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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청주 비행단 장교 숙소. 오늘부터 이곳에서 10일 일정으로 진행되는 Soaring Eagle 훈련에 참여한다. 아는 것 하나 없는 백지 상태의 내 자신에 비추어 ‘훈련에 참여하는 조종사들을 지원하는’ 막중한 임무를 부여 받고 왔다고 생각한 나는 지레 겁을 먹었으나, 내게 주어진 일은 ‘훈련에 참여하는 조종사들을 지원하는 훈련’을 받는 것이다. 결국 훈련이니까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나가면 될 것이다. 어제 동생과 심야 영화로 ‘아저씨’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가 서버렸다. 주행거리 15km를 돌파한 마티즈가, 나의 과한 부림을 감당하지 못 하고 여기저기 망가져가는 모양이다. 그래도 얼마나 다행인가.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더라면 오늘 청주 내려오는 고속도로 상에서 정지할 뻔도 했다. 나는 아빠 차를 대신 빌려가지고 내려왔다. 청주 비행단의 분위기는 충주 비행단과는 또 사뭇 다르다. 충주 비행단이 크게 원을 그리는 형태라면 청주 비행단은 일직선 형태다. 오후 1시 입과를 하고, 2시부터는 교육을 받기로 되어 있었으나 여건이 여의치 않아서 4시부터 1시간 못 되게 교육 받고 퇴근했다. 평일 5시 퇴근은 정말 오랜만인데(아마 부임 이후 두 번째일 거다). 청주 비행단 정보처 소속인 동기와 만나 함께 저녁을 먹고, 일찌감치 숙소로 들어왔다. 기대했던 것보다 괜찮다. 구석구석의 먼지와 창틀의 벌레 시체 따위 앞에서 눈을 감는다면 그럭저럭 청결한 편이고, 샤워실이 딸려있으며, 책상도 있고, 무려 에어컨까지 설치되어 있다! 올 여름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에어컨을 파견 나와서 사용하게 되는군. 단 한 가지, 그러나 매우 치명적인 결점이라면 인터넷이 연결되어있지 않다는 것. 무선 신호가 잡힐 거라고 했는데, 낌새도 없다. 하지만 스마트 폰만 있으면 어느 시골구석에 처박혀서도 포스팅을 할 수 있는 시대. 일단 편한 워드 프로그램으로 글을 쓴 후, 메모장으로 옮겨 저장한다. 그리고 블루투스 연결로 파일을 폰에 전송한 다음, 텍스트 파일을 열어 글을 복사하고, 3G 망으로 인터넷 접속 후 브라우저를 열어 블로그에 접속, 복사한 글을 붙여넣기 하여 포스팅을 한다. 이미지 편집도 가능하고 しかも日本語で書くことも可能! 이번 달 데이터 제한 초기화까지 열흘도 남지 않았는데 사용 데이터는 60/500mb 뿐이니, 여기서 맘껏 써야겠다. 무선 랜이라는 것이 처음 등장했을 무렵, 그 개념을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그럼 그 랜카드는 책상 서랍에 넣어두고 쓰면 되는 거냐’라고 비꼬았었다. 그만큼 랜 케이블을 연결하지 않고 인터넷을 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 이제 사람들은 버스 안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카페에서 블로그 갱신을 하며, 골목을 거닐며 정보 검색을 한다. 정말 기술의 진보는 눈부시군. 그 빠른 흐름에 잘 따라갈 수 있으면 세상은 하루하루 편해지겠지만, 한 번 뒤처지면 이 세상은 점점 ‘접근 불가능’이 되어버릴 것만 같다. 이곳에 있는 동안 너무 바쁘지는 않을 것 같으니(무려 8시 출근이다!), 글을 좀 쓰고 이런 번거로운 방법을 통해서라도 자주 포스팅을 해야겠다.
2010/08/23 19:31 2010/08/23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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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본부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조만간 첫 통역 업무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결심’은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처장님이 하는 것이지만. 제대 할 쯤에는 “제2 외국어 어학 장교의 올바른 활용을 위한 제안”이라는 제목으로 제안서라도 하나 올릴까. 저 어디 공군 본부 높은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에게?

유용한 사업이란, 그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무르익었을 때에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 필요성을 예견하여 한 발 앞서 시도할 때에도 이룩될 수 있는 것인데, 역사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의 언제나 후자의 경우가 더 성공 확률이 높다. “필요하면 그 때 가서 생각하지.”란 안일한 태도를 취하다가는, 정작 그 필요가 닥쳤을 때 허둥대다가 일은 시도도 못 해보기 십상이니까.

내 생각에는 제2 외국어 어학 장교들은 1년 내지 2년에 한 명 정도 뽑고, 각 언어별로 최소 1명은 공군 본부에 상주시키면서 관련 국가에 관한 업무를 전문적으로 맡아보게 해야 한다. ‘전문적’이란 말을 썼지만, 실제로 단기 장교들이 각자의 특기를 가지고 사무실에서 수행하고 있는 업무의 수준을 보자면 그리 난이도 높은 일을 수행해야 할 명분도 없다. 군이 국내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24시간 YTN을 주시하고 있는 것처럼, 제2 외국어 장교들로 하여금 담당 국가의 언론을 주시하여 동향을 파악하게 하고, 군 관련 서적이나 홍보물을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토록만 해도 충분히 높은 생산성을 내는 것이라고 본다. 그러면 외국에서 귀한 손님들이 방문했을 시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만전의 준비를 갖춘 상태에서 최선의 응대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아무튼 사라져가던 통역 장교로써의 가능성에 희미한 희망의 불씨라도 살아난 듯하여 기쁘기는 하다. 내일로 사실상 UFG 종료. 그러나 곧바로 차출되어 다른 훈련에 투입. 일 복은 터진 것 같다.

2010/08/19 23:25 2010/08/19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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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를 둘러볼 때에 특기할 만한, 그러니까 나의 흥미를 유발할 일이라고는 일절 발견할 수가 없다. 언제까지 몇 시 출근, 몇 시 퇴근 운운하는 걸로 일기장을 채워야 한단 말인가.

피로로 떡이 되어도, 곧 죽을 것 같아도 음악은 듣고 연주회는 봐야겠기에, 이번 주말에도 예당을 찾으려 한다. 이번 주 일요일, 프라임 필하모닉이 코다이의 갈란타 무곡과 드보르작의 첼로 협주곡, 라흐마니노프의 심포닉 댄스를 연주한다는군. 프라임 필하모닉에는 예전에 내게 바이올린 레슨을 해 주던 선생님이 단원으로 있다. 시, 도립이 아닌 민간 오케스트라지만 전 단원 상임화에 성공한 오케스트라라고 하니, 아직도 있겠지. 그러고 보니 유포니아 대 선배님으로 술자리에서 몇 번 술잔을 주고받았던 분도 첼로 수석으로 있다. 마침 다음 주는 청주로 파견을 나가게 되어 일요일까지 집에서 쉬고 월요일에 출발하면 되니까 마음 놓고 표를 예매해야겠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이 막 시작되는 시점에서 ‘굴러온 돌’님이 ‘미안한데 소리 좀 낮춰줘’라고. 그래, 착한 어린이가 잠자리에 들어야 할 밤 10시 반에, 퇴근해서 집에 돌아온 지 30분밖에 밖에 안 되는 찌든 어른이 음악 크게 틀어놓고 하루의 피로를 푸는 짓은 해서는 안 되지.

여름이 다 지나가도록 에어컨 방치 중. 평일 중에는 도저히 설치할 시간이 없다. 금요일 저녁에나 기사를 불러다가 설치를 할 수 있겠지만, 다음 주에는 내가 청주로 파견을 간다! 그리고 돌아오면 눈앞에 닥쳐온 9월. 이 무슨……. 차라리 냉장고나 사는 거였는데.

2010/08/17 23:24 2010/08/17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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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하루하루의 시간이 무의미하게 사라져버리는 것이 싫어서, 날마다 일기라도 써서 그날그날의 기억을 남기려고 했는데, 오히려 시간이 공허하게 녹아버리는 것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을 뿐이구나. 입 안이 헐고 피부가 거칠어진다. 피로가 들러붙은 육신은 어쩐지 훨씬 늙어 보이는데, 그보다 빠르게 정신이 늙어가고 있다.

2010/08/16 23:29 2010/08/16 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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夜の8時、?還したとたんの呼び出し。??服に着替、8時半出勤。?育の次元だとわかってはいるものの、'いかにも'とおもってしまう。いくらなんでも、今日は日曜日なのだ。

10時を過ぎてやっと退勤。そして明日は朝の6時まで出勤だ。いきれるか、こんなんで。

前にも言ったが、新任の少尉二人が赴任してきた。その?一人がいま、隣の部屋で??に?ている。いくら我らが新任の少尉とはいえ、酷い扱いだ。?週には淸州の飛行?に派遣される。?に車を持っているという理由で、俺の派遣が決まった。俺のいない間、俺の部屋はたぶんあいつに使われるだろう。いったいいつ出てもらえるのだろうか。

披露のせいで口中わ爛れ、顔の皮はがさがさ。肩なんかはもう50代みたいに凝っている。同然のことだが、他人への思いやりというのがなくなる。やや過敏な?態になっているのだ。

ハサミ型のスタンドを持ってきた。少しずつでも本を?もう。精神の慰めのため。

2010/08/15 23:24 2010/08/15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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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피곤하긴 피곤한가보다. 연주회에서 졸다니. 사실 프로그램들이 전체적으로 밋밋하긴 했다. 베버의 오베론 서곡,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4번, 시벨리우스의 교향곡 2번. 게다가 연주회장 분위기도 너무 안 좋았고. 초딩의 힘은 예당의 연주회장 분위기까지 압도해버린다. 연주 중에도 휴대폰 만지작거리고 앉아있고. '어린 것들이 무슨 죄랴, 이 사회가 저들을 버린 것을'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휴대전화 뺏어서 던져버리고 싶었다.

예당의 공기를 좋아하긴 하는데, 여름에는 너무 붐빈다. 오늘은 주차장 들어가는 데만 10분 넘게 대기했고, 주차할 자리가 없어 또 헤매다가 연주회 시작 5분 전에 겨우 콘서트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카페마다 사람들이 가득해서 프로그램 북 읽으며 누리는 커피 한 잔의 여유도 가질 수 없었고. 이 무슨 실패한 주말이란 말인가.

그래도 시벨리우스 2번. 4악장을 듣기 위해 연주회장을 찾은 거다. 4악장의 제1 주제가 울려 퍼지는 순간에는 졸던 사람도 깨어나고, 휴대폰 만지작거리던 초딩도 잠시 액정에서 눈을 떼서 무대를 바라봤다. 누가 봐도, 누가 들어도 아름다운 절대적인 미(美)라는 것은 존재하는 것 같다. 물론 1분 후, 다들 원상태로 돌아가 버렸지만.

마티즈 엔진 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차 터지겠다."

"혹시 튜닝 했냐?"

"좋은 장갑차를 가지고 있구나."

머플러 갈았다. 조용해졌다.

내가 살고 있는 숙소에 사람 한 명이 더 들어온단다. 124기 신임 소위 몇 명이 더 충주 비행단으로 부임 해 오는데, 관사가 부족해서 여기저기 끼워 넣어야한단다. 그런데 마침 짬이 안 되는 소위 둘이 같이 쓰고 있는 내 관사는 좋은 먹잇감이었던 것. 뭐 이따위 경우가 다 있지. 관사 관리하는 근무지원중대장이 동기라서 전화 걸어 따져봤지만 헛일. 일단 다른 방이 비는 데로 조정해주기로 약속은 받았는데, 일이 빨리 처리될지 모르겠다. 금요일에 떠나면서 내 방 문은 걸어 잠그고 왔다. 새로 오신 소위분이야 거실에서 주무시든 넓은 옆방에서 주무시든 알아서 하라지. 내 방은 문 턱 넘는 것도 허락할 수 없다.

2010/08/15 03:33 2010/08/15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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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들어 조출이 줄었다. UFG 대비하여 장교들이 지난주에 근무를 당겨서 선 탓도 있다. 또 오전 업무 내용은 대충 파악이 끝나서 추가로 교육 할 내용도 없고. 오늘도 7시 반, 정시 출근했다.

오후에는 다음 주부터 시작하는 UFG의 사전 연습(UFG가 이미 연습이니까 연습의 연습)을 위해 지휘소를 찾았다. 사실 내가 갈 필요는 딱히 없었는데, 그래도 자리 지킬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정말 자리 지키고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얼떨결에 최선임 대신해서 TOP DAIS에도 들어가 봤다.

오후 느지막이 보안과에서 수거한 일반 군사자료 처리 작업을 도우러 갔는데 , 말이 군사자료지 폐휴지, 아니 그냥 쓰레기다. 4.5톤 트럭 가득 들어찬 폐지를 일일이 내려 창고로 옮기는 작업은 정말……. 처장님도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아니, 아예 전투복 상의까지 벗어던지고 일을 거들었다. 막노동 후에는 보상으로 삼겹살까지. 사실 OJT 중인 신임 소위는 회식 자리에 부르지 않는 게 원칙이었다는데.

우리 사무실의 유일한 병사와 대화를 좀 나눴는데, 연대 학생이란다. 과는 다르지만 학교 후배와 한 사무실을 쓰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몰랐다니(그러나 나는 혹시 이 녀석이 연대생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기는 했다.)

회식 장소는 부내 내 식당. 메뉴는 삼겹살. 부대 내에서도 음주운전은 엄벌의 대상이라 나는 술은 마시지 않았다. 나는 7시 반쯤 자리에서 일어나 수송대 병사를 숙소에 데려다주고 상황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처장님의 지시로 착수한 지도 제작에 다시 열을 올렸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어느 덧 밤 10시……. 짤 없는 야근이다.

밤 10시, 드디어 에어컨, 책꽂이, 세탁기가 도착했다. 중고 가전 가구 매장을 운영하는 엄마 친구를 통해 구입. 엄마가 친구와 함께 친히 배달을 왔다. 그리고 이 참혹한 위생 상태에 분노(?)하며 아줌마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청소에 돌입. 뭐 청소에는 의지니 폼페이우스식 전략이니 하는 따위의 것들 다 필요 없다. 노하우다. 순식간에 난공불락처럼 보였던 장소들이 함락당하고, ‘사람 사는 곳’이 되었다.

뭔가 정신없이 한바탕 휘젓고, 시간이 늦어 손님들은 돌아갔다. 물론 나는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나갈 때에도 인솔자로 부대 정문까지 함께 해야 했지만.

방 안에 책꽂이가 생겼다. 더 이상 책상 위에 책들을 어정쩡하게 쌓아놓지 않아도 된다. 세탁기는 다용도실에 놓았다. 매주 주말 집에 빨래거리를 한 짐씩 싸들고 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에어컨은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벽을 뚫어도 된다니, 조만간 기사를 불러다 설치해야겠다.

방에 있는 전자레인지만한 냉장고를 보더니 엄마 왈, 냉장고도 한 대 놔야겠단다. 듣고 보니 욕심이 생긴다. 쓸모없는 옷장은 하나 내버리고 대신 좀 큰 냉장고를 들여놓는 걸 고려 해 봐야겠다. 조금씩 모양새를 갖춰가는군.

내일도 7시 반 정시 출근이다. 비 안 오면 근무를 하고, 비 오면 축구를 한단다. 뭐지.

2010/08/12 23:54 2010/08/12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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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정시(7시 30분) 출근. 물론 장교 식당에서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상황실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늦어도 6시 20분에는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한다. OJT 기간만 끝나면 아침은 취소하고 시리얼로 대체해야지.

꽤 정신없이 바쁜 하루였다. 사실 아직 업무적으로는 잔심부름 하는 정도지만, 이것저것 동시다발적으로 일이 생기니까. 오늘의 주요 업무라면 지도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정말 군대란 곳이 인력으로 때려 박아 뭐든지 해버리는 조직이라는 걸 느꼈다. 인터넷도 안 돼, 포토샵도 없어, 그런데 그림판과 파워포인트만으로 지도를 만들어낸다. 궁하면 통한다더니, 평소에는 전혀 생각도 못 했던 방법들이 튀어나와. 게다가 여러 사람들이 툭툭 던져주는 아이디어를 더하면, 그림판과 파워포인트의 조합은 포토샵 저리가라 할 정도로 강력한 기능을 보여준다. 젠장.

정시 출근의 대가로, 10시를 넘겨 퇴근했다. 집에 와서는 낮에 면회실에서 수령해 온 스피커와 사운드카드를 설치. 차가운 우유를 마시며, 지금은 브람스의 교향곡 1번을 듣고 있다. 음향기기 수준에 따른 음질의 차이를 전혀 못 느낄 정도의 막귀는 아니지만, 소리의 질이야 재생기기에 달려있을지언정 ‘감상’의 완성은 ‘상상력’이라는 나의 지론에는 변함이 없다. 그래도 풍부한 음향을 들으니 기분은 좋다. 밤이라 볼륨을 맘껏 높일 수 없는 게 안타깝지만.

내일이면 세탁기와 에어컨, 책꽂이 등이 들어온다. 안타깝게도 에어컨은 설치 기사를 따로 불러야 한단다. 다행인 것은 관사라도 에어컨 설치 시 벽을 뚫을 때 별도의 허가 절차는 필요 없다는 것. 나갈 때 다시 막아놓기만 하면 된다는데, 어떻게 막으라는 거지. 그냥 에어컨 기증하고 가야겠다(그러니까 1055일 후에…….).

책꽂이가 들어오면 방 모양새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책상은 너무 비좁아서 공부나 작업 용도보다는, 그냥 오디오 시스템(노트북 +외장하드+사운드카드+스피커+헤드폰) 선반으로 써야겠다. 그러고 보니 침대 머리맡에 장착할 집게형 스탠드를 하나 구비해야겠다. 요즘은 어찌나 피곤한지, 잠자기 전에 책을 펴지도 않는다.

2010/08/11 23:56 2010/08/1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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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단한 인생살이에 무슨 의미가 있기에, 그렇게 끙끙거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야 하는 걸까, 가끔 영문을 모르겠는 때가 있어요.”

미래의 행복 같은 건 믿어 본 적도 없다. 애당초 나는 행복이라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기에. 어느 유명 바이올리니스트가 내한 공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연주자는 마침 내가 너무 좋아하는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하기로 되어있었다. 기대에 부푼 나는, 가장 값비싼 자리를 예약하고 연주회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나는 연주회에서 기립 박수를 쳐본 적이 없다. 기립 박수를 어쩐지 쑥스럽게 여기는 한국의 관람 문화 때문이었을까.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 연주회는, 여러 모로 좋은 기회였다. 최고의 연주자에 최고의 곡. 내가 충분히 감동 받지 않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미리 기립 박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연주는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1악장을 들으면서부터 가슴 깊은 곳이 바늘로 콕콕 찔리는 듯한 아픔을 느꼈다. 그 ‘아름다워야 할’ 하루가,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 내가 가장 걱정했던 것은, ‘기립 박수’를 칠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던 듯하다.

연주회가 끝났다. 나는 일어나 박수를 쳤다. 연주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기립 박수를 쳤다. 그날 연주회 장에서 멋진 연주에 대한 화답으로 기립 박수를 치는 것이, 내가 미리 그려놓은 스케치 안의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이게 내가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미리 구상한 그림 안에 나의 삶을 위치시키는 것. 그 완벽한 구성 안에서 존재와 행위는 위치를 점하고, 의미를 갖는다. 그렇게 믿는다.

미신(迷信).

아침 5시 20분, 기상. 하루하루 피로는 누적되어 간다. 하루의 시작과 함께 벌써 하루의 끝을 예감한다. 내 인생에서 통째로 들어내질 하루. 나는 더 이상 이 하루에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무엇을 믿어야 할지 알 수 없다. 태풍 북상의 뉴스와 함께 많은 비가 예고된 하루. 우중충한 날씨. 그러나 기온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다. 숨 막힐 듯 덥고 습하다. 군 복무 기강 점검을 나와, 각 부처에서는 사무실 온도를 규정 온도에 맞추느라 냉방 가동을 제한했다. 혹서기 실내 적정 온도는 무려 28도라고 한다. 30도를 넘어가면 실외 활동이 금지되는데, 아무리 실내라지만 28도는 상식 밖이지 않은가.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등줄기를 타고 땀이 흐르고, 전투복은 기분 나쁘게 몸에 착 달라붙는다. 아침, 점심, 저녁 식사. 어떤 게 아침 식사 메뉴였고 뭐가 저녁 반찬이었는지도 헷갈린다. 그 사이사이 시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른다. 점점 무거워지는 몸, 내려앉는 눈꺼풀. 그러나 교육 사항이나 업무 지시는 놓치면 안 되기에 귀를 쫑긋 세운다. 급여가 들어왔다. 어째선지 조금도 기쁘지가 않다. 100만원 돈 대신에 10만 원짜리 연주회 티켓이라도 쥐어준다면, 뭔가 상황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돈은, 뭐에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저녁 9시 반, 우산을 받쳐 들고 터벅터벅, 군화발로 물웅덩이 철벅이며 걸어가는 내 자신이 너무 낯설다.

음악 감상은 어느 쪽이냐면 ‘고상한’ 취미에 속하겠지. 그러나 나는 지금 음악을 마약처럼 이용하고 있다. 방에 돌아와서는 두 시간 동안 내내 브람스만 들었다.

2010/08/10 23:51 2010/08/10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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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길다는 한여름 날의 아침이지만 아직 어슴푸레한 새벽 5시 20분 기상, 충주의 습습하고 미지근한 공기를 가르며 출근을 한다. 6시, 출근 체크를 하고 업무를 시작…….

밤 9시 반,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며 퇴근을 한다. 약간은 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보내고 있는 내 인생의 시간들은, 기왕 낭비 될 것이라면 좀 더 나태하고 좀 더 달콤하게 낭비될 수도 있을 텐데.

운동을 전혀 하고 있지 않음에도 지난 한 주간 체중이 오히려 1kg 줄었다. 엄격한 식사량 조절 탓도 있지만, 몸이 ‘곯아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주말에는 쉬며 영양 보충을 좀 했다. 그러나 충주에서 생활하는 평일 간에는 여전히 섭취에 주의하고 있다.

어제 너무 늦은 시간에 도착해 겨우 네 시간 정도 자는 둥 마는 둥하다가 출근했는데, 덕분에 힘든 하루를 보냈다. 상황실에서 공부하다 조는 모습을 처장님께 들키기도 하고. 처장님께는 이래저래 좋은 인상은 못 남기고 있는 것 같다. 뭐 워낙 뭐든지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능력과 능률이 남다르니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만큼만 지속하면 금방 인정을 받을 수 있겠지.

6시 출근이었던 만큼 저녁 8시 퇴근을 은근히 기대했지만, 비상사태가 터지는 바람에 기대는 무산됐다. 9시까지는 어떻게든 견뎠는데, 9시를 넘기고 나니 완전히 탈진 상태가 되어버렸다. 감정 조절도 잘 안 돼서 짜증을 넘어 화가 날 지경이었고. 그래도 비상시 상황실 업무는 다이내믹해서 지루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기에 상세히 적을 수 없다는 거다. 오늘은 그냥 좀 힘들었던 하루로, 그 영문도 잊힌 채 단순한 기록으로 남을 것이다.

위안이 되는 게 있을까? 지치고 피로한 일상에, 온전히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라곤 거의 주어지지 않는 생활 속에서? 아마 있다면, 그것은 그나마 짬을 내서 틈틈이 몇 줄 읽는 책과 음악이겠지. 더위에도 불구하고 AKG의 무거운 헤드폰을 꺼내 볼륨을 최대로 하고(그래도 소리가 크지 않다, 이 모니터용 헤드폰은 저항이 너무 높기 때문에) 브람스의 ‘독일 레퀴엠’을 듣는다. 이 시간만은 온전히 나를 위한, 나만의 시간이다.

방에 에어컨을 설치 할 생각이다. 책꽂이도 들여놓고, 다용도실에는 세탁기를 놔야지. 거실에는 벌써 작은 원형 테이블을 가져다 놨다. 딱 두 끼 분의 밥을 지을 수 있는 작은 전기밥솥도 있다. 오디오트랙 Cube 사운드카드와 브리츠의 PC 스피커도 주문 해 두었다. 이 공간, 점점 나의 공간으로 바꾸어 갈 것이다. 혼자 사는 건 아니지만, 취향은 몰취향을 이긴다. 개성은 부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니까.

주중에는 시간이 없더라도 조금씩 글을 쓰곤 했는데, 오늘은 정말 너무 피곤해서 여력이 없다. 독일 레퀴엠만 마저 듣고 자야겠다. 내일도 해 뜨기 전에 출근이니까.

2010/08/09 22:51 2010/08/09 2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