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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일을 20여 일 남겨두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산부인과 정기 검진을 받았는데, 초음파 영상을 살펴보던 의사 선생님 표정이 굳어졌다. 아기가 자궁 안에서 성장을 멈췄단다. 말문이 턱 막힌 채 연신 눈물만 쏟는 아내를 데리고 대학병원을 찾아가니, 당장 내일이라도 배를 가르고 애기를 꺼내야만 할 것 같다고 했다.

 

별안간 입원하게 된 아내는, 전신 마취 후 제왕절개로 아기를 꺼내면 이 세상에 나오는 모습을 지켜봐줄 수가 없지 않느냐며 또 한 번 눈물을 흘렸다. 하반신 마취만 하고 수술을 받으면 바깥세상의 공기로 첫 숨을 쉬는 아기를 안아줄 수 있으니, 꼭 그렇게 하고 싶다고 했다. 간호사가 반신마취 적합도를 보겠다며 피를 뽑아갔는데, 곧 돌아와서는 수치가 기준치에 겨우 걸친다며, 아무래도 전신마취를 해야겠단다. 수술실 들어가는 그 순간까지 눈물이 그렁그렁하던 아내는, 마침내 수술실 안에서 마취과 선생님 앞에서 펑펑 울며 하소연 했다고 한다. 그래서 수술 직전, 마취 방법을 다시 바꾸었다.

 

자신의 배를 열어 지난 37주간 소중히 품고 있던 아기를 내보낸 어미와, 몸무게 2.03kg으로 세상에 나와 첫 울음을 터뜨린 아기는 서로 뺨을 맞대었다. 내 아내는 연신 고마워, 고마워를 읊조리며 울고 또 울었다고 한다. 미숙아에 가까운 체중으로 태어난 아기를 급히 인큐베이터로 옮기고 나서, 의사 선생님이 이제 편히 쉬도록 수면제를 주겠다고 했는데, 아내는 괜찮다며 깨어있는 채로 봉합 수술까지 다 받았단다. 나중에 회복실에서 나온 아내에게 왜 수면제를 맞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더니, 예전에 하반신 마취로 제왕절개 수술 받은 언니로부터 수면마취에서 깨어나고 나니 수술 중에 아기를 안았던 일이 도통 기억이 나지 않더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아내는, 자신과 뺨을 맞대고 울던 아기의 그 일성(一聲), 결코 몽롱한 꿈결 너머로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아기는 꼬박 1주일을 인큐베이터에서 지내고, 다시 2주를 중환아실에서 보냈다. 그러나 의사와 간호사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렇게 작게 태어난 아기가 기특하게도 호흡기 없이 숨을 잘 쉬고, 젖병을 물리면 마다하거나 남기는 법이 없을 만큼 식욕이 왕성했다고 한다. 아기는 3주 만에 몸무게를 500g이나 늘려서, 411일 무사히 퇴원했다. 마침 그날은, 원래 아기가 태어나기로 예정되어있던 날이었다.

 

꼼지락거리는 그 작은 손에, 가만히 내 손가락을 갖다 대니 움켜쥔다.

 

"이 아이가 자라면서 너희에게 줄 기쁨을 마음껏 누려라. 그리고 그 애가 컸을 때 갚아 주어라."

 

30여 년 전, 내가 태어났을 때, 할머니께서 아버지에게 해주신 말씀이라고 한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이 말씀은 다시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전해졌다. 이 뜨거운 생명이 내 손끝을 잡았을 때, 할머니에게서 아버지에게로, 다시 아버지에게서 나에게로 전달된, 이 지혜로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아기의 이름은, 가족의 전통을 따라 한 글자로 지었다. (). 한자는 나의 아버지가 직접 골라주었다. ()과 무()와 돈()이 합쳐진 무적의 글자다. 김윤. 박유희와 김민의 딸이다.

2017/04/15 23:51 2017/04/15 23: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