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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한 살이라도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 훌륭한 인생을 살지 않은 사람이 없다. 자기보다 열 살 어린 사람 앞에서 현인(賢人)이 아닌 사람도 없다. 아마도 이 세상에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는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같다. 내가 중학생 때 읊조릴 수 있었던 주문을, 사람들은 어른이 되어서도 외우고 있다. 나는 이미 믿음을 잃었기에 사람들의 지리멸렬한 훈계에 대해 귀를 닫고 나의 황폐한 삶을 끌어안은 채 은거하기로 했다.

대낮에 태양으로부터 도망칠 방법은 없지만, 태양을 등지는 것은 간단하지. 결국 마음속 동굴이 우주에서 가장 후미진 곳이다. 한 줄기 빛조차 들지 않는 그 동굴 속에서 차갑고 쓸쓸한 내면을 관조하는 칩거의 생활에는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도 무의미하지만, 그래도 나는 세상의 관습에 따라 동굴 벽에 하루하루를 새겼다. 혹시 나의 달력에는 오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 동굴 속 생활은 어쩌면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길었을 수도 있고, 혹은 아주 짧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헤아린 시간에 오류가 있다 하여도 그걸 바로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어차피 내가 느낀 시간이, 내가 살아온 시간이다.

한 번 자고 일어나면 하루가 지났다고 생각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두 번을 잤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이틀에 한 번 잤을 수도 있다. 일주일이나 한 달 같은 시간의 단위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이 동굴 속에도 1년이란 시간의 주기는 존재했다. 그것은 희미한 빛이다. 어떤 우주의 조화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꿈쩍도 않고 있어도, 어느 순간엔가 동굴 입구에서부터 희미한 빛줄기가 들어오는 일이 있다. 태양의 잔광인지 아니면 또 다른 별의 흔적인지, 어쩌면 그것은 반딧불 같은 작은 불빛이 스쳐지나가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우연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필연에 의한 것이든 그 조광(照光)은 내 마음 속 동굴로 뚫고 들어오는, 외부로부터의 유일한 침범이었다. 어떤 때는 1년이 700일 만에 돌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날수를 제대로 헤아렸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겠는가?

다섯 번의 조우, 나의 셈법에 따라 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동굴 속 인간은 새로운 신화를 창작했다. 그것은 나의 삶을 들쳐볼 수 있는 눈을 가진 그대. 나는 당신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세상과 달라지기로 했다. 그것이 나를 특별한, ‘읽을 가치가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줄 테니까. 앞으로 몇 년 후가 될지 알 수 없지만, 내가 이 동굴을 비우게 될 때에, 벽에 빼곡히 적힌 글들은 너에게 남겨주겠다. 그것은 낭비되고 잘못 사용된, 그러나 겸허하고 진실 된 인생의 기록이 될 것이다.

깊고 어두우며 적막한 동굴에, 빛을 들고 찾아올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너를, 나는 상상했다.

2011/05/30 22:25 2011/05/30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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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나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 인생은 정말 예상할 수 없는 일들로 가득하구나. 항상 내가 욕심내는 것은 나로부터 멀어져 간다. 내가 이 세상에서 진심으로 바란 것은 몇 가지 없었는데 말이다.

마지막 시도를 해 본다.

2011/05/17 22:31 2011/05/17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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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잔인해 보일 수도 있겠지. 하지만 세상의 잔인함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라고 생각해 줘. 사과는 기대하지 마. 어차피 진심으로 할 수 없는 말이니까. 날 원망해도 좋아. 너는 죽거든 천국에 한 자리 얻는 것으로 보상 받기 바랄게. 천국을 믿지 않는 나에게는 현세뿐이니까, 현세의 기회는 내가 가져가겠어. 강자가 약자에게 승리하도록 되어있는 것이, 네가 믿는 신이 만든 이 세상이고, 내가 누구에게도 빚지지 않고 홀로 살아가는 이 세상이야. 차라리 네가 나약하게 울부짖는 짐승이기보다는 기도(祈禱)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그랬다면 너를 이렇게까지 경멸하지는 않았을 텐데.

2011/05/14 01:48 2011/05/14 0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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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슨 받았다. 요즘 레슨은 스케일 좀 하다가 곡 연습하는 단순한 패턴을 답습하고 있다. 나는 음악적으로 어느 정도 수준에까지 이를 수 있을까. 시간이 나면 연습하고 기회가 되면 연주하는 것만으로도 즐겁기는 하지만, 나는 그 이상을 바라고 있다. 스물다섯 인생에 이것 한 가지는 확실히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진정 평생의 취미라면 한 번 대학 입시 따위보다도 더 열심히 붙잡고 파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제대하면 한 1년 정도는 다른 일 하지 말고 입시생 수준으로 바이올린 레슨을 받아야겠다. 죽기 전에 수준 있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악장 정도는 해봐야지.

다이어트 시작했다. 훈련소 생활하며 감량된 체중을 비교적 잘 유지 해 왔는데, 최근 한두 달 사이에 몸무게가 많이 늘었다. 요즘 불안정한 생활과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원인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아침은 시리얼로, 점심은 밥 두 숟가락으로, 그리고 저녁은 닭 가슴살로 해결하고 있다. 먹는 게 세상 사는 즐거움의 반이라 믿는 내게는 가혹한 식단이지만, 관리할 수 있을 때 관리해야지.

서른일곱 살이 되면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중고 요트를 한 대 사서 지브롤터 해협으로 갈 거다. 1년에서 3년 정도 기간을 두고서 요트를 타고 해안선을 따라 지중해를 일주하겠다. 낮에는 항해를 하고, 저녁이면 항구에 정박해서 태양이 녹아드는 지중해를 바라보면서, 마치 그 바닷물을 그대로 떠 담은 것 같은 포도주를 마셔야지. 유럽의 모든 유명한 음악 축제를 보고 발길 닿는 모든 도시의 유적들을 꼼꼼히 살펴야겠다. 폐허가 되어버린 유적의 쓰러진 기둥에 걸터앉아 차가운 표면 안 깊숙이 깃든 3,000년 역사의 숨결을 호흡해야지. 시간은 곧 생명. 내가 살면서 뭘 할지, 뭘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전에 사람들이 뭘 이뤄왔는지부터 확인해야겠다.

몸은 이곳에 남아있지만, 마음은 이미 떠났다. 생활이 안정될 리가 없지. 책을 읽는 게 그래도 지금 가장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2011/05/12 23:50 2011/05/12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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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병(月曜病)은 더 이상 정신적인 문제만이 아니라, 신병(身病)화 하고 있다. 월요일만 되면 두통이 인다. 몸살 난 것처럼 몸은 축축 처지고. 물론 이런 증상은 거의 전적으로 수면부족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일요일 밤에 푹 자지 못 하는 것도 월요병의 증상이라면 증상이겠지.

충주 시민 오합지졸...이 아니라 오케스트라의 창단 연주회를 했다. 나는 회비도 안 내는 객원(客員)이지만, 팸플릿에는 엄연히 연주자로서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과연 이 단체가 시작은 미미해도 끝은 창대할지, 아니면 시작이 있는 곳에서 끝도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지만, 창단 연주를 함께 한 만큼, 앞으로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하는 바이다. 이번에는 바흐의 관현악 모음곡 3번 중 2악장(흔히 G선상의 아리아라 불리는)과, 넬라 판타지아, 오버 더 레인보우 같은 곡들을 연주했는데, 훗날 하이든의 초기 교향곡이라도 연주할 수 있게 성장하면 그때 다시 참여를 고려 해 보겠다. 내가 제대하기 전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는데…….

내일은 근무. 수요일 오프를 받아 토요일까지 쉰다. 일요일은 다시 근무. 원래 어린이날 근무에 걸렸는데, 일요일 근무 + 금요일 근무를 가져오는 조건에 팔아버렸다. 객관적으로 손해 보는 장사라고 생각하지만, 쉴 때 쉬고 싶었다. 덕분에 다음 주부터 5월이 끝날 때까지는 집에 갈 희망이 거의 사라져버렸다. 그래도 악착 같이 올라갈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말해서 충주는, 그 공기를 호흡하는 것도 지겨운 곳이거든.

내가 내 능력을 알아보는 이에게 등용이 되어서 중요한 자리에 보직을 받고 능력을 펼칠 기회를 얻게 된다면 목숨을 바쳐서 일하겠지만, 재야에 묻혀서 농사나 짓는다면, 논밭 가는 데에 목숨을 걸 필요가 뭐가 있겠나. 그저 내 입에 풀칠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일하면 됐지. 사람이 어떤 일을 하든 한 결 같이 최선을 다하고 최고의 능력을 발휘한다면 제갈량은 유비를 만나지 않았어도 농업 혁명을 일으켜서 역사에 이름을 남겼을 거다. 괭이와 삽을 쥐어주고 밭이나 갈게 시키면서 삼고초려로 얻은 승상(丞相)처럼 마음과 능력을 다 쏟아 부어 일해주기를 바라냐?

2011/05/02 23:32 2011/05/02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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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일을 이루는 것은 하늘이라고 했지. 올해 초만 해도 전반기 계획은 완벽해 보였는데, 설마 일본이 대지진으로 저 지경에 빠질 줄 누가 알았겠어. 이번만큼은 내가 운이 없었다고 할 수밖에. 일이 틀어지는 것까지도 각오해야겠지. 하지만 쉽게 포기하지는 않을 거다. 적어도 ‘인간’이 나 모르게 내 운명을 좌지우지 하도록 놔두지는 않겠어.

화가 난다기 보다는, 울분이 쌓인다. 뭐가 그렇게 못 마땅한 걸까? 아마도 정체되어 있는 나의 삶이 짜증스러운 것이리라. 20대의 나이에, 삶이 이토록 권태롭게 느껴질 수 있다니.

학창 시절에 많은 책을 읽고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한 것은 다행이다. 독서와 여행의 경험이 상상력의 바탕이 된다. 요즘 나는 차라리 꿈을 꾸는 게 좋다.

2011/04/27 23:52 2011/04/27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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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연습하고 와서 와인 한 잔. 상쾌하군.

모차르트 4번은 감당이 안 된다. 악보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니지만, 이걸 어떻게 ‘연주’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의미에서 여신(女神) 율리아님의 연주를 감상 해 보자.


2011/04/19 23:39 2011/04/19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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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 받은 월요일. 짧군.

충주에서의 21번째 레슨. 답 없는 비오티는 버리고, 모차르트 4번 악보를 받았다. 악보를 가방에 넣고 다니는 것마저 황송하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 곡을 연습할 수준이 아닌 것 같은데. 요즘 통 바이올린 연습을 제대로 못 했는데, 내일부터는 다시 정상적으로 연습에 임해야지.

2011/04/18 23:30 2011/04/18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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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내 생일. 가족과의 축하는 지난 주 주말에 이미 하야트 호텔 뷔페에서 저녁을 먹으며 했다. 유포니아 후배 몇몇이 축하 문자를 보내줬네. 돈줄은 잊지 않는 고마운 녀석들. 퇴근 시간에 상황실로 걸려온 전화 한 통. “처장님이 급히 찾으십니다. 올라오세요.” 올 게 왔군. 서프라이즈 파티. 전혀 예상하지 못 했던 척하느라 애썼다. 회식 제안은 거절하고 차갑고 도도하게 바이올린 레슨 행. 그러나 오늘은 레슨 대신 충주 시민 오케스트라 연습에 나가봤다. 이건 정말……. 깊이 엮이지 말아야지. 모차르트 4번은 어떻게 되는 거야. 나는 레슨을 받고 싶어.

만 25세가 되었다. 일생에서 단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운 시기는 10대부터 30대까지, 30년 정도라고 생각한다. 그 아름다운 시절의 절반을 살아버렸다. 앞으로 15년은 그냥 살고, 그 이후에는 더 살지 말지 고민해서 결정하겠다.

상황실에 있는 나는, 이 세상에 꽃이 피었는지 졌는지도 모른 채, 봄을 보내고 있다.

2011/04/14 23:53 2011/04/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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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넘어서 오프하고 서울 올라가 연주회 본 뒤 다시 내려왔다. 연주회를 목숨을 걸고 보러 다니는구나. 뭐 신현수 협연이니까……. 군인에게는 마음껏 리뷰 쓸 시간도 허락되지 않는군. 새벽에 출근하려면…….

2011/04/14 00:38 2011/04/14 00: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