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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례없는 3주 연속 통역 임무를 마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복귀했다. 놀러 다닌 것도 아니건만 오랜만에 돌아온 사무실에서는 눈치가 보이고, 접수해야 할 문서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국방일보에는 또 내 사진이 실렸다. 정작 내 이름은 언급도 안 되지만, 사진만 보면 주인공이다.

지난 1년, 한국과 일본 양국의 공군 간 교류의 현장에는 항상 내가 있었다. 물론 내가 아니었어도 누군가는 대신해서 일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 모든 안건의 발표가, 연회에서의 환영사가, 친선과 우의를 다지자는 결의가 모두 내 입을 통해 전달됐다. 물론 나의 이런 역할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아마도 단기 위관 장교로서는 부대 동정 사진에 가장 많이 얼굴을 내비치는 사람일 거다. 하지만 사진 아래에는 내 이름이 적히는 법이 없다. 대부분 사진의 정 중앙에 떡하니 서있지만, 사진을 보는 사람들은 내가 어느 부대의 누구인지 알 길도 없다. 국방일보 기사에, 각종 교류회의의 결과보고서에, 나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지만, 그 기사와 회의록 안에 삽입된 인용구들은 대부분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이다. 내가 이해하고 해석하고 때로는 의미가 잘 전달되도록 가다듬은 문장들 말이다.

끊어질듯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의 끈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 하는 심정으로 통역에 임하던 1년 전에 비하면, 이제는 졸면서도 통역할 수 있겠다 싶을 만큼 배짱도, 요령도 생겼지만, 여전히 통역 임무가 신체적으로 또 정신적으로 얼마나 많은 부담이 되는지는 통역 임무가 끝난 뒤에 밀려오는 피로로 짐작할 수 있다. 3주간의 통역을 끝낸 지금, 나는 한 달 동안 잠만 잘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통역은 시간이 긴 만큼 이동한 거리도 길었고, 방문한 지역도 많았으며, 무엇보다 평생 기억에 남을만한 에피소드들도 여럿 있었다. 군인은 언제 피를 흘려야 할까? 전장에서 척의 총탄에 맞았을 때? 아니다. 술에 만취해서 제 몸도 못 가누면서 기어이 2차로 유흥주점에 기어들어가 토하려고 화장실 찾다가 문에 머리를 들이받았을 때이다. 1년이나 2년, 또는 먼 미래를 내다보는 장기적인 안목과 술잔에 코를 박고 마시는 ‘물레방아 주’ 사이에는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 기막힌 꼴도 보지만, 실제 초음속으로 하늘을 가르는 비행기가 제작되고 있는 현장을 견학하고, 한국의 육, 해, 공 삼군이 보유한 모든 공중 전력이 총 출동하여 공중 퍼레이드를 펼치는 장관을 구경하기도 했다. 마음으로부터 감탄하게 되는 훌륭한 인물도 만나게 되고, 반면교사도 본다.

물론 통역을 할 때에는, 내가 제법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군 생활 중 가장 빛나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느끼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일상에서 벗어나 특수한 상황 속에서 생활하다보면 다시금 생활의 안정을 바라게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일상으로 복귀하면 그 따분한 책상 앞에서 금세 일탈을 꿈꾸게 된다. 인간의 마음이란.

통역이 남긴 후유증의 하나는 체중의 급격한 증가다. 거의 움직임이 없는(이것도 힘들다) 상태에서, 힘겨운 정신노동. 저녁에는 호화스러운 만찬을 함께하고, 때로는 술도 마신다. 무엇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음식 섭취량에 대한 절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주말에 집에서 쉴 때에는 과자와 음료를 끼고, 환자처럼 누워서 생활했다.

오늘 체육관에서 문자가 왔다. 재등록일이란다. 9월에 등록하고 첫 주 5일 운동하러 나간 뒤 차 엔진 폭발과 연이은 통역 업무 때문에 한 번도 운동을 나가지 못 했다. 바이올린도 사정은 마찬가지. 9월 달에는 연습실 대여료만 지불해놓고 거의 연습실을 찾지 못 했다.

이제 일상으로 복귀한다. 오늘, 머리도 깎고 모처럼 카페에서 커피 한 잔 하며 책도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거의 한 달 만에 체육관을 찾았다. 그 사이 월 회비가 2만원 올라서 10만원이 되어 있었다. 줄넘기와 잽 연습을 십 여 라운드 하니, 다리는 후들거리고 온 몸이 땀으로 범벅된다. 살을 빼고 말고를 떠나서 이렇게 땀을 흘리는 자체가 기분 좋다. 방으로 돌아와서는 지난 주말에 새로 구입한 카메라로 술병 사진을 찍어본다. 썩 마음에 드는 사진이 나오지 않는다. 아직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 방법을 모르겠다. 하지만 조만간 술 관련 포스팅은 재개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다. 이런 소소한 일들이,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이다.

2011/10/06 01:14 2011/10/06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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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71次 韓?日 情報交流?議

10. 27 ~ 10. 30


韓?日情報交流?議 ?謀?長表敬

大韓民?空軍?謀?長(左) & 日本航空自衛隊運用支援情報部長(右)

and…….


끝났다!

2010/10/31 00:01 2010/10/3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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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공군 본부, 계룡시의 계룡대. 결국 본부까지 진출했다. 스물 다섯 평생에 안 가본 곳들을, 군 생활 하면서 다 다녀본다. 여기저기 출장을 다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통역을 한다. 이런 나의 군 생활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어떻게 비칠까? 능력도 발휘하고, 여행도 하고, 돈도 버니 썩 괜찮다고 생각할까.

일요일 저녁, 출발 직전에는 잠시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졌다. 어지간해서는 스트레스 따위는 받지 않는 나도, 주말마다 이어지는 격무에 한 달 간격으로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야 하는 것은 부담이다. 아니, 나처럼 사람과 엮이기 싫어하는 성격으로는 매번의 파견이 곤혹스러움 그 자체라고 해야하나.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것을 추스르며 간신히 집을 나섰지만, 읽을 책 한 권 챙겨오는 것조차 잊었다. 단 며칠의 일정이라도 책 챙기는 것을 잊은 적은 없는데, 꽤나 정신이 없었나보다.

4인용 숙소를 잡아줬다. 중간중간 브리퍼라든가 다른 통역 장교가 들를 일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나 혼자 쓴다. 인터넷이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점만 빼면, 널찍한 공간에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깨끗해서 마음에 든다.

지금은 공군 본부 항공정보과 사무실에서 이번 행사 기간 중에 있을 만찬 때 부장님이 써먹을, '우정, 술, 가을'을 주제로 한 '일본어 속담, 격언, 금언' 따위를 찾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속담집이라도 한 권 챙겨오는 건데.

본부는 본부다. 영관급들은 낙엽처럼 밟히고, 별들은 청명한 가을 밤하늘처럼 빽빽하다. 오직 다이아만이 정말 다이아처럼 귀하다. 신기해서 그런지 마주치는 영관급들마다 말을 걸어오곤 한다. 단 한 명의 별 이하 엄격한 위계 질서가 존재하는 비행단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2010/10/25 15:03 2010/10/2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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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공군회관 501호. 오늘부터 일본 공군 예비역 단체인 츠바사회 방한 행사 통역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공군회관에 내 방을 잡아줬다(무려 트윈이다). 무선 인터넷도 잘 잡힌다.

이미 진 별이긴 하지만, 이번 행사 기간 동안 내가 볼 별의 숫자만 50개가 넘는다. 살다보니…….

최장 9일이라 호들갑이던 추석 연휴인데, 평시보다 피곤하다. 내일부터는 하루 종일 통역. 쉽지 않겠군.

2010/09/26 18:52 2010/09/26 18: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