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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이 없기에 떠날 수 있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다. 미련이 있어 떠나는 것이다.

2009/09/05 21:30 2009/09/0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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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강의 증상은 약간의 수면부족, 약한 두통, 만성적 피로, 가벼운 우울증, 권태로움, 무기력. 방학은 어디까지나 임시 처방일 뿐 완전한 치료제가 될 수는 없다. 그렇게 매 개강과 방학마다 증상의 악화와 호전을 반복하다가 결국 ‘졸업장’이라는 사망 진단서를 받게 되겠지. 그 이후 부활이 가능할지는 미지수.>

2008학년도 1학기 개강 직후에 쓴 일기에 이렇게 적어 뒀더군. 오늘 그 사망 진단서를 발급 받아다가 모병관에게 등기로 발송했다. 군대 가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야. 연주회 끝나면 뒤풀이 가서 인공호흡기를 떼고, 부활은 군대에서 하겠다.

개강 첫 날의 학교 풍경은, 겉보기엔 활기찼다.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면 개개인들은 극심한 피로를 호소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사실 지난 학기부터 졸업생이나 다름없는 기분으로 지내긴 했지만, 그래도 느낌이 다르다. 캠퍼스는 내게 언제나 낯선 공간이었지만, 한층 더 낯설게 느껴져.

레슨 받았다. 다음 주면 마지막 레슨이다. 이 선생님과도 벌써 2년 가까이 함께했군. 비좁은 방들이 늘어선 삭막한 학원은 그리 정이 가는 장소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포니아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후 다시 도전 하여 입단하기까지 1년 간, 학기 중에는 그야말로 매일 같이 드나들던 곳이었지. 비좁은 방에 에어컨과 온풍기가 갖추어져 있어서 여름이든 겨울이든 가리지 않고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사람으로부터도 공간으로부터도, 이렇게 작별하고 떠나가게 되는군.

2009/09/02 03:03 2009/09/02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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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2일, 김포시의 ‘고촌교회’에서 열린 ‘청소년 오케스트라 평화 음악회’에 유포니아가 초청되어, 연주를 하고 왔다. 이 교회에서는 어린 학생들에게 다양한 악기를 가르치고 있는데, 장차 사회인이 되어서도 악기 하나쯤 다룰 줄 아는 멋진 어른이 되는 것을 지향하고 있다던가. 표면적으로는 연세대학교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인 ‘유포니아’가 이들의 ‘롤 모델’로 적합하다는 이유에서 초청을 받은 것이고, 보다 직접적으로는 교회 목사의 자제가 유포니아의 단원이라는 인연이 크게 작용했다.

연주곡은 우리가 9월 4일 연주회를 위해 지난 7월부터 꾸준히 연습 해 온 ‘베토벤 7번’의 전 악장. 초청 팀이라 연주는 맨 마지막에 했다. 리허설 끝나고 늦은 점심을 먹은 다음에는 할 일없이 시간을 보냈는데, 대기실에 설치된 스크린을 통해 어린 학생들의 공연도 감상할 수 있었다. 바이올린 팀, 첼로 팀, 플루트 팀 등 교회에서 음악을 배우는 아이들의 공연이 이어진 다음에는, 본 공연이라고 할 수 있는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있었다.

비제 아를르의 여인 중 ‘파란돌’, ‘클래식 메들리’, 드보르작 ‘신세계 교향곡’ 4악장 등을 연주했는데, 스크린을 통해 흘러나오는 소리의 볼륨이 너무 작아서 연주의 질에 대해서는 뭐라 할 수 없었지만, 진지한 자세만큼은 일품. 유포니아 단원들이 출동해서 금관, 퍼커션, 베이스 파트 객원을 뛰기도 했다.

유포니아는 초청팀인 만큼 맨 마지막에 연주를 했다. 소리가 너무 울리는 생소한 환경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갑자기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주하게 된 데에 대한 부담이 긴장의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초반 앙상블이 좋지 않았다. 1악장 비바체 들어가는 순간에는 내가 다 진땀을 흘렸을 정도. 객석과 정면 승부를 벌여야 하는 목관의 고충을 생각하면, 내가 언제나 묻어갈 수 있는 바이올린 주자라는 사실이 정말 감사하게 느껴진다.

베토벤 연주가 끝난 뒤에는 잠시 인사(人事)의 긴 일장연설이 이어지고, 이어서 김포 청소년 오케스트라의 아이들이 유포니아와 합류하여 마지막 앙코르 곡 ‘라데츠키 행진곡’을 연주했다.

연주 단체에 있다 보니 이런 생경한 장소에서 연주를 하는 재밌는 경험도 해 본다. 오케스트라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결코 찾아오지 않았을 소중한 기회들이다. 지금까지도 종종 생각나는 즐거운 체험 한 가지가 있는데, 2007년도 오사카 대학 졸업식에서 졸업 축하 연주를 했던 일이다. 내 대학 졸업식도 아니고 바다 건너 일본의 모 대학 졸업식 축하 연주를 하게 되다니, 어디 인생에서 예상 가능한 일이던가. 당시 연주했던 곡은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서곡’이었다. 하긴, 당시 내 실력으로는 도저히 ‘연주’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수준이었지. 그냥 자리만 채웠을 따름이지만, 지금까지도 참 유쾌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아마 고촌 교회에서의 연주도 그런 고마운 추억 한 가지로 남을 것이다.

2009/08/30 06:01 2009/08/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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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같은 하루, 그리고 영원(永遠)이 스쳐 지나가는 한 순간.

지치고, 피곤하다.

2009/08/22 04:49 2009/08/22 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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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노을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이었다. 며칠 동안 하늘을 뒤덮었던 비구름은 서서히 동쪽으로 물러가고 서쪽 하늘로부터 온화한 저녁 햇빛이 비추기 시작했다. 대기의 수분에 산란된 때문일까, 석양은 여느 때보다 한결 부드러운 주황색이었다. 운동을 마치고 돌아오는 짧은 길, 내리는 이슬비에 차 유리창 위로 물방울이 맺혔다. 촉촉이 젖은 아스팔트 도로는 하늘의 빛에 물들어 있었다. 한적한 시골길. 모든 것이 넉넉하고 푸근해 보였다.

2009/08/13 04:12 2009/08/13 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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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에 대해서도 몇 자 적어두는 것이 좋겠지. 사실 캠프 다녀 온 뒤로 컨디션이 영 엉망이다. 날씨도 한 몫 하는 것 같지만.

운전은 문제없었다. 솔직히 말해서 어려운 거야 시내 운전이지, 내쳐 달리기만 하면 되는 고속도로 운전은 어려울 게 없다. 돌아오는 길에는 비가 내려서 좀 긴장하긴 했지만.

캠프는 시종 가식적인 상황에서 서로 서툰 연기를 하다가 막판에 기만적인 감동을 부르짖으며 끝났다. 인간적인 약점들에는 관용적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부대끼는 것은 나에게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남들을 붙잡고 내 관심사를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짓은 하지 않는다. 가령 ‘그러고 보니 요즘 든 생각인데, 우리가 보통 서양 중세 시대 때 봉건 영주들의 자치권을 인정받는 영토를 일컫는 단어인 장원(莊園)은, 사실 8세기 초 일본에서 생겨난 지방 호족이나 낙향 귀족들의 광대한 사유지를 지칭하는 단어였잖습니까? 여기서 오는 개념상의 혼동…….’이라는 식의 대화를 시작한다면, 이건 상대방을 질식시키겠다는 도발이나 다름없다. 결국 그것은 폭력 아닌가?

반대로 나는 동아리 내의 누가 누구와 사귀는지 아무런 관심도 없고, 여성 품평이나 타인의 뒤 담화 같은 것에도 흥미가 없다. 개인의 연애사 같은 것을 구구절절 듣고 있느니 차라리 마다가스카르 풍조(風鳥)의 짝짓기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낫다.

내가 남들과 어떤 공통의 화젯거리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데에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게으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정한다. 하지만 이집트가 동유럽 국가인 줄 알거나 고흐를 ‘절규’의 화가로 아는 사람들을 앞에 두고서 나는 정말 무슨 대화를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TV 예능 프로에서 한 패널이 자작시를 낭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내 옆에서 한 명이 참 잘 썼다고 감탄한다. 그 시는 천상병 시인의 ‘귀천’을 그대로 가져와 단어만 몇 개 바꾼 이른바 ‘패러디 시’였다. 이런 인간도 지난 학기 경제학 과목에서 A+ 학점을 받았다며, 자신은 미래에 대한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간혹 내가 의미 없이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책이라도 한 줄 읽으려 하면 별종이라는 듯이 바라본다. 내 쪽에서 보자면, 냄비에다가 아무 거리낌 없이 맥주와 소주와 탄산음료를 뒤섞어서 벌컥벌컥 들이키는 모습이 훨씬 기이하다.

남자가 여자에게, 여자가 남자에게 종국적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뻔히 보인다. 비좁은 자리에서 몸을 잔뜩 움츠리면서도 이따금 맞닿은 살결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느끼고 싶어 한다. 더 넓은 면적을 통해 더 높은 체온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그 전에 어떤 친밀감을 구축해야 할까? 그러나 서로의 얼굴을 벌겋게 달구어놓는 술자리는 하룻밤의 판타지이다. 다음 날 아침이면 김빠진 맥주처럼 밍밍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고작 서로의 컵에 땅콩을 집어 던지며 연거푸 술잔을 비우는 것이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가장 세련된 사교(社交)의 기술이라니!

이런 상황에 대해 새삼스럽게 화를 내는 것은 아니다. 다소 한심스럽기는 하지만, 이런 방식도 용인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름대로 의미가 있다면 그러려니 하겠다. 생애 대부분을 타인에 대한 절대적인 무관심으로 일관해 온 내가 사람들의 소통 방식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는 사실도 겸허히 받아들인다. 내게 무슨 비판의 자격이 있겠는가? 단지 어울리지 않는 곳에 오래 있다 보니 지치고 짜증이 났던 것이다.

사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다 바쳐도 전혀 응답을 해 주지 않는 저 악기(樂器)의 무서운 침묵이 나를 가장 힘들게 하고 있다. 사람들의 헛소리보다도 내 악기의 거친 소리가 훨씬 더 가슴을 깊이 후벼 판다. 멍청한 것으로 치자면 몇 년째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내 둔한 손가락만한 것이 또 있을까. 평범한 사람이 한 가지 일에 언제까지 한결 같은 정열을 쏟아 부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회의와 의혹이 정신을 좀먹는다.

2009/08/11 04:29 2009/08/11 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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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박 6일 동안 오케스트라 캠프 다녀온다. 캠프 장소까지는 직접 운전해서 갈 생각이다. 그런데 내가 아직 자동차 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다. 집에 차가 무려 세 대라 어느 차에 보험을 들어야 할지 망설이다가……. 월요일에 가입 신청하면 화요일부터 보험 적용을 받는다는데, 가는 길 스릴 넘치겠는걸? 게다가 차는 아빠 차. 즉 수동이다.

운전하고 싶어 몸이 근질근질 거리는 남자들이 솔직히 이해되지 않는다. 나는 면허 취득 후에도 가능한 운전대 잡는 걸 피해왔다. 자취방을 빼고 학교 가기 위해 매일 운전을 하게 된 뒤로도 ‘도로 및 주차 사정’을 핑계로 늘 차는 버스 정류장 근처 주차장에 놓고 버스를 이용했다.

물론 나의 미숙한 운전 실력이 우선 걱정거리이긴 하지만, 사실 그보다도 난 수많은 운전자들의 합리성을 믿지 못 하겠다. 내가 이성적으로 조심조심 운전하면 뭐하나, 어떤 또라이가 달려와 받으면 끝인데. 집 앞 속도 제한이 80km인 도로에서도 신호 위반하고 거의 150km로 달리는 미친놈들을 보고 있노라면, 남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고 믿는 게 얼마나 위험하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태도인지 절실히 깨닫는다. 그러니까 운전이 피곤하다고…….

하지만 내일은 집에서 차타고 가면 금방인 콘도 가는데 굳이 학교까지 가서 또 한국 단체 활동 특유의 시간 딜레이까지 감내해 가면서 먼 길 돌아서 가기가 싫다 이거다. 사람들이랑 가능하면 부대끼고 싶지 않은 것도 있고.

대략적인 캠프 일정

아침식사
아침연습
점심식사
점심연습
저녁식사
저녁연습
밤 행사, 술, 술, 술…….
아침식사
.
.
.

지난 번 캠프 때는 무료하고 비생산적으로 흘러가버리는 시간에 스트라빈스키의 전기를 읽었더랬다. 이번엔 뭘 가져가 읽지…….

덧...

2009/08/03 03:28 2009/08/03 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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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재개했다. 거의 두 달 만이다. 역시 음정이 많이 흐트러졌다. 활 그립을 바꾸기로 했다. 과도하게 올라가고 경직된 손목, 트레몰로라도 하려하면 거의 경련을 일으키는 팔……. 힘도 들거니와 주속이 느려서 템포 뒤처지기 일쑤. 별 수 없이 선생님과의 오랜 상담 끝에 활 쥐는 법을 교정 받았다.

첫 레슨 선생님이 가르쳐 준 그립은, 활을 매우 얇게 쥐는 것이었다. 사실 이건 지금 생각해도 좀 문제가 많았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가서 그립을 고쳤는데, 검지로 활대를 감듯이 잡아 단단히 고정하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거의 활대를 따라 말려있다시피 한 검지를 밖으로 좀 빼서, 활등 위에 얹어 약간 무게를 싣는 느낌의 그립.

아무래도 손과 활의 각도가 달라지다보니 자꾸 활이 지판 쪽으로 가려하는 등 보잉이 마음대로 되지 않지만,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지. 일단 검지로 무게를 실을 수 있게 되니, 스타카토와 스피카토는 훨씬 편해진 것 같다. 손목을 이용하는 트레몰로는 아직 감이 잘 안 온다. 지금은 바뀐 그립으로 활을 빨리 쓰면 점점 활의 위치가 바깥으로 밀려나는 둥 갈피를 못 잡기 때문에…….

바이올린 4년 배우면 어디 가서 바이올린 좀 켠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군. 음악적 재능은 재앙의 수준. 그럼에도 이렇게 음악을 좋아하게 된 운명은 무슨 저주가 내린 건가. 뭐 좋다. 일단 6년 더 배우고 보자.

2009/08/01 04:41 2009/08/01 0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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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고교 동창 김선민 군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엄마의 미니를 몰고 서현까지 갔다. 사실 이곳으로 차를 몰고 가는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로운데, 어차피 집에서 나가려면 차는 필수라. 그리고 평일 낮이라 그런지 그리 복잡하진 않더라. 주차는 프라임 등급 이상의 회원에게 무조건 두 시간 무료 주차의 혜택을 주는 교보문고에. 살다보니 이런 혜택을 누릴 날도 오긴 한다.

선민 군과는 정태풍에서 런치 세트를 시켜 먹었다. 여기 볶음밥이나 면류는 평타 수준이지만, 딤섬 하나는 정말 맛있다. 장교 합격 축하한다며 선민 군이 샀음.

원래 공부 얘기 좀 하자고 본 것 같은데, 엉뚱하게 정치 얘기 하다 헤어졌다. 사실 공부 얘기한다고 해도 내가 별로 해 줄 충고 같은 것은 없고, 스스로 잘 알아서 하겠지.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것은 개인에게 정말 중요한 문제이지만, 지나친 고민은 어차피 비생산적이다. 남들처럼 살고 싶다면야 모범 답안은 이미 나와 있다. 그걸 취하기 싫다면, 필요한 것은 허심(虛心), 배짱, 그리고 실천이겠지.

수요일은 아침 10시부터 연습이다. 지금 새벽 4시 반인데, 죽겠군…….

2009/07/29 04:37 2009/07/29 0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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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1시: 개인 연습

1시~3시 반: 파트 연습

4시~8시: 전체 연습

8시~10시: 개인 연습

피곤할 만하군. 그러나 지난 연주회 준비 기간과 비교하면 확실히 태만해졌다. 여행 기간 3주 동안 연습을 쉰 것은 확실히 타격이 크다. 생각해보면 지난 번 연주회 준비 때는 일본 여행 갈 때에도 악기를 들고 갔었지. 물론 미련한 짓이었지만, 그래도 호텔 방에서 약음기 끼고 간단히 손이라도 풀어보곤 했었다.

지난 일본 여행 때였다. 오호츠크 해를 바라보며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있는데, 휴대 전화로 연습하라는 문자가 도착했다. 물론 파트 사람들 전부에게 보낸 단체 문자였지만, IT 기술이 이 세상에 사람 숨을 곳을 사라지게 해 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 때는 아부심벨 신전 앞에서 연습 안 오냐는 문자를 받기도 했지.

금요일부터 다시 레슨을 받기로 했다. 그런데 다음 주부터 오케스트라 합숙훈련이 시작되기 때문에 또 레슨을 거르게 된다. 정말 입대까지 남은 레슨 횟수가 얼마 없다. 비오티 협주곡까지는 해보고 싶었는데, 아델라이데 콘체르토 복습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할 것 같다.

2009/07/28 02:32 2009/07/28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