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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내용은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에서 출판한 “キケロ?書簡集(高橋 宏幸 編)”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이 서간집에는 키케로가 남긴 방대한 서간문들 중에서 선정된 112편의 편지가 수록되어 있다. 각주의 내용은 전부 편집자의 주석이며, 한역 시에 추가한 주석은 없다 B.C. 67년 8월, 로마 키케로가 아티쿠스에게 이전부터 나는 내 의지대로 행동 해 왔지만, 자네가 아주 정성들여 쓴 두 통의 편지에 나와 같은 생각이 담겨있는 것을 보고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네. 게다가 살루스티우스1)도 자네와 루케이우스 사이에 예전의 그 좋았던 우호 관계를 돠찾아주기 위해 전력을 다하라고 거듭 나를 채근한다네. 하지만 온갖 수를 써보았음에도 자네에 대한 그의 예전과 같은 호의를 되살릴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애당초 왜 자네에 대한 마음이 그렇게 틀어져버렸는지 그 이유마저도 알아낼 수가 없었네. 분명 그는 자네가 행한 중재 건을 거듭 이유로 내세우고 있네. 또 자네가 여기 있었을 적에 그가 자네에게 분노했던 사정도 나는 알고 있지. 하지만 그것 말고도 그의 감정 깊숙한 곳에 뿌리내린 것이 있는 것 같네. 그게 무엇인지 자네가 편지를 보내거나 내가 캐묻는 것보다도 차라리 자네가 직접 이쪽으로 와서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는 걸로 푸는 게 훨씬 빠르지 않을까. 물론 자네가 그렇게 하고 싶고, 그럴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말이지만. 그러나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고, 또 자네가 자네의 평소 보여 온 인격에 어울리는 행동을 취하고 싶다면, 꼭 그리 해야한다고 생각하네. 일전에는 내가 하는 말이라면 그도 들어줄 거라고 해놓고 왜 이제 와서 자신 없는 소리를 늘어놓느냐고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말아주게. 그의 마음이 얼마나 더 완고해지고, 그 분노가 얼마나 더 굳어져가고 있는지, 정말 믿을 수 없을 정도네. 하지만 자네가 와 준다면 분명 잦아들 걸세. 그렇지 않으면 (이 불화를 일으킨)책임이 있는 쪽에겐 매우 성가신 일이 되겠지.2) 내가 이미 당선되었을 것3)이라고 생각하고 편지를 보낸 모양이네만, 지금 로마에서는 입후보자처럼 온갖 부정에 시달리는 자들도 없으며, 선거가 대체 언제쯤이나 치러질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네. 이에 대해서는 필라델프스4)가 자세히 이야기 하겠지. 내 아카데미아5)를 위해 입수한 것들, 가능한 빨리 보내줬으면 좋겠네. 아카데미아를 실제로 쓸 때는 물론이거니와 다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기쁘다네. 또 자네가 모은 서적들은 누구에게도 넘기지 말게나. 약속했듯이 나를 위해 남겨두게. 나는 온통 그 서적들 생각뿐이라네. 반면 그밖에 일들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네. 모든 일들이, 자네가 떠나고 얼마 되지도 않아 얼마나 나빠졌는지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라네. 1) 그나에우스 살루스티우스. 키케로와 아티쿠스의 친한 지인. 공직에 몸담았던 흔적은 없음. 2) 완곡하게 아티쿠스 쪽에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음. 3) 이듬해인 B.C. 66년에 행해진 법무관 선거. 각 정무관직의 선거가 행해지는 날짜는 꽤 유동적이었다. 4) 아티쿠스의 노예 또는 해방노예로 추정. 5) 투스쿨룸에 있는 키케로의 별장에 속한 김나지움의 하나.
2014/09/02 00:29 2014/09/02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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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프로포즈도 한 적이 없다. 언젠가부터 결혼이라는 단어가 우리 둘 사이에서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는 했지만, 특정할 수 있는 어느 날 "결혼을 하자"고 정한 것은 아니었다. 치밀한 계획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어떤 흐름에 휩쓸리고 마는 우리의 인생처럼, 이번에도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덧 나는 결혼이라는 단계를 향해 흘러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이러한 이행을 매우 자연스러운 내 인생의 한 과정으로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인지, 혹은 언제부터 우리 사이에 언제 결혼이라고 하는 뚜렷한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와중에도 '결혼 준비'라고 하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입학식 날' 만큼이나 엄정하고 확실한 시작점을 설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조국이 광복을 맞은 지 정확히 69주년이 되는 지난 금요일부터 결혼 준비의 대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8.14 밤부터 8.15 금요일 아침까지

학창 시절에는 휴일이면 종종 오후 제법 늦은 시각까지도 잠을 자고는 했다. 아니, 고등학생 때만 하더라도 방학 중이나 휴일의 평균 기상 시간은 오후 1시 전후였다. 아마 대학생이 된 이후로, 그보다는 좀 더 확실하게 대학을 졸업하고 군에 입대한 이후로, 아무리 휴일이라 하더라도 오후 늦게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다. 직장인이 되고나니 휴일 기상시간은 9시 전후, 늦어도 10시 반 이전이 되었는데(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나를 두고 여전히 '게으름의 죄악'에 빠졌다고 힐난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렇게 된 이유는 아마도 새벽닭이 울 때까지 밤을 충분히 즐길 체력이 더 이상 내게 남아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빨리 잠들면 그만큼 빨리 일어나게 된 다는 것. 요즘은 주말이라 하더라도 새벽 2시를 넘겨 자는 일은 드물고, 제아무리 늦어도 3시 언저리에는 반드시 잠들게 된다. 그 시간을 넘어가면 그 어떤 신나는 일로도 정신을 깨어있도록 유지시키기가 힘들다.

그래도 비교적 어제는 늦게 잔편이었다. 동탄에서 지찬이와 종필이를 만났는데, 이렇게 셋이서 모인 것은 거의 정확하게 1년 만이었다. 사실 만나려고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데, 그 마음먹기가 쉽지 않다. 어쩌면 만남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것뿐인지도 모르지만.

동탄이라는 동네는 내가 한 때, 그러니까 결혼은커녕 연애에 대한 생각도 없던 시절에 단기적으로는 투자의 목적으로, 장기적으로는 내가 안거(安倨)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로서 활용하기 위해 매입한 오피스텔이 있는 곳. 최근에 골치를 썩이던 세입자를 가까스로 내보내면서 오피스텔을 청소하기 위해서도 몇 번 들른 일이 있는 낯익은 동네. 그래서 가는 길도 잘 알고 있으니, 이곳에 살고 있는 지찬이의 편의를 위해 나는 기꺼이 동탄으로 찾아가기로 했던 것이다.

찾아가는 데에야 애를 먹지 않았지만, 밤의 동탄은 낮의 동탄과는 사뭇 달랐다. 내 오피스텔 인근이 설마 그런 엄청난 환락가였을 줄이야. 저녁 메뉴를 고르기 위해 이 가게 저 가게 둘러보며 고작 몇 블록을 오가는 사이, 도대체 호객꾼이 몇 명이나 달라붙었는지! 동탄의 공원 풍경은 참으로 기이하기까지 했다. 아직 그렇게 늦지 않은 시간, 제법 선선한 날씨에 동네의 젊은 주부들은 장바구니를 끼고 걸어가는가 하면, 어린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놀고 있기도 했는데 이런 매우 일상적인 풍경 속에는 행인, 특히 남성들의 얼굴빛만 살피고 있는 호객꾼들의 무리가 마구잡이로 뒤섞여있었다. 서로 결코 어울릴 수 없을 것 같은 두 이질적인 풍경이 한 데로 겹쳐져있는 기묘한 공간이었다.

우리는 몇 차례 호객꾼들의 끈질긴 제안을 물리친 끝에, 손님이 별로 많지 않은 양꼬치 집으로 들어갔다. 양꼬치 스무개 가량과 칭따오 한 병을 주문 해 놓고, 세 남자의 길고 긴 수다는 시작되었다.

1년 사이에 제법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만 보면 세 사람의 삶은 1년 전보다 훨씬 비슷해졌다. 세 사람 모두 직장인이 되었고, 세 사람 모두 만나는 사람이 있었으며, 현실에 대한 안주와 불만, 미래에 대한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지닌 채 월급, 저축, 결혼, 주택과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한 근심을 한 보따리 짊어지고 있었다. 이 시대 착한 남자들의 자화상이란!

11시쯤 맥주 두 병으로 간단하게 1차를 끝낸 우리는 다시 거리에서 몇 차례 호객꾼들의 집요한 접근에 시달리다가 24시간 커피숍에 들어가 앉았다. 거기서 다시 우리들의 수다는 12시를 넘어서까지 이어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정확히 새벽 1시였다. 서둘러 한 시간 전쯤 방전되어버린 휴대전화의 배터리를 갈아 끼우고, 유희에게 연락을 했다. 혹시 잘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다행히 깨어있었다. 아니, 어쩌면 깜빡 잠들었다가 소리를 듣고 일어난 건지도 모르지.

내가 잠든 건 아마 2~3시쯤이었던 것 같다. 깨어나 보니 9시 반쯤이었다.

2014/08/18 01:21 2014/08/18 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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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내가 유희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가지만, 이번 주말같이 특별한 경우에는 유희가 서울로 올라오기도 한다. 부모님은 홍콩에서 공부 중인 동생을 위로방문하기 위해 금요일 아침 비행기로 떠났다. 나마저 대전으로 내려가 버리면 이 집에는 돌봐줄 사람도 없이 방치될 개가 무려 세 마리나 있다. 화이트 데이도 끼어있는 주말. 그래서 유희를 집으로 초대에 둘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자 했다. 계획은 훌륭했는데,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최근 수원의 사업장에서부터 서울로 파견되어 근무 환경이 싹 바뀐 탓에 다시 모든 것에 새로 적응해야만 했다. 게다가 특별히 할 일도 없이 한가로웠던 전 사무실에서와는 달리, 이곳에는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기가 무섭게 하루 수십 통에서 많게는 백통 이상의 전화를 걸어대며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려야만 했다. 나는 비교적 환경의 변화에 적응이 빠른 편이긴 하지만(물론 그것은 내 주위 환경에 대한 나의 전반적인 무관심 덕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렇게 환경이 바뀌게 되면 긴장을 하게 되고, 그 긴장이 풀릴 즈음 이렇게 한 번 앓는다. 아무튼 금요일은 최악의 하루였다. 거의 나오지 않다시피 하는 목소리를 쥐어 짜내며 전화 통화를 해댔으니, 나중에는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다. 저녁때가 되자 열이 오르는지 오한까지 들었다. 강남에서부터 양재역까지 유희를 만나러 가는 겨우 한 정거장의 거리가 만 리길처럼 느껴졌다. 사무실 답답한 공기에 질려 일부러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고 건물 밖으로 걸었는데, 초봄 추위에 사시나무 떨 듯이 떨다가 헛구역질까지 할 뻔했다. 화이트 데이에는 보잘 것 없는 사탕 한 봉지를 사주더라도 뭔가 의미 있게 엽서라도 써 주고 싶었는데, 바쁘다는 핑계로 정신을 놓고 지내다보니 그마저도 챙기지 못 했다. 서울까지 올라오는 유희를 화이트 데이에 빈손으로 맞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회사 근처 스타벅스에 들어가 텀블러를 하나 샀다. 몇 달 전부터 표면이 다 상한 스타벅스 텀블러를 사용하는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어서다. 내가 선물을 고르는 기준은, 물론 상대방이 무엇을 받으면 기뻐할까를 먼저 생각하긴 하지만, 세부적인 것을 고르는 점에서는 결국 내 맘에도 드는 것을 고르게 된다. 상대방에게 주는 선물에는 상대방의 취향에 대한 고려뿐만이 아니라, 어느 정도는 내 취향도 반영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 마음에 드는, 표면에 갈색이 그라데이션으로 도색되어 있는 금속 재질의 텀블러를 하나 샀다. 거기에다가 초콜릿 한 봉지는 덤으로. 텀블러를 구입했더니 공짜 음료 한 잔을 준다고 하기에 몸을 녹일 겸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받아들고, 다른 한 손에는 텀블러와 초콜릿이 든 가방과 또 점심 때 회사 와인 할인 판매 행사 때 구입한 와인 한 병을 들고, 미열에 들뜬 몸을 간신히 휘적거리며 양재역으로 향했다.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지, 유희는 나를 보고는 대번에 걱정부터 했고, 꼭 같이 가야할 곳이 있다며 정자역에서 내리자마자 지하철 5번 출구로 나아가 24시간 의료원에 데려가 기어이 링거를 맞혔다. 약기운 덕분인지 체력이 돌아온 듯하여 금요일과 토요일은 신나게 놀아재꼈으나, 결국 링거의 힘은 거기까지였는지 유희가 떠난 토요일 밤부터는 다시 앓아누웠다. 일요일은 거의 침대 아니면 소파에 누워서 보낸 듯하다. 일요일 저녁 비행기로 한국에 돌아온 엄마가 공항에서 전화를 걸어왔고, 나는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따뜻한 국물이 있는 먹을거리를 좀 사다달라고 부탁했다. 엄마가 사온 설렁탕을 뜨끈하게 데워서 밥까지 말아 한 그릇 해치우고, 지어온 약에 홍삼 엑기스, 쌍화탕까지 마셨다. 이제 한 숨 푹 자고나면 내일은 좀 개운해지지 않을까. 비교적 이른 시간이기는 하지만, 책이나 읽다가 눈을 붙여야겠다.
2014/03/16 22:41 2014/03/16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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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기분상으로는, 혹은 어쩌면 사실상으로도 군대에 한 번 더 간 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국내에 가장 큰 그룹의 한 계열사에 몸담았고, 지금은 그 모든 계열사의 인력을 관리하는 부서에서 파견 근무를 하고 있다. 흔히 이런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다소 방관자적인 입장에서 주변의 모든 것들을 심드렁하게 바라보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전히 내가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있고, 여건이 훨씬 더 악화되기는 했지만 적은 시간이라도 연습을 하려고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말이면 여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대전으로 내려간다. 차 안에서는 주로 중국어 회화 교재나 클래식 음악을 듣는다. 유성 중심지에 위치한 작은 오피스텔 하나를 임대해서 쓰고 있다. 내 개인의 공간이라기보다는 어느 새 여자 친구와 공유하는 공동의 공간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군대에 있을 때 분당의 집이 그러했던 것처럼, 직장인이 된 지금 주중의 번잡한 모든 것들을 잊어버리고 홀가분해 질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제법 유쾌한 일이다. 서울,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복잡하고 번쇄하다고 할 수 있는 강남 한복판으로 출근을 하게 된 이후로는 지하철을 이용하게 되었다. 대중교통 이용이 극히 제한되는 집의 위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환승 주차장까지는 차를 몰고 가야만 하지만, 일 주차비는 신분당선 이용객 할인과 경차 할인을 적용 받아서 1,500원 선에서 해결하고 있다. 이 정도면 파견 근로자에게 지급되는 월 식대 비에서 어느 정도 충당할 수도 있겠지. 출, 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그리고 점심시간에 30분 정도 짬을 내에서 하는 독서가, 주말 바이올린 레슨과 더불어 내 정신의 건강을 지켜주는 보루라고 할 수 있겠다.
2014/03/11 00:46 2014/03/11 0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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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잃는 것. 꿈을 잃는 것. 삶을 잃는 것. 결국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완벽한 평형을 이룬 양팔 저울, 그 어느 한 쪽 위를 어쩌면 충동적으로 톡 건드렸을 때 마음은 균형을 잃고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인생은 종국에는 회한만을 남긴 채 끝나버리는 것인지도 모르지. 그 끝에 다다랐을 때 어쩌면 오늘은 인생에서 가장 후회스러운 날이 될지도 모르겠다.

2013/10/30 23:56 2013/10/30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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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무난하다’라는 한 마디 말로 정리되어버릴 수도 있는 나의 인생과 마주하는 것이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천천히 갈 수도 있고, 돌아서 갈 수도 있지만, 가지 않을 수는 없는 길이 있다. 나는 글을 써야만 한다.

2013/10/28 23:43 2013/10/28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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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특별한 일이 있어 퇴근 후 아산에 다녀왔다. 밤 10시에 대전에 돌아와, 바이올린 연습을 겨우 두 시간 하고 12시를 넘겨 방에 돌아왔다.

지난 몇 주간, 나는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는 생활을 해 왔다. 하루 3시간도 채 자지 못 하는 날이 많았고, 덕분에 깨어있는 시간 중 많은 부분을 약간은 취한 듯 멍한 상태에서 보내야 했다. 심지어는 늦잠으로 인해 사무실에 지각하는 매우 드문 사태까지도 벌어졌다. 운동도 3주 째 못 가서 몸이 많이 무거워졌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는 여전히, 아니 오히려 전에 없이 활기에 넘치며 행복감으로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불규칙한 생활은 이번 주말로 끝나게 될 것 같다. 결국은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게 되겠지만, 같은 시간, 같은 장소의 문을 열고 나갔을 때 어쩌면 내가 발을 내딛는 곳은 전혀 새로운 세상일지도 모른다는 희미한 희망을 품어본다.

2013/05/08 01:41 2013/05/0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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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어든 수면 시간만큼 그 자리를 대신 채운 것은 고뇌였다. 숱한 밤,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을 보낸 끝에 이제 마음을 굳히고 새로운 길로 나아가고자 하나, 운명이 내 앞에 문을 열어놓을지는 알 수가 없다.

2013/05/07 01:51 2013/05/07 0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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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conservatives find today's society repugnant. In order to idealize the past, they are willing to devaluate the virtues of modern times and sacrifice the potential for change. I shall destroy such unblemished history, and build the fluctuating future over its ruin.

보수주의자(회고주의자)들은 현대를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과거를 이상화하기 위해 오늘날의 미덕을 깎아내리고 변화의 가능성을 없애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차라리 그 완전한 과거를 부수고, 그 폐허 위에 불안한 미래를 세우고자 한다.

첨삭

2013/05/02 03:08 2013/05/02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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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 time Suhwan gives me corrections or comments for my writing, I do not copy and paste, but re-write them in my own words to demonstrate how carefully I review them. This time, however, I post his comment as it was given to me since it seems to be a special lecture into which he put a lot of effort.

<특별 부록: 정관사 용법 해설>

1. 하나밖에 없는 것에 붙인다.
    the sun, the human race

2. 특정 지역을 나타내는 말들에 붙인다.
    the seaside, the seashore, the beach (유독 바다와 관련된 말이 많아 보이지만 기분 탓이다.)

3. 특별한 경우를 집어서 말할 땐 부정관사를 대신 쓸 수 있다.
    Two aircraft are flying in the sky.
    When I woke up there was a bright blue sky. (그냥 평범한 하늘이 아니야! 그날 아침 내가 일어났을 때, 창밖에는 밝고 푸르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4. 단수 가산명사와 함께 써서 일반적인 대상 전체를 지칭할 수 있다.
    The computer has revolutionized publishing. (컴퓨터의 출현으로 ~)
    이러한 용법은 관사 없이 복수명사만 쓴 것과 동일하다.
    Computers have revolutionized publishing.
    복수 가산명사와 함께 써버리면 앞에 나왔던 특정한 것들을 말하는 게 된다.
    The computers have revolutionized publishing. (우리가 구매한 컴퓨터들 덕택에 ~)

5. 직함이나 유일한 직위에 대해서는 정관사를 쓰거나 관사를 생략한다.
    She's been appointed (the) head of the company.
    그러나 같은 직위가 여러 개 있으면 부정관사를 쓴다.
    She's been appointed a sales manger. (이 회사에는 판매 관리자가 여러 명 있다.)
    'the position/post/role of' 등 다음에 직함이 오면 정관사를 안 쓴다.
    Dr. Simons has taken on the position of Head of Deparment.

6. 사람을 수식하는 형용사나 직업을 나타내는 명사 앞에 쓴다.
    the late Buddy Holly, the ambitious Caesar, the artist William Turner
    단, old, good 등 평범한(?) 형용사는 예외다.
    honest Dick

7. 형용사에 정관사를 붙이면 복수 보통명사가 된다.
    the rich = rich people
    때로는 추상명사를 만들기도 한다.
    the true = truth, the good = goodness, the beautiful = beauty

8. 휴일이나 그밖에 때를 나타내는 말에는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We met on Saturday.
    하지만 어느 한 때를 지칭하고 싶으면 붙인다.
    They arrived on the Saturday after my birthday.

9. 고유명사에는 안 붙인다.
    Seoul Station, Heathrow Airport, Hyde Park, Fifth Avenue, Barack Obama
    강, 해협, 운하, 바다, 군도, 사막, 배, 열차, 신문, 잡지, 공공건물이나 기관 이름에는 붙인다.
    the Nile, the Strait of Magellan, the Suez Canal, the Pacific, the Bahamas, the Sahara, the Mayflower, the New York Times, the Economist, the White House, the British Museum
    산맥이나 국가 이름 중 복수형인 것에는 붙인다.
    the Alps, the United States
    성씨를 복수형으로 만들고 붙이면, 어느 일가를 말하는 게 된다.
    the Smiths (스미스 씨네 일가/스미스 씨 내외)
    동명이인이 있거나해서 한 사람을  특별히 구분해서 말할 때 이름에도 정관사를 붙인다. 이 때는 자음 앞에 오더라도 '디'로 발음한다.
    -I met George Bush yesterday. -You mean the George Bush?

10. 똑같은 단어라도 관용구를 만들든지 해서 다른 의미로 쓸 때는 정관사가 빠지는 일이 흔하다.
     Who on earth would venture out in weather like this?
     go to school = 학교라는 장소에 가는 게 아니라, 학교에 적을 두고 공부하다
     go to jail = 감옥에 물리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유죄가 확정되어 수감된 죄수 신분이 되다
     그러나 '영화를 보러 가다'는 go to the theater

2013/04/30 03:21 2013/04/30 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