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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골목 깡패들의 ‘공갈’과 ‘주먹질’이야 참아줄 수도 있지만, 그들의 ‘저능함’은 도저히 참아줄 수가 없다.

2009/07/24 04:10 2009/07/24 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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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서재/독서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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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여호와께서 내게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보이시며 말씀하시기를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하니, 내가 아뢰기를 여름 과일 한 광주리가 보입니다, 하고 답하였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 백성 이스라엘의 끝이 이른 즉, 내가 다시는 저들을 용서치 아니하리니 그 날에 궁전의 노래가 통곡으로 변할 것이며, 죽은 자가 넘쳐나 사람의 시체가 곳곳에 내버려지리라. 이는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궁핍한 자를 삼키며 땅의 가난한 자를 망케 하려는 자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가 말하기를 “언제 월삭이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 수 있을까.” 하며 “언제 안식일이 지나서 우리가 밀을 시장에 낼 수 있을까.” 한다. 에바(되)는 작게 하고 세겔(추)은 크게 하여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으로 가난한 자를 사고 신 한 켤레 값으로 궁핍한 자를 종 삼으며 쌀겨까지 팔고자 하도다. 여호와께서 야곱의 영광을 가리켜 맹세하시기를, 내가 저희의 모든 소위를 영영 잊지 아니하리라 하셨나니, 이로 인하여 어찌 땅이 떨지 않겠으며 그 가운데 모든 거민이 이로 애통하지 않겠느냐. 온 땅이 하수의 범람같이 솟아오르며 나일의 강과 같이 뛰놀다가 낮아지리라.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그 날에 내가 해를 대낮에 지게 하여 백주에 땅을 캄캄케 하며 너희 절기를 애통으로, 너희 모든 노래를 애곡으로 변케 하며 모든 사람이 굵은 베로 허리를 동이게 하며 모두 머리를 밀고서 외아들의 죽음을 슬퍼하게 하여 그 마지막이 이처럼 비참한 날로 끝맺게 하리라.

아모스서 8:1~8:10

과학 지식의 발달과 대중화는, 사람들을 자연 현상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일식을 보고도 그것을 더 이상 재앙에 대한 징조나 신의 징벌로 여기지 않게 되었다. 그 때문일까, 달그림자에 태양이 삼켜져 공기가 싸늘해지고 백주의 대낮이 어두워질 때, 하늘의 눈이 가려진 틈을 타 버젓이 죄를 일삼고 전혀 두려워할 줄을 모른다. 정녕 그들은 하늘에 죄를 얻지만, 용서를 구할 마음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나 궁핍한 자를 삼키고 가난한 자를 멸케 하려는 자, 저울을 속이고 푼돈으로 사람들을 종 삼으려는 자들은 알아야 할 것이다. 무엇이 진정한 하늘의 눈인지를. 태양이 언제고 여호와와 제우스의 뜻으로 가려진 적이 있었던가? 일식을, 크세르크세스의 정신 나간 원정에 대한 엄중한 경고로 만든 것은 정녕 누구였던가?

그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주머니 속에 있는 푼돈을 응시할 때에, 마치 먼 듯 감긴 듯한 민중의 눈은 가만히 그들의 죄를 응시하고 있다. 예언은 사람들의 절망 속에서 태어나, 전염병처럼 번지는 분노를 타고 퍼진다.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변화의 힘은, 언제나 그 예언을 성취시켜왔다. 그 때에 이르러 하늘에 죄를 지은 자, 정녕 용서를 구할 데 없음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2009/07/23 03:18 2009/07/23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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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음악/음악감상

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연도(年度)는 둘. 하나는 1797년. 남자라면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 따위의 멋들어진 대사를 내뱉으며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어버리는 불굴의 무인에 대한 동경을 품는 바보 같은 시기를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인간이 되는 거고, 그렇지 못 하면 짐승이 되는 거지. 그건 그렇고, 나폴레옹이 왜 알프스 산맥을 넘었는지, 사람들은 관심이나 있나?

나는 ‘나폴레옹 멋져’란 생각 때문에 이 연도를 외우고 있는 게 아니다. 게다가 1797년은 나폴레옹이 알프스 산맥을 넘은 해도 아니다. 나폴레옹이 이탈리아 방면 사령관으로 부임한 것은 그 전 일이니까 처음 알프스를 넘은 것은 1797년 이전일 것이고, 저 유명한 일화는 오스트리아와의 전투를 위해 한겨울에 알프스 산맥을 넘었을 때의 일이라니까 좀 더 후의 일일 것이다.

1797년은, 바로 나폴레옹이 베네치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해이다. 이로써 1200년 존속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은, 진부한 표현을 빌자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한때 유럽 제일이었던 국가의 부와 젊은이들의 피를 바쳐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파상 공격을 온 몸으로 받아내면서까지 생존했던 이 국가는, 결국 유럽 국가에 멸망당하고 말았다.

산 마르코 광장을 보고서는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응접실이라고 평할 줄 알았던 나폴레옹이, ‘바다와의 결혼식’ 행사 때 베네치아 통령이 타던 선박인 ‘부르키엘로’는 호화롭다고 바다 위에서 불살라버렸다. 참고로 이 부르키엘로의 아주 작은 모형이, 이탈리아 해군 기지인 아르세날레 남쪽에 위치한 해군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혹 베네치아에 관광 가는 사람이 있거든, 한 번 쯤 들러보라.

나폴레옹과 관련하여 기억하고 있는 또 하나의 연도는 1812년으로, 나폴레옹이 러시아를 침공한 해이다. 사실 이 사이에 나폴레옹의 대관식도 있고 한데……. 이 1812년이라는 해를 기억하는 이유가 바로 다음에 소개할 곡 때문이다.


차이코프스키(1840-1893)


차이코프스키 작곡 ‘1812년 서곡’ 작품 번호 49번.

‘1880년에 작곡된 이 장대한 오케스트라 곡은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한 나폴레옹의 프랑스 군대에 대한 러시아 군의 승리를 묘사한 것으로써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를 병치시켜 양국 군대의 치열한 전투와 러시아 군의 최종적 승리를 생생하게 그려낸…….’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중학교나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도 한 번쯤 들어보지 않았나? 그런데 프랑스 국가와 러시아 국가도 구분 못 하는 애들한테 러시아적인 선율이 어쩌고 해도 사실 씨알도 안 먹힐 이야기란 말이다. 결국 실제 대포를 가져와 펑펑 쏴대고, 교회 종을 울려가며 연주했다더라 하는 ‘일화’ 정도나 기억하면 아는 척 거들먹거릴 수 있단 얘기지.

사실 이 곡은 정말 단순하고 유치하다. 하지만 이 곡에는, 정치적 선전이라는 의도도 어느 정도 들어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한 것만큼’ 이에 효과적인 것도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시작부터 ‘아 차이코프스키’란 느낌의 선율이 연주되다가, 잠시 암울한 분위기가 지배하더니, 요란한 대포 소리와 함께 힘찬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의 선율이 연주된다. 그러다가 마치 러시아의 민족의 각성을 암시하는 듯한 서정적인 선율이 연주되더니, 이번에는 프랑스 군의 고전을 암시하는 듯 라 마르세예즈가 조각조각 해체되어 삽입된다. 마지막에는 러시아의 국가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의 주제가 힘차게 연주되는 가운데, 승리의 팡파르로 장식된다.

혹시 여기 삽입된 멜로디가 러시아 국가가 맞는지 확인 해 보겠다고, 러시아 국가 찾아 듣는 짓은 하지 말기를. 차이코프스키 시대의 국가가 현대 러시아 국가랑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 재밌는 것은, 정작 전투가 벌어졌던 1812년엔 러시아에 국가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참고로 러시아 국가는 1815년에 처음 지정되었는데, 차이코프스키의 시대에는 ‘신이시여 차르를 구하소서’가 1833년부터 새로 국가로 지정되어 불리고 있었다. 이후 소련 시대에 국가가 무려 네 차례나 바뀌었고, 소련이 해체된 직후인 1991년에 국가를 새로 정했으나, 2000년 푸틴 대통령 때 다시 한 번 바뀌어 지금까지 불리고 있다.

한편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프랑스의 국가인 라 마르세예즈도, 분명 혁명기 때부터 널리 불렸으나 국가로 지정된 것은, 1812년 서곡이 작곡되기 불과 1년 전인 1879년이었다. 그 힘차면서도 호탕한 선율 때문에 사랑받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섬뜩하기 그지없다. 이를테면 ‘놈들의 더러운 피를 밭에다가 뿌리자’라든가…….

곡만 들으면 러시아 군의 통쾌한 승리가 연상된다. 그러나 어디 러시아 군이 이렇게 칭송할만한 기념적인 승리를 거둔 적이 있었던가……. 사실 이 곡이 묘사하고 있는 ‘보르디노 전투’는,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쿠투조프가 이끄는 러시아군이 맞닥뜨려 서로 비슷비슷한 피해를 입고 결국 결판을 내지 못 한 싸움이었다. 게다가 쿠투조프가 퇴군을 하는 바람에 결국 나폴레옹이 모스크바까지 진격하게 됐으니, 이 싸움이 어디 이렇게 웅장한 음악으로 치장할 만하냔 말이다.

하지만 결국 인간사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事實)이 아니다.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에게 거의 죽임을 당할 뻔 하고, 겨우 상대방의 실수로 목숨을 건져 ‘평화 조약’을 맺는 것으로 체면치레 했으나, 이집트 전역에 이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는 찬란하다 못 해 손발이 오그라드는 내용의 기념 부조들로 자아도취의 향연을 펼쳐놨으니, 후대 사람들은 그를 정녕 위대한 승리자요, 이집트의 자주적 혼이라 여기지 않는가.

다섯 권짜리 ‘전쟁과 평화’로 읽는 것보다도 이렇게 15분 정도의 음악으로 듣는 이야기가 뇌리에 더 선명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정치 선전이란 ‘단순하고 노골적이고 유치해야’하며, ‘반복적’일수록 효과가 좋다.

하지만 곡의 이러한 성격 때문이었을까, 정작 차이코프스키는 자신이 쓴 이 곡을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본래 현명한 사람들은, 멍청한 사람들의 두뇌에 가장 직접적이고 위력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들을 혐오하기 마련이다.

아무튼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멀찍이 떨어져 있는 우리들은, 그저 예술 작품의 하나로서 감상하면 될 것이다.

바로 이 곡이, 유포니아의 가을 정기 연주회 서곡이며, 나는 제1 바이올린 주자로서 연주하게 된다.

2009/07/21 04:15 2009/07/21 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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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50분 성남 비행장 정문으로 집합. 집에서 성남 비행장까지는 차로 딱 10분 거리다. 면회장에는 면접 보러 온 예비 장교들이 득실득실. 대충 신원 파악하고 주의 사항을 들은 후, 버스를 타고 ‘호국관’이라는 곳으로 이동. 이날 면접에 체력 검사까지 다 하는 줄 알았는데, 혈압 측정 및 색약 검사, 그리고 면접만 한단다. 그런데도 예상 종료 시간이 오후 5시.

이날 면접 본 사람이 100여명이었던 것 같은데, 빨리빨리 진행하면 금방 끝날 것을, 혈압 측정과 색약 테스트 하나 하니까 이미 점심시간. 부대 내 식당 밥은 정말 끔찍하더라. 그런 것 먹으면서 3년을 버틸 순 없어. 그런데 실제 부대 내 사람들이 먹는 메뉴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 혈압은 115/75로 지극히 정상. 색약 같은 게 없어 미술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것에는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 신체검사에서 색약으로만 두 명인가가 탈락했다.

오후에는 면접. 3인 1조로, 총 3개 면접실에서 각 1개조씩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실에는 역시 면접관이 세 명. 나는 2조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아마 3~4시간 걸렸던 것 같고. 하루 온종일 아무 할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다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다. 오전에는 그냥 가져온 책을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시간 때, 지난 번 어학 장교 시험 보러 청주 내려갔다가 인사하게 된 이용준씨와 다시 만났는데, 이 분이 입담이 상당하신 분이라 오후 내내 담소나 나누며(노가리 까며?)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신검 및 면접 결과를 당일 바로 알려준다더니 일정 종료 후 하는 말, ‘오늘 면접은 전원 합격입니다.’

뭐지. 결시자를 가려내기 위한 시험이었나.

참고로 면접 질문은…….

내 앞의 두 사람에게는,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자신의 장점을 포함하여 이야기 해 보라’와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신의 장점을 포함하여 이야기 해 보라’ 등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하다가 나한테는 갑자기!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자네가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그밖에 ‘공군 장교 지원에 대한 주변의 반응, 들은 이야기는?’ ‘먼저 면접 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미리 준비했던 말이나 생각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결하게 말해보라’ 등이었다.

일단 면접이니까 성실히는 임했지만…….

아무튼 공군 사관후보생 123기 면접까지 합격.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될 일은 없어 보이고, 9월 14일 입영은 확정적이다. 두 달도 안 남았군.

면접 다 마치고 나오니 비가 퍼붓고 있었다. 꾸물꾸물한 하늘 보고 우산을 챙겨오긴 했지만, 비가 이정도로 퍼부으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빠가 데리러 와 줘서, 원종필까지 챙겨 출발. 원종필은 인덕원쯤에서 떨어뜨려주고, 잠시 집으로 돌아가 배달원이 비를 피하도록 일부러 쓰레기통에 넣어준 바비큐용 숯을 꺼내 트렁크에 실코서 저녁 먹으러 아웃백으로.

명목상 아직도 다이어트 중이긴 하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 번은 아웃백을 가서 오지 치즈 프라이즈와 퀸즐랜드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시켜 먹은 것은 썸머 특별 메뉴인 스파이시 스테이크 어쩌구와 파스타. 아빠랑 단둘이 커플 메뉴를 시켜 먹었다. 부쉬맨 브래드에 발라 먹는 버터가 또 새로 나왔다. 블루베리가 들어간 것 같던데, 맛은 훌륭했다.

사실 전에 아웃백 갔을 때 어리바리한 알바생이 계산 때 옆 테이블 오더랑 헷갈려서 나한테 5천원을 더 청구했던 일이 있었다. 나중에 사과 전화 오고 1만원짜리 식사권 보내주고 그랬는데, 이 식사권은 도무지 쓸 일이 없다. 식사권은 제휴카드 할인이랑 동시 사용이 안 되는데, 보통 제휴 카드로 20% 할인 받는 게 식사권으로 1만원 할인 받는 것보다 할인 폭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도 그저 카드로 긁었을 뿐이고…….

나중에 메인 메뉴 두 개 이상 시킬 때, 계산을 separate로 해서 사용해야겠다. 음, 고추장 소스를 사용한 스파이시 스테이크는 맛이 좋았는데, 스테이크도 맵고 파스타도 맵고 같이 나온 그라탕도 매웠다. 이건 좀…….

다른 건 몰라도 오지 치즈 프라이즈를 못 먹은 건 아쉬워. 아웃백에 간 의미가……. 이집트 여행 중일 때 감자튀김은 정말 식사 때마다 나와서 어떤 때는 입도 대지 않고 물릴 정도였는데, 어째서 오지 치즈 프라이즈만큼은 이렇게 문득문득 시시때때로 먹고 싶어지는 거지.

토요일에는 오케스트라 파트 연습 및 전체 연습, 그리고 첫 전체 회식까지. 실력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 고생하는 것은 이제 싫다. 오케스트라에 내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것도 지치고, 사양하고 싶다. 이런 나는 자진해서 연주회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음악은 내 어깨를 붙잡고 귓가에 속삭인다,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괴롭게, 즐겁게, 신나게, 힘들게.

취미라고 다 쉬운 것 아니다. 아마추어라고 다 속편한 것도 아니다.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없다.

젠장, 이렇게까지 말해버린 이상 또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잖아. 내일 하루만 적당히 눈치껏 땜빵 해야지.

2009/07/18 03:49 2009/07/18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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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led under 서재/時

한 알의 모래 속에서 하나의 세상을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하나의 천국을 보며,

손바닥 위에 무한을 싣고서,

한 순간 속에서 영원을 느낀다.

윌리엄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中]


원어시 전문



사담

2009/07/16 22:31 2009/07/16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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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보니 아침 10시... 터키 시간으로...

오늘부터 학교 나가서 바이올린 연습도 하려던 야심찬 계획은 간데없어지고, 창밖으로 퍼부어 내리는 빗줄기만 감상하고 있었다. DVD 플레이어가 망가져서, 영화 감상방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하긴, 여름에는 에어컨 없는 영화방이 너무 덥기도 하다.

수요일부터 다시 오케스트라 연습에 합류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연주회고 뭐고 입대 할 때까지 차분하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다.

대체 언제 적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 전부터 내 방에 나뒹굴고 있던 하비스트라는 과자 봉지를 뜯어 생각 없이 먹었는데, 유통기한을 확인해보니 8월 19일까지. 근데 맨 앞의 숫자가 08이다. 음…….

2009/07/15 02:52 2009/07/15 0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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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탄불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휴대전화를 체크하니, 간밤에서 한국에서 두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아빠와 엄마로부터. 내용은 어학 장교로 선발된 것을 축하한다는 것. 얼마 후에는 면접 일시가 문자로 통보되었다.

결국 내가 뽑혔다. 왜 나였을까? 글쎄, 어쩌면 한국어에 출중해서일지도.

2.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부터 헤아려도 꼬박 5년을 끌며 공사만 하던 도로가, 내가 여행 가 있던 3주 사이에 개통됐다! 이로써 분당구민인 내가 차를 몰고 분당의 생활권으로 진출하기는 훨씬 편해졌다. 하지만 코앞의 헬스장이나 마켓에 다녀오는 것은 훨씬 불편해졌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3.

여행 전에 했어야 할 일이지만, 뒤늦게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다. 안경을 맞추러 가면 으레 듣는 소리. 시력을 측정하기 전, “시력이 더 나빠질 나이는 아닙니다.” 시력측정 후 “눈이 많이 나빠지셨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양안 시력은 2.0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른 무엇보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체력, 근력, 지구력, 시력, 후각, 청각 등)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던 때라, 나는 유목민의 시력을 동경했고, 내 눈이 좋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칠판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6학년 때 처음으로 안경을 썼다. 오늘 측정해 보니, 시력이 -5.0 정도가 나온다. 오른쪽 눈에는 경미한 난시까지 생겼다고 한다.

4.

바이올린이 물먹은 소리를 낸다. 여름 장마철에 제습기 하나 없이 케이스에 넣어둔 채로 3주를 방치했더니 이렇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무뎌진 손의 감각이다.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걱정이다.

5.

저녁거리로, 엄마가 금방 뜬 회 한 접시를 사다주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양이 녹아드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먹은 연어 요리는 일품이었다. 흑해의 관문 사리예르에서 먹은 보스포르스산 청어와 쏨뱅이 구이의 맛은 잊지 못 할 것이다. 금각만을 따라 걸으며 한 입씩 베어 문 고등어 케밥조차도 황홀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를 먹지 않는 것은 아무튼 유감이다.

6.

해외 나들이가 잦은 편인 우리 가족은, 더 이성 귀국할 때 선물을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오는 일이 없다. 대체로 우리 가족을 위한 여행 선물은 면세점에서 구입한 초콜릿 정도로 정해져 있다. 내 동생은 술이 든 초콜릿을 잘 사오지만, 나와 엄마는 무조건 고디바 초콜릿 한 상자로 정해져 있다. 이번에는 고디바의 Truffe를 사왔다. Truffe는 송로 버섯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버섯 중에서 가장 비싼 버섯이라는 송로 버섯은 땅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이 육안으로 살펴가며 딸 수가 없다. 중학생 때 읽은 ‘장미의 이름’에는 돼지를 이용해 이 송로 버섯을 캐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그 이후로 난 줄곧 송로 버섯을 돼지가 캐는 줄로만 믿고 있었다. 몇 해 전 무슨 여행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니, 돼지가 아니라 개가 사용되고 있었다. 별 차이는 없지만, 돼지가 좋아하는 송로 버섯 쪽이 더 재밌는데 말이다. 어쩌면 돼지는 송로 버섯을 찾자마자 먹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해서 개를 대신 훈련시키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왜 초콜릿에 ‘송로 버섯’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지? 생긴 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2009/07/14 03:43 2009/07/14 0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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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o there. It's been a long time. Right now I'm in Alexandria. Yes, I'm writing this letter at the Alexandria Library which is legendry one. Of course THE library was burnt up to a cinder when Caesar had fought against Ptolemy XIII two thousand years ago. It was only its legendry name remained until last century.

But the Alexandria library had been rebuilt to revive its gloriousness under support of governments and non-governmental oranizations from all over the world. Now this beautiful marvelous library by the mediterrian sea is becoming the world leading academic site once again.

Tomorrow I will leave to Istanbul of Turkey.
2009/07/08 23:48 2009/07/0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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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신화에는 ‘스핑크스’라는 상상속의 동물이 있다.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는 테베*의 바위산 기슭에 웅크리고 앉아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답을 맞히지 못 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자주 사진으로 보고 이야기로 들어서 실제로 본 적이 없으면서도 마치 본 적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이 스핑크스를, 나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기 위해, 이제 이집트로 떠난다.

*테베

2009/06/22 02:19 2009/06/22 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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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존심이 세고 신중하여 지금껏 별다른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태만했던 것이 아닐까? 지난 수요일, 청주에서 어학 장교 선발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했다.

어학 장교 모집에는 대충 헤아려 60명 정도가 지원한 듯했지만, 그 중 영어과에 지원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일본어과에 지원한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영어 외의 제2외국어과는 매기 1명 선발이 관례라니까, 아마 이번에도 셋 중 한 사람이 선발 될 것이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대학, 대학원을 모두 마쳤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 현역 교토 대학원생이다. 배경으로만 본다면, 고교 시절 독학으로 일본어를 깨치고 대학 학부 시절 겨우 1년 교환 학생 다녀온 나에게는 승산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뽑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이 사실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야 할까? 겨우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 선발되는데, 왜 나는 그게 내가 될 수 없다고 체념하여야 할까?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생각을 뒤집고,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듯 보이는 내가 경쟁에서 이기는 상황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왜 지금 내게는 결여되어 있는가?

일본어에 능숙하다는 것은 나의 오랜 자부심이었다. 나는 어떤 교육 기관에도 거하지 않고 오직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혔으며, 그렇게 익힌 실력으로 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고, 첫 일본 여행도 무사히 마쳤다. 일본에서 살다 온 일이 없으면서도 일본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 나눌 수 있고, 어지간한 현대 작가들의 책은 원어로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은 나의 정확한 일본어 구사와 깨끗한 발음을 칭찬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적당한 곳에서 멈추어버리고,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터무니없이 무욕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과 후를 비교해, 내 일본어 실력은 별로 나아진 점이 없다. 언젠가 고토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는, 오히려 요즘 일본어 공부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왜 이런 정체를 가슴 아픈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까? 탁월함에 대한 동경, 스스로를 연마하는 즐거움 같은 것들은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 속에 섞여, 모나지 않은 돌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독자적인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끝없이 높은 자부심을 안고서 살아갈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적당주의로 일관하는, 타성에 젖은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2009/06/21 21:22 2009/06/21 2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