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아침 8시 50분 성남 비행장 정문으로 집합. 집에서 성남 비행장까지는 차로 딱 10분 거리다. 면회장에는 면접 보러 온 예비 장교들이 득실득실. 대충 신원 파악하고 주의 사항을 들은 후, 버스를 타고 ‘호국관’이라는 곳으로 이동. 이날 면접에 체력 검사까지 다 하는 줄 알았는데, 혈압 측정 및 색약 검사, 그리고 면접만 한단다. 그런데도 예상 종료 시간이 오후 5시.

이날 면접 본 사람이 100여명이었던 것 같은데, 빨리빨리 진행하면 금방 끝날 것을, 혈압 측정과 색약 테스트 하나 하니까 이미 점심시간. 부대 내 식당 밥은 정말 끔찍하더라. 그런 것 먹으면서 3년을 버틸 순 없어. 그런데 실제 부대 내 사람들이 먹는 메뉴는 좀 다른 것 같기도 하고……. 아, 혈압은 115/75로 지극히 정상. 색약 같은 게 없어 미술 작품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는 것에는 고마움을 느낀다. 오늘 신체검사에서 색약으로만 두 명인가가 탈락했다.

오후에는 면접. 3인 1조로, 총 3개 면접실에서 각 1개조씩 면접을 진행했다. 면접실에는 역시 면접관이 세 명. 나는 2조 거의 마지막 순서였다. 아마 3~4시간 걸렸던 것 같고. 하루 온종일 아무 할 일도 없이 가만히 앉아있는다는 건 정말 못 할 짓이다. 오전에는 그냥 가져온 책을 읽으며 무료한 시간을 보냈다. 점심 시간 때, 지난 번 어학 장교 시험 보러 청주 내려갔다가 인사하게 된 이용준씨와 다시 만났는데, 이 분이 입담이 상당하신 분이라 오후 내내 담소나 나누며(노가리 까며?) 지루하지 않게 보냈다.

신검 및 면접 결과를 당일 바로 알려준다더니 일정 종료 후 하는 말, ‘오늘 면접은 전원 합격입니다.’

뭐지. 결시자를 가려내기 위한 시험이었나.

참고로 면접 질문은…….

내 앞의 두 사람에게는, ‘고등학교 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 자신의 장점을 포함하여 이야기 해 보라’와 ‘자신의 인생 중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고 그것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자신의 장점을 포함하여 이야기 해 보라’ 등 개인사에 초점을 맞춘 질문을 하다가 나한테는 갑자기!

‘국가 발전을 위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이며, 자네가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고 보는 점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그밖에 ‘공군 장교 지원에 대한 주변의 반응, 들은 이야기는?’ ‘먼저 면접 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미리 준비했던 말이나 생각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간결하게 말해보라’ 등이었다.

일단 면접이니까 성실히는 임했지만…….

아무튼 공군 사관후보생 123기 면접까지 합격. 신원조회에서 문제가 될 일은 없어 보이고, 9월 14일 입영은 확정적이다. 두 달도 안 남았군.

면접 다 마치고 나오니 비가 퍼붓고 있었다. 꾸물꾸물한 하늘 보고 우산을 챙겨오긴 했지만, 비가 이정도로 퍼부으면 정답이라고 할 수도 없다. 아빠가 데리러 와 줘서, 원종필까지 챙겨 출발. 원종필은 인덕원쯤에서 떨어뜨려주고, 잠시 집으로 돌아가 배달원이 비를 피하도록 일부러 쓰레기통에 넣어준 바비큐용 숯을 꺼내 트렁크에 실코서 저녁 먹으러 아웃백으로.

명목상 아직도 다이어트 중이긴 하다. 그러나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 번은 아웃백을 가서 오지 치즈 프라이즈와 퀸즐랜드 파스타를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결국 시켜 먹은 것은 썸머 특별 메뉴인 스파이시 스테이크 어쩌구와 파스타. 아빠랑 단둘이 커플 메뉴를 시켜 먹었다. 부쉬맨 브래드에 발라 먹는 버터가 또 새로 나왔다. 블루베리가 들어간 것 같던데, 맛은 훌륭했다.

사실 전에 아웃백 갔을 때 어리바리한 알바생이 계산 때 옆 테이블 오더랑 헷갈려서 나한테 5천원을 더 청구했던 일이 있었다. 나중에 사과 전화 오고 1만원짜리 식사권 보내주고 그랬는데, 이 식사권은 도무지 쓸 일이 없다. 식사권은 제휴카드 할인이랑 동시 사용이 안 되는데, 보통 제휴 카드로 20% 할인 받는 게 식사권으로 1만원 할인 받는 것보다 할인 폭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오늘도 그저 카드로 긁었을 뿐이고…….

나중에 메인 메뉴 두 개 이상 시킬 때, 계산을 separate로 해서 사용해야겠다. 음, 고추장 소스를 사용한 스파이시 스테이크는 맛이 좋았는데, 스테이크도 맵고 파스타도 맵고 같이 나온 그라탕도 매웠다. 이건 좀…….

다른 건 몰라도 오지 치즈 프라이즈를 못 먹은 건 아쉬워. 아웃백에 간 의미가……. 이집트 여행 중일 때 감자튀김은 정말 식사 때마다 나와서 어떤 때는 입도 대지 않고 물릴 정도였는데, 어째서 오지 치즈 프라이즈만큼은 이렇게 문득문득 시시때때로 먹고 싶어지는 거지.

토요일에는 오케스트라 파트 연습 및 전체 연습, 그리고 첫 전체 회식까지. 실력에 대한 부담으로 마음 고생하는 것은 이제 싫다. 오케스트라에 내 모든 시간을 쏟아 붓는 것도 지치고, 사양하고 싶다. 이런 나는 자진해서 연주회를 포기해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음악은 내 어깨를 붙잡고 귓가에 속삭인다, ‘어떻게 즐겨야 하는지 너는 이미 알고 있지 않느냐’고. 괴롭게, 즐겁게, 신나게, 힘들게.

취미라고 다 쉬운 것 아니다. 아마추어라고 다 속편한 것도 아니다. 인생을 즐기고자 하는 진지한 자세에, 프로와 아마추어의 구분은 없다.

젠장, 이렇게까지 말해버린 이상 또 연습에 매진할 수밖에 없잖아. 내일 하루만 적당히 눈치껏 땜빵 해야지.

2009/07/18 03:49 2009/07/18 03:49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일어나보니 아침 10시... 터키 시간으로...

오늘부터 학교 나가서 바이올린 연습도 하려던 야심찬 계획은 간데없어지고, 창밖으로 퍼부어 내리는 빗줄기만 감상하고 있었다. DVD 플레이어가 망가져서, 영화 감상방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하긴, 여름에는 에어컨 없는 영화방이 너무 덥기도 하다.

수요일부터 다시 오케스트라 연습에 합류하는데, 솔직히 이제는 연주회고 뭐고 입대 할 때까지 차분하고 조용한 나만의 시간을 갖고 싶을 뿐이다.

대체 언제 적인지 기억도 안 나는 오래 전부터 내 방에 나뒹굴고 있던 하비스트라는 과자 봉지를 뜯어 생각 없이 먹었는데, 유통기한을 확인해보니 8월 19일까지. 근데 맨 앞의 숫자가 08이다. 음…….

2009/07/15 02:52 2009/07/15 02:52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1.

이스탄불에서 맞이하는 첫 번째 아침. 휴대전화를 체크하니, 간밤에서 한국에서 두 통의 문자가 와 있었다. 아빠와 엄마로부터. 내용은 어학 장교로 선발된 것을 축하한다는 것. 얼마 후에는 면접 일시가 문자로 통보되었다.

결국 내가 뽑혔다. 왜 나였을까? 글쎄, 어쩌면 한국어에 출중해서일지도.

2.

여행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했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부터 헤아려도 꼬박 5년을 끌며 공사만 하던 도로가, 내가 여행 가 있던 3주 사이에 개통됐다! 이로써 분당구민인 내가 차를 몰고 분당의 생활권으로 진출하기는 훨씬 편해졌다. 하지만 코앞의 헬스장이나 마켓에 다녀오는 것은 훨씬 불편해졌다. 이걸 반가워해야 하나.

3.

여행 전에 했어야 할 일이지만, 뒤늦게 안경을 새로 맞추러 갔다. 안경을 맞추러 가면 으레 듣는 소리. 시력을 측정하기 전, “시력이 더 나빠질 나이는 아닙니다.” 시력측정 후 “눈이 많이 나빠지셨네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내 양안 시력은 2.0이었다. 당시만 해도 다른 무엇보다 탁월한 신체적 능력(체력, 근력, 지구력, 시력, 후각, 청각 등)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었던 때라, 나는 유목민의 시력을 동경했고, 내 눈이 좋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칠판의 글씨가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고, 6학년 때 처음으로 안경을 썼다. 오늘 측정해 보니, 시력이 -5.0 정도가 나온다. 오른쪽 눈에는 경미한 난시까지 생겼다고 한다.

4.

바이올린이 물먹은 소리를 낸다. 여름 장마철에 제습기 하나 없이 케이스에 넣어둔 채로 3주를 방치했더니 이렇게 됐다. 더 큰 문제는 이 무뎌진 손의 감각이다. 왼손보다 오른손이 더 걱정이다.

5.

저녁거리로, 엄마가 금방 뜬 회 한 접시를 사다주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양이 녹아드는 지중해를 바라보며 먹은 연어 요리는 일품이었다. 흑해의 관문 사리예르에서 먹은 보스포르스산 청어와 쏨뱅이 구이의 맛은 잊지 못 할 것이다. 금각만을 따라 걸으며 한 입씩 베어 문 고등어 케밥조차도 황홀했다. 그러나 그들이 회를 먹지 않는 것은 아무튼 유감이다.

6.

해외 나들이가 잦은 편인 우리 가족은, 더 이성 귀국할 때 선물을 한 보따리씩 사가지고 오는 일이 없다. 대체로 우리 가족을 위한 여행 선물은 면세점에서 구입한 초콜릿 정도로 정해져 있다. 내 동생은 술이 든 초콜릿을 잘 사오지만, 나와 엄마는 무조건 고디바 초콜릿 한 상자로 정해져 있다. 이번에는 고디바의 Truffe를 사왔다. Truffe는 송로 버섯이라는 뜻이다. 세상의 모든 버섯 중에서 가장 비싼 버섯이라는 송로 버섯은 땅 속에서 자라기 때문에 사람이 육안으로 살펴가며 딸 수가 없다. 중학생 때 읽은 ‘장미의 이름’에는 돼지를 이용해 이 송로 버섯을 캐는 장면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그 이후로 난 줄곧 송로 버섯을 돼지가 캐는 줄로만 믿고 있었다. 몇 해 전 무슨 여행 정보 프로그램에서 보니, 돼지가 아니라 개가 사용되고 있었다. 별 차이는 없지만, 돼지가 좋아하는 송로 버섯 쪽이 더 재밌는데 말이다. 어쩌면 돼지는 송로 버섯을 찾자마자 먹어버리는 일이 너무 흔해서 개를 대신 훈련시키기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왜 초콜릿에 ‘송로 버섯’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지? 생긴 게 비슷한 것 같기도 하다.

2009/07/14 03:43 2009/07/14 03:43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사용자 삽입 이미지

이집트 신화에는 ‘스핑크스’라는 상상속의 동물이 있다. 사람의 얼굴과 사자의 몸을 한 스핑크스는 테베*의 바위산 기슭에 웅크리고 앉아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아침에는 네 다리로, 낮에는 두 다리로, 밤에는 세 다리로 걷는 짐승이 무엇이냐?”는 수수께끼를 던지고 답을 맞히지 못 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너무나도 자주 사진으로 보고 이야기로 들어서 실제로 본 적이 없으면서도 마치 본 적이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드는 이 스핑크스를, 나는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바라보기 위해, 이제 이집트로 떠난다.

*테베

2009/06/22 02:19 2009/06/22 02:19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나는 자존심이 세고 신중하여 지금껏 별다른 실패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왔다. 그러나 어쩌면 나는 태만했던 것이 아닐까? 지난 수요일, 청주에서 어학 장교 선발 시험을 치르고 돌아오는 길에, 가만히 생각했다.

어학 장교 모집에는 대충 헤아려 60명 정도가 지원한 듯했지만, 그 중 영어과에 지원한 사람이 대부분이고, 일본어과에 지원한 사람은 겨우 3명이었다. 영어 외의 제2외국어과는 매기 1명 선발이 관례라니까, 아마 이번에도 셋 중 한 사람이 선발 될 것이다.

한 사람은 일본에서 대학, 대학원을 모두 마쳤고, 다른 한 사람은 현재 현역 교토 대학원생이다. 배경으로만 본다면, 고교 시절 독학으로 일본어를 깨치고 대학 학부 시절 겨우 1년 교환 학생 다녀온 나에게는 승산이 없어 보인다. 어쩌면 그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뽑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어째서 이 사실을, 그저 당연하게만 받아들여야 할까? 겨우 세 사람 중에서 한 사람 선발되는데, 왜 나는 그게 내가 될 수 없다고 체념하여야 할까?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생각을 뒤집고, 상대적으로 열세에 놓인 듯 보이는 내가 경쟁에서 이기는 상황을 당당하게 보여줄 수 있다는 그런 자신감이 왜 지금 내게는 결여되어 있는가?

일본어에 능숙하다는 것은 나의 오랜 자부심이었다. 나는 어떤 교육 기관에도 거하지 않고 오직 독학으로 일본어를 익혔으며, 그렇게 익힌 실력으로 능력시험 1급에 합격했고, 첫 일본 여행도 무사히 마쳤다. 일본에서 살다 온 일이 없으면서도 일본인들과 자연스럽게 대화 나눌 수 있고, 어지간한 현대 작가들의 책은 원어로 무리 없이 읽을 수 있었다.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은 나의 정확한 일본어 구사와 깨끗한 발음을 칭찬 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거기에서 조금도 더 나아가지 않았다. 어째서 나는 적당한 곳에서 멈추어버리고, ‘그 이상의 것’을 욕심내지 않았을까? 언제부터인가 나는 터무니없이 무욕적인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사실 교환학생을 다녀오기 전과 후를 비교해, 내 일본어 실력은 별로 나아진 점이 없다. 언젠가 고토와 전화 통화를 했을 때는, 오히려 요즘 일본어 공부에 너무 소홀한 것 아니냐는 핀잔까지 들었다.

왜 이런 정체를 가슴 아픈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던 걸까? 탁월함에 대한 동경, 스스로를 연마하는 즐거움 같은 것들은 내 안에서 사라져 버린 것일까? 평범한 사람들 속에 섞여, 모나지 않은 돌로 살아가는 것에 익숙해져 가는 내 자신이 한심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독자적인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끝없이 높은 자부심을 안고서 살아갈 것이다. 모든 것에 대해서 적당주의로 일관하는, 타성에 젖은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것이다.

2009/06/21 21:22 2009/06/21 21:22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시험에 대비하여 도서관에서 밤샘하는 것은 이미 이벤트화한 지 오래. 학과 공부에 나름 최선을 다했던 것은 1학년 때가 마지막이었던 듯하다. 성적도 이 사실을 분명히 뒷받침해 주고 있고. 그때까지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몸에 배인 모범생 근성을 떨쳐버리지 못 해서……. 아마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지 않았더라면 아직까지도 그 근성 못 버리고 있었겠지. 뭐 그 탈피가 바람직한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고서 말이다(글쎄 나는 썩 만족하는데!).

이것으로 대학 교육의 모든 과정이 끝났는데, 일말의 시원섭섭함조차 없다. 이렇게까지 무감각할 수 있나 싶다. 하기야 이집트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연주회 준비로 또 매일 같이 학교에 나가야 하니, 그 때문에 학교를 떠난다는 게 아직 실감이 안 나는 것일 수도 있고. 하지만 ‘떠난다’니? 내가 언제는 학교에 소속되어 있었던가 하는 생각도 든다.

체중 감량은 순조롭다. 몸무게가 정점을 찍었던 지난 3월 초를 기점으로, 약 5kg 정도 감량을 했다. 3월부터는 그래도 비교적 꾸준히 운동을 해왔고, 지난 2주 정도는 엄격한 식사 조절을 했다. 앞으로 한 4~5kg 정도만 더 감량할 생각이다. 아무래도 여행을 다니면서는 감량이 어렵겠지만, 많이 돌아다니고 음식은 가리고 절제해서 먹으면서 잘 관리하다가, 돌아와서 체중 조절을 계속 할 생각이다.

2009/06/20 04:21 2009/06/20 04:21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내일 대학 시절 마지막 시험이 있다. 지금 도서관으로 마지막 밤샘을 하러 출발한다. 시험 기간이면 도서관에서 밤새는 일이 흔했다. 이따금 새벽에 밖으로 나오면 유난히 붉게 보이는 신촌의 밤하늘을 의아스럽게 쳐다보곤 했다. 이제 그것도 마지막이다.

2009/06/18 13:44 2009/06/18 13:44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문득 책상 앞 벽면에 떡하니 붙여놓은 세계 지도를 올려다 볼 때면 생각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수도는 프리토리아…….’

가 아니고, ‘세상은 참 넓고, 갈 곳도 많다’라고. 일부러 한 벽면에 이렇게 큰 세계 지도를 붙여놓은 것은, 나라 이름과 수도나 외우자는 게 아니라, 세상이 이렇게 넓다는 사실을 언제나 잊지 않기 위해서이다.

코팅된 지도 표면에 내가 몇 가지 표시를 해 놓았는데, 하나는 다키아 속주까지 포함하는 고대 로마 제국의 최대 영토 경계선. 그리고 나머지는 내가 지금까지 가 본 도시들이다. 아무래도 세계지도이다 보니 규모가 큰 도시들만 표시되어 있지만, 아무튼 형광색으로 체크된 방문 도시는 다음과 같다.

- 아메리카 대륙 -

미국: 보스턴, 뉴욕, 워싱턴 D.C.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캐나다: 토론토, 몬트리올, 퀘벡

-유럽-

이탈리아: 밀라노, 로마, 바티칸, 나폴리

그리스: 아테네

-아시아-

일본: 삿포로, 하코다테, 아키타, 도쿄, 교토, 고베, 오사카, 후쿠오카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 캔버라, 울룰루(에어즈록)

남미는 가 본 적도 없고, 아시아에서는 겨우 극동 지역에 머무르긴 했지만, 그래도 ‘명목상’ 지구상의 모든 대륙 중 아프리카와 남극 대륙을 제외하곤 모두 가 보았다. 이번에 이집트를 가니까, 아프리카 대륙에도 일단 발도장을 찍을 예정이고……. 살다보면 남극 대륙에 가볼 기회도 있지 않겠는가!

전 우주적 차원에서 보자면 그저 한 점 티끌에도 못 미치는 존재인 지구이지만, 한 인간의 관점에서 지구가 이만큼 크고, 나라가 이만큼 많은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나는 애써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갖고 살고자 하지 않는다. 난 늘 내 정체성을 보다 넓은 테두리에서 찾고자 한다. 레오나르도의 그림과 베토벤의 음악을 어째서 내 조상의 미술과 음악으로 여기면 안 된단 말인가?

난 적어도 55세까지는 어느 대륙, 어느 나라에서 살아볼지 대충 정해 놨다. 죽을 장소도 미리 ‘베네치아’로 골라 놨다. 이건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읽기 전에, 이미 베네치아의 어느 이름 없는 작은 다리 위에서 운하의 초록빛 물결을 바라보며 굳힌 결심이다.

물론 인생이 계획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만 세상은 넓다는 것만은 절대로 잊지 않고자 한다.

2009/06/16 03:22 2009/06/16 03:22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워커힐 호텔에 있는 Pizza Hill이라는 곳에서 점심을 먹고 왔다. 언덕을 올라가면서 느낀 건데, 레스토랑 이름이 참 직관적이다.

예약하고 갔는데, 예약하지 않았더라면 들어가지도 못 하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손님들이 많았다. 과연 음식은 맛이 있더라. 시저 샐러드의 드레싱이 좋았다. 요즘 샐러드를 자주 만들어 먹고 있어서, 드레싱에 관심이 좀 있다. 지금은 그저 올리브 오일이랑 발사믹 식초를 적당히 뿌려서 먹고 있지만……. 조만간 카르파초 같은 요리에도 도전 해 봐야겠다.

피자는 그냥 평범하게 콤비네이션이랑 마르게리타를 시켰다. 나도 한때는 어떤 음식을 가장 좋아하냐는 질문에 ‘피자’라고 답하던 어린애였는데. 어렸을 적에는 매주 주말마다 도미노 피자에서 치즈 피자 한 판을 시켜 먹었다. 도미노 피자에서 프로모션 차원으로 과천 시내 아파트에 ‘무기한 10% 할인 쿠폰’을 돌린 적이 있었는데, 내가 아파트들을 순회하며 우편함을 털어 100장 정도를 수거해 온 기억이 난다. 그런데 결국 우리 집에서 그 쿠폰으로 그만큼 피자를 시켜먹었으니까, 프로모션 차원에선 성공 아니었을까.

유독 우리 집에서 다른 피자는 일체 주문을 안 하고 ‘치즈 피자’만 주문했던 것은, 내가 매우 심한 편식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친구 생일잔치 같은 데에 가서 음식으로 피자가 나오면 가장 곤란했다. 토핑을 벗기고 먹는다든가…….

지금은 편식이 그 정도로 심하진 않지만, 남들 눈에는 그저 밋밋한 피자로 보일지라도, 나는 여전히 치즈 피자를 좋아한다. 피자는 가장 정직하게 빵과 치즈와 토마토소스로 맛이 결정 나는 거다.

이탈리아 여행 때는 대부분의 끼니를 피자와 스파게티로 해결했다. 나폴리에서는 세계 최초로 문을 열었다는 피자 전문점에도 가보았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서 살 때에도 매일 피자 한 두 조각을 점심으로 먹었던 기억이 있다. 대체 학생들의 건강을 생각하는 거야 마는 거야! 미국 전철역 같은 데에서는 무식하게 크고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끔찍한 피자를 조각 단위로 파는데, 전철역의 부산함과 얽혀서 아주 안 좋은 기억으로 남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속이 메스꺼울 지경이다.

일본에서 살 때엔 피자랑 인연이 별로 없었다. 기숙사 근처에 시카고 피자집이 있었는데, 배달시키지 않고 직접 찾아가면 20%인가를 할인 해 주었다. 뭔가 특별한 기분이 드는 날, 피자 한 판 사와 먹거나 한 기억은 있다. 그러고 보니 오사카 시내의 한 백화점에서 개최한 이탈리안 페어라는 데에 가서 빵 같이 생긴 특이한 피자를 먹어 본 적은 있다. 그냥 크러스트 같이 생긴 빵 안에 짭짤한 치즈가 발려 있었다. 맛은 특별할 게 없었던 것 같다. 사실 이때는 살라미에 더 정신이 팔려 있어서…….

어학연수 차 호주에 갔을 때, 딱 한 번 피자를 먹어봤다. 수도 캔버라의 나름 유명한 집이었던 것 같은데, 페퍼로니와 굵은 올리브가 올라간 매콤한 맛의 피자였다.

피자 얘기로 글을 쓰다 보니 문득 떠올라 적어봤다. 겨우 피자 한 판 먹은 것이 이렇게 기억되다니, 신기한 일이다. 이번 이집트에 가거든, 거기서도 피자는 한 번쯤 먹어봐야겠다.

2009/06/15 04:16 2009/06/15 04:16
Posted
Filed under 일기장

장교 시험에 대해 한 마디 써두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서. 지난 토요일, 시험을 무사히 치르고 왔다. 신대방 삼거리 역 근처에 있는 ‘강현 중학교’라는 곳에서 봤는데, 학교가 꽤 높은 언덕 위에 있었다. 매일 아침, 지각의 분초를 다투며 달리는 학생들에게 원성을 좀 살 듯하다.

입실은 1시까지 완료하라더니, 정작 시험은 2시 30분부터 시작했다. 고사실 찾아 가던 도중, 제1 고사실에 앉아있는 원종필을 발견. 이 녀석, 약사 자격증이 있어 10점의 가점을 받는다.

첫 시험 국사. 쉬웠다. 너무 쉬웠어. 근대 이후로는 일절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한제국 이후 범위에서 출제된 문제 몇 개를 못 맞히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난이도가 너무 쉬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설렁설렁 전 범위를 다 훑는 거였는데.

언어 시험도 쉬웠다. 다만 문제 자체가 좀 바보스러운 것들이 있었다.

지각속도측정은 이미 반쯤 포기한 상태에서 시험을 봤다. 이 시험은 처음 접하는 학생들을 위해 예시 문제가 제시되고, 풀어볼 시간을 1분 준다. 방송으로 ‘시작’이라는 구호가 떨어지자마자 몇몇 응시자들이 착각하고 본 문제 풀이에 들어가 버리는 사태가 발생……. 이런 거 이렇게 떠벌여도 되는 건지 몰라.

아무튼 시간이 너무 부족한 과목. 나는 답이 O, X로 갈리는 문제는 모조리 찍고, 사지선다형 문제만 풀었다. 3분 동안 30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한 7~8문제 푸니까 1분 남았던 것 같다.

자료해석능력 시험은 각종 통계 자료를 제시해 주고 그것에 근거해 문제를 내는데, 문제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다만 퍼센트 계산 같은 걸해야 하는데 제시된 숫자가 10만 자리까지 가는 것은 좀 너무하지 않나.

공간인지능력이었던가 뭐 지도 읽기 시험이 나왔다. 내 위치 찾기와 건물 위치 찾기는 쉬웠는데, 틀린 지도 고르기가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그래서 틀린 지도 찾는 문제는 모조리 찍었다.

상황판단능력 검사는 뭐 정답이 없다니까 마음껏 찍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시험은 아주 쉽거나 시간이 부족해서 건들지도 못 하거나 하는 두 부류. 이래서 변별력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보통 합격하려면 두, 세 달은 공부해야 한다는 얘기가 있는데, 난 겨우 일주일밖에 공부를 안 했다. 과연 지각속도측정이나 지도 읽기 같은 건 훈련하면 숙달이 되겠지만, 그럴 필요까지 있나.

아무튼 시험은 끝나고, 결과를 기다릴 뿐.

2009/06/15 03:38 2009/06/15 03: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