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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문경새재를, 오늘은 추풍령을 넘었다. 지금은 엄청난 폭우를 만나 금강가의 휴게소에 갇혀있다. 이게 지나가는 비이기를 바란다.
2011/07/02 18:27 2011/07/0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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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도 가끔은 드라마 같을 때가 있다. 로맨스는 없지만.

어떤 것은 노력으로, 어떤 것은 운(運)으로 이루어졌다.

세상 꼭대기에 서보려는 욕심도 없고 처절하게 살지도 않지만, 무심한 듯 성실하게, 평범하지만 진지하게 살아간다.

2011/06/23 23:17 2011/06/23 2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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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 소위가 왔다. 관사에 여유가 없어서, 우리 방으로 데려왔다. 일단은 박 소위가 쓰는 큰 방으로 들여보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내가 작은 방을 쓰기로 한 것은 정말 탁월한 결정이었다. 방이 좁다는 핑계로 혼자 쓸 수 있으니 말이다.

작년 10월 무렵에나 설치해서 제대로 한 번 켜보지도 못 했던 에어컨을, 지금 아주 잘 쓰고 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밤에는 견딜만했는데, 오늘 비가 오고 나니까 본격적으로 찜통더위가 시작됐다. 방 안이 습습하다.

그리고 확정. 다 이루어졌도다.
정말 소길(小吉)정도는 타고난 인생이군.

2011/06/23 00:42 2011/06/2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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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초, 외할머니 생신이라 대구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과천에 들렀는데, 맥도날드 앞에서 고등학교 동창 셋을 만났다. 셋 모두 졸업 후에 처음 보는데, 내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줄 알고 있었다. 아무튼 그 중 한 명이 동원 예비군차 지금 충주에 와 있다. 게다가 또 다른 동창도 함께 말이다. 졸업 후에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만나려고 시도한 적조차 없는데 이렇게 만나지는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다. 저녁이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예비군들은 일과 끝나면 숙소 밖으로 나가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창문을 통해서 몰래 사식을 좀 넣어주는 것에 그쳤다. 사식이래 봤자 과자와 음료수 정도였지만.

바이올린 학원 사람들과의 회식은, 내 일정이 조정됨에 따라 한 주 미뤘다. 레슨을 추가로 받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10개월 가까이 레슨을 받았고, 비록 단 1회 연주 후에 원년 멤버들이 모두 탈퇴(당)한 황당한 단체이지만, 충주 시민 오케스트라 창단 연주회에 참여하는 재밌는 기회도 얻었다. 새 레슨 선생님 정보도 좀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건 많이 알아둘수록 좋으니 거절할 이유가 없다.

목요일에 소위 한 명이 충원된다고 한다. 한 1~2주 있다가 곧바로 3주짜리 교육 파견을 간다. 그 교육은 초급정보장교 교육인데, 교육생들 중 1~2명 정도가 더 이쪽 사무실로 올 예정이다. 목요일에 오는 소위에게 약을 먹여서 교육 기간 동안 질 좋은 애들 좀 구워삶아 오게 만들어야겠다. 떠난 뒷자리에 말이 무성하면 나로서도 편할 게 없지. 이제 이쪽도 좀 안정됐으면 좋겠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훈련소 시절 같은 소대였던 동기 몇과 만났다. 베트남 음식점에서 하노이, 사이공 맥주로 두어 잔씩 걸치며, 동기 한 명의 군 생활 하소연을 들어줬다. 그러다 중간에 합류한 시니컬한 철학자에게 상담역을 맡기고, 문화의 향취와 역사의 흔적을 즐기는 취미를 공유하는 한 살 위의 형과 함께 경복을 1시간가량 산책했다. 다시 저녁때는 독일식 맥줏집에서 족발을 안주 삼아 시원한 맥주를 들이키며 수다를 좀 떨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에 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10월 초쯤에 한 번 더 자리를 마련 해 보기로 했다. 그때는 좀 계획성 있게 준비를 해서 짧게 온천 여행이라도 다녀올까 싶다.

2011/06/22 00:53 2011/06/22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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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한국 조직 문화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볼 수 있는 것 같다. 권력이라는 게 뭔지도 조금 알 것 같다. 사람들이 왜 권력을 그토록 원하는지도. 나는 한 번도 내 삶이 통째로 어떤 조직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다. 그런 식으로 삶을 설계한 적이 없다. 하기야 자유분방한 20대에게는 이게 당연한 건지도 모르지.

오늘 어쩌면 충주에서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레슨을 받고 왔다. 헤아려보니 26번째 레슨이었다. 작년 9월 무렵부터 레슨을 받기 시작했으니 얼추 10개월 가까이 됐네. 요즘 이런저런 일들로 바쁘다보니 나도 좀처럼 악기를 만지지 못 해서 레슨 받을 입장이 아니었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니 어수선해서 앙상블이나 좀 맞추다 끝냈다. 충주 시민 오케스트라는 결국 분열되어서, 원년 멤버들이 떨어져 나와 동호회를 만들었다는군. 내가 진작 돈줄을 쥐고 있는 쪽의 뜻대로 될 거라고 했건만, 사람이 중요하고 어쩌고 하더니……. 하지만 수준에 맞는 모습을 찾아간 것 같기도 하다.

토요일에는 서울에서 훈련소 동기들을 좀 만나게 될 것 같다. 동기 한 명이 전화를 했는데, 다짜고짜 죽겠다고 하소연이다. 죽겠다는 사람이 멀리도 아니고 바로 내 옆방에도 한 명 있지만……. 저마다 무슨 애환을 그렇게 지고 살아가는지. 너무 쉽게 쉽게 살아가는 내쪽에 문제가 있는 건가.

2011/06/17 02:40 2011/06/17 0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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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부대 마트에 들러 빵과 우유를 샀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허기부터 달랬다. 어제 체력검정으로 땀범벅이 된 몸을 씻지도 못 한 채 근무를 섰다. 개운하게 샤워를 했다. 정신이 몽롱하다. 그대로 침대 위로 몸을 던져 잠들었다.

깨어보니 오후 3시. 무슨 바람인지 시장 구경이 하고 싶어졌다. 바이올린 레슨 받으러 가는 길에 늘 재래시장 입구를 지나쳤다. 하지만 한 번도 그 안으로 들어가 본 일이 없다. 앞으로 내가 충주에 얼마나 더 머물지도 알 수 없는 일. 마음이 생겼을 때 실행에 옮기기로 했다. 늘 차로 지나치기만 했던 그 입구 안으로 들어가 보는 일을 말이다.

시장 입구 근처에 무료로 개방된 공용 주차장이 있어 차를 댔다. 아치형 입구를 지나, 새로운 세상으로 발을 내딛었다. 차를 타고 지나칠 때에는 그냥 조그만 먹자골목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 골목은 생각보다 깊었고, 여러 갈래로 샛길이 나 있어서 그 샛길을 빠져나갈 때마다 새로운 시장 골목이 나타났다. 입구 안쪽의 세상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토요일 오후인데도 시장은 한산했다. 상인들도 별로 장사할 의지가 없는지 자기 가게는 비워두고 삼삼오오 모여서 수다를 떨거나 괜히 물건을 정리하거나 아예 널브러져 낮잠을 자고 있기도 했다. 옆구리 커다란 카메라를 끼고 있는, 누가 보더라도 관광객 티가 나는 나를 시선으로 쫓는 사람도 간혹 있었지만, 대부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어차피 물건을 사줄 것 같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쌉싸래한 냄새가 풍기는 약초 가게 앞에는 나무껍질이며 뿌리며 버섯, 녹각(鹿角) 같은 약재가 잔뜩 펼쳐져 있었다. 기름 짜는 방앗간 앞에서는 고소한 깨 냄새. 어름판 위의 오징어가 싱싱해 보이는 어시장에서는 생선 비린내. 시장 안은 온갖 냄새들로 가득했다.

시장 구경을 하다 보니 허기가 졌다. 마침 순대 골목으로 들어섰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앉아있는 아주머니에게 국밥 한 그릇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저것 다 넣어드려?”하기에, “예 이것저것 다 넣어주세요.”했다. 그랬더니 정말 뭐가 뭔지도 모를 것들이 산처럼 수북이 쌓인 순대 국밥 한 그릇 내어준다. 다데기와 파를 잔뜩 푸니, 국물이 얼큰하다. 냉장고에서 꺼내준 물통은 가만 보니까 원래 우유를 담는 페트병이다. 하지만 그 안에 담긴 노르스름한 차는 시원하고 고소하다. 소주병 수거하는 아저씨가 지나가니 아주머니가 불러 세운다. 몇 개 안 되는 소주병을 내어주며 투덜거린다. “토요일인데 손님 쥐뿔도 없어.” 앞에 혼자 앉아서 국밥 먹고 있는 손님 머쓱하다. 그래도 간혹 한 두 사람 지나가며 순대를 포장 해 간다. 1인분을 사든 2인분을 사든, 어째 봉투 가득 담아주는 건 비슷해 보인다. 우거짓국 한 바가지는 서비스인가 보다. 국밥 한 그릇을 뚝딱했다. 배때기가 찢어질 것 같다. 계산을 하고 다시 이 골목 저 골목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마치 과거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어떤 가게에는 20년 전쯤 김혜수가 찍은 듯한 광고 포스터가 그대로 붙어있기도 했다. 시장의 옷들은 어느 것이나 하늘하늘한 원단에, 색은 선명한 원색이고 꼭 화려한 꽃무늬나 땡땡이 무늬가 들어가 있다. 이건 ‘파리양행’이나 ‘희정패션’이나 마찬가지다. ‘상회’니 ‘상사’니 하는, 예스러운 이름의 가게들도 많았다. 도대체 뭘 파나 싶었지만, 대중이 없었다. 어떤 가게는 과일을 팔고, 어떤 가게는 곡식을 팔고, 어떤 가게는 잡화를 팔았다. 한여름 시장 골목에 햇빛을 가려줄 천막을 파는 천막사, 저울만 파는 저울가게, 냄비만 파는 그릇가게 등 뭐 이런 걸로 장사가 될까 싶은 가게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가게들을 한데 모아놓으면, 그 어떤 대형 슈퍼마켓보다도 더 다양한 상품들의 집합소가 된다.

재래시장(在來市場). 우리는 이런 시장을 재래시장이라고 부른다. 재래(在來)란 말은 예전부터 있어 왔다는 뜻이다. 예전부터 있었는데, 그걸 새삼스럽게 이름 지어 부르는 게 이상하다. 나중에 생긴 시장은 뭐라고 부르나? 아니, 백화점이나 슈퍼마켓도 시장이라고 부를 수 있나? 허연 냉기를 풍풍 내뿜는 냉장 진열대에 깨끗이 정돈된 야채들을, 여기서는 볼 수가 없다. 그저 한 아름씩 묶어서 여기저기에 널브러뜨려 놨다. 간판은 공업사라고 달려있는데, 들여다보면 하고 있는 일은 냄비를 두드려 펴는 거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모습을 보며 향수를 느낀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모든 게 낯선 풍경일 뿐이다.

예전에 일본의 어떤 프로그램을 보는데, 개그 콤비가 나와서 과거의 코미디를 재현했다. 나이 좀 있는 방송인들은 갈채를 보냈는데, 그때 한 젊은 여자 출연자가 덩달아 “참 그리운 코미디군요”하고 한 마디 거들었다. 그러자 다른 출연자들이 놀라며 “아니 이런 개그를 본 적이 있어요?”라고 물었는데, 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보니 전 본 적이 없네요.”

자기가 경험하지 않았어도 예스러운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그리움을 느낄까? 벌써 10년 전의 일이지만, 영화 ‘친구’가 개봉했을 때에 많은 사람들이 그 영화를 통해 과거의 향수를 느꼈다고 했다. 나도 그 영화를 봤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를 살지 않은 나는 그런 향수를 느낄 수 없었다.

내가 자란 과천이라는 도시에는 ‘굴다리 시장’이라고 하는 재래시장 비슷한 것이 있었다. 그러나 굴다리 시장은 야채나 과일, 고기, 생선 따위의 식재료를 파는, 좌판 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는 천막 상점이 늘어선 작은 골목 시장일 뿐이었다. 외할머니는 닭백숙을 해주실 때에는 늘 굴다리 시장에서 닭을 사오셨지만, 난 엄마와 장을 보러 갈 때는 늘 뉴코아로 갔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사람에게도 향수라는 게 존재할까. 나에게 재래시장은 오히려 낯설고, 신선한 구경거리다. 이 시대에는, 재래시장에서 향수를 느끼는 세대와 재래시장을 낯설고 신기하게 생각하는 세대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토요일 오후임에도 쥐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에 있을까? 국밥집 아줌마는, 그리움 가득 담긴 카메라 렌즈 같은 눈으로 시장을 배회하는 사람이나 나 같이 낯선 풍경을 찾아다니는 관광객이 아니라, 배고프면 시장을 찾아 한 끼 식사를 해결하는 손님을 기다릴 텐데 말이다.

2011/06/12 03:23 2011/06/12 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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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르헤스는 산책을 하면서 머릿속에서 단편소설 한 편을 써낼 수 있었다. 산책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남은 일은, 구상이 끝난 소설을 문자로 옮기는 것뿐이었다.

내가 감히 보르헤스를 흉내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 글을 쓸 때는 머릿속에서 구상했다가 한 번에 써내려가는 스타일이다. 앉은 자리에서 끝내지 못 하면, 좀처럼 다음 날 이어가지 못 하는 나쁜 습성이 있다. 그래서 많은 글들을 구상 단계에서 포기해버렸거나 혹은 쓰다가 중도에 멈추고 말았다.

유년 시절 이미 도서관을 통째로 머릿속에 집어넣었고, 곧 시력을 잃어서 평생 자기 내부의 재료들을 찬찬히 살필 여유가 있었던 보르헤스와 달리, 독서로 쌓은 밑천도 일천하고 시각적 유혹에도 약해서 쓸데없는 것들에 정신이 팔리기 일쑤인 나는, 보다 집중력과 인내심을 기르지 않으면 평생 글다운 글은 한 편도 쓰지 못 한 채 죽어버릴 것만 같다.

집중력과 인내심, 체력은 글을 완성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들인 것 같다. 훈련이 필요하다.

2011/06/10 00:56 2011/06/10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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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은 나에 대하여 거의 아는 것이 없다. 나의 1/100 만큼도 알지 못 한다. 마찬가지로 나 역시 타인에 대하여 그 사람의 1/100 만큼도 알지 못 한다. 사람들은 이처럼 서로에 대해 무지한 채로, 대다수가 공통적으로 겪는 보편적인 경험에 의지하여 서로를 이해하는 척 기만을 떨거나 무례하게 충고를 내던지고는 한다. 27살의 애 엄마가 나에게 사랑에 대해 충고하는 기막힌 일은, 이렇게 일어난다.

이런 바보 같은 일들은 하루 이틀 반복되어 온 것이 아니다. 앞으로도 나는 남에게 충고를 하고 싶어 안달하는, 나보다 한두 살 많은 사람들과 수도 없이 마주해야 할 것이다. 사람에게는 간사한 마음이 있다. 누구나 자기가 남들보다 우월하며, 자기 경험이 보다 존중 받을 가치가 있다는 착각을 품게 된다. 이런 착각은 습지의 독버섯처럼 성장하여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지배한다. 다양성이 제거되고 ‘차이’에 대한 관용이 소멸된 사회에서 이 독버섯은 훨씬 유해하다. 사람들이 저마다 인생이란 다 비슷비슷한 것이라고 여기게 되면, 자신의 우월성을 관철하고 기만적인 자기만족에 빠질 기회라는 것은 선(先)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만 얻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10년 먼저 태어난 사람은 10년 먼저 죽는다. 먼저 죽는 사람은 나중에 죽을 사람이 더 보고 누리고 경험하는 삶에 대한 어떠한 소유권도 주장할 수가 없다. 역사가 그의 죽음으로써 막을 내리게 되는 가련한 인간들은, 자신의 삶이 뭇 사람들로부터 경배 받을 수 있는 신화로 남기를 바라지만, 결국 그 자신이 자기보다 먼저 죽을 사람들의 얘기에 귀 기울이지 않았던 것처럼, 후배들은 자기보다 먼저 늙어버린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결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나에게, 자기가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쌓았는가를 열심히 주장하는 사람은, 자기가 앞으로 얼마나 다양한 경험을 할 것인가 하는 포부를 밝히는 사람보다 훨씬 덜 매력적이다. 초등학교 시절 장래 희망을 쓴 이후로는, 사람들은 줄곧 미래보다는 과거를 이야기하고, 포장하고, 신성시한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말하지 않고, 무언가를 했노라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무덤에 들어갈 준비가 끝난 사람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이미 깨우친 사람은, 이승이 아니라 천국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다.

애써 젊은 시절에 자기의 인생을 남 앞에서 자랑하는 것은, 가련할 뿐 의미가 없는 행위다. 서글프게도, 결국 죽을 무렵에 이르러 그의 삶을 칭찬하고 본받고자 하는 이가 없다면, 그 삶은 별로 칭송 받을 만한 점이 없는 그저 그런 인생인 것이다. 나는 감히 부끄러워서, 손자 앞에서도 내 인생을 자랑하지는 못 할 것 같다.

2011/06/02 00:37 2011/06/02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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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이 열정을 받쳐주지 못 하는 게 어린 거고, 정체되어버린 자기 지식 안에서만 열정을 불사를 수 있는 게 늙은 거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고. 세상은 어린이와 늙은이들의 싸움터다.

2011/05/31 23:19 2011/05/31 2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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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에서 보낸 한 철.

5월에는 3번의 일요일 근무를 포함한 7번의 근무가 있었고, 월말 2주 동안 2번의 일요일 근무가 끼인 5번의 근무가 몰려있었다. 잦은 근무 탓으로 수면 패턴이 망가져서 조각 잠으로 하루 두 번씩 자야했고, 바이올린 연습이며 운동이며 다 내팽개칠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내 거취 문제를 둘러싼 여러 상황들이 얽히고설키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이래저래 최악의 한 달을 보냈다. 6월은 좀 건강하게 살았으면 좋겠네.

이번 주말에는 외할머니 생신이라 대구에 다녀올 것 같다. 뭔가 맛있는 거라도 먹고 와야겠다.

유포니아는 이번 정기 연주회 때에 브람스 1번을 연주한다고 한다. 죽기 전에 한 번쯤 연주 해 보고 싶은 곡. 내 삶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곡이지. 멋진 연주를 기대한다.

일본 항공자위대 *****사령관 **** 장군이 방한한다. 통역으로 나를 지명했단다. 나는 한국 공군의 군인인데,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은 일본인들이다. 아이러니하군.

2011/05/30 23:09 2011/05/30 23:09