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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책상 앞 벽면에 떡하니 붙여놓은 세계 지도를 올려다 볼 때면 생각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는 프리토리아…….’

가 아니고, ‘세상은 참 넓고, 갈 곳도 많다’라고. 일부러 한 벽면에 이렇게 큰 세계 지도를 붙여놓은 것은, 나라 이름과 수도나 외우자는 게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코팅된 지도 표면에 내가 몇 가지 표시를 해 놓았는데, 하나는 다키아 속주까지 포함하는 고대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 경계선.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지금까지 가 본 도시들이다. 아무래도 세계지도이다 보니 규모가 큰 도시들만 표시되어 있지만, 아무튼 형광색으로 체크된 방문 도시는 다음과 같다.

- 아메리카 대륙 -

미국: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

-유럽-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바티칸, 나폴리

그리스: 아테네

-아시아-

일본: 삿포로, 하코다테, 아키타, 도쿄, 교토, 고베, 오사카, 후쿠오카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캔버라, 울룰루(에어즈록)

남미는 가 본 적도 없고, 아시아에서는 겨우 극동 지역에 머무르긴 했지만, 그래도 ‘명목상’ 지구상의 모든 대륙 중 아프리카와 남극 대륙을 제외하곤 모두 가 보았다. 이번에 이집트를 가니까, 아프리카 대륙에도 일단 발도장을 찍을 예정이고……. 살다보면 남극 대륙에 가볼 기회도 있지 않겠는가!

전 우주적 차원에서 보자면 그저 한 점 티끌에도 못 미치는 존재인 지구이지만, 한 인간의 관점에서 지구가 이만큼 크고, 나라가 이만큼 많은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애써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고자 하지 않는다. 난 늘 내 정체성을 보다 넓은 테두리에서 찾고자 한다. 레오나르도의 그림과 베토벤의 음악을 어째서 내 조상의 미술과 음악으로 여기면 안 된단 말인가?

난 적어도 55세까지는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서 살아볼지 대충 정해 놨다. 죽을 장소도 미리 ‘베네치아’로 골라 놨다. 이건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기 전에, 이미 베네치아의 어느 이름 없는 작은 다리 위에서 운하의 초록빛 물결을 바라보며 굳힌 결심이다.

물론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만 세상은 넓다는 것만은 절대로 잊지 않고자 한다.

2009/06/16 03:22 2009/06/16 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