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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글을 안 쓰는 이유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 아침에 자고 오후에 일어나다가, 어쩌다가 취침 시간이 어긋나면 이후 며칠 반짝 바른 생활을 하는 시기가 1년에 두어 번 찾아오는데, 이번에는 그 기간이 좀 길어지고 있다.

책 읽기든 글쓰기든 생산적인 활동은 밤에만 하는 전형적인 올빼미족인 나에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바른 생활이란 그저 비생산적인 생활일 뿐이지만……. 아무튼 낮이 너무 길다.

보통 일요일 한낮에 일어나면 나를 위해 사다놓은 음식을 먹곤 했는데, 오늘은 최초로 가족과 함께 직접 브라운 슈거를 찾아가 브런치를 먹고 왔다. 뭐 얼마나 더 이런 생활을 지속할지는 모르겠다. 결국 연주회 리뷰가 밀렸다. 연말 분위기를 내려고 그제는 성남 시향의 베토벤 9번 연주를 듣고 왔는데. 그 전날에는 Arte TV에서 헨델 메시아 공연을 라이브 중계 해줘서 봤다. 전반부는 놓쳤지만. 내친김에 호두까기 인형도 보러갈까. 연말 3대 레퍼토리 섭렵인데.

중국어가 좀 재밌어 진다. 영어 실력은 점점 나빠지는 것 같다. 흠.

2009/12/13 15:23 2009/12/13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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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선생님: 너, 졸업하지 않았냐?

나: 네.

지휘자 선생님: 너, 군대도 가지 않았냐?

나: 네.

...

지휘자 선생님: 근데 어떻게 된 거야?

나: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정말 잘 모르겠다. 연습 후기는 나중에.

코리안 심포니 연주회 후기부터 올려야 하는데…….

2009/12/05 01:34 2009/12/05 0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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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이로군. 내가 정상적으로 군 생활을 시작했더라면 임관을 한 달 앞두고 있을 시기. 먼저 들어간 녀석은 나올 때가 되어가고, 난 들어갈 때가 가까워지는군. 뭐 그런 거지.

아침에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7번째 레슨. 이미 내가 칭찬 받을 건 다 받았고, 요즘은 그저 엄청 깨지고 있다. 특히 오늘은 그놈의 스타카토 때문에 얼마나 혼났는지. 내가 일부러 틀리는 것도 아니고 이 몸이 안 따라주는데, 같은 걸로 계속 지적을 받으니 어지간한 호인인 나도 짜증이 날 수밖에. 그러나 어쩌랴. 제대로 가르쳐주느라 그런 건데. 선생님에게는 복종하고, 화는 내 자신에게 내기로 했다.

하이든 2번은 카덴차 전까지 이미 진도가 나간 상태. 다음 시간에는 카덴차 들어간다. 나 군대 갈 때까지 하이든만 시킬 것 같다. 스케일은 솔직히 일본에서 연습하며 쌓은 바탕으로 지금까지 버티는 중. 16개 슬러는 역시 좀 힘들다. 그래도 스케일이 제일 무난한 편. 카이저는 스타카토 덕분에 박살.

선생님 왈, 음정은 아주 훌륭한데 리듬이 엉망이란다. 확실히 음정에 대해서는, 요즘 귀가 열리는 느낌이다. 음악을 하도 많이 들어서 그런가. 한편 명색이 오케스트라 단원인데 이 절망적인 리듬감은 어찌해야 하지. 비브라토는 계속 나아지는 중이라 그나마 위로가 된다.

중국어, 영어 학원 12월 강의가 시작되었다. 중국어는 원래 4개월 과정인 Grade 1을 2개월만 수강하고 Grade 2로 월반했다. Grade 2에서 4개월 째 배우고 있다는 학생이 있으나, 나랑 별 실력 차이가 없는 것 같다. 한편 이 학생이 경영학과 학생이라고, 경영학과 졸업생인 나한테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세부 전공이 어떻고, 재무 회계가 어떻고, 인적자원관리가 어떻고…….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난 대체 학교에서 뭘 배운 거지? 5분 동안 숙고해봤는데, 결론은

아무 것도.

난 정말 학교에서 배운 건 아무 것도 없어. 애초에 난 학부에 경영학과라는 학과는 존재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냥 liberal arts나 가르치라고.

영어 학원은 매달 선생님이 바뀐다. 지난달까지 함께 듣던 사람들이 이번에 새로운 반을 만들어서 대거 떨어져 나갔다. 소규모로 새로운 반이 꾸려졌는데, 이 반 사람들의 영어 실력이 훨씬 낫다. 담당 선생님은 지지난달 가르쳤던 선생이던데, 가족의 급병으로 잠시 미국으로 돌아가서 오늘은 임시 선생이 들어왔다. 어디서 봤다 했는데, 이 학원에서의 첫 수업 때 봤던 선생님이다. 시간 때가 안 맞아서 첫 수업 후 반을 옮겼지. 당시엔 할로윈 파티 때 무슨 가장(假裝)을 할 예정이라고 턱수염을 기르고 있었는데, 오늘은 말끔한 모습이었다.

이번 주 금요일 오케스트라 첫 연습.

흠.

2009/12/01 23:45 2009/12/01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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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제는 오랜만에 고교 동창 선민군을 만났다. 여느 때처럼 서현역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내가 조금 일찍 도착했다. 그냥 기다리기는 지루해서, AK 플라자의 지하 식품 매장을 둘러보았다. 스파게티나 샌드위치 만들 때 쓸 만한 도톰한 수제 베이컨을 발견했는데, 나중에 집에 돌아가는 길에 다시 들러 사려다가 그만 깜빡해버렸다. 생선들이 싱싱해 보였다. 갈치를 세일하고 있어서 살까 했지만, 차를 끌고 나온 것도 아니고 들고 다니는 게 번거로워서 일단 포기했다.

선민군과 만나 저녁 식사를 하러 간 곳은 딘타이펑. 이제 가는 곳은 여기로 정해진 모양.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는 의미에서 밥은 내가 샀다. 그런데 평일에는 점심 저녁 상관없이 딘타이펑 주요 메뉴를 반값에 파는 행사(?) 중이었다. 덕분에 딤섬 한 접시가 5,000~6,000원 선. 사먹는 입장에서야 대단히 고마운 일이지만, 어쩐지 음식점의 품위도 반 토막 난 것처럼 느껴진다. 초창기만 하더라도 딘타이펑의 이미지는 상당히 고급스러웠는데 말이다.

식사 후에는 바바로사라는 맥줏집에서 간단하게 맥주 한 잔씩 했다. 이 가게 이름 바바로사는 제3차 십자군 원정 때 무릎 깊이의 강에서 익사한 바로 그 바바로사(프리드리히 1세)에게서 따온 것이다. 메뉴판에 적힌 설명에 따르면 그가 최초로 독일 내 맥주 제조에 관한 법률을 제정했다나.

맥주는 평소 못 보던 종류의 것들을 갖추어놓고 있어 흥미로웠지만, 안주가 터무니없이 비쌌다. 나초에 치즈를 좀 얹어서 내오는 가장 저렴한 안주가 15,000원. 역시 맥주 마시기에 최적의 장소는 대학가인 모양이다.

어제는 다섯 번째 바이올린 레슨을 받았다. 분명 알람을 맞춰놓고 잤는데 못 일어나서 선생님이 도착하고 나서야 겨우 눈을 떴다. 비몽사몽간에 레슨 시작. 그런데 선생님 왈, 자다 일어나서 힘이 빠져서 그런지 활 쓰기가 훨씬 좋은 것 같다고…….

하이든 2번은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그러나 뭐 나는 개의치 않는다. 진도야 내가 잘 하면 언젠간 나가주겠지. 이 선생님과 만난 지도 벌써 한 달이 넘었는데, 초반과 다름없는 꼼꼼함으로 잘 가르쳐준다. 이번에는 선생님을 잘 만난 것 같다.

곡의 경우, 첫 주제를 잘 연주할 것. 잘 연주한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음정’과 ‘박자’를 완벽하게 지키는 것에서부터 비브라토 하기, 활 배분 잘 하기, 악센트 넣기, 다이나믹을 살리기 등등 모든 것을 의미한다. 첫 주제에서 이것들을 완벽히 할 수 있으면 뒷부분은 술술 풀리게 되어 있다고, 나는 믿고 싶다. 음.

오후에는 중국어, 영어 학원을 다녀왔다. 영어 회화반에는 11월도 절반 이상이 지나간 이 시점에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왔다. 덕분에 반의 규모가 좀 커졌다. 그래도 꾸준히 결석하는 학생들이 있어서, 10명 이상이 함께 수업을 듣는 경우는 없지만.

내년 3월에 있을 유포니아 정기 연주회에 참여할 사람 조사를 하기에, 일단 참여하겠다고 대답해버렸다. 후배한테 빌려온 총보가 있어서 음악을 들으며 대충 봤는데, 이것도 참 앞이 캄캄하다. 27일인가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차이코프스키 5번을 연주한다고 해서 보러가려고 했는데, 이미 모든 자리가 다 매진되었고, 남은 자리라곤 합창석에 달랑 다섯 자리 정도였다. 혹시 캔슬이 발생해서 자리가 생기지 않나 좀 기다려보고, 안 되면 합창석 자리라도 사야겠다. 어차피 관객보다는 연주자로써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니까, 합창석에 앉아서 지휘자와 오케스트라가 호흡하는 모습을 지켜 봐 두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 같다. 합창석은 가격도 저렴하고.

날씨가 상당히 춥다.

2009/11/18 01:41 2009/11/1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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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인간 혐오증이 다시 도지려고 해.
불치병인가 봐.

2009/11/08 13:54 2009/11/08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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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레슨 재개했다. 원래는 요즘 영어와 중국어 학원을 다니고 있는 강남역 인근에서 음악 학원을 알아보려고 했지만, 근처에 주택단지도 없고 대학도 없는 강남역 주변에는 실용 음악 학원만 즐비하고, 바이올린을 가르치는 학원은 없었다. 하는 수 없이 방문 레슨을 하는 선생님을 구했다. 역시 방문 레슨이라 페이는 좀 세다. 그래도 앞으로 기껏해야 5개월 정도 레슨 받을 거니까 감수하기로 했다.

한 달 만의 레슨 재개에, 선생님까지 바뀌었으니 이것저것 고칠 게 많다.

진단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왼손 -

Good:

- 왼손의 손목이 밖으로 꺾이거나 넥에 바짝 달라붙지 않고 모양새가 잘 잡혀있어서 합격점.

- 스스로 늘 나의 최대 결점이라고 생각해왔던, 혹은 나에겐 영원히 장착 불가능한 게 아닐까 여겼던 비브라토에 대한 것인데, 선생님 말에 따르면 의외로 팔 비브라토를 잘 구사하고 있다고. 손가락 관절도 유연해서 비브라토 구사하는 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다만…….

Bad:

- 활을 바꾸거나 멈출 때 왼손의 비브라토가 멈춰버리는 것. 이건 힘 빼기나 관절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의 문제겠지. 또 하나, 3포지션 이상 올라가면 손목이 악기 쪽으로 붙는다. 그러면 팔 비브라토를 넣을 수 없음. 아, 왜 내가 비브라토를 잘 못 넣는지 이제야 알았어.

- 운지를 힘없이 하는 것. 운지만으로도 소리가 들릴 정도로 꼭꼭 눌러주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또 설령 틀린 음을 짚더라도 한 번에 또렷한 소리가 나도록 확신을 갖고 운지 해야지, 바른 음정 찾아가느라 적당히 뭉게는 짓은 하지 말 것.

- 손 모양이나 손목 각도 등은 대체로 좋은데, 엄지손가락이 약간 헤드 쪽으로 너무 붙는 경향이 있음.

- 포지션 이동 시 쉬프팅을 매끄럽게. 이건 뭐 평생의 과제 아닌가.

- 오른손 -

Good:

- 아니, 잠깐. 오른손은 뭐 칭찬 받은 게 없는 것 같은데. 보통 성인들이 활 쥘 때 새끼손가락을 뻣뻣하게 펴거나 엄지손가락에 과하게 힘을 넣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란 얘길 들었으나... 어차피 활 그립은 바꿨음.

Bad:

- 일단 활 그립. 내가 쥐는 법이 너무 올드 스타일이라고……. 활 쥐는 위치가 훨씬 올라갔다. 엄지와 약지를 제외한 세 손가락은 모두 첫 마디까지 사용해서 활을 단단히 걸어 쥘 것. 선생이 바뀔 때마다 그립이 바뀐다. 나 참…….

- 오늘 가장 여러 번 지적 받은 것인데, 활을 쓸 때 거친 소리가 날까봐 너무 소심하게 보잉하지 말고, 악기를 충분히 울린다는 생각으로 깊게 깊게 활을 쓸 것. 내 악기의 음량에 세삼 놀랬다.

흐리말리로 일단 스케일 체크. 셰브직은 일단 보류하고, 카이저를 좀 깊이 파보기로 했다. 곡으로는 9월까지 배우고 있던 아델라이데 콘체르토를 보류하고, 하이든 콘체르토 2번과 모차르트 콘체르토 2번을 들어가기로. 또 악보를 사야 되는군.

뭐 전체적인 평가는, 성인 돼서 시작한 것 치고 자세라든가 유연성이 괜찮다는 것. 지금까지 제대로 배워 온 것 같다나. 그러나 역시 아마추어 특성상 곡 진도에 비해 부족한 에튀드 진도 등으로 볼 때 테크닉 적으로 연습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도.

자, 나에 대한 평가는 이정도로 마치고, 선생님에 대한 인상을 말해볼까.

초등학교 3학년 딸이 있다는 아줌마. 내가 단지 전화번호만 받고 자세한 소개는 듣지 못 했으니 간단히 소개 좀 해달라고 매우 에둘러 프로필을 요구했건만, 출신 학교 같은 중요한 정보는 밝히지 않았다. 당연히 레슨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것은 학교 간판이 아니라 교육 역량이지만, 그래도 ‘일거리’를 구하는데 자기 약력을 상세히 밝히는 것 정도는 기본 중의 기본 아닌가? 솔직히 전문 연주자로서의 길을 걷지 않은 이상, 대입 준비 시기와 대학 시절이 자기 음악적 역량을 기를 거의 유일한 시기였을 텐데, 출신 학교를 밝히지 않는다는 건 좀 아닌 듯. 대학 간판 따지는 속물이 아닌 이상에야 선생이 무슨 대학 나왔든 뭔 상관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염연히 내가 서비스를 구입하고 돈을 지불하는 고용주인데, 프로필 정도는 알아야 되는 거 아냐?

그 다음. 지도는 매우 꼼꼼했다. 그러나 어떤 선생이든 첫 시간에는 매우 꼼꼼하게 지도하기 마련이니까, 감격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앞으로도 꾸준히 이 정도만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첫 레슨 내용에 대해서는 썩 만족스러웠다고 할 수 있겠다.

가능하면 시간 약속은 잘 지켜주는 게 좋다. 뭐 사실 여기에 대해선 나도 워낙 너그러워서 레슨 시간을 미루든 당기든 날짜를 바꾸든 별로 신경 쓰지는 않지만, 약속을 잘 지켜주면 고맙지. 첫 전화 통화할 때 20분 후에 전화 주겠다고 하고는 1시간 20분 후에 전화를 걸어와서 좀 걱정하긴 했지만, 오늘 첫 레슨 때는 약속 시간 15분 전쯤 집 앞에 도착해서, 약속 시간 5분 전 될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면,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뭐 일단 이 정도다. 앞으로 계속 겪어봐야지. 즐겁게 레슨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2009/10/22 04:08 2009/10/22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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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제123기 공군사관후보생으로 선발되어 지난 2009년 9월 14일자로 입영했던 나는, 입소 5일 만에 훈련소에서 쫓겨나 지금도 여전히 이렇게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다. 그 다사다난했던 지난날들을 정리한다. 참고로 훈련소 생활 5일간의 일기는 실제로 훈련소 생활 짬짬이 쓴 것.

2009년 9월 14일 입소


2009년 9월 15일 정밀신검


2009년 9월 16일 체력검정 그리고 불길한 조짐


2009년 9월 17일 성병이 아니냐고?


2009년 9월 18일 그리고 쫓겨나다


2009년 9월 29일 병원 진찰


 

그후



이상이 내가 입소 5일 만에 훈련소에서 쫓겨나 여전히 사회에서 비비적거리며 생활하게 된 경위이다.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는 내 동생은 이 소식을 접하고 “부럽다, 오빠한테는 자꾸 맘껏 쉴 시간이 주어진다.”고 말했다고 한다. 처음에 훈련소에서 쫓겨 날 때는 당황스럽고, 머리를 깎으러 목욕장으로 들어가는 후보생들이 부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사회로 다시 나와 며칠간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지 몰라 주변에 연락도 못 취하고 멍하니 지냈다. 그러나 이제는 완전히 적응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생 말처럼 마음의 짐 없이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

이번 겨울에 중국 여행을 가기 위해 중국어를 배우기 시작했고, 낡은 영어 실력을 다시 연마하기 위해 회화 학원에도 등록했다. 내년에는 아마 오케스트라 연주도 한 번 더 서지 않을까 싶다. 독서할 시간도 많아서 벌써 몇 권의 책을 읽었다. 바이올린 레슨은 아직 쉬고 있지만, 조만간 선생이 구해지면 집에서 레슨을 받을 생각이다. 사진 찍는 것에도 흥미가 생겨서 앞으로는 기회가 될 때마다 사진기를 가지고 돌아다닐 생각이다. 집에 있을 시간이 많으니까 이것저것 요리도 해볼까 한다. 전자저울 같은 것을 사서 제빵에도 도전해 보려고 생각 중이다.

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행히 검사 결과, 나는 몸에 그토록 소홀했음에도 아직 건강하다. 그러니 이 건강을 잘 지키기 위해 운동도 열심히 할 생각이다. 입대가 6개월 늦춰졌고, 그만큼 제대 후 인생 6개월을 손해 봤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어차피 인생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어 앞에서 자르나 뒤에서 자르나 매한가지다. 27세의 6개월은 손해 봤을지 모르지만 그보다 더 젊은 23세의 6개월을 얻었으니 아쉬워 할 것은 없다.

다시 한 번 후회 없이 놀고, 앞으로 블로그에 좋은 글들을 많이 남기겠다. 그렇다, 이 시간은 정말 ‘글을 쓰기 위해’ 주어진 시간인 것 같다. 대학 생활 동안 너무 좋은 책들을 많이 읽었다. 꾸준한 독서를 통해 쌓은 지식들을 차분히 정리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 늘 아쉬웠는데, 이렇게 좋은 기회가 주어졌다.

지적 성장으로 충만하고, 심정적으로 안락하며 즐거운 생활을 보내겠다.

2009/10/11 03:47 2009/10/11 0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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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년 북아프리카 엘 알라메인 전선, 종군 목사가 바이올린으로 연주하는 찬송가를 듣고 있는 영국군 장병들.

<음악은 어디에나 있고,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입대한다. 첫 휴가는 두 달 뒤이고, 임관은 내년 1월 1일.
가져갈 수 있는 책이라곤 종교 서적밖에 안 된다고 그래서, 일본어 성경책 하나 가져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코란도 사둘 걸 그랬다.

그럼, 다음 포스팅은 두 달 뒤에.

2009/09/14 06:11 2009/09/14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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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마지막 바이올린 레슨을 받는 날이었다. 학원가는 길에 잠깐 백화점에 들러서 선생님 드릴 선물을 골랐다. ‘설화수’의 아이크림. 잔주름과 다크서클 없애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이런 것에 관심 기울일 나이이니까, 괜찮은 선물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지하 식품 매장에서 치즈 케이크도 하나 샀다. 학원에는 여러 선생님들이 있으니까, 나눠 드시라는 뜻에서.

3시 10분 정도에 레슨이 시작되었다. 우선 지금 아니면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모차르트 론도 악보를 보여드리고 몇 군데 손가락 번호를 새로 정했고, 까다로운 리듬을 한 번씩 연습했다. 그리고 다시 원래 연습하고 있던 아델라이데 콘체르토로 돌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한 차례 훑었다.

이렇게 끝났다. 일기장을 뒤져보니, 이 학원에서 첫 레슨을 받은 날에 쓴 글이 있다. 첫 레슨을 받은 날은 2007년 10월 4일. 그러니까 이번 선생님에게서 레슨을 받은 게 꼬박 2년이다. 과거 일기에는 ‘선생님’ 대신 ‘강사’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내가 얼마나 타인에 대해 냉정하고 방어적인지를 잘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도 학원을 처음 찾았을 때가 기억이 난다. 일본에서 돌아온 직후, 학원을 찾아볼 여유도 없이 개강을 맞이했다. 연대 오케스트라 동아리에 지원해서 합격하면 단원들에게 물어서 학원이나 레슨 선생님을 소개 받을 생각을 했었는데, 결국 탈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1년 뒤 입단해서 단원들의 사정을 살펴보니, 바이올린 파트 사람들 중 레슨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없어 어차피 혼자 알아 볼 수밖에 없었을 거란 생각도 든다.

아무튼 하는 수 없이 혼자서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모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학교 근처에 있는 이 학원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개강 한 달째를 맞이할 무렵, 불쑥 학원에 찾아가 상담을 받았다. 원장 선생님은 당장 수강 신청서를 들이밀 기세였지만, 난 레슨 선생님을 직접 만나보기 전에는 등록할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생각나는데, 레슨 선생님을 직접 만나보겠다고 학원 복도 의자에 앉아 버트란드 러셀의 ‘Conquest of Happiness’를 읽으며 30분 넘게 기다렸더랬다.

결국 바이올린 선생님과 만나고 어느 학교를 졸업했는지, 현재 음악 활동은 하고 있는지, 교육 방식은 어떤지 등을 나름 꼼꼼하게 질문하고서야 수강 신청서를 작성했더랬다. 사실 우리나라 정서상, 출신 학교 같은 걸 물어보는 것이 실례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지만, 배우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것들을 따져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본다. 또 기본적으로 신뢰가 바탕 되어야 사제 관계도 좋지 않겠는가.

선생님은 레슨 시간을 변경하는 일이 제법 있기는 했지만, 지도 자체는 성실했다. 나도 워낙 성실한 학생이어서 레슨 시간에는 대체로 수업에만 집중 했지만, 간혹 가다가 수업 중에 서로 즐거운 수다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일본에서 그랬던 것처럼, 여기서도 선생님이 참여하는 연주회 무대를 보러 간 일이 있다. 재밌는 건, 선생님이 몸담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첼로 수석이 유포니아 선배라는 것이다. 앞으로 연주회를 보러 가게 되면 인사를 드릴 사람이 있으니 즐거울 것이다.

학원 등록 후, 유포니아에 입단하기 전까지 약 1년 동안은, 평일이면 거의 거르지 않고 학원에 가서 최소 1시간씩은 바이올린 연습을 했다. 내 성실함에는 선생님들도 탄복할 정도였다. 그렇게 키운 실력으로 학원 발표회 무대에도 섰고, 내개 한 번 탈락의 쓰라림을 안겨준 유포니아에도 배짱을 가지고 재도전하여 결국 합격을 할 수 있었다.

학원 원장 선생님은 상당히 무뚝뚝한 사람이었지만, 마지막에는 악수를 하며 ‘건승’을 기원 해 주었다. 임관 후 서울 쪽에 배치가 되면 다시 오라는 말과 함께.

내가 바이올린을 시작한 지 이제 겨우 4년이 조금 넘었다. 그 4년의 시간 중 2년을 함께 했으니, 이는 결코 적지 않은 시간이다.

또 일기장을 뒤져본다. 2007년 8월 2일, 일본에서 마지막 레슨을 받은 날 쓴 글이다. 말미에 이렇게 적혀있다.

<레슨이 끝난 뒤, 사장님 부부에게 감사와 작별의 인사를 했다. 사장님은, 아직 출국까지 시간이 있으니까 한 번 더 들르라고 했다. 생각해보니, 아사이 선생님에게도 직접 작별 인사를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가능하다면 시간을 내서 아사이 선생님이 출강하는 수요일에 한 번 더 들르기로 하고, 나는 학원을 빠져나왔다.

하늘은 아직도 환했다. 처음 레슨을 받기 시작했을 무렵에는, 학원을 나설 때면 이미 어둑어둑했었는데 말이다. 레슨 받으러 가면서도 찬바람 맞아 손 굳게 하지 않으려고 일부러 장갑을 끼고는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바이올린 짊어진 어깨를 타고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그만큼 시간이 흘렸다. 문득 깨닫고 보면 이렇게 놀랄 만큼 환경이 바뀌었는데, 그 변화의 과정은 느리고 자연스러웠다. 나도 내 안에 쌓아 올린 시간만큼 변화했을까. 그만큼 성숙해졌을까. 바이올린 실력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모든 면에서, 나는 삶을 음미하는 자로서의, 그 인간됨의 무게에 대해 질문을 던져보는 것이다.

모르겠다. 역시 스스로를 관찰하는 것은, 주위 환경을 관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다만 즐거웠다는 것 밖에는, 지금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지난 2년간 내가 얼마나 더 성숙해졌는지, 그 시간이 내 인생을 얼마나 더 가치 있게 만들었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다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자연스런 생활의 일부분이 되었고, 음악을 더 즐길 줄 알게 되었다. 삶 속에서 즐거움을 발견하는 데에 조금 더 능숙해진 것 같다.

이제 입대를 하면, 훈련을 받는 4개월 동안은 레슨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바이올린을 시작한 이래 최장의 휴식 기간이다. 더군다나 혼자 연습할 수 있는 시간도 거의 없어, 체감하는 공백 기간은 더욱 길 것이다. 어쩌면 바이올린 시작 이래 최대의 위기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사실 별 걱정도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바이올린을 그만 둔다는 것은 이미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으니까.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처럼, 악기를 다시 집어 들었을 때 무언가 어색한 느낌이 들기는 하겠지만, 그러나 그마저도 자연스럽다. 내가 악기 케이스를 다시 여는 것 자체로…….

2009/09/10 02:53 2009/09/10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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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포니아 총회에 다녀왔다. 총회는 의례적으로 연주회 직후에 열린다. 총회 참석 대상은 연주회 참여자 전원이며, 개회 정족수는 정원의 절반. 그러니까 연주회에 참여한 사람들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만 총회를 열 수가 있다. 사실 동아리 총회가 이런 까다로운 조건들을 철저히 지킬 줄은 몰랐는데, 정확히 지키더라.

나는 개회 시간인 7시보다 30분가량 늦게 회의 장소에 도착했는데, 공교롭게도 내가 도착함으로써 개회 정족수를 채워 바로 총회가 시작되었다.

첫 순서는 유포니아의 예산 집행 및 결산 보고. 오케스트라 동아리의 자금 운용 규모가 얼마인지 사실 궁금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도 상당히 큰 액수. 단체의 돈 관리라는 것이 아무리 작은 액수라 하더라도 여러모로 힘들게 마련이다. 그런데 유포니아의 저 막대한 예산을 설계하고 집행하는 일은 얼마나 수고롭겠는가. 새삼 회계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총회의 메인이벤트는 차기 총무 및 회계의 선출. 유포니아 회칙 상 총무 및 회계는 한 학기 동안의 임기를 마친 뒤 자동적으로 회장 및 부회장으로 승격되기 때문에, 총무 및 회계 선거는 곧 회장 및 부회장 선거다.

총무와 회계는 선거로 뽑고, 유포니아 내의 여러 행정 임원들 및 각 악기 파트의 파트장들은 전 임기의 임원들이 임의 내정하였다. 내정자 대부분이 08학번 학생들로, 유포니아는 바야흐로 08 학번들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다.

총무 및 회계 선거에 대해 약간 더 부언하자면, 총무 후보로는 모두 세 명이 나서서 제법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그 중 한 후보는 세 차례의 고사 끝에 네 번의 추천을 받고서야 겨우 후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재밌는 것은 세 후보 모두 바이올린 파트 소속의 남학생들이었다는 것. 관례적으로 총무직에는 남학생, 회계직에는 여학생이 선출된다.

첫 투표에서는 과반의 득표를 기록한 후보가 없어 재투표까지 실시해야 했고, 결국 한 사람이 5표의 근소한 차이로 당선되었다. 회계 선거는 한 사람이 단독 출마하여 찬반 투표 끝에 당선되었다.

한 조직의 리더가 된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책임을 떠맡는 것이다. 실로 부담스러운 일이지만, 그러나 역량과 여건을 떠나서 용기, 혹은 객기로라도 그것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것은 청년에게 허락된 특권이 아닐까. 사실 나도 1학년 때 당시 몸담고 있던 동아리 회장 선거에 출마 한 적이 있다. 나 스스로는 전혀 생각도 않고 있었지만, 회장님의 부탁을 받아서 어렵게 결정하고 나간 자리였다. 그러나 결과는 복학을 한 대선배에게 당선이 돌아간 것이었고, 회장과 부회장은 성별이 다른 것이 좋다는 암묵적인 룰에 따라 나는 부회장직에서도 자동적으로 배제되었다.

당시를 돌이켜 생각 해 보면, 물론 나에겐 회장직이나 임원직을 떠나서 동아리 활동 자체에 이미 집중할 수 없게 만드는 어떤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던 까닭으로, 그나마 맡고 있던 임원직은 후임에게 인수인계하고, 다른 어떤 직책이나 역할에 대한 제의도 고사한 채 동아리를 떠났지만, 한편으로는 조직의 리더로서 조직의 미래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그려보았던 복안들이 쓸모없게 된 것에 대해 조금은 허탈해 한 면도 없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사람의 욕심을 존중한다. 욕심은 도전과 성취의 밑거름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은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덤비는’ 사람들의 유별난 의욕에 대해서도, 나는 긍정적인 시선을 보낸다. 사실 ‘욕심’은 누구에게나 내재되어 있는 자연스런 본능이 아닌가. 욕심을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여겼던 조선의 가치가 여전히 지배적인 한국 사회에서, 이런 욕심을 표출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용기 있는 행위로 칭찬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시절부터 반장 선거나 전교 회장 선거, 대학에 들어와서는 동아리 회장 선거까지 거의 기회가 있을 때마다 빠짐없이 출마했으며, 그 중 거의 대부분의 선거에서 낙선한 경험이 있는 나는 이제 내성이 생겨서 선가라는 것이 한 번 욕심을 부려볼 만한 것이고 떨어지면 그만이라는 생각도 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는 여전히 출마라는 것이 일대의 고민이고, 낙선이 상당한 상처가 되기도 할 것이다.

군대 문제로 발목 잡히지만 않았더라면, 낙선을 각오 하고서라도 한 번 출마를 해봄직 했겠지만, 나는 이제 창창한 후배들이 동아리의 벅찬 미래를 설계하기 시작하는 장면을 한 구석에서 카메라에 담는 것에 만족했다. 그리고 낙선자와 함께 새벽까지 술잔을 기울이며, 그 덧없어 보이는 도전의 가치에 대한 역시 덧없는 칭송을, 잔을 비울 때마다 되풀이 한 것이다.

새벽 두 시까지 술을 마시다,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고속도로를 타고 왔는데, 미터기 요금에 톨비가 합산되는 건지 어떤 건지도 나는 모르고, 또 새벽에 장거리를 타고 왔으니 3만원 가까이 나온 요금에 만원을 더 얹어 지불했다. 이거야 뭐 신촌에서 모텔 방 잡아 자는 게 나을 번도 했군.

내일, 정확히는 오늘 오후, 바이올린 마지막 레슨이다.

2009/09/08 05:26 2009/09/08 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