팔꿈치 위로는 통이 넓었다. 의자에 앉아, 발 받침대에 한쪽 발을 올리고 기타를 허벅지 위에 올려 고정했다. 그리고 연주가 시작되었다.

이 날의 레퍼토리는 류이치 사카모토나 레너드 번스타인 등 현대 작곡가들이 작곡한 대중적인 곡에서부터 클래식까지 다양했다. 첫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였다. 우리나라에서도 광고 음악으로 사용되거나 해서 제법 잘 알려진 곡이다.

내 경우, 기타는 고등학교 때 음악 수업 실기 평가로 잠깐 쳐본 것 외에는 전혀 이 악기를 다룬 경험이 없기 때문에, 기타 연주의 테크닉에 대해서는 완전히 문외한이다. 그러니 무라지 카오리의 연주 실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나로서는 가늠할 수 없다. 그렇다고 ‘생긴 것만큼 아름답게 연주하더라(사실 이게 이 날 공연을 관람한 상당수 관객들의 솔직한 평이었다)’라고 하고 넘어가버리기에는, 내가 까다로운 인간이라는 걸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다.

솔직한 감상은, 기타의 음량이 너무 작다는 것이었다. 연주자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앉은 나도 음량이 작다고 느끼는데, 대체 이 소리가 2층 저 구석에 앉은 청중에게까지 잘 전달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내가 큰 음량을 갖는 바이올린에 너무 익숙해져서 상대적으로 기타의 섬세한 다이내믹 변화에 둔감해져버렸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큰 홀에서 들을만한 소리는 아니었다.

이야기를 조금 건너뛰게 되지만, 연주회가 끝나고 이 날 연주회 때 연주된 곡들이 많이 수록된 앨범을 사서 집에 와 들었는데, 같은 곡이지만 오히려 실황보다 훨씬 곡이 맛깔스럽게 들렸다. 라이브에 미숙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다만 내가 생각하기에, 기타라는 악기는 콘서트 홀 같은 큰 홀에서 독주를 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소리가 훨씬 잘 모이는 작고 아담한 홀에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연주를 하면 기타의 매력을 훨씬 잘 느낄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다.

공연 전반부에만 다섯 작곡가의 여섯 곡을 연주했다. 그 중 두 곡은 각각 세 곡과 네 곡을 묶은 모음곡이었다. 화려한 기교를 선보인 ‘헝가리 환상곡’의 연주가 끝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전반부 공연이 너무 다양한 레퍼토리로 조금 정신이 없었다면, 인터미션 후에 이어진 2부 공연은 단 두 개의 대곡(大曲)을 연주 해 자못 진중한 분위기를 이끌었다. 무라지 카오리 역시 2부 때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흡사 남성 연주자처럼 상하로 깔끔한 정장을 입었는데, 특이하게 오른쪽 다리에만 붉은 색의 치마를 입고 있었다. 마치 남자와 여자가 섞인 듯 야누스 적인 매력을 뽐내었다고 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사실 별로 매력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연주하기에는 편한 복장이었을지 모르겠지만.

2부 첫 곡은 바흐의 샤콘느의 기타 편곡 버전. 본래 지난(至難)한 바이올린 곡이다. 같은 현악기군에 속하지만, 현을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내는 찰현악기인 바이올린과 현을 손으로 튕겨 소리를 내는 발현악기인 기타는 여러 면에서 성격이 대조적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라면, 바이올린은 중음(重音)을 연주할 때 구조상 분산화음으로 연주할 수밖에 없지만, 기타는 한 번에 여러 현을 동시에 튕겨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샤콘느에는 워낙에 화음 연주가 많아서, 이 때문에 바이올린 연주와 기타 연주의 차이가 더 도드라진다. 또 한 가지 바이올린과 기타의 중요한 차이점은, 원하는 만큼 활을 배분하여 한 음을 얼마든지 길게 연주할 수 있는 바이올린에 비해 단 한 차례 현을 튕기는 행위로 소리를 내는 기타는 한 음을 오래 지속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기타로 연주된 샤콘느는 전체적으로 비애감과 장중함이 넘치기보다는 영롱한 화음 연주, 통통 튀는 스케일 연주로 인해 매우 투명하고 간결하였다.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인상을 준다.

마지막 곡은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였다. ‘아르페지오네’는 이 날 연주회의 제목이기도 한 만큼, 메인 곡에 해당하는 곡이었다. 본래 ‘아르페지오네’는 악기의 이름이다. 이 악기는 첼로와 기타를 섞어놓은 것 같이 생겼는데, 현이 6개 달려있고 조율은 기타와 마찬가지로 ‘미, 라, 레, 솔, 시, 미’로 한다. 그리고 활로 문질러 소리를 낸다. 외형상의 특징 때문에 비올라 다 감바의 후손쯤으로 생각되기도 하지만, 사실 이 악기는 1820년대에 만들어졌으니까 바이올린이나 첼로가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고 난 뒤로도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서 탄생한 악기이다. 이 악기는 사람들에게 전혀 인기가 없었고, 처음 제작된 지 10년쯤 지나서는 연주를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 인기 없는 악기를 위해 소나타를 작곡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슈베르트다. 물론 자발적으로 쓴 게 아니라, 의뢰를 받아서 작곡한 것이다. 그 시대에도 새로운 것이라면 무엇이든 시도 해 보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르페지오네를 곧잘 연주했던 어떤 귀족의 의뢰가 있었다고 한다.

아무튼 그 귀족 이후로 아르페지오네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 나오지 않아서 이 소나타는 오랫동안 빛을 보지 못 했는데, 20세기 들어서 아르페지오네가 아닌 첼로나 비올라로 활발히 연주되고 있다. 오늘은 비올리스트 용재 오닐이 특별 게스트로 초대되어 무라지 카오리와 함께 이 곡을 연주했다. 아무래도 비올라와 함께 연주하면 기타의 소리가 묻힐 거라 여겼는지, 무대 위에 마이크를 설치했다.

용재 오닐은 이 곡을 앨범에 실었을 정도라니까 상당히 익숙해 보였다. 간간히 무라지 카오리 쪽을 쳐다보며 앙상블을 맞추려고도 했다. 한편 무라지 카오리는 보다 악보에 집중하는 것 같았다. 연주회 끝난 후 무라지 카오리가 한 말에 따르면 두 사람은 연주회 바로 전날 처음 만났다고 한다. 그래도 연주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먼저 무라지 카오리가 앙코르 곡을 한 곡 연주하고, 오늘 연주회 소감을 간략히 밝혔다. ‘안녕하세요’란 첫 인사는 한국어로 준비했고, 그 다음부터는 영어로 말을 했는데 영어가 그리 능숙하지는 않았다. 대충 한국에서 연주할 때마다 즐겁다는 의례적인 인사말과 함께, 스페셜 게스트 용재 오닐과 함께 한 소감을 말했는데, 연주회 전날에야 처음으로 만났고 그 전에는 커피 광고에서만 봤었다고 했다. 한편 무라지 카오리로부터 마이크를 건네받은 용재 오닐은, 쑥스러움 타는 것인지 쭈뼛쭈뼛하여 별 말을 못 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으로 함께 앙코르 곡을 연주했고, 이렇게 이 날의 연주회는 막을 내렸다.

연주회 끝난 후 두 사람이 로비에서 사인회를 열었다. 내가 로비에 나왔을 때는 이미 사인을 받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나도 무라지 카오리의 앨범 두 장을 사서 줄에 합류했다. 두 장의 앨범 중 하나의 앨범에는 이날 연주된 곡들이 상당히 많이 수록되어 있었다. 앨범 홍보에는 더없이 훌륭한 연주회가 되었을 것이다.

사인은 원칙적으로 1인 1매. 그러나 기껏 앨범을 두 장이나 샀는데, 한 장에만 사인을 받을 수는 없는 노릇. 원래는 예당 측 직원을 통해서 사인 받을 종이를 건네주지만, 한 장은 그렇게 해서 받고, 나머지 한 장은 무라지 카오리 앞에 직접 내밀었다. 일본어 배워서 어따 쓰겠어. 사인 해 달라니까 친절하게 사인 해 주었다. 그런데 그만 사인 받은 종이 두 장을 겹치는 바람에 밑에 깔린 사인 하나가 번졌어. 용재 오닐의 사인은 그냥 프로그램 북의 용재 오닐 사진 위에다가 받았다.

사인 CD를 챙겨 들고 콘서트홀을 나섰다. 차에 시동을 걸고, CD를 플레이어에 넣었다. 오늘 첫 곡으로 연주되었던 류이치 사카모토의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로렌스’의 선율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밤의 도로는 한산했다. 아름다운 기타 선율에 귀를 기울이며, 시원하게 뚫린 도로 위를 달렸다.

2009/11/26 05:27 2009/11/26 0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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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大家)는 어떻게 탄생하는 것일까? 대중의 환호와 갈채로? 선배 세대의 거창한 찬사를 받아서? 언론과 비평가들의 호평 속에? 기획사들의 홍보 전략에 힘입어서? 대가라 칭해지는 이들은 무엇이 다른가? 보다 본질적인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대체 무엇에 환호하는가?

내가 궁극적으로 체득하고자 하는 예술적 감수성의 경지는 대중의 환호와 갈채에 현혹되지 않고, 언론과 비평가들의 그럴듯한 말들에 휘둘리지 않으며, 그 어떤 정통성과 권위보다도 나의 눈과 나의 귀에 의지하고 나의 지성으로 판단하여 진정한 미(美)의 가치를 꿰뚫어보고 즐기는 것이다. 사람들은 ‘취미 생활’을 남들이 마련 해 놓은 해석과 비평을 취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미리 설명 해 놓은 대로 감정까지 느끼는, 편의적이고 양식화된 행위쯤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스스로 이해하고 느낀 것이 아니면 나의 감정으로 인정할 수가 없고, 그런 기만적인 감정의 모사품들을 정기적으로 구매하는 행위를 취미 생활로 인정 할 수도 없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이상론이다. 무감동의 벽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우선 무지의 벽을 깨부수어야 한다는, 나의 신념에 대한 이야기인 것이다. 나는 어쩌면 평생 결론에는 도달하지 못 한 채 다만 과정에 머무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런 쉽지 않은 과정에 기꺼이 자신을 밀어 넣는 것이야말로 끊임없이 창작을 거듭해온 예술가들에 대한 예의이며, 사실상 인생에서 가장 큰 즐거움을 얻어낼 수 있는 진정한 취미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즐거움은 현란한 수사어로 장식된 예술가의 이름에 있지 않고, 좋은 자리를 점하기 위해 쏟아 부은 티켓 값에 있지 않으며, 애써 상상으로 그린 하룻밤의 낭만 속에 있지 않다. 더욱이 내가 진정으로 느끼지 못 한 바를 꾸며 쓰느라 애처롭게 늘어져버린 감상문 속에는 즐거움이 있을 수 없다.

즐거움이 있다면, 겸허하게 나의 무지를 인정하여 내가 모르는 무한히 넓은 영역의 존재를 확인하는 데에 있을 것이다. 무언가에 대해 스스로 이해해보고자 기울이는 서툴지만 진지한 노력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희열을 결실로 선사한다. 주의 깊고 세심한 관찰은 피곤하지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가만히 넋 놓고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를 건져 내준다.

첼리스트 장한나. 그녀에게 쏟아지는 갖가지 찬사는 내게 별 의미가 없다. 그녀에 대한 평가가 부풀려졌다거나 칭찬 일색인 리뷰가 못 마땅하다는 게 아니다. 오히려 나는 그녀의 위대함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다만 그 위대함을 직접 느끼고 싶을 뿐이다. 이때에, 프로그램 북에 인용된 노(老) 대가들의 거창한 칭찬은 별 도움이 안 된다. 미리 계획했던 기립박수를 치는 것은 씁쓸한 일이다. 무엇에게 그토록 열렬한 박수를 보내야 하는 것일까? 나는 무엇에 환호해야 할까?

토요일 저녁, 지난 성남시향 연주회 때의 악몽을 되살리기 싫어서, 이번에는 양재역을 거쳐 남부터미널역으로 간 다음 버스를 타는 길을 택했다. 연주회 시작 30분전쯤 콘서트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로비에서는 1,000원짜리 프로그램 북과 함께 장한나의 리코딩을 팔고 있었다. 가격은 한 장에 14,000원이었는데, 프로그램 북과 함께 구입하면 포스터를 증정한다고 되어 있었다.

나는 이런 상술에 잘 넘어가주는 편이다. 그러나 판매중인 CD는 대중들의 입맛을 고려했는지 소품집이거나 유명 첼로 협주곡들의 일부 악장들만 모아놓은 것으로 별로 구매욕을 자극하지 않는 것들이었다. CD와 증정용 포스터는 포기하고, 프로그램 북만 하나 달랑 구입하여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자리는 1층 C블록 11열 5번. 무대와 너무 가깝지 않으면서도 연주자를 정면에서 바라볼 수 있는 좋은 자리다. 연주회장은 만원이었다. 합창석 자리에도 관객들이 앉아 있었다. 과연 장한나란 이름이 갖는 관객 동원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었다.

저녁 8시. 연주 시작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오고, 객석 쪽 조명이 어두워졌다. 무대 쪽 천정에서 내려오는 밝은 빛은 스타인웨이 피아노와 단상 위에 놓인 빈 의자를 비추고 있었다. 이윽고 무대 왼쪽의 연주자 출입구가 열리고, 오늘의 주인공 첼리스트 장한나와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가 등장했다(물론 반주자의 악보를 넘겨줄 넘순이도 함께).

장한나는, 벌써 기억이 모호하지만 짙은 회색 톤의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한 손으로 들고 나온 첼로는 각봉이 끝까지 뽑혀 있었는데, 그 길이가 장한나의 키와 비슷해 보였다. 키는 작았지만, 왜소해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단단해 보였다. 한편 피아니스트 피닌 콜린즈는 매우 늘씬한 미남이었다.

연주회 첫 곡은 슈만의 피아노와 호른을 위한 아다지오와 알레그로Adagio and Allegro for Piano and Horn Ab Major, Op.70이었다. 이 곡은 제목에도 나와 있듯이 본래 피아노와 호른의 듀오로 연주되는 곡이다. 프로그램 북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호른 부분을 다른 악기가 맡아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평소 슈만의 곡들과 친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더군다나 호른 레퍼토리라니, 존재조차 몰랐던 곡이다. 인터넷에서 확인한 프로그램에는 이 곡이 빠져있어서, 미리 예습 할 기회도 없었다.

연주회장에서 처음 만나는 곡이 신선한 즐거움으로만 다가오면 좋겠지만, 내 경우엔 사실 잘 모르는 곡의 선율은 귀에 들어오기가 무섭게 망각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곡을 들으면서 뒷부분을 예측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곡에 대한 집중력도 떨어진다. 그러니까 종종 딴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다. 그래도 곡을 들으면서 문득 든 매우 즉각적인 생각은, “이걸 호른더러 불라고 작곡했단 거야?”란 것이었다. 물론 난 호른을 불어 본 경험은 없다. 하마터면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바이올린 연주자가 아니라 호른 연주자로 들어갈 뻔했지만, 아무튼 그 운명은 나를 빗겨갔다. 그래도 호른이 불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첼로로 연주하는 것이 테크닉을 구사하기에는 호른보다 훨씬 유리하겠지만, 그래도 만만해 보이지는 않았다. 알레그로 부분에서는 스트로크로 강렬하게 연주하는 것이 인상적이었는데, 과연 호른으로도 이런 강렬함이 표현될 수 있을지 궁금했다. 호른 레퍼토리는 거의 모르지만, 언젠가 세브란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호른 협주곡을 연주하는 것을 보러 간 일이 있었는데, 호른은 독주 악기로 쓰이기에는 좀 밋밋하다고 느꼈다. 물론 아마추어의 연주에다가,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었으니까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슈만의 곡이 서곡 역할을 해주어, 들떴던 마음도 차분히 정리되고 연주에 집중할 자세가 갖추어졌다. 연주회장에 늦게 도착하여 미처 입장하지 못 했던 사람들도 첫 곡이 끝난 틈에 들어와 앉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로소 오늘의 본 공연이 시작되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과 2번. 어제는 분당에 첫눈이 내렸다. 첫눈은 겨울의 시작을 알려주는 것이다. 벌써 가을은 저만치 물러가고 있지만, 브람스의 음악은 가을의 끝자락을 붙잡고 향수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제공한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1번은 애수로 가득 차 있다. 3개의 악장이 모두 단조로 작곡되어 있어서 한층 쓸쓸한 정취를 풍기는 것 같다. 첼로는 낮은 음역에서 때로는 읊조리는 듯이, 때로는 애달프게 노래하는 듯이 자기 목소리로 감정을 담아 표현한다. 개인적인 감상이지만, 첼로 소나타 1번의 1악장은 브람스의 여러 음악들 중에서도 특히 첼로가 노래를 하고 있는 듯 느껴진다. 첼로와 피아노의 대위법적인 진행은 참 아름답다. 음악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만, 솔로 악기와 피아노로 구성된 듀오 소나타는 편성이 단출해서인지 비교적 음악의 짜임을 파악하는 것이 쉽다.

이날 첼로의 음색과 피아노의 음색이 잘 어우러졌는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끼기에는 피아노의 소리가 조금 먹먹했다. 첼로가 단호하게 베는 듯한 소리를 들려주니까 피아노도 좀 더 단단한 소리가 났으면 좋았을 텐데, 약간 뭉글했다. 연주자의 터치가 그런 소리를 낸 것 같지는 않고, 피아노 자체의 소리가 좀 멍한 편이었던 같다. 대위법을 잘 구사한 브람스고, 3악장은 아예 푸가로 작곡되었으니까 첼로가 선율을 연주하면 피아노가 모방하고, 또 피아노가 선율을 연주하면 첼로가 뒤따라 모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만큼 두 악기의 음색이 잘 어우러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소나타 1번의 연주가 끝나고 인터미션 시간이 되었다. 인터미션 시간이면 으레 로비의 카페에서 커피 한 잔과 케이크 한 조각을 주문해놓고 프로그램 북이라도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으며 시간을 보내곤 하는데, 이날은 이미 카페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 그냥 자판기 커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자판기는 리사이틀 홀 출입구 바로 옆에 설치되어 있는데, 출입구 앞에 놓인 프로그램 북을 슬쩍 보니까 이날 같은 시각 리사이틀 홀에서는 첼로 독주회가 열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정각 9시쯤 2부 연주가 시작되었다. 장한나는 정열적인 붉은색의 드레스로 옷을 갈아입고 등장했다. 브람스의 첼로 소나타 2번. 첼로 소나타 1번과는 20년 이상의 시차를 두고 작곡된 곡. 그만큼 원숙미가 돋보인다고 해야 할까. 브람스만의 독특한 분위기는 유지되면서도, 1번 때와는 그 표현의 양상이 상당히 다르다. 3악장을 제외한 나머지 세 악장이 모두 장조로 작곡되어 있는 만큼 곡의 표정은 한결 밝아진 느낌이지만, 그 속에서도 애수가 간직되어 있다.

“연주를 하는 도중 실수로 악보가 두 장 넘어갔을 때, 연주를 멈추어야 한다면 좋은 연주자가 아닙니다.”

졸탄 코다이의 말이다. 이날 장한나는 전곡을 암보로 연주했지만, 피닌 콜린즈는 악보를 보고 연주를 했다. 물론 악보를 넘겨주는 넘순이가 있었다. 넘순이는 악보를 넘기기 전, 악보를 위에서 아래로 거의 반쯤 내려 접어 연주자가 악보의 마지막 줄까지 다 볼 수 있도록 배려 한 다음 연주자의 신호를 받아 악보를 넘긴다. 그런데 1악장 연주 중의 일이었다. 넘순이가 넘기려고 접었던 악보를 놓치는 바람에, 황급히 악보를 다시 잡아서 넘기느라 그만 두 장을 넘겨버렸다. 연주는 어떻게 됐을까? 물론 피닌 콜린즈는 좋은 연주자였다. 연주는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진행되었고, 1악장은 무사히 마무리 되었다.

2악장 첼로의 피치카토는 가슴을 쳤다. 이 곡의 2악장은 결코 유약하지 않다. 장한나의 피치카토 연주는 그야말로 박력이 넘쳤다. 현을 뜯으면서 악기를 그토록 풍부하게 울릴 수 있다니, 놀랍다. 그 소리가 연주회장을 가득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2악장이 끝나자 또다시 여기저기서 기침이 터져 나왔다. 대체 이 사람들이 연주 중에는 어떻게 기침을 참고 있었나 싶을 정도다. 연신 기침을 해대다가도 장한나가 활을 들어 올리면 신기하게도 기침을 멈춘다. 실황 연주 녹음을 들어보면 악장과 악장 사이에 기침은 세계 공통인 듯도 하지만, 때로는 이 기침 소리가 악장 사이의 눈치 없는 박수 소리보다도 더 거슬린다. 3악장은 피아노의 연주로 시작된다. 사람들은 장한나에게만 집중을 하며, 연신 기침을 해대었다. 그때 갑자기 울려 퍼지는 피아노 선율. 덕분에 미처 기침을 멈추지 못 한 여러 사람 숨넘어갔다.

장한나는 액션이 큰 연주자다. 표정도 다양하다. 그만큼 음악을 온 몸으로 표현한다. 또한 장한나는 힘이 있다. 그래서 두터운 소리를 요구하는 브람스의 음악도 무리 없이 잘 연주 해 내는 것 같다. 분명한 건, 관객을 몰입시키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무튼 별로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서 떠드는 짓은 삼가도록 하자. 새삼 그녀의 열정이나 관객을 압도하는 카리스마에 대해 운운하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일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열렬한 박수를 보냈다. 몇몇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2부 프로그램이 조금 짧았기 때문에, 몇 곡의 앙코르 곡을 예상하긴 했지만, 관객들의 열광 속에 무려 다섯 곡의 앙코르 곡을 연주했다. 연주된 곡은 차례로 포레의 ‘꿈꾸고 난 후에’,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왕벌(뒝벌?)의 비행’, 오펜바흐의 ‘재클린의 눈물’, 구노의 ‘아베마리아’, 그리고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 중 ‘백조’였다.

장한나의 첼로 스승 미샤 마이스키가 내한 중이라고 한다. 먼저 첼로 독주회를 열었고, 며칠 후에는 하이든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장한나는 스승님과 같은 시기에 한국에 있게 되어 기쁘다며 구노의 ‘아베마리아’ 연주를 스승님께 바치고 싶다고 했다. 왜 하필이면 구노의 ‘아베마리아’인지 모르겠다.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있는 걸까.

앙코르 곡이 하나씩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늘어서, 막바지에는 홀 안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백조’의 연주가 끝나고 연주자들이 퇴장한 후 출입문이 닫혔는데도 사람들의 박수는 멈추지 않았다. 결국 실내의 조명이 환하게 밝히자 그제야 사람들은 퇴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무언가가 발산된 듯한 후련한 마음으로 콘서트홀을 빠져나왔다. 예술의 전당 정문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기다란 줄에 합류했다. 첫 번째 버스를 보내고, 두 번째 버스에 겨우 몸을 실을 수 있었다. 나는 그대로 강남역까지 가서, 분당으로 직행하는 버스를 탔다. 외투 주머니에는 mp3 플레이어가 들어 있었지만, 이 날은 귀갓길에 음악을 듣지 않았다. 애써 잠을 청하지도 않았다.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첼로의 선율이 흘렀다. 11시를 훌쩍 넘겨 분당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리니 밤공기가 무척이나 차가웠다. 그러나 이제 저물어버린 가을에 더 이상 미련은 남지 않는다. 겨울을 맞을 준비가 된 것이다.

2009/11/23 17:06 2009/11/23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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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의 향상 음악회가 있기 하루 전날, 연주 준비로 수고하는 후배에게 맥주나 한 잔 사줄 요량으로 학교에 나갔다. 과연 향상 전야라서, 대강당 복도에는 여느 때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나와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나도 복도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악기를 꺼내 들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훨씬 연습 할 맛이 난다.

후배 셋(학번으로 후배이지만 한 명은 입단 선배, 한 명은 입단 동기, 오직 한 명이 입단 후배다)과 함께 맥줏집에라도 가려 했지만, 맥주보다는 고기에 소주 한 잔 걸치고 싶다는 후배들의 바람에 길을 돌렸다. 다음 날 연주 잘 하란 의미에서 가볍게 한 잔씩만 하려던 생각이었는데, 네 사람이서 고기 두 근 반과 술 네 병을 해치웠다. 내친김에 2차까지 달리자는 의견도 있었지만, 내가 자중 시키고 해산해버렸다. 정작 연주 부담이 없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말이다.

집에는 새벽 2시 반이 조금 넘어 도착했다. 샤워를 하고 나서도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주제로 글을 쓰려고 시도했다. 관련된 자료를 찾고 검토하다보니, 어느 새 동이 터버렸다. 아마 아침 7시가 넘어서 겨우 잠들었던 것 같다. 당연히 대낮까지 자버렸고, 향상 음악회에는 지각 해 버렸다.

이번 향상 음악회는 1년 전처럼 대강당에서 열렸다. 2008년 가을 향상 음악회는, 내가 유포니아에 입단하고 나서 처음 참여한 공식적인 음악 활동이었다. 그때 나는 향상 팀으로서는 규모가 대단히 큰, 모차르트 교향곡 41번 주피터 연주 팀에 살며시 들어가, 연주까지 조용히 묻어갔다.

반년 뒤 2009년 봄 향상 때에도 나는 정보국 국원들이 모인 큰 규모의 팀에 들어가서 눈에 띄지 않게 연주를 했다. 그때의 곡은 모차르트의 디베르티멘토(K136) 1악장. 나는 이때가 내가 경험하는 마지막 향상 음악회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응당 그랬어야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알 수 없는 것이라더니 결국 나는 이번 향상도 보게 되었다.

마치 인생에 덤으로 주어진 기회 같은 것이었지만, 나는 이번에는 어떤 향상 팀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일단 과거 연주 때와 같은 대규모 팀이 조직되지 않은 게 이유다. 이번에는 유난히 많은 팀들이 향상 음악회에 참가를 해서 대규모 향상 팀이 생기는 것을 자제시켰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면 나 역시 독자적으로 실내악 팀을 꾸려서 사중주든 오중주든 실내악에 도전 해 보는 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은 단념할 수밖에 없었는데,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게 실내악은, 교향악보다도 훨씬 어렵게 느껴진다. 물론 이것은, 연주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더 큰 부담이 지어지는 소규모 실내악의 특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뿐만 아니라 곡 자체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게 느껴진다.

개인적으로는 향상 음악회 무대에 가장 자주 오르는 ‘현악 4중주’란 장르가 가장 난해한 장르라고 생각한다. 현악 4중주는 규모 면에서는 겨우 네 개의 악기로 구성되어 작은 편이지만, 바이올린 두 대와 비올라, 첼로의 구성은 성악으로 치면 소프라노에서부터 베이스까지 고루 갖추고 있는 셈이라, 짜임새 있는 음악이 가능하다. 결국 현악 4중주는 ‘짜임새의 음악’이라고 생각하는데, 음악과 접해온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나는 이런 곡의 탄탄한 구성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내악을 좋아하고 동경하지만 섣불리 다가갈 용기가 없는 나에 비해서, 유포니아의 많은 단원들은 상당히 거침없이 명곡들에 도전장을 내민다. 학생다운 패기라고 할까, 아마추어의 열정이라고 할까.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나에게도 언젠가 꼭 한 번 도전 해 보고 싶은 실내악곡이 하나 있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다. 브람스가 만년에 작곡하여 브람스를 대표하는 우수와 비애의 감정이 고스란히 실려 있으면서도 구성 면에서 군더더기 없이 완벽한 명곡 중의 명곡이다.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는 너무 높은 이상이고, 실은 한 번 진짜 팀을 꾸려볼까 생각하며 진지하게 검토 해 본 곡은 따로 있다. 뭣도 모르는 아마추어들에게 만만해 보이는 것이 역시 모차르트라고, 모차르트의 ‘플루트 4중주 A 장조’를 놓고 숙고를 했었다. 이 곡의 1악장은 변주곡 형식으로 작곡되었는데, 어려서부터 들어온 친숙한 멜로디가 아름답게 변주되어 가는 것이 참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처음에는 거의 플루트의 독무대지만, 나중에 가면 악기마다 고루 배려가 되어 있어 지루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러나 역시 ‘모차르트 사운드’에 대한 자신이 없어 포기했다.

그런데 이번 향상에 모차르트 플루트 4중주를 들고 나온 팀이 있었다. 내가 고려했던 K298은 아니고, D Major인 K285였는데, 멤버 구성이 드림팀 수준이었다. 연주가 훌륭해서 내심 ‘이 팀이 대상 타가겠구나’하고 생각했는데, 대상은 아니었지만 사실상 1등상이나 다름없는 특별상을 받았다. 뭐 이런 데서 단념하길 잘했다고 느껴봤자 나만 쓸쓸해 질 뿐이지만.

나는 객석에 자리를 잡고, 인터미션 때를 제외하곤 꼼짝도 않으며, 아름다운 감상용이 아닌 단순 기록용 사진을 열심히 찍어댔다. 초반 몇 팀의 연주는 놓쳤지만, 그래도 거의 스무 팀에 가까운 연주를 모두 들었다. 아무리 동아리 내부 행사라지만, 이런 진지한 관객도 한 명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향상에서 특기할 만한 점이라면, 브람스의 현악 4중주, 5중주, 6중주가 모두 연주되었다는 점(신기하게도 모두 2번이었다). 역시 가을이라는 것일까. 특히 6중주 1악장은 지난 연주회 때 각 현 파트의 수석을 맡았던 파트장들이 모여 연주를 했다. 덕분에 첼로 한 대 대신에 베이스가 들어갔다.

향상 음악회에서는 다양한 곡들이 연주되는데, 지난 4년 여 동안 줄기차게 음악을 들어온 나도 접해보지 못 한 음악들이 연주되어 새로운 발견의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가령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은 존재하는 것만 알고 있었지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곡인데, 이번에 어떤 팀이 이 곡을 들고 나왔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은, 그가 죽던 해 정신 병원에 입원한 상태에서 쓴 곡이다. 워낙 괴상하게 작곡되어 있어서 사람들은 그가 미쳐버린 나머지 제대로 작곡을 하지 못 한 것이라고 여기기도 했다는데, 쇤베르크 같은 사람은 이 곡을 극찬했다고 한다. 무조주의 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에게는 이 곡이 미래를 예견한 곡으로 이해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쇤베르크마저 과거가 되어버린 지금에조차 이 곡은 사람들로부터 별로 환영을 받진 못 하고 있다. 그런데 아마추어들이 이 곡을 꺼내어 연주하는 것을 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날이 정말 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된다.

스메타나의 현악 4중주 2번과 내용은 다르지만 음산한 배경을 공유하고 있는 곡도 있었다. 멘델스존의 현악 4중주 6번이다. 멘델스존이 그토록 사랑해 마지않았던 누나가 죽고, 그 충격으로 거의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쓴 곡. 그리고 멘델스존 역시 이 곡을 완성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멘델스존의 밝고 아름다운 악풍과 완전히 다른 이 곡을 어떻게 연주했을지 궁금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곡은 내가 놓쳐버린 몇 개의 곡 중에 하나였다.

그밖에 드보르작의 피아노 5중주곡(이것도 놓쳤다), 베토벤의 현악 4중주 4번과 7번, 슈베르트의 현악 4중주 13번(로자문데)과 14번(죽음과 소녀) 같은 유명한 곡도 있었다. 물론 유명한 곡은 그만큼 연주에 위험 부담이 따른다.

향상 음악회의 커다란 즐거움이라면 역시 비올라 향상이나 금관 향상 같이, 어딘가 좀 어설프지만 노력이 빛나는(그러나 실제 그렇게 열심히 연습을 한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연주를 듣는 것이다. 비올라 팀은 조금 이른 감은 있지만 몸에 눈(雪 )을 연상시키는 흰 공들을 붙이고 나와서 캐럴 메들리를 연주했다.

이번 향상 음악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았던 팀이라면, ‘솔로의 자조’를, 적절한 배경 음악과 스케치북 소품을 이용해 유쾌하게 풀어낸 솔로 남자들의 팀이었다. 그런가 하면 그 용기가 가상했던 한 사람이 있는데, 혈혈단신으로 무대 위에 올라가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 중 6번곡의 프렐류드를 연주하고 내려온 녀석이 있어, (장난 섞인)기립 박수를 받았다. 나도 ‘10년 동안 레슨을 중단하지 않겠다.’라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고 나면, 한 번쯤 솔로 연주에 도전 해 볼까. 뭐 넉넉잡아 앞으로 6년 후의 일이다. 그때까진 꿈도 꾸지 않으련다.

오후 2시 반에 시작한 향상 음악회는 저녁 7시 무렵에야 끝이 났다. 가까운 고기 뷔페에서 뒤풀이를 하고 9시를 조금 넘겨 해산했다.

대학생들의 순수한 열정이 빛난 연주회를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참 유쾌하고 즐거운 일이다. 한편으로는 오랫동안 음악과 접하면서 쌓아온 저들의 역량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무모하다 싶은 도전도 거침없이 해버리는 그 용기가 부럽기도 하다. 어느 것이나 나에게는 부족한 것들이다.

다음 연주회 곡이 발표되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다. 브람스와 차이코프스키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는 내부 정보를 들은 이후로 나는 브람스를 열렬히 응원 해 온 터여서, 이 발표를 듣고는 허탈해졌다. 나는 보통 남들 앞에서 나의 호불호(이것은 좋고, 저것은 싫다는 식의)를 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요즘 나는 브람스에 대한 나의 애착을 노골적으로 피로하고 다녔다. 어떤 곡이 주어지든 나는 불평할 처지가 아니지만, 덤으로 주어진 이 마지막 기회에 나는 꼭 브람스와 만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과는 내가 바라던 것과 달랐고, 어떻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생각이 좀 복잡해졌다.

2009/11/15 22:42 2009/11/15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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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 건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불행해지지 않는 확실한 방법은 알고 있다. 그것은 남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여기지 않는 것이다. 오늘 하루 행복했던 사람에게는 축복을.

아침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벌써 네 번째 레슨이다. 스케일을 먼저 체크하고, 카이저 10번, 이어서 하이든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힘차게, 애절하게, 간결하게.’ 하이든 악보 군데군데 선생님이 적어놓은 것들이다. 음악에도 표정이 있다. 그걸 몰라서 표현 못 하는 것이라면, 개선의 여지는 없어도 마음은 덜 답답할 것이다.

점심때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모시고 나가 외식을 하고 왔다. 간밤에 통 잠을 못 자서 연주회 가기 전에 눈 좀 붙일 요량으로 소파에 누워 TV를 켜니, 마침 Arte TV에서 대한민국 국제음악제의 연주회를 재방송 해 주고 있었다. 음악이나 듣다가 서서히 잠들면 되겠구나 싶었는데, 하필이면 연주곡이 오늘 저녁 성남시향 연주회 프로그램에도 들어있는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이 아닌가. 원래 연주회에 가기 전에 곡을 복습(들어본 적이 없는 곡이라면 예습)하는 습관이 있어, 잘 됐다 싶어 졸음을 잠시 참고 연주를 감상했다.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다니엘 게데, 첼리스트 율리우스 베르거였다. 오케스트라는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율리우스 베르거라는 첼리스트가 사용하는 첼로, 수령이 400년도 넘은 아마티의 작품이라던가.

브람스의 이중협주곡이 끝나니, 이번에는 지난 9월 유포니아 정기 연주회 때 연주했던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을 연주했다. 계속 보다가는 연주회장에 가서 졸 것 같아서, 적당히 볼륨을 낮춰놓고 일단 눈을 감아버렸다.

연주 시작 2시간 전쯤 집을 나섰다. 저녁 식사를 하지 않았지만, 조금 일찍 도착하면 간단히 뭐라도 사먹을 요량이었다. 차는 버스 정류장 근처 무료 주차장에 세워두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했다. 먼저 강남으로 가서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서초역으로 갈지, 아니면 양재로 가서 3호선 남부터미널역으로 갈지 잠깐 고민했다. 결국 고속도로를 타는 강남역 직행 버스를 타기로 했는데, 이 선택이 잠시 후 예상치 못 했던 엄청난 결과를 몰고 왔다.

도로 사정은 이미 고속도로 상에서부터 심상치가 않았다. 일반차량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여 버스가 요금소를 빠져나와 전용 차로로 진입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전용차로에 오른 뒤부터는 어느 정도 속도를 내긴 했지만, 오늘따라 버스가 많아서 여느 때처럼 빨리 달리지는 못 했다. 게다가 이따금 꽉 막힌 도로 사정에 짜증이 폭발한 일반 승용차 운전자들이 무단으로 버스 전용 차로에 진입하면서 버스의 앞길을 가로 막는 일도 생겼다.

반포 IC를 통해 강남으로 빠지는 길목에서 이미 끔찍한 정체가 시작되었다. 교보타워 앞 사거리를 돌아 신논현역 앞 정류장까지 평소라면 5분도 안 걸릴 거리를 가는데, 평소의 몇 배의 시간이 걸렸다. 이미 이 시점에서 내가 여유롭게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은 사라져버린 것이다. 서울의 교통 혼잡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지만, 이 엄청난 낭비를 초래하는 도시 문제가 과연 언젠가 해결 될 날이 오긴 할지 의문이다. 이건 문제다. 그러나 누구나 여기에 짜증은 내면서도, 정작 이를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고 하지 않는다. 이래서 나는 정부 정책으로 행정 수도를 이전한다고 했을 때 쌍수를 들어서 환영을 했던 것인데, 헌재에서 관습 헌법 운운하며 위헌 결정을 내렸을 때 이미 반쯤은 포기했고, 요즘 세종시를 둘러싼 유치한 논쟁을 보면서 완전히 절망했다.

강남역 인근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정말 아무 것도 없는 강남에 대체 무슨 볼거리가 있다고 사람들이 이렇게 꾸역꾸역 밀려드는지 모르겠다. 인파를 헤치고 강남역으로 걸어가, 간신히 지하철을 탔다. 그러나 여기서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사태가 벌어졌다.

강남역과 예술의 전당이 가까운 서초역 사이에는 단 한 역, 교대역이 있을 뿐이다. 이동 시간은 길어야 10분 남짓? 서초역에 도착해 출구에서 버스를 잡아타면, 적어도 연주회 시작 10분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는 있었다. 배고픈 것은 인터미션 때 로비의 카페에서 케이크라도 한 조각 사먹으면 달랠 수 있을 터. 교통이 혼잡했지만, 지각을 면하게 된 것을 다행이라고 여기며, 이제 막 교대역에서 승객을 태운 열차가 다시 출발하기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한 차례 열차의 문이 닫혔다가 다시 열렸다. “출입문 닫겠습니다.”란 기장의 안내방송. 다시 닫히는 문. 그러나 이내 문이 다시 열렸다. “출입문 닫겠습니다.” 다시 한 번 방송. 그러나 또 닫혔다 열리는 문.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우리 열차는 현재 출입문 고장으로 잠시 정차하고 있습니다. 조치 후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이용에 불편을 드려 대단히 죄송합니다.”

살다보면 이렇게 뭐든지 꼬이는 날이 있기 마련이다. 강남에서 서초까지 고작 두 정거장 가는데, 하필이면 그 사이에서 열차가 고장 날 게 뭐란 말인가? 처음에는 금방 고치겠지, 했는데 5분, 10분이 지나도 열차는 출발할 생각을 안 했다. 연주회 시작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가 나서 표정이 일그러지고 나도 모르는 새에 주먹을 꽉 쥐기도 했다. 가끔은 정말 있는 힘껏 발로 땅을 구르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을 만큼 짜증이 솟구치기 마련이다.

열차는 15분가량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열차에서 내려, 역 밖으로 나가 택시를 잡아탔다. 도로 사정은 이쪽도 별로 좋지 않았다. 첫 프로그램인 ‘대학축전서곡’은 물 건너 간 것이 확실했다. 이제는 두 번째 프로그램 전에만 입장할 수 있기를 바라야 할 판이었다.

콘서트홀에 도착했을 때, 홀 안에는 대학축전서곡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서둘러 현장매표소에 가서 티켓을 구매했다. 프로그램 일부를 놓쳤지만, 그래도 R석 괜찮은 자리의 표를 샀다. 일단 화장실에 들러 땀을 좀 닦아내고, 호흡을 가다듬은 뒤, 로비에서 역시 지각한 한 무리의 사람들과 함께 입장을 기다렸다. 금방 대학축전서곡이 끝났다. 직원은 티켓에 적힌 좌석과는 상관없이 일단 가까운 빈자리로 안내를 해주었다.

다행히 협주곡을 놓치지 않아서 안도했지만, 숨 가쁘게 온 터에다 아직도 분노가 가라앉지 않아서 1악장 연주 때는 연주에 좀처럼 집중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2악장 안단테가 시작되자 차분한 주제 선율에 마음이 좀 진정되었다(첫 머리의 호른이 약간 불안한 것 같았지만, 무난하게 넘어갔다). 아름다운 선율을 고음부의 바이올린과 저음부의 첼로가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 참으로 평온하게 느껴졌다. 연주회장까지 오면서 쌓인 짜증이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이날의 협연자는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와 첼리스트 송영훈. 송영훈은 자주 본다.

그리고 3악장. 아마 브람스의 이중협주곡 중 가장 유명하고 사랑받는 악장일 것이다. 시작부터 첼로가 경쾌한 주제 선율을 연주한다. 이것을 곧바로 바이올린이 받고, 이어서 전체 관현악이 포르티시모로 연주하는데, 관객들로부터 최고의 몰입을 이끌어 낸다.

입구에서 공짜로 나눠준 프로그램 북은 공짜인 만큼 허술하기 짝이 없었는데(곡 해설은 책의 것을 그대로 베꼈거나 혹은 개인 일기장에나 적어두는 게 어울릴 만큼 주관적인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 프로그램 북에 따르면, 이 곡을 작곡할 때 브람스는 솔리스트들의 기량은 고려하지 않은 것 같다고 되어있다. 이 곡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면 이게 대체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을 텐데, 아마 브람스가 너무 어렵게 곡을 써놔서 마치 당시의 연주자들의 기량이나 한계 따위는 아랑곳 않은 듯 여겨진다고 말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이 곡은 연주에 고도의 기교를 필요로 해서, 솔리스트들 개개인에게 높은 역량이 요구된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뛰어난 연주자들이 워낙 많으니. 이것도 프로그램 북에 적혀있던 내용이지만, 바이올리니스트 김현아는 뉴욕 콘서트 리뷰로부터 “정교하고 화려한 테크닉, 맑고 영롱한 소리, 깊고 넓은 음역, 열정적이면서도 담백한 연주 스타일, 바이올리니스트로 최상의 기량과 미덕을 갖춘 연주자”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되어 있다. 화려한데 정교하고, 열정적이지만 담백하며, 깊은데다가 넓기까지 하다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린가 싶다.

하지만 분명 솔리스트들의 연주는 훌륭했다. 다만 워낙 힘에 넘치는 대곡이고, 또 협주곡을 쓸 때에도 항상 오케스트라 부분을 탄탄하게 작곡해 놓는 브람스라 그런지, 상대적으로 바이올린의 경우에 프로젝션이 조금 부족하게 느껴졌던 건 있다.

이중협주곡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객석에서 휴대폰이 한 차례 울렸다. 그리고 1악장이 끝난 뒤에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연주회장 안에서 휴대폰을 꺼놓아야 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몰상식한 사람은 없을 테니까, 부주의에 의한 실수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다. 악장 사이에 박수는 좀 더 미묘한 문제다. 아마추어 연주회 때에는 별다른 주의가 없으면 십중팔구 악장 사이에 박수가 터져 나온다. 지난 번 삼성필 연주회 때는 브람스 4번 1악장이 끝나자 객석에서 박수가 나오려는 것을 지휘자가 객석을 향해 손을 내저어 제지한 바 있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는 것은 하나의 에티켓으로 여겨지지만, 이것은 물론 강제적인 사항은 아니다. 또 어떤 곡들은 정말 마음껏 박수를 쳐보라는 식으로 1악장을 끝맺는다. 가령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1악장이 끝났을 때 박수를 치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 않는 관객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모든 악장이 연주 될 동안 어떤 감정을 유지하는 것을 방해받지 않을 권리라는 것도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은 무식한 행동’이라고 정의 해 버리면 간단히 끝날 일이겠지만, 오페라의 훌륭한 아리아가 끝나면 그 감동을 당장 표현하기 위해 열렬한 박수를 치는 것처럼, 종종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것도 허용될 수 있는 게 아닐까.

나는 악장 사이의 박수보다도 이때다 하고 터져 나오는 기침이나, 마지막 악장 마지막 음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도 않았는데 아는 체하고 브라보를 외치는 따위의 행동이 더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인터미션 시간에는 로비의 카페에서 치즈 케이크 한 조각과 카페라테를 사서 일단 허기를 달랬다.

오늘 연주회는 브람스 스페셜로 구성되었다. 첫 프로그램인 대학축전서곡은 놓쳐버렸지만, 그렇더라도 이중협주곡과 메인 곡인 브람스 교향곡 4번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즐거움이다. 특히 오늘 성남시향의 연주로 듣는 브람스 4번에는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나는 국내 시향들의 연주를 직접 들으러 연주회장을 찾은 경험은 별로 없지만, 매일 같이 클래식 연주회 장면을 방송해주는 고마운 Arte TV를 통해 국내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시향들의 연주를 다 감상했다. 이건 나의 솔직한 감상인데, 요즘 국내 오케스트라의 실력은 상당히 뛰어난 것 같다. 과거의 이야기는 잘 모르지만, 듣는 바에 따르면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서울시향조차 오늘날의 영광을 상상할 수 없을 수준이었다고 하는데, 요즘은 정말 많은 오케스트라들이 ‘들을 만한 연주’를 들려준다.

매년 봄이면 전국의 시향들이 총출동하여 ‘교향악 축제’를 여는데, 각 시향들이 서로의 역량을 비교하게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2003년에 생긴 성남 시향도 지금까지 세 차례 교향악 축제에 참가하였다. 자기 고장에 오케스트라가 있다는 것은 뿌듯하고 즐거운 일이다. 앞으로 애정을 갖고 지켜봐야겠다.

브람스 4번. 브람스의 마지막 교향곡. 전체적인 짜임새도 정말 훌륭하지만, 2악장이 너무나 아름다운 곡. 이 2악장은 시작과 함께 호른과 목관이 주제 선율을 연주해 나간다. 그 사이에 현은 피치카토로 반주를 한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프로 오케스트라를 비교하면 그 차이점이야 수도 없이 많지만,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현악기의 ‘피치카토’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 있어 피치카토는 가장 취약한 부분이다.

만일 ‘시간’을 x축에 놓고, 그 위에 현악기로 연주되는 음의 길이를 표시한다면, 대부분의 경우에는 기다란 선분으로 그려질 것이다. 그러나 피치카토는 시간 축 위에 점을 찍는 것이다. 연주 되는 음의 길이가 충분히 길면, 설령 첫 머리에 연주자들 간에 호흡이 완벽히 일치하지 않더라도, 나중에 자연스럽게 하나의 소리로 모이게 된다. 그러나 피치카토 주법으로 연주 할 때에는 그런 여유가 없다. 한 번 소리가 어긋나면 시간 축 위에 무수한 점이 찍히게 된다. 그러면 정말 참아줄 수 없는 지저분한 소리가 되어버린다.

문제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도 연주자들 자신이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마추어 연주자라면 누구라도 피치카토 부분에서는 소심해질 수밖에 없다. 자기 혼자 엉뚱한 박자에 소리를 내면, 피치카토 부분에서는 너무 확연히 드러난다. 이런 위험부담을 지고 싶어 하는 사람은 없다. 결국 지저분한 소리가 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소리가 사라져버린다.

의미 없는 음표는 한 개도 쓰지 않는 브람스다. 반주는 화성을 채워주고, 소리를 두텁게 하며, 긴장감을 유지시켜주고, 주제 선율을 돋보이게 한다. 이 반주가 무너졌을 때, 연주는 맥이 없어지고 흐물흐물 거리며, 무게 중심 없이 그저 부유하게 되어버린다.

탄탄한 소리와 팽팽한 긴장감 끝에 아름다운 현악기의 소리로 주제 선율이 변주되어 연주될 때, 비로소 감상자는 감동으로 살짝 눈시울을 붉힐 수 있는 것이다.

앙코르 곡은 예상했던 대로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이었다. 다행히 5번은 아니고, 1번을 들려줬다. 브람스가 꼭 가을에만 어울리는 작곡가인지는 모르겠지만, 가을이면 브람스의 곡을 많이 찾는 건 분명하다. 이제 겨울을 바라보는 늦가을, 브람스와 함께한 저녁은 즐거웠다.

2009/11/12 05:32 2009/11/12 0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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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잘 벌어오는 가장에게는 무슨 일을 하는지 묻지 않는다.” 삼성 같은 대기업들을 보면 드는 생각이다. 나는 조중동 같은 휴지에 사설이나 내는 부류의 인간들이 언급하기 좋아하는 ‘좌파적 사고에 물든 인간’도 아니고, 홀로 정의를 부르짖는 도덕론자도 아니다. 다만 눈뜬장님은 아닐 따름이다. 일개 기업의 부도덕, 부정(不正)에 대해 분개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누구 한 사람 감히 직언할 수 없고, 점차 그것을 직시하려 하는 사람조차 사라져가는 무거운 현실은 나를 화나게 한다.

신화란, 과거를 현재의 입맛에 맞게 날조해버린 것이다. 찬란한 위광을 바라보며 ‘조금 더, 조금 더’를 외치며 걸어가는 사이, 우리의 눈은 완전히 멀어버리게 된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일평생을 위기의식 속에 살아가야 하는 대한민국에서, 이 모순된 사회의 정점에 서서 위기의식을 늘 조장하는 장본인들이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둥 ‘사람을 향합니다.’라는 둥 떠드는 꼴을 보면, 비위가 상한다.

대기업의 횡포가 무엇인지, 우리는 아직 알려고만 하면 얼마든지 알 수 있다. 그러나 여하한 이유에서건 그것을 알기를 포기할 때에, 오욕의 과거를 깨끗이 포장해 반들반들한 현재로 만들어버린 그들에게 결국 미래까지 내어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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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서는 취미 생활도 단순한 취미 생활일 수 없는 모양이다. 삼성필의 연주는, ‘백혈병 아동 돕기 자선 연주회’를 표방하고 있었다. 좋은 일은 좋은 일이니, 여기에 토를 달 생각은 없다. 독기 어린 얼굴로 악착 같이 투쟁과 혁신을 외치며, 이마트로 유통망을 장악하고는 PB 제품을 남발하여 제조회사의 목을 옥죌 때, 백혈병 아동을 자식으로 둔 가장은 실직을 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별개의 문제다.

삼성필은 삼성 임직원들이 모여 만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다. 이것을 창단한 사람이 유포니아 출신의 선배라고 한다. 그래서 삼성필이 연주를 할 때면 으레 초대권이 날아오곤 하는 모양이다. 동아리 후배 녀석이 같이 가자는 제의를 해주어서 가기로 했다. 비록 내가 지금까지 아마추어들의 연주 무대를 꽤 여럿 보러 다니긴 했지만, 그게 취미인 사람은 아니다. 아마추어들의 열정이야 높이 사고, 나 역시 아마추어 음악인으로서 자극을 받는 게 사실이지만, 단적으로 말해서 아마추어들에게 음악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 대단하다는 삼성 그룹의 오케스트라이지만, 유포니아와의 인연이 아니었더라면 일부러 갈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연주 장소가 세종문화회관이었다. 오랜만에 광화문으로 나갔다. 시간이 조금 남아서, 교보문고에 들러 명곡해설라이브러리 시리즈의 브람스 편과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일어판을 구입했다. 책값만 8만원 가까이 나와서 그동안 모아둔 적립금을 사용하기로 했다. 저녁 식사 전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햄버거라도 하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버거킹이 있는 쪽 출구로 나가려는데, 출구 바깥에서부터 교보문고 안으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오늘 무슨 작가의 사인회가 있는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저마다 품에 끼고 있는 책을 힐끗 보았는데, ‘보통의 존재’라는 제목을 달고 있었다.

출구로 빠져나오니, 풍경이 낯설었다. 버거킹이 있어야 할 자리는 흉하게 뜯겨나가 있었다. 없어져버린 것이다. 교보문고에 오면 으레 들르는 곳이었는데.

이러는 사이 시간이 촉박해졌다. 뭐라도 먹어야겠기에 세종문화회관 옆 골목에 있는 KFC에서 세트 메뉴 하나를 주문해 허겁지겁 먹고 대극장으로 향했다. 거기서 네댓 명 되는 일행과 만났다. 화장실에 먼저 들렀다가, 연주회장으로 들어갔다. 세종홀에 처음 온 한 사람은, 홀안 여기저기를 사진으로 찍어 남기느라 바빴다. 생각해보면 나도 작년 서울시향의 마스터피스 연주회 이후로 세종홀을 찾는 게 처음이다.

선배들이 보내준 초대권의 자리는 꽤 괜찮았다. 상당히 앞쪽 자리라, 관 파트를 보는 것은 어려웠지만, 대신 협연할 솔리스트는 가까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곡은 스메타나의 교향시 모음곡 ‘나의 조국’ 중에서 두 번째 곡인 ‘몰다우 강’이었다. 너무나 유명한 곡이지만, 연주하기가 쉽지는 않다. 사실 이 곡의 핵심은 다소 유치한 느낌마저 드는, 귀에 착 감기는 주선율이 아니라, 짧게 상승과 하강을 반복하는 반주다. 바로 이 반주가 몰다우 강의 넘실거리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강의 넘실거림을 표현한 스케일은 어느 한 파트가 단독으로 맡지 않는다. 때로는 저음 악기에서 고음 악기로, 다시 고음 악기에서 저음 악기로 건네주며, 시각적으로도 강물의 넘실거림을 완벽히 표현한다. 그리고 당연한 얘기지만, 아마추어에게는 이런 주고받기가 쥐약이다. 강물의 유려한 넘실거림이라기보다는, 얼마 전 서울국제아트페어에서 본, 모터를 돌려 억지로 표정을 바꾸는 모택동 초상화를 보는 기분이었다.

두 번째 곡은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이었다. 3악장 구성의 정통 첼로 협주곡은 아니지만, 단순한 소품 취급하기에는 규모가 상당한 곡이며, 첼로 협주곡 레퍼토리로 꽤 인기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좋아하는 곡은 아니다. 나 역시 일반 대중들과 비슷한 입맛을 가지고 있다. 첼로 협주곡으로는 드보르작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엘가의 협주곡 1악장을 좋아하며, 경쾌한 하이든도 멋지다고 생각한다. 차이코프스키의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그러나 어딘가 변주가 밋밋한 느낌이다. 어쩌면 주제 선율이 너무 단조로워서일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데에는 탁월했던 차이코프스키이지만, 변주는 그의 장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협연한 첼리스트는 ‘송영훈’으로,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상당히 인정받는 대단한 실력자이다. 이런 사람을 섭외한 것도 삼성이니까 가능했던 것이겠지만, 굳이 이런 스타를 불어와야 할 필요가 있었나 싶기도 하다. 탁월한 솔리스트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의 결합은 반드시 절름발이를 낳게 되어있다. 유포니아도 바로 얼마 전에 대단한 교수님들을 모시고 연주회를 했으니까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얘기지만, 오케스트라는 두 가지 생각을 품게 된다. 첫째는 솔리스트에게 적당히 묻어가지는 것이고, 둘째는 솔리스트에게 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솔리스트에게 묻어갈 생각을 버리고 당당히 ‘협연’을 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솔리스트에게 ‘폐’가 안 되는 것은 당연하다. 솔리스트만 너무 부각된 나머지, 차라리 독주곡을 연주하는 게 나았을 뻔했다.

이날의 메인 곡 브람스 4번은, 처참했다. 내가 사랑하는 브람스의 교향곡이 이렇게 처참하게 망가지는 꼴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미어질 지경이었다. 내 옆의 두 사람은 브람스의 4번을 오늘 처음 들었다는데, 이들이 이런 엉망진창의 연주로 브람스를 접했다는 게 너무 안타까웠다.

이미 1악장의 제1 주제부터 엉클어지기 시작했다. 음정이 안 맞는 거야 둘째 치더라도, 오케스트라의 호흡이라는 게 실종된 듯 보였다.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의 유니즌으로 강한 표정이 살아나야 할 부분에서는 그저 얼이 빠져있었다. 관악기들은 조율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은지, 아주 듣기가 괴로웠다. 클라리넷은 악기가 망가졌거나 아니면 연주자가 신종플루에라도 걸린 것 같았다.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하고 나온 악장은, 그저 나이가 많아 그 자리에 앉았다는 게 확실 해 보였다. 오케스트라를 리드하기는커녕, 옆 사람 쫓아가는 게 고작이었다. 실수는 또 왜 그렇게 잦은지. 감동의 떨림이 느껴져야 할 2악장에서는 창자가 내려앉는 것 같았고,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답게 허용된 템포 안에서 가장 느리게 연주한 3악장은 결정적인 순간마다 목에 생선 가시가 걸린 듯한 답답함을 선사했다. 4악장의 피날레에 이르렀을 때, 언제나 특유의 치밀함으로 바닥부터 견고하게 쌓아와 클라이맥스를 들려주는 브람스의 교향곡은 간데없어, 왜 피날레가 지금 나오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아마추어들은 자신들의 열정을 과대평가 하는 경향이 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시간을 내서 두어 시간 연습하면 그게 자신에겐 최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연주 무대에 서면 그 노력의 값어치를 사람들이 다 알아 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 진지한 표정, 자못 자랑스럽다는 태도와 어설픈 연주의 부조화를 보며, 관객은 이게 장난하자는 건지 한 번 제대로 해보자는 건지 알 수 없게 된다.

앙코르 곡으로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를 연주했는데, 첼리스트 송영훈이 다시 나왔다. 이 대스타가, 구원투수가 아니라 패전처리 투수 역할을 맡았다.

백혈병 아동 돕기 성금 전달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오케스트라는 관객들 앞에서 삼성의 사가(社歌)를 연주했다. 단언하건데, 이 날의 연주 중 가장 훌륭한 연주였다.

이들의 연주는, 아마추어의 열정을 보여준다기보다는, 아마추어의 열정을 조롱하는 것 같았다. 엄청난 돈을 들여 대스타를 솔리스트로 부르고, 세종문화회관 같은 최고의 홀을 섭외하고, 백혈병 환우 돕기라는 공익적 가치를 내걸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을 초대장으로 불러와 떠들썩한 자리를 마련했지만 정작 연주에는 내실이 없고, 진심으로 노력한 티도 나지 않았다. 겉만 번지르르할 뿐이었고, 우리 삼성맨들은 노예 부림 같은 생활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관심의 끊은 놓지 않고 있다고 애처로이 항변하는 듯했다. 음악을 즐기고 싶으면, 겉치장부터 뜯어버리라고 충고해주고 싶었다. 이들이 입은 겉옷은 삼성이라는 이름으로 빌려 입은 것이지, 연주에 대한 열정이나 실력을 갖춰 입은 게 아니다. 한 마디로 겉멋 부릴 자격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연주회 끝나고 신촌으로 가, 며칠 후면 군입대하는 전임 회장 송별연에 잠깐 얼굴을 비추고 맥주 두어 잔을 급히 비운 후, 나는 돌아왔다.

2009/11/09 16:11 2009/11/09 1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