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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 행사는 비교적 일찍 끝났다. 점심시간 전에 퇴근했다. 단 몇 시간 차이지만 저녁 고속도로 정체를 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모처럼 느긋한 주말을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근무 일정표를 봤는데, 이번 달에는 주말 근무가 두 번이나 껴있다. 그것도 기피 대상인 금요일과 토요일 근무다.

2010/10/01 11:54 2010/10/01 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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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사회 통역을 한 게 자넨가? 대단히 잘 했다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내가 널 좀 데려다 써야겠어.”

부대 복귀 첫 날, 10월 말쯤 공분본부에서 열릴 한일정보교류회의 통역으로 와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확실히 참모총장 만날 날도 머지않은 것 같다. 기왕 통역이 되었으니, 참모총장뿐만 아니라 국방부 장관도 한 번 만나 봐야지.

그저께였던가, 공군회관 7층에서 공군전우회 회장님과 함께 밥 먹던 사람이, 오늘 새로운 공군참모총장이 되었단다. 그때 살짝 얼굴은 봤는데, 이름을 몰랐다. 알고 보니 박종헌 전 교육사령관. 교육사에서 한창 군사훈련 받을 때, 지겹도록 외웠던 직속상관 관등성명에 등장하던 그 이름이다. 그리고 종교참석으로 절에 가면 그 뒷모습만 자주 볼 수 있었던 사람이기도 하고. 석가탄신일 전야 연등제 때 동네 아저씨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주지 스님과 선두에서 걸어가던 모습이 기억... 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그 때의 일일랑은 마치 10년 전의 일처럼 가물가물하다.

아무튼 복귀 첫 날 보고를 마치자마자, 새로운 파견 허가를 요청해야 했으니 사무실 내에서의 내 입장은 점점 더 난처해지고 있다. 통역하러 온 거냐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내 파견은 윗사람들이 결정하는 일. 사실 내가 어떤 대단한 자리에 나가 얼마나 높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건 내 의사와는 상관없는 일이다.

오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체력검정. 훈련 받을 때처럼 다 알아서 해줄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스스로 챙길 게 많았다. 자기 일은 내팽개쳐두고 바깥 일만 신경 쓴다고 오늘은 좀 깨졌는데, 크게 개의치는 않는다. 한 번 씩 이런 쓴소리 들을 위치에 있는 거니까, 내가.

3km 오래 달리기는 15분 15초, 3급으로 겨우 불합격을 면했다. 팔굽혀펴기도 3급. 윗몸 일으키기는 불합격했는데, 근성 있게 다시 도전 한 결과, 감독하던 부사관의 협조(?)와 숫자 세주던 병사의 적극적 협력(??)으로 성공할 수 있었다. 나야 불합격 하더라도 상관은 없는데, 성과상여 평가할 때 반영되어 사무실 전체에도 불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는, 편법이라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이 들수록 처세만 늘어가지고…….

내일은 국군의 날. 고대하던 휴일이 아니고, 고달픈 행군의 날이다. 1시간 반 정도 행군을 한다는데, 나는 소위라는 죄로 단본부 제대 선두에서 사람들을 인솔하게 생겼다.

유포니아 새 바이올린 파트 파트장(아마 악장이겠지?)한테서 연락이 왔다. 바이올린 신입 환영회가 있는데 시간 되면 오지 않겠냐고. 솔직히 대학교 1, 2학년들 주축이 되는 무대에 사회인 선배가 끼는 게 서로 무슨 재미가 있겠나(아니, 선배들은 좋아하지……. 그게 늙는다는 거고). 이 초대가 뭘 의미하는지는 알지. 예전에 유포니아 대선배님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랑 받는 선배의 세 가지 조건!

첫 째, 칭찬을 많이 해 줄 것.

둘 째, 계산을 먼저 해줄 것.

셋 째, 돈 냈으면 빨리 사라져 줄 것.

통역 수고비에 파견비에 돈도 제법 벌었고 가서 좀 써줄까.

2010/09/30 21:54 2010/09/30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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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도 실력이지만, 당신의 인품이 훌륭합니다.”

이번 통역 업무는 귀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 통역 장교로서 첫 발을 성공적으로 내딛었다고 감히 자평할 수 있을 듯하다. 내일 판문점 견학 후 김포 공항에서 환송하면 일정이 종료된다. 충주 정보처 사무실에서 회식이 계획되어 있다고 하는데, 예정된 비행기 이륙 시간이 오후 4시인 걸 감안하면, 손님들이 일찍 출국장으로 나가더라도 3시는 되어서야 김포 공항에서 출발 할 것이고, 차를 주차시켜 둔 공군회관에 돌아왔다가 다시 분당으로 가서 짐을 찾아 충주로 돌아가면, 회식에는 참가하기 어려울 것 같다.

사실 체력적으로도 회식 참가는 힘든 지경이다. 저녁 만찬 때 이미 전우회 회장님(전 공군 참모총장님)이 주는 소맥과 양주를 연거푸 마셔야 했고, 2차 때는 40도의 위스키를 연달아 다섯 잔 정말 쉬지 않고 연속으로 마셔야 했다. 내일 마지막 통역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무사히 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2010/09/28 23:54 2010/09/28 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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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방으로 돌아와, 상쾌하게 샤워를 했다. 맥주와 막걸리만으로도 약간 취기가 오른다. 가장 어려운 통역은 오늘 끝났고, 가장 중요한 통역은 내일 남았다. 자주 있을 일은 아니겠지만, 군 생활 중에 이런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재밌군.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적고, 일단은 쉬어야겠다. 통역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이니까.

2010/09/27 23:22 2010/09/27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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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공군회관 501호. 오늘부터 일본 공군 예비역 단체인 츠바사회 방한 행사 통역 임무를 수행하게 되어, 공군회관에 내 방을 잡아줬다(무려 트윈이다). 무선 인터넷도 잘 잡힌다.

이미 진 별이긴 하지만, 이번 행사 기간 동안 내가 볼 별의 숫자만 50개가 넘는다. 살다보니…….

최장 9일이라 호들갑이던 추석 연휴인데, 평시보다 피곤하다. 내일부터는 하루 종일 통역. 쉽지 않겠군.

2010/09/26 18:52 2010/09/26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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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로 돌아왔다. 혼자다. 느낌이 나쁘지 않다. 흡사 대학 시절 자취방에 돌아와 있는 느낌이다. 오는 길에 휴게소에 들러서 빵을 좀 사왔다. 내일 근무를 서면서 아침, 저녁을 해결할 용도다. 덕평 휴게소에는 처음 들러봤는데, 시설을 잘 갖춰놨다.

추석은 짧았다. 최대 9일간의 긴 추석 연휴라는데, 그것이 내게는 토막토막 나 있다. 오늘 차례 상에는 내가 만든 갈비찜이 올라갔다. 상당히 호평이었다.

대사관을 비롯하여 이쪽저쪽에서 통역할 자료랍시고 보내줬는데, 아직까지 손도 대지 않고 있다. 휴일은 휴일이니까. 내일 근무 서면서 대충 훑어봐야겠다. 제대하면 외교부에 특채 지원이나 해볼까. 하고 많은 일들 중에 외교관이라면 해볼만 하단 생각도 든다. 하지만 고시 공부는 죽어도 하기 싫고, 그냥 날 모셔가 준다면 일해 줄 생각은 조금 있다. 그러나 난 장관 아들이 아닌데.

특채 비리 한 두 건 터졌다고 고시를 부활/강화 시켜야 한다는 건 웃기는 주장이다. 세상을 불행하게 만드는 건 특채 비리나 대학 부정 입학이 아니라, 고시에 목숨 걸고 수능에 목숨 걸어야 하는 이 사회의 시스템이다. 누구나 겪고, 그래서 누구나 깨닫고 있는 그 사실을 왜 아무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 것일까.

국군의 날, 출근해야 한단다. 슬프군.

2010/09/23 01:45 2010/09/23 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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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근무 교대. 방으로 돌아가 먼저 샤워를 했다. 과연 지금 운전을 할 수 있는 정신 상태인가 자문 해 보았는데, 교통 체증에 걸려 거북이 운행을 해야 하는 상황만 피한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행선은 지옥이었지만, 서울 방향으로는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1시간 반도 걸리지 않아 집에 도착했다.

낮잠으로 수면을 좀 보충하고, 저녁때는 차례 상에 올릴 갈비찜을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근래에는 거의 요리를 한 일이 없다. 충주에서는 세 끼를 꼬박 장교 식당에 신세지고 있으니. 일단 요리를 하려면 냉장고라도 좀 큰 것을 들여놔야 할 것 같다. 지금 냉장고는 물을 차게 해서 마시는 것 외에는 달리 쓸모가 없는 정도라.

돈이 500만원 모였다. 아니, 500만원 남았다고 해야 하나. 아직까지 적금을 들거나 펀드 상품을 구입하지도 않았는데, 돈을 쓸 데가 없다보니 그냥 쌓였다. 제대 할 때까지 4천만 원 모으는 건 일도 아닐 것 같은데, 모으는 것도 좋지만 앞으로는 돈 좀 쓰고 살아야겠다. 인생은 그때그때 즐기며 살아야지, 지나간 다음에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피아노 레슨이나 받을까.

추석만 새고, 저녁 때 바로 충주로 내려간다. 목요일 또 근무를 서야하기 때문. 원래 내 근무 스케줄은 이번 주 월요일, 목요일, 일요일이었다. 아무리 내가 신임 막내 꼬꼬마 소위라지만, 대체 이 스케줄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물론 추석 휴무일 기간 중 근무는 사다리 타기로 정해졌다). 다행히 일요일부터는 통역 파견이라는 핑계로 근무 스케줄을 월초로 당길 수 있었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이틀 걸러 한 번씩 세 번 근무를 설 뻔했다.

지하는 아니지만, 밀폐 된 벙커 안의 상황실에 있다 보면 절로 두통이 인다. 다시 24시간 갇혀 있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린다. 익숙해지면 좀 나아지려는지. 근무 설 때마다 소설 책 한 권씩만 읽어도 한 달에 서, 너 권은 너끈히 읽을 것 같은데.

2010/09/22 03:33 2010/09/22 0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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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에서 주말을 보낸 건 처음이다. 다음 주 추석 동안 당직 근무 일정도 꽤 괴팍하게 잡혀버렸고, 출장도 예정되어 있어서 서울 충주 왕복이 너무 잦아질 것 같아서, 이번 주말에는 출장으로 인해 미룬 바이올린 레슨이나 받으며 편하게 보내기로 작정했다.

고속도로 위에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고, 복귀에 대한 부담도 없으니 똑같은 주말인데 시간이 무척 넉넉하게 느껴진다. 토요일 아침 8시 반쯤 일어나 9시쯤 외출했다. 중간에 편의점에서 빵과 우유를 사서 아침을 해결하고, 학원으로 가서 두 번째 레슨을 받았다.

그래도 레슨을 받으며 그동안 잊었던 부분에 대해 지적을 받을수록, 예전의 감각들이 되살아나는 것 같다. 스즈키로 회귀하지는 않고, 하이든 협주곡 2번을 복습하기로 했다. 활 쥐는 법이라든가, 스타카토 연주법, 어떤 소리를 추구할 것인가 까지가 이전 선생님과는 또 달라서 좀 혼란스러운 면도 있다. 예전 선생님은 다소 거친 소리가 나더라도 일단 힘 있게 연주라고 주문했는데, 이번 선생님은 좀 더 깨끗한 소리를 추구하는 것 같다.

겹음을 연주할 때에는 활의 밑 반만 쓴다는 느낌으로. 너무 활 끝까지 써서 지저분한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 할 것. 오른쪽 어깨를 너무 들어 올리지 않을 것. 스케일 연습할 때는 당연한 것이고, 곡을 연주할 때도 몸을 너무 많이 움직이려고 하지 말 것, 소리가 흐트러질 수 있다.

남는 시간을 이용, 충주 이마트에도 가보았다. 한 층에 식품매장, 의류매장, 가전매장까지 다 우겨넣고 있는 롯데마트와는 달리, 이마트는 3층의 구조를 갖췄다. 물론 한 층의 면적은 좀 좁았지만. 추석을 맞아 선물 세트 판매가 한창이었다. 딱히 필요한 것은 없어서 물건을 사지는 않았다.

앞으로 차차 충주 시내와 인근을 탐험 해 봐야겠다.

내일은 출근, 그리고 근무다. 화요일 아침에야 서울로 갈 수 있을 것 같다.

2010/09/19 23:15 2010/09/19 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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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화창한 날이었다. 새벽 4시 무렵에 일어나 브리핑 스크립트를 일어로 작성하느라 잠을 설친 나는, 쏟아지는 햇살을 감당하기에는 좀 몽롱한 상태였다. 7시 반, 시동을 걸고 수원으로 출발했다. 수원은 분당의 집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 주말 저녁 귀가 때마다 극심한 정체로 짜증을 돋우던 영동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있었다. 이대로 달려 집으로 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수원 비행단은 수원 화성의 명성을 의식한 탓인지 정문 주변 방책이 석재로 쌓아올린 꽤 근사한 성벽으로 되어있었다. 헌병에게 신분증을 맡기고 공무용 출입증을 받아서 비행단 단본부로 향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어놓고 본부 2층의 계획처 문을 두드렸다.

오늘의 업무 내용을 전달 받았는데, 15분 정도의 브리핑만 간단히 하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다. 일단 방문하는 사람들이 55명. 그 중 고위급 몇몇은 단장과 접견실에서 회담을 하는데, 그때 단장과 방문단 수장 사이에서 통역을 해야 한다고 했다. 또 브리핑이 끝나면 55인을 대동하고 비행단을 견학하면서 시설 안내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전은 브리핑 자료 수정과 브리핑 리허설을 하며 보냈다. 점심을 먹고 코코아 한 잔 마시며 휴식을 취한 후, 1시 30반 정도 되어 손님들을 맞이했다. 손님들의 정체는 일본 항공자위대 간부학교 지휘막료과정(CSC)의 학생들 및 인솔자 55명으로, 계급은 3좌(소령)부터 1좌(대령)까지였다.

단본부 앞에서 기념 촬영 후 인솔자들을 대동하고 접견실로 이동했다. 접견실 안쪽에는 단장과 방문단의 수장이 앉을 자리가 나란히 놓여있었고, 그 사이 약간 뒤로 물러선 위치에 통역관, 즉 내 자리가 마련되어 있었다.

1:1 통역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화자의 말을 키워드 중심으로 간단히 요약정리 해 두면, 다시 문장으로 만들어 읊으면 되었다. 초반의 긴장이 풀리고 나니, 내가 생각하기에도 신기할 정도로 술술 통역이 되었다. 물론 중간중간 대충 얼버무려버린 말이나 반대로 너무 매끄럽게 내 스타일로 뽑아버린 문장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무난했다.

문제는 일대 다수의 통역이었는데, 같은 말임에도 다수를 상대할 때 왜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는지. 일단 시점이 분산되다보니 집중력이 흐트러져 짧은 시간 안에 문장을 정리하는 순발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브리핑은 내가 미리 준비해 간 원고를 읽는 것으로 족했기 때문에 어렵지는 않았다. 사실 행사 주최 측에서 미리 원고를 주긴 했지만, 그걸 그대로 읽었다가는 손님들은 내가 무슨 중국어라도 하는 줄 알았을 것이다. 게다가 미리 일본어 실력 있는 병사들과 함께 만들었다는 슬라이드에는 기초적인 한자 오기만 해도 십 수 개. 이 슬라이드를 그대로 보여줬다면 정말 웃음거리가 되었겠지. 일본에서는 사용하지 않는, 한국만의 한자어 표현도 많았으나 그런 것까지 일일이 다 뜯어고칠 여유가 없었던 건 유감이다.

브리핑 후 단장과 학생들 사이에 질의응답도 통역을 했는데, 여기서도 살짝 진땀을 뺐다. 아무래도 질의응답 시에는 화자들도 미리 준비되지 않은 말들을 하게 되다보니, 그걸 정리해서 옮기는 게 쉽지 않았다.

브리핑이 끝나고 단장이 물러간 후, 한국측에서는 부단장이 인솔자가 되어 기지 내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가는 곳마다 브리퍼들이 한국어로 시설에 대해 안내하는 브리핑을 실시했는데, 번번이 내가 통역을 해야 했음은 물론이다. 가령 무장 같은 것에 대해 브리핑 할 때는, 나부터가 한국어로 들어도 이해 못 하는 내용을 통역해야 했으니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래도 어쨌든 첫 통역 임무는 큰 사건 없이 무사히 끝났다. 마지막으로 서로 선물 교환을 했는데, 나도 CSC 측으로부터 볼펜 한 자루 받았다.

4시 반, 아직 화창한 가을 햇살이 생생한 시간, 나는 퇴근했다. 첫 통역 업무였던 만큼 긴장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자리였지만, 그러나 일단 통역에 들어가서는 의외로 침착했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손님들을 다시 태우고 멀리 떠나가는 버스의 뒷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담배라도 한 대 펴야겠군.”

출장지에 제대로 왔음을 증명하기 위해 비행단 앞의 편의점에서 음료수 한 캔 사마시고 영수증을 챙겨뒀다. 자가 차량 이용 시 출장비는 하루에 2만 원 정도가 나온다고 한다. 기름 값은 충분히 충당되는 돈이다.

임관 휴가 후 처음으로 평일에 집을 들어가 봤다. 똑같은 집인데, 어딘가 주말과는 분위기가 다르다. 무거운 군복을 벗어던지고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뒤 소파에 몸을 던졌다. 테이블에는 얼음을 가득 채운 맥도널드 컵에 톡톡 탄산의 기포가 올라오는 콜라가 따라져 있다.

내 군 생활은 이렇다.

2010/09/18 13:39 2010/09/18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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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가 끝나니 10시 가까이 되었다. 바로 출발해도 12시 안에 부대에 도착할 수 있을까 말까인데, 출차 차량이 몰려 통로가 막혀버린 세종문화회관 주차장에 갇혀버렸다. 결국 포기하고 근처 커피 빈에 들어가 바닐라 라테와 티라미스 한 조각을 먹으며, 연주회 전 시간 때우려고 산 요시다 슈이치의 ‘사요나라 사요나라’를 절반 가까이 읽고 나서야 겨우 출발할 수 있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서울 시내에는 많은 차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러나 밤의 고속도로는 진정 고속도로. 세종문화회관에서 부대까지 약 1시간 반 만에 주파했다. 저 앞에 달려가는 차의 미등을 그저 멍하니 쫓다보니 어느 새 속도는 130km……. 불과 얼마 전까지 액셀을 아무리 밟아도 시속 80km를 넘지 못 했던, 2주 사이에 두 번이나 도로 위에 섰던 마티즈로 말이다! 난 내가 안전 지향의 운전자라고 생각했는데, 언제부터 이렇게 간이 배 밖으로 나오게 된 거지.

오랜만에, 기분이 좋다. 연주회가 멋졌으므로.

2010/09/17 01:45 2010/09/17 0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